그때 세존께서는 어떻게 길의 자취[道跡]를 말씀하셨는가. 그 길의 자취를 말씀할 때 마치 왕의 큰 길을 ‘왕의 길’이라 하고, 별들의 길을 ‘별의 길’이라 하듯이, 이 자취도 또한 그러하여 열반에 이름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 말하였다. 저 등견(等見)의 처소와 등지(等志)ㆍ등어(等語)ㆍ등명(等命)에 다름이 없고, 등방편(等方便)에 빠짐이 없고, 등념(等念)이 한량없고, 등삼매(等三昧)의 빛이 변함이 없이 그 몇 가지 빛을 인연하여, 음욕도 없고 또한 번뇌도 없이 번뇌의 심부름꾼이 길이 일어나지 않게 하였다. 빛에 애착함이 없고 또한 온갖 가시[衆刺]가 없으며, 사랑을 멸한 까닭에 또한 괴로움도 없으며, 삿된 소견을 제한 까닭에 등견(等見)이 구족하며, 번뇌의 심부름꾼을 없앤 까닭에 길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 과(果)가 미묘한 까닭에 가지가지 뜻을 나타내고, 희망을 제거한 까닭에 온갖 생각이 없으며, 나갈 길을 구한 까닭에 모든 과를 성취하였고, 출세간법에도 집착함이 없는 까닭에 한 가지로 명색(名色)을 건졌다. 거기서 노닐었기 때문에 이 길은 하나요 둘이 없다고 함, 모두 그 제일의(第一義)의 처소에 이름을 반연하여 한 번 가는 것을 자기의 마음 서원으로 한 번 들어감이라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제일의 변재로써 길을 알고, 능히 스스로 깨달아 앎으로써 파괴되지 않았으며, 하는 일이 훌륭하여 어지러운 생각이 없고, 과보를 이미 성취하여 모든 착한 종자를 얻었으며, 저 중생들도 깨닫게 하여 곧 이 길을 말씀해 함이 없는 데 이르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런 게송을 읊었다.
중생들을 위해 일으키심은 감로의 법인 길이었다네. 부처님께서는 이 공덕이 있어 세간에서 가장 제일이라네.
내 지금 스스로 성취하되 청정한 금계가 구족하여 인간과 아수라에게 말씀하나니 이러므로 합장하고 정례한다오.
그때 부처님께서는 앙굴만(鴦崛鬘)을 이제 교화시킬 것을 아셨다. 바로 그때 ‘악지식(惡知識)과 서로 말할 자도 없었다’고 깨닫고서 곧 그 길로 가니, 한 사람이 있는데 피가 흘러 길에 가득 차 넘치고, 까마귀와 매가 곳곳에서 죽은 사람을 먹고 있었다. 앙굴만은 걸음이 돌개바람같이 빨라 만약 발만 들어도 사슴의 무리와 나는 새들이 모두 놀라 달아났다. 그때 앙굴만은 사리(闍梨)동산 안에서 좌우를 돌아보았으나, 보이는 것이 없고 부처님을 보자 단정하고 비길 데 없이 황금색인데, 방편을 지어 허리가 굽지 않고 몸이 매우 부드러우며 걸음걸이도 조용하였다. 그는 기운을 다해 부처님 뒤를 쫓아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대로 걸어가고 있으나 미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 땅에 함정과 가시밭을 만들었으므로 미칠 수 없었다. 혹은 발로 땅을 밟은 까닭에 부처님께 미치지 못하였다 하고, 혹은 빛이 없는 4대를 화하므로 눈의 알음을 갖지 못했다 하고, 혹은 부처님 공덕이 불가사의라, 그러므로 앙굴만의 힘이 사나운 코끼리 같으나, 능히 당할 수 없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력은 불가사의라, 오히려 저 신룡(神龍)ㆍ나라연(那羅延)이 백천억의 수가 있어도 또한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앙굴만은 곧 이렇게 찬탄하였다. “이 미증유함을 보았도다.” 그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뜻은 매우 기이하고 특이합니다.” 그리고 진에(瞋恚)로 해칠 뜻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것은 어떤 은덕(恩德)인가. 반드시 이는 신인(神人)일 것이다. 마치 이런 악한 세상에 나를 아름다운 데 돌아가게 하듯 하고, 또 주림에 이익이 있음과 같고, 또한 자비심을 내게 함과 같다. 그러나 내가 능히 미칠 수 없으니 반드시 이는 선지식(善知識)일 것이다. 지금 나는 매우 피로해졌다.’ 그리고 멀리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마땅히 저의 몸을 위하시어 세상에 드물게 보고 듣는 이여, 이제 또한 스스로 덕을 보리니 원하옵건대 잠깐 멈춰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멈추지 않고 나에게 멈추라고 하느냐?” 그러자 앙굴만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사문(沙門)은 스스로 멈추지 않고 나보고 멈추지 않는다 하시네. 어째서 내가 멈추지 않는다고 하시는지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갖추어 말씀해 주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악함이 없으면 이것이 멈춤이니 계행을 지켜 사람을 보호해 기르라. 저 가섭(迦葉) 제자와 같이 하라. 그러면 너는 멈추지 않으리라.
그는 본래 모든 악함이 적은지라, 길이 피 흘리는 더러운 몸을 다하고, 곧 칼을 던지고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스승님은 지금 나의 구호자시라 이런 거룩한 스승을 만났음이여, 스승의 제자가 되어서 곧 스승의 금계를 어기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잘 오라, 비구여” 하시고 곧 게송을 읊으셨다.
마치 저 큰 바다의 물이나 또한 연기와 불꽃을 내더라도 항복을 받지 못할 자이거늘 이제 나의 교화를 받으리라.
또한 잘 항복함이 있어 청정하게 득도(得度)하여서 또한 나의 제자가 된다면 이렇게 있음을 받지 않으리.
보는 사람이 다 겁내기를 모든 요물과 귀신처럼 여기나니 이 모든 귀신들 처소에도 부처만이[最勝] 그 안에 들어가리.
어느 때 아라파(阿羅婆) 귀신이 갈타파(褐陀婆) 귀신의 말을 듣고 진에(瞋恚)가 매우 성하여 얼굴빛이 변하였다. 그리고 진에의 불이 일어나 눈이 붉은 구리 같고, 목소리와 메아리가 우레처럼 떨쳐, 진에가 대단하여 머리를 흔들고 입술을 깨물고 몸을 떨면서 곧 이렇게 생각했다. ‘내 세상에서 인민들의 무리도 나의 처소에 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의심을 품고 어찌하여 저 사람이 나한테 왔는가’라고 하였다. 파다(婆多)라는 여러 귀신 가운데 이혜마파타(梨醯摩婆陀)가 우두머리가 되어 그 큰 귀신에게 말하였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부처님께서는 아직 항복하지 않는 것도 항복시켜, 중생들을 편안한 곳에 두어 위없는 길을 얻게 하며, 모든 형상이 있는 무리들을 보호하거니, 이러한 말을 복전(福田)에게 서로 맞지 않도다. 그대의 지금 추한 말과 나쁜 말은 서로 응하지 않으리라.” 그러자, 아라파 귀신은 성이 배나 나서 쿨럭이고 숨결이 마치 큰 불꽃같아, 보기에도 매우 흉하여 곧 그 귀신의 경계를 버렸다. 진에로 몸에 얽힘이 되어 매우 검고 눈빛도 변하여 보통 같지 않았으며, 입에서 네 개의 어금니가 나오고 머리털이 누런 금빛인데, 아래위로 서로 엉키었고 사람의 피를 그 몸에 칠해 다 젖고 마르지 않았다. 사자 껍질, 코끼리 껍질, 황소 껍질을 입었고, 큰 꽃다발이 큰 불꽃 같으며, 손에 칼을 들고 땅을 치고 가는데 모든 산악을 깨뜨리고 산 숲의 나무를 빼내기도 하였다. 혹 큰 구름을 일으켜 큰 광명을 뒤덮으며, 허공에서 물을 뿌리고 소리가 천둥치듯 하면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살해하려 하였다. 가지가지 나무가 다 불에 타 빛이 변하고, 손에 쇠바퀴를 들고 천둥 번개같이, 이런 진에(瞋恚)로 부처님을 관찰하며, 온갖 변화를 지어 부처님을 귀찮게 굴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중생들은 두렵고 겁내도 내 뜻은 움직이지 않노라. 이제 해탈의 법을 얻어 두려운 마음이 없노라.
불구덩이에 있어도 불이 무섭지 않고 또한 물에 있어도 물도 겁나지 않네. 나쁜 마음을 낸다고 해서 어찌 능히 나를 상하게 할손가.
그러자, 아라파 귀신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스스로 마음을 쉬어 파괴하지 못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무서워 오지 못하므로 곧 우박을 부처님 위에 퍼부었으나, 다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흩어졌으며, 혹 부처님 몸에 떨어진 것도 모두 만다라꽃이 되었다. 그 귀신은 이 힘의 억셈을 보고 미증유(未曾有)함을 찬탄하며, 곧 크게 기쁜 마음을 내어 부처님께 말하였다. “빨리 나오라, 사문이여.” 부처님께서는 곧 나오셨다. 그 귀신은 부처님을 시험하려고 다시 이런 말을 하였다. “도로 들어가라, 사문이여.”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원한의 마음이 없이 그곳에 들어갔다. 이렇게 세 번 하고 나서 널리 경의 말씀을 하시고, 이런 게송을 읊었다.
제석천이나 모든 범천이라도 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거니 하물며 지금 너 같은 힘으로야 감히 나를 상하게 할 수 있으랴.
너는 이제 성냄을 버리고 의심이 있거든 즉시 물어라. 이네 마음에 의심을 내 낱낱이 풀어 주리라.
그러자 그 귀신은 이렇게 물었다. “사람은 무엇을 맨 위라고 여깁니까?” 널리 말함이 경과 같은지라, 그는 현재 법 가운데서 곧 부처님 처소에서 크게 기쁜 마음을 내어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 사문과 같은 이를 일찍 보지 못했소. 누가 능히 큰 바다를 버리고 소 발자국 물을 찾겠소.
마침내 내 몸을 위하여 곧 이런 말씀을 하시니 누구라 이 맛을 보지 않고 곧 감로를 버리고 가리까.
저 어떤 역사(力士)와 같이 물에 빠져 떠내려감이 될 때 이미 액난의 처소를 건져 함이 없는 언덕에 두오리까.
빛도 고와라, 비길 데 없어 지혜로운 이가 볼 만도 하다. 그 뜻을 모두 가졌으므로 능히 이런 법을 말씀하시네.
스스로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노니 세 가지 보배 가장 높은 이여, 원력을 구하는 까닭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심이네.
이렇게 들었다. 마갈타국(摩竭陀國) 경계 안에 다섯 땅의 큰 귀신이 왕사성(王舍城)에 머물러 큰 세력으로 다른 것을 거느리고 인민들을 옹호하였다. 교통이 매우 발달되고 토지가 걸어 풍년이 들고 현성과 인민이 그 속에 있어 비교할 데가 없었다. 감로를 먹으며 세 가지 일이 미묘하여 또한 온갖 고뇌가 없이 마치 저 난타원(難陀洹) 동산이 천상에서 제일이듯 그때 부처님도 가장 제일이라 비길 데 없었다. 그러나 제바달다(提婆達多)는 부처님에게 항상 성냄을 품어 그침이 없이 법 아님을 행하였다. 이런 진에 때문에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올라가 동산을 보니, 수목이 울창하고 샘물이 청정하여 경치가 좋았다. 그는 손에 돌을 들고 부처님을 해치려 던졌다. 그 돌에는 뜻이 없지만, 마치 스스로 자제하듯 사뿐히 땅에 떨어졌다. 제바달다가 이런 옳지 않은 일을 하였으므로 온갖 귀신들이 돌을 붙들어 떨어지지 않게 하였기 때문이다. 금비라(金毘羅) 귀신이 기사굴산에 살았었다. 자기의 힘으로 그 돌이 떨어지려 할 때 곧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비록 악업(惡業)이나 우리 야차(夜叉)들은 이 몸으로써 이것을 감당하리라. 또한 부처님에게 백천 가지 즐거움을 받게 하는 것이면 내가 능히 이것을 하리라.’ 그리고 이런 게송을 읊었다.
마음이 청정하고 티가 없어 온갖 뜻을 일으키시네. 내 이제 이 몸이 다하도록 가장 높은 이를 해롭게 않으리.
그러나 제바달다는 돌을 던졌다. 마침 산 위에서 그 귀신이 손으로 돌을 받았으나, 깨어진 돌 한 개가 부처님한테 튀어 다리와 발가락에 피를 내었다. 이 과보 때문에 제바달다는 한량없는 죄를 받아 이 과보로 인연해 마침내 지옥에 들어갔다. 그때 돌이 땅에 떨어지자, 바로 33천에서는 꽃을 흩어 공양하고 공해탈(空解脫)을 표했으며, 꽃을 흩어 허공에 가득하였고, 그들이 교화를 받은 강당에는 33천의 주도수(晝度樹)까지 부처님의 광명이 멀리 비추었으며, 교만이 없이 중생들을 어여삐 여겼다. 그때 파라타시(波羅墮時) 바라문이 5백 가지 일로써 부처님을 훼욕(毁辱)하자, 사리불과 붕기사(朋肌奢) 등 비구는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훼방해도 언짢아하지 않으시고, 또 찬탄을 하여도 기뻐하지 않으셨다.
괴로움을 받아도 마음에 변함 없음 마치 안명산(安明山)같이 움쩍 않네. 뜻을 쉼이 매우 굳건하여 이러므로 큰 신선께 예배하노라.
다른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공덕이 많아 한량이 없었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 하므로 뉘라서 그에게 합장하지 않으랴.
일찍이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께서 마갈타국 안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공덕이 구족하여 때가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대중들에게 둘러싸였는데, 모든 기관이 구족하여 자기 몸을 관찰하되 또한 온갖 어지러움이 없고, 걸음걸이가 조용하여 또한 급하지 않았으며, 모든 비구들을 거느리고 그곳에 나아가셨다. 그때 마갈타국왕에게는 단나바라(檀那波羅)라는 코끼리가 있었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머리에 혹이 세 개 났으며, 소리가 울림이 맑게 사무쳐 하고자 하는 것을 제지하기 어려웠다. 만약 다른 소리를 들으면 곧 성을 내고 또 스스로 자기 그림자를 보아도 또한 진에(瞋恚)를 내었으며, 그 앞을 당할 이가 없고, 마음대로 하되 그것이 싸우게 되면 그 힘을 헐 수도 없고 또한 졸지도 않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곧 그 성에 들어가자, 성가퀴ㆍ다락ㆍ누대ㆍ망보는 데가 모두 구족하였고, 인민들이 매우 번성하였으나, 혹은 근심하기도 하고 혹은 크게 기뻐하기도 하였으며, 부처님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부처님을 친근히 하려 하였다. 이때 제바달다는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그 코끼리를 놓아주었다. 제바달다는 코끼리를 놓고 나서 곧 이런 게송을 읊었다.
스스로 일컫되 큰 힘과 또 몸에 열 가지 힘이 있다 하니 오늘 이미 이 모임에서 다 이것을 멸해 없애라.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두려움 없이 곧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라발(伊羅鉢) 용왕이 천이 있어도 능히 나를 이기지 못하거늘 하물며 이 작은 동물이 사람 가운데 높은 이를 해치려는가.
나는 그때 생각한 바가 없었노라 하고, 곧 이런 게송을 읊었다.
욕심 없는 힘이 가장 억세나니 중생은 욕심이 있도다. 이 욕보(慾報)를 제거함으로써 또한 어지러운 생각을 내지 않노라.
다시 또 이런 게송을 읊었다.
큰 코끼리가 매우 굳건해도 내 이제 비록 파괴하지만 내 이제 그를 항복시키리니 일체 세상에 이 위없으리라.
그때 단나바라는 부처님을 자세히 보다가 얼굴빛이 매우 검어졌다. 그 코끼리가 꼬리를 치는 것을 보자, 몸이 매우 장정하여 보는 사람은 모두 겁에 질렸다. 분주하게 부처님에게로 다가왔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은혜로운 힘을 입어 일깨움을 따라 그 나쁜 코끼리를 피하여 각각 부처님 처소로부터 달아났으나, 아난 존자만은 부처님 뒤에 남았었다. 무수한 과거세에 항상 부처님과 함께 하여 이미 스스로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또한 부처님을 버리지 않았다. 단나바라 코끼리는 진에가 치성한 불이 그 몸을 얽는지라, 부처님을 해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에의 불은 점점 꺼졌으니 널리 말씀함이 계경과 같았다. 손의 바퀴무늬 상호가 매우 미묘하고 비길 데 없는지라, 부처님께서는 손을 들어 코끼리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비로운 마음 때문에 성내는 마음이 없어지고, 부처님 말씀을 듣고 즉시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부처님 발에 대고 혀로 발을 핥았으나,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코끼리는 곧 두려움을 내어 몸에 힘이 빠지고 오줌을 흘렸다. 그런 뒤에 부처님께서는 이 현성 법으로 곧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욕심과 교만이 없고 부처님은 이런 티끌이 없네. 때에 자비로운 마음을 내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리라.
이렇게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자, 크게 기쁨을 품고 온화한 얼굴에 즐거운 빛으로 부처님 처소에서 이마와 코를 부처님 발에 대고 나서 도로 본국으로 들어갔다. 인민들은 모두 이런 미증유함을 보고 코끼리가 항복함으로써 크게 기뻐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고, 모두 다 부처님을 즐거이 믿었다. 이때 이런 게송을 읊었다.
산과 같아 움직일 수 없는데 하물며 성냄으로 이기려는가. 그 원적(怨敵)을 이김으로써 이라발(伊羅鉢) 용왕과 같네.
이러한 덕이 있는지라 그 힘을 당할 자가 없도다. 사람 가운데 영웅인 사자라 모두 다 합장하고 귀의하네.
이러한 중생들 무리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어 삼계를 항복 받아 그 이름도 높으니 7각의는 견줄 곳도 없어라.
이러한 중생의 무리들은 또한 진에의 근심이 있어도 뜻과 성품을 다 쉬어서 굳건히 일컬음이 멀리 퍼지네.
지혜로 영락을 삼은지라 마음이 조촐해 물듦이 없고 열 가지 힘이 모두 구족하므로 이래서 합장하고 귀의한다네.
그때 왕은 달이 허공에 뜬 것같이 티끌이 없고, 마음을 쉬어 일을 다 성취하였으며, 일곱 신선이 다 영락이 되어 또한 번뇌가 없었다. 별이 스스로 영락이 되어 마치 이라발 용왕과 같이, 이르는 곳마다 구름이 그 뒤를 따랐다. 가지가지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여 거기서 듣기를 마치자, 마치 저 신상(神象)이 노닐 듯 진기한 보배에 또한 의심이 없었다. 네 가지 군사와 인민들이 스스로 에워쌌으며, 그 코끼리 위에서 불을 들고 코끼리 코를 쥐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셨으므로 그는 부처님을 뵙고자 곧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왕이 보려고 잠깐 나오는 동안 무수한 대중들에게 둘러싸였다. 왕은 곧, ‘멀리서 왔으니, 내가 응당 스스로 호위하리라’고 생각하고 기바(耆婆)에게 나가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살리지 못할 것인가?” 그리고 왕은 잠깐 동안 얼굴빛이 단정하여 비길 데 없어 사람 위에 뛰어났었다. 꽃과 과실이 무성하고 또한 먼지도 없으며, 세 부류가 구족하여 마치 왕벌과 같아서 소리와 소리 울림은 좋지 않았다. 그 동산을 보자, 비구승들이 앞뒤로 에워싸고 있었다. 멀리서 와서 부처님을 보려고 자주자주 기바를 돌아보면서 기바에게 일렀다.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어떤 물건인가?” 기바는 왕에게 아뢰었다. “이것은 이름을 육계(肉髻)라 합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이것은 자연히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 “행의 과보로 된 것이요, 지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과보로 보살이 되었느냐?” “본래 태를 받아 나듯이 본래 지은 행대로 본래 몸이 이루어졌습니다.” 널리 말함은 계경과 같았다. 그러자 왕은 곧 게송을 읊었다.
마치 저 해의 밝은 빛과 같이 혹은 여러 가지 상호도 있네. 머리 위에 육계는 위가 없거니 하물며 또 다른 상이야 말할 것도 없네.
얼굴 모습이 온화하고 즐거워 능히 어질고 겁약함이 없으며 이미 이런 광명을 내시어 시방 국토를 두루 비추시도다.
왕이 곧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기바에게 일렀다.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기바는 왕에게 말하였다. “여기서 대왕이 능히 교만함을 항복 받으면 곧 호귀(豪貴)한 곳을 얻을 것이요, 교만하면 곧 비천한 데 날 것입니다.” 왕은 곧 뜻을 쉬고 생각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이것은 옳은 복전(福田)이니, 나는 마땅히 이 업을 행할 것이다. 나는 호귀하거니 어찌 그에게 예배하겠는가. 그는 옷의 단장도 없고 나는 지금 왕의 옷을 입고 천관(天冠)을 썼다. 그러나 저 분은 매우 단정하여 마음을 쉼으로써 온갖 상호가 구족하여 추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그 상호가 매우 미묘하여 마치 태산과 같아 움직일 수 없구나.” 곧 문에 이르자, 크게 기쁜 마음이 생겨 털이 다 일어섰다. 꼭 벗어나려는 마음으로써 욕심의 생각이 없이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몸이 있어 마음과 뜻에 바름을 얻어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부처님과 또 비구승들도 그러하옵니다. 저의 우타야바라타(優陀耶波羅陀) 태자도 또한 그렇게 되도록 하여 주소서.” 곧 이 뜻을 묻고 크게 기뻐하여 이런 게송을 읊었다.
큰 바닷가 가없으나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인다. 부처님께서는 움직이지 않는지라 이제 인간 가운데 제일인 분을 뵈었습니다.
제석천왕이며 또 모든 범천왕들도 와서 예배합니다. 저도 이제 높이 공경해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오리다.
그때 사제소니(闍提蘇尼) 바라문이 흰 꽃과 같은 마차를 타고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사위국(舍衛國)을 나왔다. 부처님을 시험해 보려고 하여 수레를 타고 가다가 곧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과 함께 점점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쪽에 앉았다. 이때 부처님 처소에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않고, 부처님 얼굴을 보자, 빛이 매우 미묘하여 그와 같을 이가 없고, 또한 겁약함도 없이 전륜성왕의 상호가 있었다. 그 몸을 보고 눈으로 이런 법을 관찰하자, 부처님의 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여 범행(梵行)도 또한 처소가 없었으며, 이러한 큰 공덕이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찬탄하고 말하듯, 애욕은 굳건함이 없고 세간을 나오는 법은 또한 허망함이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바라문은 곧 이렇게 물었다. “세존께서는 스스로 아시고 범행을 행하십니까, 그렇지 않으십니까? 모든 기관을 세워 스스로 그러하옵니까?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이런 것을 말한다면 또한 결루(缺漏)치 않고 힘이 없거나 온갖 행이 없음이 아니니라. 매우 청정하여 티와 더러움이 없이 범행을 닦는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그 뜻이 어떠냐’고 나에게 말하면, 널리 계경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라.” 사제소니 바라문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결(缺)이라 하고 루(漏)라 하오며, 어떤 것을 힘이 있지 않음이 아니라 하고, 어떤 것을 온갖 행이 매우 청정해 비길 데 없어 이것을 범행이라 하나이까?” 이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관찰하라. 애욕의 촉각(觸覺)을 구함에 있어서 만약 범(梵)이 있어 스스로 깨달아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고는, 눈과 빛이 이러하고 범행이 이러함을 관찰하고, 처음으로 범행을 구하되 가령 생각에 집착을 일으키면 그것을 결(缺)이라 말하고, 그 온갖 숫자를 계산함을 루(漏)라 이름하며, 뜻으로 깨달아 아는 것을 힘이 있지 않음이 아니라 하고, 먼지의 때 낌이 없더라도 뜻이 가운데 달려 깨끗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킴은 이것은 범행의 때[垢]이므로 범행이라 하나니, 자세한 것은 계경과 같으니라. 바라문이여, 내가 관찰한 바의 껍질에 덮인 가운데 깨끗하지 않은 덩어리를 선택하여 그 몸의 나를 보면 빛과 사랑이 이미 다하여 다시 눈에서 눈과 빛을 볼 것인가. 그러나 바라문이여, 내가 촉각을 관찰하건대 또한 행이 있음이 없거니 어찌 촉각이 있으랴. 욕심에 물들고 집착함으로 촉각이 부드럽고 미끄러움을 받느니라. 그러나 바라문이여, 내가 보건대 일체는 무상(無常)하거니 어찌 욕심을 다하지 않고 물들고 집착하는 뜻이 있으랴. 만약 바라문이 이 모든 법에서 나라고 또한 이것을 보지 않으랴. 남자니 여자니 모두 분별일 뿐이니, 어찌하여 여자의 욕심 많은 생각[欲想]을 일으켜 거기에 달아나고 집착할 것인가. 바라문이여, 그 남자의 욕상(欲想)이 없으면 또 여자라는 생각과 서로 응하지 않으리니, 바로 욕상이 일어날 것인가. 또한 바라문이여, 거기 한계가 있으니, 해탈의 낙을 얻으면 어찌 내 본래 지운 대로를 생각할 것인가. 그런 뒤에 바라문이여, 모든 뜻[義] 아님이 생기나니 고뇌를 없애려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서원으로써 범행을 닦느니라. 일곱 가지 일이 있는 까닭에 범행과 서로 응하지 않나니, 결루(缺漏)가 없으면 또한 온갖 행(行)이 없어짐도 널리 계경에서 말함과 같으니라. 바라문이여, 중생들은 어지러운 생각의 집착이 있어 애욕을 떠나지 못하나니, 저 중생들이 어찌 이렇게 관찰하랴. 모든 조촐한 생각이 있어 이 몸 안에 한창 냄새나는 것을 다 없애려 할 것인가. 바라문이여, 마치 물을 젖에 타는 것과 같이, 또 이 젖이 있음과 같이, 이 모이고 만나는 애욕도 또한 그러하니, 마땅히 이렇게 살피되 힘줄과 뼈가 서로 있었고, 속엔 한창 냄새나고 더러우니 어찌 탐낼 것이 있겠는가. 바라문이여, 마치 어린아이가 먼저 단 것을 주면 입에 대고 뒤에 쓴 것도 먹듯이 이것도 또한 그러하여, 만나고 모여 욕상을 일으키고, 능히 괴로움을 참음이 되느니라. 마치 새로 죽은 송아지의 그 껍질을 보면 젖을 얻음이 많음과 같아서, 이것도 또한 모든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여 그 형상을 관찰하면 곧 물들고 집착하는 뜻이 일어나느니라. 바라문이여, 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꿈에 맛난 음식을 먹고 음식을 먹으므로 곧 기뻐하여 뛰노나, 그 사람은 또한 먹음이 없듯이, 이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모든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욕심에 탐착함이 오히려 그 꿈과 다름이 없으며, 모이고 만남에 그 생각이 일어나지만 그 사람은 참으로 착한 데 나아감이 없이 남자와 여자들은 모든 변하기 쉬움이 있느니라. 이런 게송을 읊었다.
이것은 이 참의 법[眞法]이 아니니 욕심내고 성냄에 무엇을 탐내랴. 바라문은 마땅히 잘 관찰하라. 괴로움의 근본은 빼내기 어렵노라.
도를 친근함이 가장 요긴하나니 마땅히 애욕의 생각을 끊으라. 현성의 8품도(品道)는 그렇게 착한 곳에서 일어나느니라.
그때 다섯 사람은 멀리서 부처님을 보았다. 보고 나서 곧 서로 일러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리 온다. 본래 하던 일을 지금도 아직 성취하지 못하여, 널리 보고 듣는 대로 마음대로 생각해 꺼릴 것이 없다. 가지가지로 부지런히 고행했으나 미혹하여 아직 도술(道術)을 성취하지 못하였구나.” 널리 말함은 계경과 같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곧 이런 생각을 하셨다. ‘불쌍하게 이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들은 스스로 제한을 짓고, 그 제한 때문에 부처님에게 공손한 마음이 없구나.’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들 처소에 이르자, 깨끗한 땅에 앉으셨다. “속박은 무엇으로 인해 생기기에 병을 고치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다섯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느냐? 다시 서로 걸식하라. 깊은 법을 말해 주리라.” 그러나 다섯 사람은 일깨움을 받지 않고 ‘이 법은 깨달아 알기 매우 괴롭다’고 생각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당신은 본래 6년 동안 부지런히 고행하여 도를 배우며, 하루 삼씨 한 알이나 쌀 한 알을 먹었어도 오히려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하물며 지금 마음과 입을 따르면서 스스로 도를 얻었다 합니까. 맛난 음식을 먹고 진기한 보배옷을 입고 마음대로 그 몸을 기르지 않습니까.” 이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떻게 너희들은 부처 얼굴빛에 변함이 있음을 보았는가. 모든 기관과 마음이 고요하고 얼굴 모습이 단정하여 지금 얼굴 모습과 본래 용색(容色)과 어찌 다르지 않으랴. 그 경계는 과거였느니라.” “지금은 매우 단정하여 비길 데가 없습니다.” “만약 본래 이 감로를 얻지 못하였다면 누가 이 삼천세계에서 감로를 얻었겠느냐. 또 듣건대 하늘과 아수라는 저 큰 바다 가운데 수미산 밑에서 감로를 얻는다고 하니 이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 삼천세계에서 용맹의 뜻으로써 지혜의 감로 맛을 얻었으니, 이것은 매우 기이하고 특수함이라, 세상에 일찍이 없던 일이니라. 백천 겁 동안 행을 닦아 마음을 쉬고 가장 묘하여 멀리 명색(名色)을 여의고 해탈이 자재로우며, 감로 맛이 매우 깊으니라. 저 중생들을 위한 까닭에 그 법을 설하되 심한 근로를 참아 일찍 사양하고 꺼리지 않고, 일체 번뇌를 위한 까닭에 진로(塵勞)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마음의 지혜를 열려고 어머니 태중에 있었고, 이 생사 때문에 그 근원을 다하였다. 멸함이 없는 까닭에 다하지 않고, 항상함이 있는 까닭에 법이 적지 않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까닭에 즐거우며, 맺힘을 멸한 까닭에 다시 새로 짓지 않나니 큰 신선들이 찬탄함을 이미 모두 성취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부지런히 괴롭게 행함은 일체 싹들을 위한 까닭에 이제 법을 설하느니라.” 부처님의 둥근 광명이 일곱 자이고, 얼굴빛은 안명산(安明山)과 같이 3세(世)가 존중 공경하며, 일체 지혜의 말씀은 걸리는 데가 없었다. “이렇게 비구들아, 이것을 괴로움의 근본이라고 아유(阿維) 삼부타를 성취하였느니라.” 자세히 말함은 계경과 같다. 천상과 인간이 찬탄하는 바 광명이 다함이 없었다. 이때 해가 흐려서 나타나지 않고, 또 하늘 사람으로써 혹은 몸에 미묘한 의상을 입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 혹은 하늘 옷을 입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는데, 모두 천관(天冠)을 드리워 빛이 같지 않았으며, 혹은 영락을 땅에 떨어뜨리며 부처님의 감로에 주리고 목말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생(生)함이 없이 천상 인간들을 배부르게 하였네. 감로의 맛을 먹었는지라 마침내 주리고 목마른 근심이 없네.
오늘 열 가지 힘이 나셨으므로 세상이 찬탄하나니 마땅히 깊은 법맛을 먹으면 이미 해탈계(解脫界)에 이르리.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온갖 행으로 고현성제(苦賢聖諦)를 관찰하셨다. 최초에 태(胎)를 받은 괴로움이 어디서 생겼기에 길이 어둠에 처하여 등불의 밝음을 보지 못하나니, 이런 까닭에 나는 것이 가장 괴로움이다. 이 괴로움 형상을 관찰하자, 괴로움이 생겨 견딜 수 없이 괴로움의 업이 되고, 마땅히 힘써 가리고자 하므로, 희망의 괴로움이 있어 뜻에 싫음이 없었다. 구하려고 함을 얻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희망대로 얻음이 만족하지 않음이 괴로움이며, 약간의 방편을 일으켜 잃지 않고 보호하려 해도 점점 갈아 없어짐이 괴로움이요, 약간이나 온갖 번뇌로움이 와도 이미 저 언덕에 건너기 어렵고 안팎 사람들이 함께 다툼이 있음이 괴로움이며, 친족들이 돈과 재물을 다 흩으면 그것을 생각해 잊기 어려움도 괴로움이요, 애욕의 모든 맺힘을 여의지 못함도 괴로움이며, 욕이 가장 괴로움 되나니 그것을 없앨 수 없는 까닭이니라. 진에(瞋恚)가 괴로움이라 죄 지음을 멸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어리석음도 가장 괴로움이라 밝게 비춤이 없는 까닭이요, 교만함이 괴로움이라 뜻이 매우 치성한 까닭이며, 스스로 존대함이 괴로움이니 높고 낮은 뜻이 없음이요, 벗이 괴로움이니 마음은 나누어 여의지 못하는 까닭이며, 사랑이 가장 괴로움이니 맛에 집착해 싫음이 없으며, 간탐과 질투가 괴로움이니 마음을 열어 헤치지 못함이며, 계행이 없음이 괴로움이니 변하고 뉘우치는 까닭이요, 소견이 괴로움이니 진제(眞諦)를 보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일체의 맺힘이 있는 자기의 몸[色身]은 괴로움이요, 믿고 의지함이 없음도 괴로움이며, 과보를 구함이 괴로움이요, 모든 초목(草木)과 또 4대로 이룬 것은 함께 서로 얽매이어 모든 인연을 일으킴이요, 속의 4대도 괴로움이라 약간 변괴함이며, 모든 음(陰)으로 가짐도 괴로움이니 자연을 말미암은 까닭이요, 6입(入)도 괴로움이니 의지함을 떠나지 못함이며, 경계가 괴로움이니 바깥 빛을 부름이요, 고의 감각도 괴로움이니 몸을 태우는 까닭이며, 낙의 감각이 괴로움이니 괴로움을 인연해 나는 것이요,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이니 경계를 말미암아 나는 것이며, 생각[想]이 가장 괴로움이니 중생의 행으로 말미암는 까닭이요, 식(識)이 가장 괴로움이니 그것을 인연해서 나며, 늙으면 모든 기관이 야윔이며, 병이 가장 괴로움이니 4대가 따르지 않음이요, 죽음이 가장 괴로움이니 다시 다른 형상을 받음이며, 원수와 미움을 만남이 괴로움이니 마음을 함께 친근케 함이요, 하고자 함을 얻지 못함이 가장 괴로움이요, 또한 매우 괴로움이니 골자를 따서 말하자면 다섯 가지 5성음(盛陰)의 괴로움으로, 항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저 곳에 나아감이었다. 지옥이 괴로움이니 몸을 태우고 지짐이요, 축생이 괴로움이니 각각 서로 씹어 먹음이며, 아귀가 괴로움이니 주리고 목마름이 몸을 핍박함이요, 사람이 이 괴로움이니 가지가지로 그름을 행함이며, 하늘도 괴로움이니 복이 다하면 떨어져 저 경계를 따라 3악취에 떨어짐이요, 욕계(欲界)도 괴로움이니 사랑에 얽매임이며, 색계(色界)도 괴로움이니 색계도 또한 지혜가 없고 모두 괴로움이 되어, 이렇게 세 가지 괴로움에 핍박되어 모두 다 포섭해 가졌다. 그때 몸과 뜻으로써 행하는 까닭에 혹 한 가지 행으로써 괴로움을 지으며, 짓는 대로의 행이 모두 괴로움이 되며, 이러한 온갖 괴로움이 휴식함이 없으며, 인연이 다하지 않는지라 마땅히 색(色)이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의 소위(所爲)라고 깨달아 알라. 그리고 수다원(須陀洹)은 그 근원을 다하고, 사다함(斯陀含)은 조금 머리털을 다하지 않음이 있으나 아나함(阿那含)은 다 제거하고, 아라한(阿羅漢)에 이르면 길이 다하여 남음이 없느니라.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밝게 비추느니라. 이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위하여 크게 덮어 보호하심이 되셨다. 곧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백 가지 온갖 행은 항상 고뇌(苦惱)의 업을 짓고 이 색난(色難)을 품음으로써 현재에 이러한 증득이 있네.
그는 참으로 무상한지라 본래 다 공함을 알라. 자연히 법을 세운 대로 항상 스스로 깨달아 알라.
그때 어찌하여 또 이 괴로움이 생기느냐. 이른바 자기 상(相)의 경계는 다섯 가지 근(根)이 구족하나니, 만약 그 자기 상의 경계의 지혜와 서로 응하여 돌리면 매우 청정하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하여 지혜와 서로 응하지 못하며, 또 날카로운 근기가 있어 어리석은 사람을 눈멀고 어둡다 하지만, 부처님과 성문(聲聞)들의 본래 지은 행은 지혜의 선근(善根)이 자기 상과 만나고 모여서, 상은 닦은 바와 같아서 고현성제를 모두 관찰하였다. 어떻게 이 생사의 괴로움을 관찰하는가. 고현성제가 있으니 모두 무상하여 굳게 가지고 버리지 않음을 알며, 모두 하나같이 이러한 마음을 일으켜 괴로움에서 괴로움을 관찰하여 그는 가장 묘한지라, 괴로움에서 공함을 관찰함은 최초의 미묘함으로, 한가지로 그곳에 건넌다. 괴로움에 공함을 관찰할 때 그는 다 나누어 흩어지는 법이라 자연히 이렇게 관찰하며, 괴로움에서 내가 없음을 관찰하면 그 지혜의 믿음이 성취된다. 최초로 이런 높은 법이 있어 잘 이익되며, 자주자주 방편 등의 지혜 공덕을 구하면 희망이 없고, 삼매(三昧)의 숲에 빠짐이 없고, 바깥 티끌이 길이 다하여 또한 집착이 없었다. 생각으로써 생각하는 까닭에 티끌을 제거하고, 일체 경계의 괴로움이 없고 파괴되어 사랑이 있음을 제거하고, 또한 두려움이 없고 매우 어지러움이 없으며, 얼굴빛이 온화하고 즐거워 스스로 경계를 관찰해 거기에 광명을 나타내고 3세에서 큰 등불의 밝음을 일으켰다. 그 맺힘을 헤치고 악취(惡趣)를 제도하려고, 그 중생들을 위한 까닭에 그는 이 마음이 없고, 또한 게으르지 않아 감로 맛을 얻고 저 법을 분별하며, 한가지로 생사를 건지는 까닭에 네 가지 경계에 유전한다. 그 중생들을 밝게 비추려고 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 두루 일체에 다하며, 또한 처소가 없고 전도됨이 없으며, 전도됨을 제거함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려웠다.
만약 괴로움이 있음을 밝힐 때 생각이 청정하기 한량이 없네. 맛이 없고 매우 곱고 밝아 사람들의 찬탄해 기림이네.
이러한 지혜는 소리와 메아리가 서로 즐겨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보면 세상 중생들을 보호함이네.
금계(禁戒)가 있음을 보면 부처님의 길이 이익됨이네. 뜻을 금강저(金剛杵)같이 잡아 일체의 공함을 분별하여서
만약 사랑의 근본을 빼내면 또한 온갖 괴로움이 없다네. 마땅히 합장하고 마음을 쉬라, 가장 훌륭해 비길 데 없네. 어떤 것이 부처님의 관찰인가. 이른바 이렇게 번뇌가 없는 지혜가 있어 그는 도량(道場)을 관찰하여 처소에 또한 세력을 보고, 세상을 위한 까닭에 세상의 광명을 관찰하며, 그 중간에서 고행을 닦는 대로 모두 다 관찰하였다. 저 중생들을 자비심으로 관찰하여 편안하게 하려고 한량없이 부지런히 괴롭게 이러한 고행을 관찰하여 다른 경계에서 스스로 관찰하였다.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의 말씀하는 미묘한 법을 보면 뜻을 펴게 하고 그 쥐는 법을 관찰하였다. 만약 법의 눈이 청정하여 또한 그 법의 몸을 보면 중생의 생각이 없었다. 만약 다시 이렇게 관찰하되 또한 금계를 말씀치 않으셨다. 일찍이 듣건대 존자 우파사(優波斯)라는 이에게 제자가 있으니, 이름을 발마가(鉢摩迦)라 하였다. 마유라(摩鍮羅) 경계에 나아가 거기에 머물렀다. 그는 때가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널리 경계에서 설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아직 그의 위의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는데 곧 음녀(婬女)마을에 들어갔다. 그 음녀는 비구를 보자, 나이 젊고 단정하여 몸에 티끌이 없음을 보고 크게 기쁨을 내어 음심이 치성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음녀의 집에 들어가 이러한 얽매임을 관찰하고 얽매임을 짓지 않았다. 더러움을 벗어나는 법으로 속히 이 법의 과를 얻으려고 곧 이런 게송을 읊었다.
욕심이란 독약과 같고 욕심이란 깨끗치 않은 행실이네. 욕심은 깨뜨러진 음욕이 되어 사람을 타락시켜 악취에 들게 하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물러갔다. 그 여자는 음심이 치성하여 그 비구를 위하여 곧 전다리(旃陀梨)의 주술(呪術)을 맺고자 하여 그 전다리에게 이러한 뜻을 말하였다. 그러자 전다리는 이 여자를 장엄시키고 촌락의 처소를 화작(化作)하여 비구가 오도록 하였다. “그대는 이곳을 관찰하시오. 마치 제석천왕의 궁전과 다름이 없고, 전당이 높고 넓어 또한 비길 데가 없소. 장엄한 와구도 수가 없고 온갖 빛이 그 방에 있으며, 눕는 곳도 무늬 수놓은 비단요가 있으며, 이곳을 보면 갖가지 꽃과 향을 그 위에 뿌렸고, 낱낱이 둘레에는 푸른 연꽃과 향기로운 난초가 이 옆에 났소.” 이렇게 관(觀)을 짓고 곧 이렇게 주술을 맺은 뒤에 비구에게 말하였다. “여기는 매우 미묘하여 즐길 만하오.” 그러나 발마가 비구는 대답하였다. “내 이것을 다 보았거니 또한 다른 것을 보겠노라.” “다른 것이란 어떤 것인가?” 전다리가 말하자, 발마가는 대답했다.
내 이제 과보를 관찰하건대 애욕이 가장 제일 괴롭네. 마침내 지옥에 들어가서 저 기름가마 끓는 고통을 받으리라.
전다리는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비구여. 나에게 그런 말을 마시오.” “그대의 말은 미련하고 어리석어 애욕의 환술로 나를 미혹케 하려 하지만, 나는 그대들과 같지 않노라.” 발마가 비구가 대답하자, 전다리는 문득 큰 불무더기의 함정을 만들었는데, 티끌의 가림이 없이 매우 사나왔다. 그러나 발마가 비구가 말하였다. “내 이미 이 불 함정을 보았노라.” “만약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이 불 함정에 들어가 죽음만 같지 못하오.” 발마가 비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불이 비록 두려우나 불을 피해 애욕을 가까이 하랴. 애욕은 커다란 불보다 성하다. 가령 애욕을 범하여 뒷날 한량없는 죄를 받는 것보다 차라리 오늘 이 불구덩이에 들어가 이 애욕을 범하지 않으리라. 우리 스승의 신통은 비길 데 없거니 어찌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랴. 이런 까닭에 마땅히 불구덩이에 들어가 죽고, 애욕을 범하고 살지 않으리라. 이제 함께 두 가지 일을 버리되 어찌해 3세에서 부처님께서 금계를 세우셨거니 이제 내가 범하랴. 이런 까닭에 불구덩이에 들어가 죽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승가리와 발우를 그 사람에 보시하자, 전다리는 대답하였다. “이 옷과 발우를 어디에 쓰랴.” 발마가 비구는 게송을 읊었다.
이제 이 모든 범행(梵行)으로 나는 옷과 발우를 보시하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내 말을 전하여 그에게 일러라.
비구의 이름은 발마가인데 이 액난을 만나서 이제 불 구덩이에 몸 던져 죽으며 그 애욕을 받지 않았다고.
그 두 사람도 함께 출가하여 도를 배웠음은 널리 경에서 말한 대로였다. 이때 또 이런 게송을 읊었다.
세상에 착함을 닦음이 비록 적어도 생각하고 기억해 잊지 않는다네 또한 그 애욕을 받지 않음은 중생을 제도하려 한 까닭이라네.
하물며 또 감로를 여신 부처님의 일체가 묘함이라 어찌하던 공덕을 지어서 그 지혜를 때를 따라 일으키리.
그때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두루 돌아 왔다 갔다 하면서 생(生)의 근본을 깨달아 아셨는가. 이른바 이런 말에 두 가지 바람이 있나니, 몸의 공덕과 마음이 깨달음을 일러 이것을 두 가지 바람이라 하였다. 그 몸의 바람이란 모든 사랑하는 마음을 냄이요, 마음의 깨달음이란 마치 꽃이 피어 곱고 깨끗함과 같으며, 또한 저 바람과 같이 해탈함을 관찰해 보면 하는 일이 훌륭하며, 또한 눈[雪]이 물이 되듯 이 마음의 눈도 또한 그러하다. 안팎의 경계를 껴잡아 가지면 서늘한 바람이 일며, 그 뜻을 깨달아 알면 그 가짐이 한량이 없어 파괴하지 못한다. 여섯 가지 경계의 기관이 있으니 밖으로 4대가 시킴이라, 4대의 근(根)과 힘의 얽매인 바 되었으나, 거기 부드러운 바람이 있어 점점 지혜가 생긴다. 또한 그 발을 들 때와 같이 모두 이것은 본래 행한 덕이라 본래 지은 상(相)을, 잃지 않고, 다리뼈로 왔다 갔다 함은 모두 불로 일어남이라 일체 뼈가 굽히고 펴며 말고 폄이 힘줄과 맥이 점점 늘어져 희망이 있으며, 또한 보는 데도 눈을 뜨고 눈을 감아 속으로 몸 기관의 감각이 즐거워 점점 성하게 그것을 따라 왔다 갔다 한다. 또한 음식을 씹을 때도 굽었다 폈다 말렸다 폈다 함이 모두 형상을 따라 지으며, 또 그밖에 마음으로 행함을 짓되 그 더운 바람에 의지해 전도된 바람을 버리고, 또한 입술과 이 목소리와 메아리 등 본래 뜻으로 지은 바 일체 씨앗의 법을 불어 떨어지게 하는지라, 그 바람이 있는 곳에 이김이 있고, 모두 이런 말이 있고 이런 소리와 메아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이 말하였다. “복을 짓지 않고 어떻게 계박하지 않는가?” 내가 이와 같이 말하였다. “여기 있는 이 기관은 밖으로 무너지고 안으로 온갖 행이 있더라도 이때 움직이지 않으면 곧 다함이 있을 것이니, 바로 잘 길러야 한다. 마치 지혜로운 수레가 이를 보고 잘 싣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호귀법(豪貴法)을 인연하여 저 때를 의지하여 생각이 전도된다.” 그때 곧 이와 같이 게송을 읊었다.
이것은 매우 기이하고 특수해 공(空)과 무(無)를 깨달아 안 지혜로 굴려 펴서 서로 의지하되 이 기관이 가장 긴요하도다.
또한 그 뜻에 부딪치지 않고 몸과 뜻에 의지해 있다네 이런 온갖 일이 있으니 꼭두각시와 미혹은 미세하다네.
그때 부처님께서는 범행(梵行)을 하셨으니, 어떤 것이 범행이며 어지럽지 않은 것인가. 그를 따라 배우지 않고 홀로 노닐어 짝이 없이 사람 가운데서 공덕과 위의가 가장 미묘하였다. 저 일체 중생에게 집착함이 없이 하는 일에 능히 미칠 이가 없고, 중생들이 한량없이 미묘한 법을 의지하였으니, 법은 자연인 까닭에 일체 지혜를 파괴치 않고, 크게 요긴한 길을 이루고, 하려고 함을 성취하였으며, 반드시 과(果)에 의심이 없이 모든 공덕을 구비하였으며, 성문(聲聞)들이 에워싸고 일체 덕이 생기어 일체가 다 미묘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 온갖 묘한 몸에 으뜸가는 덕을 성취하여 세상의 어둠을 없애고, 세상에 집착이 없고 三세에도 집착이 없이 모든 번뇌를 버리고 큰 자비를 얻었으며, 마음에 어지러운 생각이 없어 이미 근심되고 두려운 것을 건지고, 편안한 곳에 이르러서 길이 그 마음을 항복받고, 스스로 저 중생들을 가르쳐 주셨다.
범행이 가장 묘하여 자비의 공덕을 성취하였네 만약에 이 가르침을 들으면 천상과 인간이 모두 합장하리라.
바른 법에는 두 가지가 없고 그 즐거움도 둘이 없다네 마침내 성현을 성취하려고 이러므로 성현에게 합장하네.
그때 불ㆍ세존ㆍ삼먁삼부타께서는 참는 경지[忍地]가 가장 미묘하여 모든 번뇌를 없애고 또한 집착함이 없었다. 불에 타지 않아 깨달음의 일이 훌륭하고 바람도 또한 훌륭하여 공덕이 두려움이 없으며, 대중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며, 매우 깊은 이치와 서로 응하여 불가사의하였다. 마치 사자와 같아서 겁약한 마음이 없고, 얼굴빛이 온화하고 즐거워 그 외도들을 위한 까닭에, 이미 집착함이 없음을 닦아서 마치 연꽃과 같이 더러움의 물듦이 없었고, 스스로 중생을 의지하는 까닭에 스스로 깨뜨릴 것은 깨뜨리고, 뜻의 희망도 또한 성취하였다. 모든 번뇌를 없앤 까닭에 온갖 것이 가장 묘하여 가지가지 상(相)이 배나 생기고, 받고 취함이 묘하며 혹은 스스로 일체 생(생(生)을 구함이 묘하였으므로 마침내 가장 큰 복전(福田)에 귀의케 하며, 인민을 옹호함이 제일이었다. 이런 관찰을 짓지 않아 그 뜻이 매우 깊고, 모든 더러운 법을 버림은 달이 가장 훌륭하며, 모든 법을 분별함에 비사문(毘沙門)이 제일이요, 소리와 메아리가 맑게 사무침은 사자의 부르짖음이 제일이며, 좋은 복밭에 씨를 뿌려 배움을 더하게 하고 일체 농사일을 버림은 제석환인(帝釋桓因)이 제일이요, 일체 세간엔 공덕이 제일이며, 열반의 길을 나타냄이 또한 거룩함이 되고, 일체 중생을 어여삐 두호하여 일체 맺힘을 푸는 것이 가장 묘함이었다.
여래(如來)의 공덕은 일체가 모두 갖추어져 석가족 집에 머물렀으니 마치 바다에 온갖 보배가 모임 같네.
또 그밖에 부처님의 법은 삼천세계에 충만함으로 저 언덕에 가기를 구하면 마침내 여래를 따라서 취할지어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람 가운데 사자(獅子) 영웅이 되셨다. 일체 지혜를 희망하여 빛이 온화하고 즐거우며, 목[咽喉]의 공덕이 비길 데 없고, 공덕으로 네 가지 신통이 있어 매우 조용하여 거칠고 그릇된 말을 버렸으며, 곧은 몸에 바른 뜻으로 온갖 지혜가 구족하였다. 눈은 청정한 뿌리의 새싹이 되어 모든 법을 분별함으로써 그 덕을 칭찬하고 찬양하였다. 미지(未知)의 지혜는 마치 감로를 내리듯 막고 파괴할 수 없으며, 10력이 구족하여 용맹스럽게 저기서 뛰어났다. 일체의 갈래 길을 깨닫고 알아 나아가서 구제하며, 큰 자비의 네 가지 선해탈(禪解脫)은 일찍 모자람이 없었다. 또한 애욕의 맛이 없고, 음식을 관찰하고 먹으며, 두려움이 없음을 얻어 그 무리들을 항복 받았다. 그는 마치 사자왕이 부르짖을 때 그 소리를 들은 것들은 모두 사방으로 달아나되 골짝에 숨고 골짝으로 달아나며, 구멍에 숨고 구멍으로 달아나며, 새들도 허공으로 날아가듯이 이것도 또한 그러하여, 만약 무상(無常)한 소리를 들으면 이 범부의 사람이나 신선이라도 모두 두려움을 내어 몸을 보고 달아나 버렸다. 마치 저 용과 코끼리도 사자의 소리를 들으면 문득 소ㆍ대변을 누고 혹은 고삐를 끊고 달아나듯이, 모든 신선이나 색계(色界)의 하늘들도 또한 이러하여, 무상한 가르침을 들으면 맛에 집착하여 각각 사랑하는 마음을 내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사자 사슴왕이 되어 뜻에 두려움이 없고, 그 도과(道果)를 성취해 또한 물러나지 않으므로 보는 사람이 모두 크게 기뻐하며, 지관(止觀)도 미묘하여 그 공덕을 알고, 미련하고 어리석음이 없었다.
마치 사자가 부르짖음과 같이 듣는 사람이 모두 다 놀라네. 지혜로써 법을 분별함으로, 가지가지 다른 이름이 있네.
나고 죽은 두려움이 있어 부처님의 덕은 불가사의 하네. 그러므로 사자왕에게 절하노니 사자는 왕 중의 왕이라네.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람 가운데 큰 코끼리였다. 일체 지혜가 모두 구족하고 모든 지절(支節)이 머리와 같이 서로 일컬었으므로 이른바 이것을 지혜의 머리라 하였다. 지혜로 인연하여 생각이 있으며, 생각이 머리가 되어 거기 의지하고, 지관(止觀)이 배[腹]가 되어 휴식함으로써 해탈하고, 또한 스승에게 배움이 없이 제대로 성취하였다. 믿음의 근본으로써 묘한 법을 삼고, 믿는 힘으로써 얽으며, 이러한 힘이 있어 보호하며, 청정함으로써 어금니를 삼아 나쁜 무리를 제거하며, 부끄럽고 뉘우침으로써 집을 삼고 몸의 묘함으로써 귀를 삼아, 부처님 법의 몸이 원만하여 또한 해로운 뜻이 없이 범행을 닦아 그 근원을 다하고 그 방편을 구하여 용맹스럽게 물러나지 않았다. 일체 세상에 미묘하여 이 공덕을 지나갈 사람이 없이 마치 안명산과 같았다. 선정(禪定)을 닦고 익혀 날카로운 칼날 같고, 7각의(覺意)가 자재로워 일곱 곳이 조용하며, 무상한 것, 괴로운 것, 공한 것이며, 일체 법이 모두 다 내가 없고 열반으로 멸(滅)을 삼으며, 지닌 바를 깨끗이 하되 감로 같고, 열 가지 힘의 세력이 있어 보는 사람이 다 크게 기뻐하고, 교만한 것을 파괴함으로써 해탈의 과보가 의지해 인연하므로, 그 감로는 헤아릴 수 없었다. 본래 뜻으로 지은 대로 집착하여 해탈의 감로 과실을 먹고, 감로와 같이 이양(利養)을 얻어 모든 더럽고 탁함을 없애고, 먹음으로써 저장하지 않았다. 이는 91겁으로 잘 스스로를 항복시킴이라, 이때 곧 이런 정(定)한 마음이 있어 온갖 어지러움이 없었다.
온화하고 기쁜지라 온갖 어지러움 없이 매우 청정하게 뜻을 정하였네. 한량없는 덕에 합장하고 절하노니 사람 가운데 크신 코끼리왕이시여.
그 중생은 복덕이 있는지라 모든 색상(色相)을 파괴시키고 눈이 청정해 티와 더러움도 없는지라 가장 뛰어나게 깨친 이에게 귀의하네.
그 부처님에게 이러한 공덕이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 깨달아 알아서 이렇게 매우 깊고 극히 미묘해 비길 데 없었으며, 그 가운데서 스스로 모든 법을 깨달았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를 비방해 말하기를, “그는 소리와 성품이 서로 응함이 있어 이렇게 남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어떤 출가한 사문이나 또 바라문이라도 총명하고 슬기롭기가 하늘에 사는 사람 같으며, 혹은 욕계(欲界)의 마군 천왕이나 범천(梵天)으로 색계(色界)의 묘한 사람도 이렇게 설법하였다. “나는 또한 그 상을 보지 못하며, 또한 인연이 없으나, 그 말한 대로 그 상을 보지 못하고, 어떻게 등정각(等正覺)이라 하랴.” 또 이런 말을 하였다. “그의 설법함을 보면 편안함을 얻어 스스로 즐기고, 등정각이 되어 또한 두려움이 없는 곳에 이르고, 또 나머지 집착이 없으리라.” 널리 말함은 계경과 같았다. “그는 가장 묘하여 집착이 없고 흔들리지 않으며, 약간의 그의 이름도 없다. 마땅히 범(梵)의 수레를 굴리되 그 범세존(梵世尊)이 이 법을 굴리니, 이른바 현성팔품도(賢聖八品道)라, 그것을 어느 곳에서 굴렸는가.” 이런 말을 하였다. “여기 대중에서 묘하게 굴렸고, 여기 대중에게 사자후 하였다. 또한 빈 곳에서 굴리지 않고 여기서 사자후해도 또한 두려움이 없었다.” 또 이렇게 말하였다. “저 중생들을 항복 받고자 한 까닭에 최초에 두려움이 없었고, 둘째 모든 루(漏)가 아직 다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른바 유루(有漏)의 막힘 가운데 모든 두려움이 있으니, 만약 다시 끊으면 지혜가 구족하여 이에 제2ㆍ제3 나의 도를 말하는 법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말하자면 이러한 참다움이 있으니, 그것을 위하기 때문에 구한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는 모든 내입(內入)을 지으므로 제3ㆍ제4의 얽힘이 되어, 거기 열 가지 일이 있어 사람의 수행하는 바가 있으므로 대중 가운데서 온갖 두려움이 없으며, 혹은 공손하고 삼가는 마음이 없나니, 이러한 위의가 없기 때문에 대중 속에서 두려움을 품는다. 비록 다시 공손하고 삼가는 마음이 있으며, 밝고 슬기로워 실다우며, 이런 위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는 또한 두려움이 있으며, 대중 속에서 또 공손하고 삼가는 마음이 있고, 비록 두려움이 없더라도 뜻에는 어리석고 미련함이 있다. 또 섬기고 공양하며 공손하고 삼가는 마음이 있더라도 자주자주 수행하지 않으며, 수행하더라도 또한 오래 영유하지 못하면, 그 속에 또한 두려운 마음이 있으며, 거기서 비록 오래 수행하더라도 뜻이 민첩하고 빠르지 못하면 그 속에 짐짓 두려움이 있다. 비록 민첩하고 빠른 뜻이 있어도 또한 친근하지 못하면 그 속에 짐짓 두려운 마음이 있으며, 비록 친근하나 또한 참다이 의지하지 못하면 그 속에 두려운 마음이 있으며, 뜻이 비록 착함을 의지하나 스스로 이 착함이 없으면 그 속에서 짐짓 두려운 마음이 있으며, 두루 이 뜻이 있으나 공교로운 방편이 없으면 그는 대중 가운데서 짐짓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이다. 세존께서 보살이었을 때 스승들을 섬기어 3계에 보배 깃대[寶幢]를 굳건히 하여 정광불(錠光佛) 이래로 삼먁삼불타 몇몇 겁으로 극히 청정하여 티와 더러움이 없고, 일체 어둠을 비추지 않음이 없으며, 그 각의(覺意)를 인연하여 이런 모양의 무리가 있으므로 하는 일을 성취하였으나, 그는 도를 위한 까닭에 91겁이나 지어 행하였었다. 그때 세존의 이름을 받고 이러한 밝은 지혜를 일으켜 성불하였으며, 지혜와 서로 응하여 뜻을 모두 깨달았다. 그 착한 뜻에 의지해 일체를 모두 성취하여 뜻에 집착함이 없이, 그는 제일로 더러움에 물듦이 없고, 또한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삼매에 들어 그 지혜에 수승하였고, 무수한 세상으로 훌륭함이 있었다. 이렇게 관찰하여 비록 어려운 물음이 있을지라도 마침내 기연미연함이 없고 글자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때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몸이 사자왕과 같이 저 동산을 거닐며 뭇 짐승이 모두 놀라듯 각각 이리저리 달아났네.
이렇게 물듦이 없고 대중에게 용맹을 나누었네. 나고 죽음의 근원을 싫어해 법으로 천상과 인간을 건졌네.
이때 세존께서 일체 세간이 초목과 같음을 관하셨다. 이른바 “어떻게 시험해야 하는가. 최초의 씨앗에 5행(行)이 있는데 밖에 있는 초목과 같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어떤 다섯 가지가 있는가. 또 어떤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나무들은 어떻게 서로서로 의지하는가. 고제에 의해서 끊는[苦諦所斷] 가지가지 번뇌의 결(結)을 일으키는데 바깥에도 역시 다섯 가지 행(行)을 일으킴이 있다. 저 고지(苦地)에서 생기는 것을 관해 보면 모두 바깥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안에서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어떤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식처(內識處) 등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관함이 있다. 이와 같이 바깥에 머무는 것도 종류에 따라 곧바로 생겨난다.” 이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치 해와 달이 나타나도 빛이 없는 것과 같은데 이것은 각각 서로 의지하는 것이다.” 어떤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깥에 의지해서도 역시 생겨난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답한다. 지금 이것은 서로 의지하지 않는다. 밥이 물에 젖고 불에 의해 볶아져도 있는 곳에서 형체를 유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혹은 바람에 불리기도 하는데 마치 땅에서 생겨난 나무가 바람을 따라 오고 가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서 모두 알 수 있다. 몸에 바람이 닿고 귀에 들리는 것이 있을 때에도 또한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부드럽다고 한다.” 딱딱한 것[堅]은 바깥을 의지하는데 그것도 지(智)가 있는가. 이와 같이 어지러운 생각은 외과(外果)에 의해서 생기는 것의 경우, 모두 바깥이 안을 반연한다고 관찰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체가 사유색상(思惟色想)이 아닌가. 이와 같이 관하지는 않는데 4대를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경계를 모두 관찰한다.” 혹은 과의 안식이 많은 과를 생기게 한다고 관하였다. 식을 우두머리로 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너져서 없어진다. 어떤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깥에서도 많은 과가 생기게 한다. 비유하면 저 반은 푸르고 반은 노란 색과 같고, 같은 뿌리의 나무에서 많은 과실이 생기는 것과 같다. 가을에는 과실이 없는데 혹은 때에 따라 생긴다. 이 생사의 나무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몸이 가장 근본이 되고 근(根)은 지말적인 것이 된다. 비유하면 삼매의 경계와 같다. 이 때문에 식시과(識施果)가 으뜸이 된다. 이와 같이 지각해서 안다.” 눈을 저 나무에 비유하면 저 안식에 포섭되는 색의 경우, 그 근의 지금의 색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른바 앞에서 관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관(觀)이 바로 묘한 것이 되는데 그것은 이와 같이 나타나고 여기에서 다시 나타난다. 생겨난 모든 종자가 점점 자라고 늘어나서 그것에서 생겨난 것이 과실이 된다. 시기에 따라 시듦을 알 수 있다. 저 과(果)는 인(因)이 되는 것이 없는데 이 과(果)와 같다. 이른바 ‘마음의 때에 오염된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식이 모든 것을 안다.” 여기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저 색(色)이 저 과(果)를 반연해서 생기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의식을 반연한다.” 이러한 생사의 나무가 있는데 저 안식을 우두머리로 삼았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유하면 태(胎)가 점점 자라는 것과 같은데, 그곳에서 안식이 생긴다. 이렇게 해서 안식이 있다.” 어떤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식은 중간에서 죽지 않는다. 신근(身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근은 만드는 것이 없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떤 경우 근을 의지하지 않는 바깥이 과(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똑같이 과실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똑같은 인체의 신근 등을 말하였는가. 왜냐하면 과거를 의지하지 않는 것은 근이 없기 때문이다. 풀에 열매가 맺히면 근이 없어진다. 또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깥에는 정(情)이 없지만 안에는 정(情)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정상(情想)에 과실이 있는가. 비유하면 바깥에 있는 꽃의 열매와 같다. 이 종자의 과실도 이와 같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정(情)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정이 같은 것인데, 이 가운데는 실로 걸림이 없다.” 어떻게 사념해야 하는가. 어떤 곳에서는 이와 같이 말하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곳에는 머무는 곳이 없는가. 답한다. 비유하면 저 처소가 없는 곳이 바로 청정한 곳인 것과 같다. 바깥이 무너져 없어짐이 없어서 바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4대(大)에 소의(所依)를 더하는 과(果)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이를 통해 다시 알 수 있는 것은 지은 행업은 바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안에 가지 않음[不行]이 있는 것은 나무라 하고 가는 것은 나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떤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 지(地)에는 무너짐이 없도록 유지함이 있는가. 이 지(地)에는 무너짐이 없도록 유지함이 있는가. 이 지에는 따뜻한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저 딱딱한 모습에 의지하는 경우에는 곧바로 바람에 불린다. 그러므로 곧바로 알 수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약초 나무는 무상하고 단절되는 것이므로 무너짐과 상응한다. 그러므로 ‘인연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고(苦)이고 공(空)한 것이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고 관해야 한다. 그러나 외공(外空)은 있지 않다. 중생도 이와 같다. 비유하면 아(我)가 없다고 관하는 것과 같은데 안[內]을 관하는 것도 이와 같다. 하물며 안에서 만드는 것이 있어서 안에 있는 생각을 무너뜨리겠는가. 그것은 모두 바깥에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젖은 나무의 씨앗이 어느 때에 곧바로 싹이 나는 것과 같은데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근(根)의 의미가 가르치는 것은 마치 신심(身心)이 법(法)에 의지해서 왕래하고 움직이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모두 의지하는 것이 없다. 또 생명이 따뜻한 명식(命識)과 같은데 이것도 마찬가지여서 시작과 끝이 없다.
저 지향하는 성품이 나아감을 관해 보니 바깥과 나무와 풀은 실로 공하여 과실이 없으니 법에서 마땅히 분별해야 하네.
이미 무너져 버린 저것을 보고 몸도 같다고 사유하면 저 진로(塵勞)의 얽어맴이 없어져서 5근(根)이 영원히 없어지리라.
그때 존자 대가섭은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 몸이 야위었다. 동산에 있으면서 스스로 오락하여 불[火]을 섬기되 게으름이 없고, 이미 대중들에게 에워싸였으되 승가리(僧伽梨)가 낡고, 머리털과 손톱이 모두 길었다. 모든 뿌리가 푹 익어 속으로 음심(婬心)을 항복 받아 경행(經行)하고, 오가며 관찰한 대로 다 알고, 고요한 곳을 즐기는지라 이름이 멀리 들렸다. 큰 자비를 얻어서 어떤 존덕(尊德)이든 더불어 견줄 이 없으며, 천상과 인간이 공양하고 이 큰 복밭에 공경함을 더하여 예배했으며, 모든 고액을 만난 사람을 다 제도시켰다. 생사를 해탈하여 법상(法相)을 나타내어 펴고, 크게 기쁨을 나타내어 옹호함으로써 어버이 섬김과 다름이 없었으며, 공양하는 바가 태산과 같이 움직임이 없었다. 크게 기뻐 뛰며 부처님을 뵈옵고, 홀로 고요한 곳에 놀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다. 다른 법을 즐기고자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욕심이 적은 덕을 찬탄하고자 곧 가섭에게 이르셨다. “너 가섭은 이제 나이 많고 모양이 익어, 다시 젊고 한창때의 뜻이 없이 늙음의 몸은 오래 견딜 수 없으며, 점점 소모되어 왕성한 마음이 이미 다하였다. 다시 입고 있는 누더기 매우 무거워, 너의 지금 몸으로는 이 무거운 옷을 감당키 어려우며, 너의 나이는 이미 늙었으니 모든 장자들이 옷을 보시하거든 곧 받도록 하여라.” 그러자 존자 대가섭은 모든 법의 생각을 갖춘지라 부처님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고 죽음은 길고 멀며 뜻이 모두 참되지 않아 이 즐거움을 받아 마음이 항상 근심스럽습니다. 모든 호귀한 장자의 집에 감은 즐기지 않습니다. 이미 스스로 적정처[阿練若]에 머물고 또한 적정처의 덕을 찬탄하오며, 스스로 욕심이 적고, 욕심이 적은 덕을 찬탄하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늘이 증명해 알 듯 저는 금세의 과에 있어서 힘이 있건 없건 다 받았사온데, 하물며 제가 오늘날 몸에 음심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고 교만이 모두 다하고 청정하여 티가 없으며 세상을 떠나서 세상과 서로 응하지 않았는데, 이제 어찌 이 거친 옷을 버리겠사옵니까. 두 가지 뜻 때문에 한가로운 곳에 머물고, 한가로이 사는 덕을 찬탄하오며, 스스로 현재 법 가운데 크게 기쁨을 얻으려고 하나이다. 후세의 사람을 위한 까닭에 밝게 비추어 이런 덕을 나타내오며 이렇게 부지런히 고행을 닦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가섭이여. 항상 한가로운 곳에 머물고 즐기라.” 널리 말함은 계경과 같았다. 이에 게송으로 읊으셨다.
그는 어떤 자재를 얻었기에 제자는 고행을 닦는가. 청정하고 온갖 번뇌가 없이 달이 별 가운데 밝음과 같네.
이제 털끝만한 의심도 없이 그는 이런 큰 덕행이 있다네. 마침내 굳건히 바른 법을 지니고 깨끗이 일체 더러움을 제거하였네.
그때 사리불(舍利佛)은 스스로 매우 깊은 가없는 이치에 의하여 아는 것이 큰 바다와 같이 가없었다. 외도들과 논란하여 모두 항복 받아 착한 법을 드러내고, 그 뜻을 잃지 않고, 애욕에서 해탈하여 뜻대로 나고 죽음의 나아감을 깨달아 알고, 그 근원을 다하고 나서 곧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다.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아뢰었다. “제가 이런 뜻을 일으켰사온 바 모두 다 굳거나와 저 외도들 처소에 머물렀다가 이제 이곳에 옴은 감로를 먹고 일체 번뇌를 없애려 함입니다. 뜻에 또한 저의 처소에 집착함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위하셔서 이런 뜻을 말씀하소서. 마땅히 이런 뜻을 말씀하셔서 번뇌의 근심을 덜게 하소서. 모든 범부인 사람들도 모두 근심을 품고, 학자들도 도한 근심을 품었사오며, 모든 의심이 없도록 다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행(行)에 다함이 있느냐?” 이때 사리불은 항상 고요하고 한가로운 곳을 즐기었으므로 법을 기꺼워하고 법에 합장하여 두루 세 번 돌고, 곧 부처님의 몸을 보고 나라타(那羅陀) 마을에 나아가 풀을 땅에 깔고 사자분신삼매(獅子奮迅三昧)에 들었다. 이미 그 삼매에 든 것은 부처님의 그치시는 방편이라, 그곳에서 곧 열반에 들었다. 균두(均頭) 사미(沙彌)는 항상 존자 사리불을 공경했는지라, 사리를 거두었다. 높은 법바퀴를 굴리고 불사(佛事)를 지은 가장 큰 성문(聲聞)인 그에게 일체 세상 사람이 공양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사리와 발우와 세 가지 옷을 존자 아난에게 공양하려고 그곳에 이르러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제가 섬기는 스승께서 이제 열반에 드셨습니다.” 존자 아난은 균두 사미에게 물었다. “너의 스승은 누구며 이름은 무엇이냐?” “제가 모시는 스승은 우바제사라 하는 존자이온데, 지금 열반하셨습니다. 그 이름은 사리불입니다.” 존자 아난은 이 말을 듣고 근심스레 잠깐 번민하면서 섰다가 곧 균두 사미를 데리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몸이 본래 같지 못합니다. 그것은 존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것은 계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르셨다. “그는 계의 몸을 가지고 갔느냐? 나의 깨달은 법도 또한 가지고 갔느냐? 이른바 네 가지 뜻의 멈춤이니라.” 자세한 것은 계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그러나 아난아, 행은 오래 보전할 수 없고 마침내 파괴되느니라. 아난아, 행은 무상하여 항상 머물지 않고 또 착한 행을 관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아난아, 행은 믿고 의지할 게 없느니라. 아난아, 괴로움의 감각을 일으키고 전도된 생각을 내느니라. 아난아, 행은 ‘나’가 없이 자재롭지 않느니라. 아난아, 행은 버리기 어렵고 항상 가르침을 받느니라. 아난아, 해로운 것이요 모두 공적(空寂)한 것이니라. 아난아, 마땅히 멀리 그 행을 떠나서 괴롭고 즐거운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균두 사미에게 이르셨다. “너 이 사리를 받아 내 손에 놓아라.” 균두 사미는 부처님께 드렸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황금빛 부드러운 팔을 펴서 이것을 받으셨다. 부처님께서 사리를 받을 때 매우 청정하고 티의 섞임이 없고 마음은 크게 기뻤으며, 보는 사람들도 모두 크게 기뻐서 어둠이 없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이 사리불의 사리에 예경하고 스스로 찬탄하라. 그는 이름이 멀리 퍼져서 성문들 가운데서 가장 높고 묘하여 오직 하나만이 있느니라. 그는 과거 모든 중생들에게 이 즐거움을 얻게 하려 하여 신통을 나타내어 믿지 않는 때와 탁함을 버리게 하였느니라. 그는 또 이런 밝음이 있어 모두 두루하여 이런 빛이 있으니, 마땅히 그 지혜에 합장하라. 그의 이름은 일체 세간에 가득하니라. 이것은 그의 사리다. 삼계에 있어 몸의 자재를 얻었으며, 좋은 향으로 쪼인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이러한 공덕에 합장 예배하라. 세상의 중생을 위하여 많은 공덕이 나타나리니 마땅히 해탈의 그곳에 이름을 배우라.” 그때 부처님도 또한 수명을 버리셨다. 이때 땅이 크게 움직이고 사방에 우레가 진동하였으며, 모든 하늘 사람들이 허공에 가득 차 음악을 지었고, 큰 광명이 있어 비추지 않는 곳이 없었다. 또 구름과 안개가 덮어 불빛이 없듯 이런 말이 퍼졌다. “일체 지혜가 마침내 꺼지고[滅度] 말았다.” 이때 존자 아난은 이른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 부처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떠한 인연이 있어 땅이 크게 진동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뜻에 움직임이 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난아, 여덟 가지 인연이 있는 까닭에 땅이 크게 진동하느니라. 만약 제일 성문이 열반에 들거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면 이런 상서가 있느니라.”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늘 세존께서 수명을 버리시려 하시나이까?” “그렇다, 아난아. 나도 또한 수명을 버리려 하느니라.” 존자 아난은 몸을 땅에 던지고 널리 경에서 말한 것같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친히 부처님으로부터 듣고 받아 외우나이다. ‘모든 비구들도 4선(禪)을 닦으면 신통으로 겁(劫)이나 살고 무수겁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널리 말함은 계경과 같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뜻에 움직임이 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떤가, 아난아. 내 두 번 세 번 너에게 말하지 않더냐” 존자 아난은 또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두 가지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는 묵묵히 섰다. 마치 큰 바다 가운데 배가 파산되어 저쪽 언덕에 이를 수 없음과 같았다. 또 아뢰었다. “비사부불(毘舍浮佛) 아래로 저 부처님의 모든 경계는 인민들이 모두 장수(長壽)를 성취하였습니다. 오늘 부처님의 경계는 수행하심이 부지런하고 괴로움이 많아 정진하고 보시함이 한량이 없습니다. 오늘과 같이 중생들의 수명이 매우 짧아서 교화하심에도 아직 근원을 다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어떠하냐? 세상이 평화롭고 풍년이 들어 두려움과 고난이 없도다. 법의 왕이 세상에 나셨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법으로 다스림으로써, 나무며 약초까지 이루 다 헤일 수 없이 모든 감옥에 얽매인 사람도 모두 해탈했다. 혹은 또 어지러운 세상에 전륜성왕이 모든 감옥의 얽힘을 풀어 고액을 만나지 않게 함과 같이, 그 중생에게 은혜와 사랑이 있거니, 그를 어찌해 중생에게 은혜와 사랑이 있다 하랴.” 그러자 존자 아난은 또 아뢰었다. “첫째 법의 왕은 사람의 밖에 뛰어난 이로서 고뇌를 만나면 그 고뇌를 해탈케 함이 가장 중요하나이다.” “또 아난아, 태평한 세상에 전륜성왕이 있음과 같이, 비사부불이 계실 때에도 또한 그러하여 또한 감옥에 얽힌 사람을 모두 해탈시켰느니라. 아난아, 나는 오늘날과 같이 수명이 매우 짧은 세상에 나타났으니, 저 중생들이 도검겁(刀劍劫)에 남과 같으니라. 저 악한 겁에는 모든 맺힘이 매우 두터워 맺힘을 여읠 수 없나니, 가지가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맺힘이 있어, 법답지 않은 욕심으로 욕심의 맺힘이 있느니라. 저 중생들 가운데 태어남이 이런 악한 갈래이니, 세상이 악한 까닭에 교화함이 적었으며, 그 사람들 속에서 부지런히 이 행을 닦았느니라. 아난아, 내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고 원숭이었을 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머지 같은 무리들을 도탈시키지 않음이 없었으며, 본래 사자가 되었을 때 그곳에서 상인(商人)들이 나쁜 길로 나아감을 도탈시키고, 범행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그때 나아가는 곳마다 중생을 윤택하게 하였느니라. 아난아, 나는 그때 다시 사람의 몸을 얻어 마갈타국에서 여러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고, 또 푸른 새가 되었을 때 무수한 상인들을 도탈시켰으며, 또 큰 신선이 되어 무수한 범천(梵天)을 도탈시켰느니라. 나는 나이 여덟에 이 서원의 뜻에서 물러남이 없이 몸에 풀옷을 입고 부지런히 고행을 닦았으며, 그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에서 수행하여 모두 다 보호해 가졌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아난아, 나는 이 미혹한 세상에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자, 제석천왕 환인(桓因)이 곧 비를 내리게 하였느니라. 아난아, 그때 내가 아직 나지 않았을 때, 인민들을 한 자식과 같이 사랑하였으며, 또 내가 한 중생을 위한 까닭에 1겁 동안이나 대신 지옥의 고통을 받았으며, 저 중생을 위하여 이런 고뇌를 받았느니라. 이제 이 몸을 부모가 나았으되 원적도 없으며, 나를 해롭게 할 사람도 없으리라. 이 금강삼매(金剛三昧)와 가지가지로 분별하는 삼매로 내가 열반한 뒤에 그들이 사리를 겨자씨만큼이라도 공양하게 되면 이 공덕은 한량이 없으리라.”
처음으로 뜻을 내면서부터 하는 일이 제일이었네. 인간들 가운데서 으뜸이 되어 그와 더불어 같을 이가 없었네.
또한 부모나 처자가 세상에 살아 있으며 비록 그들은 남은 목숨이 있을지라도 수명이 다하면 마땅히 버리리로다.
“아난아, 너는 이제 가라. 여래(如來)를 위하여 저 쌍수(雙樹) 사이에 나아가라.” 널리 말함은 계경과 같았다. 이때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명령을 받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는가.” 곧 걱정과 근심이 생겼으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그곳에 나아갔으니, 다 이것은 숙명(宿命)으로 서로 좇은 까닭이라, 힘써 부지런히 해 놓고도 의심이 났다. ‘마침내 무엇이라고 이런 말씀을 드릴 것인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시키는 대로 준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곳으로 나아가셨다. 발을 들고 땅을 밟으며 그곳으로 나아가시려 하자, 존자 아난의 마음은 드디어 사납게 불탔다.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것이 꿈인가, 이것이 사실인가.’ 이렇게 기연미연하게 생각하고는 다시 그 뜻을 바로잡았다. “이것을 이름해 무상(無常)이라 하나니, 중생들은 유전하여 이 근심을 벗지 못하리라.” 이때 부처님께서 점점 그 쌍수 숲으로 나아가시자, 그 중간에 모든 하늘 사람들이 허공에 가득 차서 음악을 짓고 얼굴빛도 변하며, 혹은 울고 곡하여 눈물을 흘리며,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아수라의 무리들도 법을 희망하고 법을 공경하였다.
이 높고 제일 묘하신 이가 저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위없는 이 법으로서 이제 열반의 길에 드시려 하네.
그때 부처님께서는 쌍수 숲 사이에 이르러 앉으셨다. 쌍수 사이에 모든 하늘들이 잇따라 전하여 서로 일렀다. “저 어지러운 세상에 일체 지혜가 꺼지려 하는가. 어찌하여 마침내 인민들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 하는가.”
온갖 것이 깊은 뜻인 까닭에 빨리 감로의 맛을 이루었네. 부처님께서는 이런 힘이 있으신지라 이제 다 버리고 돌아가시네.
저 금강의 수레바퀴는 인민들이 찬탄하고 기리나 그 바퀴는 혹 깨어질지라도 부처님 파괴하기 어렵다네.
그 중간에서 다 무상을 닦았으며 정진의 힘은 무너뜨리지 못하나, 모든 젊고 장함은 모두 무상한지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또한 다 열반하시니, 이 걱정은 매우 괴롭고 시끄러운 것이로다.
거기서 자세히 생각하시되 빛과 형상은 회전함이 있도다. 저 6근(根)의 부딪침에 얽매이어 모든 고뇌의 우환을 받는구나.
그 중에서 혹은 이런 게송을 읊었다.
맨 처음 나는 것이 괴로움이라 이 음지(陰持)의 이름이 있도다. 남이 없으면 무너질 것도 없더니 뉘라서 이 우환을 해탈할 것인가.
그 중에서 이런 게송을 읊으니, 무상이란 나기 때문이었다.
가장 처음에 이것을 깨달을 때 일체 생각을 모두 성취하였네. 저기 저러한 빛이 있는지라 모든 부처님도 항상 계심이 없어라.
‘우리들은 오늘 어떤 업(業)을 닦을 것인가. 이제 부처님께서 최후로 이 법을 말씀하신다. 이런 까닭에 은근한 마음으로 들으라. 이 복밭은 또한 수이 가질 수 없도다.’ 이렇게 크게 기쁜 마음을 내었다. 이때 사라원(沙羅園) 가운데 모든 하늘들은 모두 부처님께 합장 예배하고, 온갖 만다라꽃을 뿌리며, 눈물을 뿌리고 울었다.
그 여래를 뵈오니 낮과 밤으로 게으름 없이 때에 열반의 길을 찾아 이 4대(大)의 몸을 버리시네.
부지런히 힘써 복을 성취하되 아직 바른 법을 어김이 없고 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넘으로써 이제 다시 5음(陰)의 몸을 버리시네.
이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모든 비구들에게 일렀다. “너희 비구들은 조그마한 의심이라도 있거든 지금 물으라. 일체 행은 청정하고 항상함이 있느냐, 어떠냐?” 존자 아나율은 물었다.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하나이까?” 밀적금강력사(密跡金剛力士)는 부처님 뒤에서 부처님의 얼굴 빛과 지절ㆍ늑골들을 관찰하자 모두 견고하여 거듭 견딜 만하고, 또한 미묘한 법을 설함에 견딜 만한지라 곧 슬피 울며 이런 게송을 읊었다.
때도 없고 온갖 티도 없거니 세상을 덮는 일산을 잃는단 말인가. 마치 저 황금상과 같으신데 이제 중생들을 버리시려 하나이까.
마치 이 세상에는 밭에 곡식이 익어 이미 때를 지나듯 석가족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생각이 없이 길이 꺼져 버리시네.
그 가운데 혹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그치라,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러나 그는 이런 고통을 품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세존께서 도솔천(兜率天)에서 세간에 하강하실 때, 그 수천만의 하늘 사람들이 그 공덕을 생각하고 모두 푸른 옷을 입었으며, 위신의 힘이 있어 힘을 도저히 당할 수 없어 5백 명도 물러나지 않았고, 또 열둘의 큰 귀신들 보는 자 다 겁을 먹는 그런 것들이 와서 부처님을 옹호하였다.”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여래께서는 지절을 껴잡으시고 다 광명을 놓으시고 곧 우리들에게 명령하셨다. 모든 하늘들에게 교칙하되 ‘세상을 수호하는 신들은 사신을 보내 이리 오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곧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들은 크게 기뻐 섬겨 받들고, 태중에 계실 때도 공양했으며, 몽매간에도 항상 떠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물들고 집착하였고, 중생들도 굳건하여 여기는 괴롭고 즐거운 생각이 있고, 부모의 생각이 있고, 일체 세상에 미묘하여 위없는 생각이 있고, 세상의 하는 일을 보호하므로 형제의 생각이 있었다. 신시(信施)를 받는 까닭에 복밭이라는 생각이 있고, 마음이 삿되게 기울지 않았으므로 길잡이[導御]라는 생각이 있으며, 흐름을 건너려고 함으로 뱃사공이란 생각이 있고, 쉽게 얻지 못하는 까닭에 진기한 보배의 생각을 내며, 큰 자비를 얻은 까닭에 호세(護世)라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의 오늘과 같은 금강의 몸으로도 부수어 백분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이 몸에 반드시 과를 얻으리라. 그 까닭은 부처님을 공양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밀적 금강역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것은 어떤가. 그때에 태자가 말을 타고 성에서 나왔을 때, 그 말이 되돌아가 이레 동안 먹지 않고 죽어 삼십삼천에 태어났거든, 하물며 우리들은 받들어 섬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음이랴. 귀에 들은 사람이나 외우는 사람은 일체를 모두 배워서 중생을 건져 한량이 없고, 또 진기한 보배의 바다를 널리 구할 것이다.” 이때 밀적 금강력사의 두 현성(賢聖)이 있어 이런 게송을 읊었다.
저 신기한 용이 있는 곳 금강은 바다에서 나왔네. 어찌하여 마침내 이런 사자의 부르짖음을 옹호치 않으랴.
그리고 또 생각하여 이런 게송을 읊었다.
마치 깊고 큰 바다와 같이 그 힘을 능히 당할 이가 없네. 저 세간에서 정진을 행하므로 큰 복덕은 가없다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바라나국(波羅奈國)에서 법륜을 굴리셨다. 처음 이 법륜을 굴릴 때 많은 중생을 건졌으며, 곧 그 여름 안거(安居)에서 마갈타국왕을 이익케 하였고, 제2, 3, 4년에는 영축정산(靈鷲頂山)에 계셨고, 제5년에는 비사리(脾舒離:毘耶離)에서, 제6년에는 마구라산(摩拘羅山)에서, 제7년에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서, 제8년에는 귀신계(鬼神界)에서, 제9년에는 구섬비국(拘苫毘國)에서, 제10년에는 지제산(枝提山)에서, 제11년에는 다시 귀신계에서, 제12년에는 마가다(摩伽陀) 한가한 곳에서, 제13년에는 또 귀신계에서, 제14년에는 부처님 본생처에 유행(遊行)하고, 다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에서, 제15년엔 가비라국(迦毘羅國) 석가족 촌에서, 제16년엔 다시 가비라국에서, 제17년엔 왕사성(王舍城:羅園祗)에서, 제18년에는 또 왕사성에서, 제19년에는 자리산(柘梨山) 속에서, 제20년에는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하셨고, 제21년에는 다시 자리산 속에서, 또 귀신계와 다른 곳을 지나지 않고 네 번 여름 안거를 하셨고, 19년 동안 여러 곳을 다니지 않으시고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나셨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최후로 여름 안가를 하실 때 발제(跋提)강가 비장촌(毘將村)에서 여름 안거를 하셨다. 부처님께서 이미 애욕의 바다를 건너심이 이러하셨다. 옛적부터 모든 부처님께서는 은혜를 이근(利根)에게 베풀어 지으시되, 모두 다 성취케 하셨으며, 모든 행이 널리 이르고 뜻과 성품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모두 건지시고, 다음에 중근(中根)을 건지시고, 다음에 연근(軟根)을 제도하셨으며, 점점 수다원(須陀洹)에 이르게 하시고, 외도에게 연설하셨다. 세존께서도 두루 하여 그렇게 하고 나서 곧 열반에 드셨다.
외도와 마군을 건진 까닭에 크게 높은 이는 견줄 데 없고 스스로 깨치고 남을 건져서 이 바다에 빠짐이 없어라.
가지가지 즐거움을 지내면서 점점 이익을 길러 온지라 여기 크게 기쁨을 내어 모두 다 저 언덕에 건넜네.
지금처럼 청정하여 티와 더러움이 없으며, 나는 곳마다 항상 착한 곳을 만나서 이미 행함을 성취하여 또한 온갖 거만함이 없으며, 모든 공덕으로 인연하여 모두 다 성취하였다. 그 경계를 위한 까닭에 서로 응하여 성취하였고, 은근하게 모두 성취하여 괴로움을 빼어내고, 함이 없는 곳에 이르게 해 이렇게 성취하였으며, 혹은 부유하고 귀한 집에 나서 집에 있음을 성취하였고, 빛이 미묘한 까닭에 친척과 권속들을 성취하였으며, 하는 것이 이미 만족하여 함이 없는 곳을 성취하였고, 한량이 있는 까닭에 하는 것을 모두 성취하였으며, 가지가지 번뇌를 끊는 까닭에 항복시킴을 성취하였으며, 가지가지 번뇌를 끊은 까닭에 항복시킴을 성취하였고, 행하는 업을 일으킴으로써 서원을 성취하였으며, 모든 공덕을 심어 일찍 범하지 않으므로 하는 일을 성취하고 위의를 성취하였으며, 모든 공덕과 계율을 성취하였고, 4의지(意止)를 연설해 위의를 성취하였으며, 분별해 가르치는 경계를 성취하였고, 지혜를 일으킴으로 무리를 모음을 성취하였으며, 이미 모든 있음을 버린지라 모든 계행이 구족하여 계율을 성취하였고, 지혜로써 마음을 오로지한지라 선정에 의지하지 않고 삼매를 성취하였으며, 참다운 그 경계를 분별하는지라 지혜를 성취하였고, 모든 번뇌를 끊은지라 해탈을 성취하였으며, 모든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없앤 까닭에 해탈견혜(解脫見慧)를 성취하였고, 모든 공덕을 모으므로 일체를 다 성취하였으며, 이미 적멸을 얻은지라 지관(止觀)을 성취하였다. 이런 까닭에 열 가지 힘에게 합장하였다.
색신(色身)도 불가사의어니 부처님의 깨달으신 바이여, 3세에 이름을 드날려 저 언덕에 이르는 신선이라네. 세상에서 이미 휴식했으니 생기고 꺼짐 없이 길이 다했네. 큰 지혜 신통도 제일이시라 일체 자재로움을 이루셨다네.
듣건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백 년 뒤에 일체 지식들이 두루 세간에 나타났으니, 마가다국 기라리성(欺羅梨城)의 아육왕(阿育王)이 있었다. 그 덕이 매우 드높아 마치 제석천왕과 다름이 없었으며, 큰 위덕이 있고 지혜가 밝고 총명해 그와 논의하기에 넉넉하며, 인민을 보되 자식과 같이 하였는데, 그는 밤에 잠잘 때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이제 소원이 이미 성취되어 다시 희망이 없으니, 마땅히 인민을 옹호하리라. 이제 무슨 방편을 베풀고 무슨 업을 하며, 어떤 일을 일으켜서 세상 인민들이 모두 그 덕을 입게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잠에 들었다가 꿈 가운데서 이런 게송을 들었다.
자세히 살펴라 매우 미묘하고 3세가 공경하고 섬기는 일은 마땅히 사리(舍利)를 널리 폄이 가장 훌륭한 열반을 취함이네.
그 말을 듣고 나서 왕은 곧 놀라 깨어났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찬탄하였다.
착하도다, 저 중생들이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사리는 천상에서 전함이니 우리들이 섬겨 받들 일이네.
입으로 전하고 귀로 들은지라, 그때 대왕은 곧 모든 신하들을 불러서 오게 하여, 이 뜻을 가지고 그들에게 물었다. “내 이제 무엇으로 인민들을 어여삐 다스릴 것인가?” 모든 신하들은 각각 말하였다. “여래(如來)의 사리를 공양함이 좋을까 하옵니다.” “모든 신과 하늘에 제사함이 좋을까 하나이다. “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땅히 지성스러운 말로써 그 법을 옹호하라. 내 지난밤 꿈에 이렇게 들었노라. 이 사리를 생각함이 매우 착하다. 이 세상을 위한 까닭에 우리들은 마땅히 세간 인민을 옹호한다. 스스로 이미 복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여 공덕이 한량없으며, 마땅히 위의로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모두 밝게 비춰 보게 하였느니라. 나는 꿈에 이런 말을 들었노라.”
만약 그 소리와 메아릴 들으면 도량에서 스스로 깨어 아나니 그 석가 사자왕에게 의지해 응당 사리를 공양함이 복되네.
그리고 왕은 여러 비구들을 모으고 다시 이 뜻을 그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시여, 법으로써 가르치시오.” 왕은 또 말하였다. “여러 스님들의 말씀하신 것은 내가 꿈에서 본 것입니다. 곧 이것은 나의 숙세(宿世)로 덕의 근본을 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8일 동안 팔관재(八關齋)를 받았다. 흰 옷을 입고 종을 치고 북을 울리고 노래와 기악을 울리되 거문고를 타고 비파를 뜯고 소라를 불며, 가지가지 향을 사르면서 왕사성(王舍城)에서 사리를 얻고자 하였다. “그 성안에 금권서(金券書)가 있음을 들었습니다. 이미 금권의 그 형상이 있음을 보았으니, 전세에 흙으로써 은혜로이 베풀어 그 상을 본 것입니다.” 황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하였다. “이미 반드시 미묘한 과를 얻으리라. 참으로 나는 구리 함[銅函]을 파내어 그 속의 글을 보고자 한다.” 곧 함을 파내어 금권이 있음을 보았고 또한 글자도 보았다. 이 증험을 보고 곧 대중 가운데서 곧 그 글자를 읽는 사람이 있었다. “마갈타국[摩謁國] 왕사성에 장자(長者)가 있었으니, 이름을 바라밀다라(波羅密多羅)라 하였고, 그의 아들은 비사야(脾肆耶)라 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파수달다(波修達多)라 불렀다. 그 두 장자의 아들은 길 네거리에서 흙장난을 하였다. 마침 흙장난을 하고 놀 때 비사야밀다라는 크게 기쁨을 내어 흙을 떠서 보시하였고, 또 크게 기쁨을 도우는 사람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백 년에 비사야밀다라가 세상에 나타나리라. 그 흙의 공덕으로 인연하여 아육왕이 되어 몰야종(沒耶種)에 나리라.” 그때 왕은 이 글자를 읽자, 곧 크게 기쁨을 내어 미증유함을 찬탄하고 모든 신하들에게 일렀다. “다시 금권(金券)을 읽었으나, 위와 다름이 없었다. 그는 이 세계 인민을 거느릴 것이나, 파수달다는 찬탄하지 않았으니 마침내 그는 신하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왕은 곧 탄식하였다. “훌륭하도다, 큰 복밭이여. 이 작은 베풂으로 큰 공덕을 얻었도다.” 마음에 큰 기쁨을 얻어 이런 말을 하였다. “내 일곱 탑에 사리를 취하여 나누어 펴서 널리 세계를 건지리라.” 그리고 왕은 “훌륭하도다” 하며, 미증유한 지혜를 찬탄하고 크게 기뻐해 그 사리를 취하였다. 이때 공중에서 신성한 소리가 들리며 이런 게송을 읊었다.
마침내 크게 기쁜 마음을 내니 착한 덕은 헤일 수 없어라. 널리 공덕을 펴서 부처님 사리를 보내 교화한다네.
천왕(天王)들도 그 사리에 온갖 꽃을 뿌렸다. 이때 왕은 8만 4천의 탑을 일으키니, 하루에 모두 완성되었다.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일렀다. “저기 이러한 진제(眞諦)의 가르침이 있으니, 세상이 칭찬함이로다. 부처님께서 이미 열반하시고 사리를 저 세계에 나누어 펴니, 또한 온갖 맺힘이 없고, 몸이 청정하기 금과 같고, 또한 흰 눈과 같도다. 이 땅을 관찰하건대 일찍 악함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것도 또한 이러하여 이 땅을 보고 이것을 옹호하리라. 가르치신 바 지혜는 움직임이 없어 바위굴 속에 있거나, 매우 높은 허공에 있더라도 한량이 없거니 하물며 일체를 통솔함이겠느냐. 일체의 땅은 이 복의 밭이라, 10력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시듯 탑과 절을 일으킴에 더하고 덜함이 없으리라.” 이때 부처님의 사리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각각 여러 가지 논(論)을 지었고, 왕은 또 말하였다. “마치 이 힘은 무수한 금강삼매(金剛三昧)와 같이, 뼈가 부서지도록 스스로 휴식하여 버리지 않으며 이것을 제도하리라.”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Buddhist Studies [san-chn]
trīṇi ratnāni 佛法僧 [san-eng]
puṇyakarmaṇāṃ $ 범어 of the pious [pali-chn]
niyata 定向 [pal-eng]
gajjamaana $ 팔리어 pr.p. of gajjatiroaring; thundering. [Eng-Ch-Eng]
入楞伽經 Ru lengqie jing; Lan%ka^vata^ra-su^tra. The "Sutra on (the Buddha's) Entering (the Country of) Lanka." This sutra articulates a number of characteristic Maha^ya^na positions, such as "eight consciousnesses" 八識 and tatha^gatagarbha 如來藏. It was used in East Asia as a basic canonical text by the Faxiang 法相 and Chan 禪 sects in presenting their distinctive ideologies. There are three Chinese translations: (1) Lengqie abatuoluo baojing 楞伽阿跋佗羅寶經, 4 fasc., tr. by Gunabhadra 求那跋陀羅 (T 670.16.479-513); (2) 入楞伽經Rulengqiejing 10 fasc., tr. by Bodhiruci 菩提流支 (T 671.16.514-586); and (3) Dasheng rulengqie jing 大乘入楞伽經, 7 fasc., tr. by S/iks!a^nanda 實叉難陀 (T 672.16.587-639) [Muller-jpn-Eng]
夜 ヤ night [Glossary_of_Buddhism-Eng]
THREEFOLD TRAINING☞ See: Three Non-outflow Studies.
39 나쁜 용과 전염병을 일으키는 귀신이 독기를 퍼뜨려 열병으로 목숨을 마치려 할 때 지성으로 대비주를 소리내 외우면 전염병은 없어지고 수명은 길어지리라. ● 바사바삼 佛沙罰嘇<三十九> va ṣa va ṣaṃ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9 아아니 유마하 나 아 阿惹你<引>喩摩賀<引>曩<引>誐<九>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