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伽毘羅) 파도석시수성(婆兜釋翅授城) 북쪽의 쌍수(雙樹) 사이에 계셨는데, 몸과 목숨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고 하셨다. 2월 8일 밤중에 몸소 주름진 승가리(僧伽梨)와 울다라승(鬱多羅僧)과 안타라발살(安陀羅跋薩)을 각각 세 번씩 접어 금관 속에 깔고 속옷만 입은 몸으로 다리를 포개고 누우셔서 발우와 석장(錫杖)을 직접 아난에게 맡기셨다. 큰 나라 여덟 임금이 모두 5백 장(張)의 흰 깔개와 전단나무의 향을 금관(金棺) 속에 모두 넣고 5백 장의 깔개로 금관을 쌌다. 그리고 다시 5백 대의 수레에 실은 향기로운 소유(蘇油)를 흰 깔개에 부었다. 그때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모든 범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오른쪽에 섰고,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도리천(忉利天)의 모든 하늘 사람을 거느리고 왼쪽에 섰으며, 미륵(彌勒)보살마하살과 신통을 갖춘 시방의 모든 보살들이 앞에 섰다.
그때 세존께서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드셔서 신사리(身舍利)을 부수려고 하셨다. ‘훌륭하구나, 부사의법(不思議法)이여. 사바세계에 이 진실한 법을 퍼뜨렸도다.’ 세존께서 그러한 생각을 하시자 시방세계가 모두 여섯 가지로 반복하여 진동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금관 속에서 금색 팔을 내시며 아난에게 물으셨다. “지금 가섭비구가 왔느냐?”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우사(牛呞)비구가 왔느냐?” “그는 하늘에서 반열반(般涅槃)하여 세 가지 옷과 발우만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部大衆)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영원히 멸도(滅度)하려고 한다.”
곧 다시 깔개를 거두시고 금관 속으로 손을 넣고 조용히 말씀이 없으시다가 이와 같이 두세 번 손을 잠깐씩 내셨다. 아난과 모든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여덟 큰 나라 임금과 천(天)ㆍ용(龍)ㆍ귀신(鬼神)ㆍ아수라(阿修羅)ㆍ가유라(迦留羅)ㆍ긴타라(緊陀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건달바(乾闥婆)ㆍ인비인(人非人)에게 물으셨다. “아난아, 어떠하냐? 내가 전후로 말한 방등(方等)한 대승 마하연(摩訶衍)의 경전을 모두 아느냐?”
“예, 부처님. 그것을 압니다.” 이와 같이 두서너 번을 물으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도리천의 궁전에서 어머님 마야(摩耶)에게 한 설법을 네가 아느냐?” “모릅니다.” “아난아, 어떠하냐? 내가 용궁에서 용에게 설법하여 헤아릴 수 없는 억천의 모든 용들에게 도를 얻게 하고, 전신사리(全身舍利) 130장(丈)을 남겼는데, 너는 아느냐? “모릅니다.” “아난아, 어떠하냐? 내가 어머니의 태에 열 달을 있으면서 모든 보살들에게 불퇴전의 있기 어려운 법인 부사의(不思議)한 행을 말해 주었는데 너는 아느냐?”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이것을 잘 생각하여라. 내가 지금 너에게 보살 대사의 있기 어려운 행을 낱낱이 분별하여 주겠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간절히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일억 일만 천육십이 항하(恒河: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를 가면 그곳에 세계가 있으니, 이름은 사락(思樂)이고 부처님의 이름은 향염(香焰)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다. 그곳에서 반열반을 나타내고 도리천 궁전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을 지났으며 서른여섯 번이나 대범천왕이 되었다.
또한 서른여섯 번이나 제석천(帝釋天)의 몸이 되었고, 서른여섯 번이나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제도한 중생들은 이승(二乘)이나 모든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왜냐 하면 모두 모든 부처님의 신통과 지혜에 감응되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어떠하냐? 여래ㆍ세존에게 태분(胎分)이 있었겠느냐, 태분이 없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의 몸은 태분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여래에게 태분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여래가 열 달 동안 태에 있으면서 교화하고 설법하였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태분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해도 이것 역시 허망하고 적막합니다. 태분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해도 또한 허망하고 적막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곧 신족력(神足力)으로써 어머니 마야의 몸 안에 앉고 눕고 경행(經行)하며 크고 높은 자리를 만드셨는데, 가로 너비가 80유순(由旬)이며 금과 은의 계단과 섬돌ㆍ하늘 비단ㆍ하늘 덮개가 여기저기 허공에 달렸으며, 헤아릴 수 없는 노래와 춤을 만들어 나타내셨다. 다시 신족력으로써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이 사하(娑呵)세계 1만 8천 국토에서 보살 대사가 다 와서 구름처럼 모였고, 남쪽ㆍ서쪽ㆍ북쪽 사방에서 또한 그러하였다.
다시 아래쪽에 있는 62억 세계에서 신통을 지닌 모든 보살이 또한 큰 모임에 왔고, 위쪽으로 72억 허공 세계의 보살이 구름처럼 모여 태[胎舍]에 들어왔다.
그때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아뢰었다. “이 모든 보살이 구름처럼 모인 것은 세존의 부사의한 법과 모든 삼매의 문인 다라니문과 일상삼매(一相三昧)ㆍ문공(聞空)삼매ㆍ도성(道性)삼매ㆍ진실(眞實)삼매ㆍ허공왕(虛空王)삼매ㆍ서습서(逝習緖)삼매ㆍ수성(受性)삼매ㆍ행적(行跡)삼매ㆍ항마(降魔)삼매ㆍ제예오(除穢汚)삼매와 이와 같은 삼매 억천 나유타(那由他)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여래와 같으려면 어떤 삼매에 들어야 태에 머물게 됩니까? 모든 대사들에게 부사의한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관찰하여라. 1주(住)ㆍ2주(住)에서 10주(住)와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의 보살은 각각 그 해당하는 위치에서 서로 섞이거나 착란하지 말라.
왜냐 하면 내가 지금 모든 대사들에게 부사의법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대중은 청정하여 섞임이 없고, 가지와 잎에 기생해도 또한 더러움이 없다.” 그때 세존께서 청정한 음성으로써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옛날 헤아릴 수 없는 겁에서 지금까지 부처 이룬 몸 헤아릴 수 없었네. 지금 다시 태(胎)에 들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네.
몸이 청정하여 나쁜 행위가 없고 입으로 행한 것도 허망함이 없으며 뜻으로 행함이 항상 자비로우니 청정한 보살의 길이네.
저 중생의 무리를 불쌍히 여겨 항상 4사(駛)의 강에 있으면서 항상함과 단멸을 따지는 이를 보리의 도에 회향시킨다네.
부지런히 힘써 이 몸을 얻었으니 더럽다는 생각 일으키지 말라. 몸을 무덤과 같다고 헤아리면 야간(野干)이 엿보게 되네.
어리석은 이 깊이 물들어 집착하여 애욕에 탐닉하여 능히 버리지 못하네. 이 몸은 다시 거듭 태어남이 없을 것이니 밤낮으로 새부리로 쪼아대듯 하네.
아홉 가지 괴로움의 빗장이 열렸으니 화병에 똥을 담은 것과 같네. 갈망하는 것에 핍박되어 어찌하여 고뇌만 생기게 하는가?
바다가 모든 흐름 삼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이 보배로 여기네. 몸은 금강이 아니라 생각하고 여러 나쁜 행실 하지 말라.
몸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빨리 도를 행하지 않는가? 만약 어떤 사람 수명이 억 겁이라도 그 사람 또한 당연히 욕망을 버려야 하네.
하물며 수명은 백 년을 채우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만족함을 모른단 말인가? 어리석은 이 항상 스스로 지난 세상의 복으로 이 몸을 얻었다 말하네.
마땅히 즐겨 스스로 방종하면 채 즐기지도 않아 문득 끝난다네. 이 욕망을 가둘 뇌옥 없어 지혜로도 능히 수호하지 못하네.
사람들이 탐욕을 버리고자 하면 열 가지 지혜로 무상(無想)을 관찰하라. 탐욕은 진실한 법이 아니라서 일어나고 없어짐이 물거품 같다네.
환술을 부리는 이가 만든 것으로 약간의 상을 변화하여 나타낸 것을 어리석은 이는 진실이라 말하나 진실은 구해도 얻을 것 없네.
공한 성품 본래 스스로 공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나고 없어질 것 없으니 무상정(無想定)을 분별하면 능히 중생의 번뇌를 다한다네.
문수야, 그대 지금 알아라. 시방의 무루(無漏)가 모였으니 내가 유리정(琉璃定)에 들어 방등법(方等法)을 널리 연설하노라.
시방의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부처 내가 말하는 것과 같아 다름없다네. 가련타 이 뭇 어리석은 무리들 영원히 불길에 휩싸인 집에 있네.
태를 버리고 다시 태를 받고 저기에 머물다가 다시 여기에 오네. 시방의 모든 보살들은 항하의 모래알 같은 겁 동안 행을 쌓았네.
비록 사바세계에 있지만 5고(苦)와 5뇌(惱)의 겁도 나의 시방세계(十方世界)와 같아 이 세계[土]를 돕는다네.
다섯 갈래 길 두루 돌면서 죄를 받음 이것이 가장 심하네. 공을 알면 정(定)의 상(相)은 없는 것 또한 다시 본제(本際)도 없다네.
구경에는 한 모양의 뜻 자성은 본래 비고 적정하네. 항상된 생각은 일어나거나 없어짐이 없고 남아 있음[有餘]과 남아 없음[無餘]도 없네.
옛날 나의 큰 서원으로 두루 다섯 갈래의 태를 받아서 화(化)ㆍ습(濕)ㆍ난(卵)ㆍ태(胎) 가운데 또한 있기 어려운 법을 말했네.
5음에 탐착하는 이에게는 무소유를 설하여 주었으며 열두 가지 연기법은 어리석은 행으로 나고 죽음의 근본이네.
네 가지 뒤바뀜에 떨어진 이들을 위하여 네 가지 진실한 법 말해 주었네. 고제(苦諦)에는 진리 없나니 습제(習諦:集諦)ㆍ진제(盡諦:滅諦)ㆍ도제(道諦)도 그러하다네.
욕아계(欲我戒)로 수(受)를 보며 또한 네 가지 애(愛)에 미치네. 진실한 성품을 분별하면 허무하고 적막함의 종요[要]이네.
비록 나고 죽음의 언덕을 건너도 열반에 처하지 못하는 이를 위해 이제 어머니 태에 있으면서 설법하여 군생(群生)을 깨닫게 하네.
사바세계 안에서 헤아릴 수 없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태에 있으며 설법하여 아승기 중생을 제도한다네.
허공은 끝없는 세계 불국토도 또한 이와 같지만 중생은 식신(識神)을 받아 진실한 성품과 같지 않다네.
밝은 지혜로 교화하는 것도 종류를 따라서 그것을 제도하네. 어떤 이는 몸을 보고 제도를 받고 어떤 이는 소리 듣고 해탈을 얻네.
어떤 이는 다시 괴로움을 사유하고 집제가 다하면 도의 근본이라네. 네 가지 의지[四意止]를 사유하여 네 가지 의지를 끊으면 네 가지 신족을 얻는다네.
다섯 가지 근(根)과 다섯 가지 힘[力]과 일곱 각지(覺支)를 꽃이라 하네. 현성의 8품도(品道)는 영락으로 몸을 장식함이네.
저와 내가 공함을 분별하면 생각이 끊어진 적멸한 지혜라네. 구함이 있는 것 원하지 않고 영원히 공하여 지혜 없는 데 처하네.
처음 깨달음이 있는 정(定)에서 서른 가지 부정관(不淨觀)에 드네. 역순으로 깨달음이 있음을 알면 정(定)에 들어 관할 것이 없음을 안다네.
아홉 차제정 중 첫 정(定)에 들어야 각관(覺觀)이 없음을 분별하네. 또 멸진도(滅盡道)를 좋아하면 처음 정의 행법이 아니라네.
네 가지 의지인 희락의 의(意)가 소멸하면 안온하게 네 가지 법에 들지만 지혜를 통달한 모든 대사(大士)는 이것으로써 행을 삼지 않네.
모든 번뇌를 제거한 까닭에 당연히 중생 앞에 나아간다네. 선정에서 겁(劫)을 지나는 것은 형상이 마르기가 마른 나무와 같네.
3선(禪)의 향기로 훈습하여서 5지(枝)가 시들지 않네. 부처의 지혜 헤아리지 못하여 있는 듯하나 또한 있지 않네.
위없는 최고의 바른 깨달음 남[生]도 없고 또한 없음도 없어 내가 성불하여 지금까지 3선(禪)에 유행(遊行)하며 관하네.
설령 당연히 4선(禪)에 들어도 말없이 제도할 수 있네. 내가 허공 세계 관찰하니 중생은 의지할 것이 없네.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과 지혜 이에 능히 근원을 다했지만 번뇌를 끊는 모든 배우는 이들도 아직은 능히 모두 분별하지 못하네.
도품(道品:菩堤分法)은 매우 깊고 미묘하여 이승(二乘)이 미칠 바 아니요 나는 천안(天眼)으로만 볼 수 있으며 혜안(慧眼)과 불안(佛眼)으로만 관찰 할 수 있네.
네 가지 식(識)으로 받은 형상 또한 다시 가운데서 변화하고 또한 지(地)ㆍ수(水)ㆍ화(火)가 없어도 형색(形色)은 관찰해 볼 수 있다네.
오직 부처의 큰 신력이라야 다 저 언덕에 이르게 하나니 시방의 모든 부처의 세계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아승기 수와 같이 많네.
도의 지혜가 근본이 되어 허공 세계에 유행한다네. 마땅히 육안(肉眼)으로써 허공 세계 중생을 관찰하네.
경계에 거리낌 없는 지혜 뜻을 결단하여 맺힘을 없애는 지혜 청정하여 밝게 비추는 지혜 스스로 숙명을 아는 지혜.
다른 이의 마음을 현감(玄鑒)하는 지혜 부모에 진정(眞淨)하는 지혜 몸을 세계에 나누는 지혜 태속에 있어도 더러움이 없는 지혜.
식(識)과 정(定)이 어지럽지 않은 지혜 한결같이 믿고 받는 지혜 정(定)에 들어 관찰하는 지혜 몸의 모습을 분별하는 지혜.
서른 가지 깨끗하지 못한 지혜 재앙을 소멸하고 환난을 제거하는 지혜 보살의 차제(次第) 지혜 교화를 초월하는 지혜.
열두 인연 없애는 지혜 연각이 때가 되어 깨닫는 지혜 소리를 듣고 교화를 받는 지혜 12입(入)에서 나오는 지혜.
혜(慧)를 관찰하는 걸림 없는 지혜 도를 받는 현감한 지혜 하룻밤이 겁이 되는 지혜 겁이 하루 낮이 되는 지혜.
염불하면 부처님께서 나타나는 지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지혜 이승(二乘)이 없는 지혜 독보적(獨步的)으로 두려움 없는 지혜.
많은 사람의 뜻을 즐겁게 하는 지혜 이미 만든 것을 변별하는 지혜 앞뒤를 짓지 않는 지혜 옛 것도 없애고 새로운 것도 없애는 지혜.
정(定)에 들어 생각을 제거하는 지혜 안팎의 몸을 관찰하는 지혜 여래의 지혜를 받는 지혜 현성이 묵연(黙然)하는 지혜라네.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자 그때 억백천 무리의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이 모두 뜻을 일으켜 신지(信地)를 다했다. 또 12나유타의 보살은 관행지(觀行地)에서 3주(住)에 머물지 않고도 국토를 성취하였으며 오른쪽에 있던 7만 7천억 중생이 아유월치(阿惟越致)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자리에는 한 사람도 잡되거나 때가 끼거나 더럽거나 나쁘거나 물러남이 있는 이가 없다. 왜냐 하면 모두 이근(利根)으로 나고 죽음에 있지 않고, 속박되거나 집착하거나 없어지거나 태어남이 없으며, 도를 닦음이 청정하고 증득함을 성취하였고,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정법(正法)을 즐겨 들기를 원하며, 많은 마(魔)를 항복받고 교만을 제거하고, 바깥으로 비록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아승기 중생을 교화하나 속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백천 삼매에 노니느니라.
그 삼매라는 것은,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ㆍ행함을 초월하여 과위에 오르는 삼매ㆍ廣進超步三昧(광진초보삼매)ㆍ동진낙법삼매(童眞樂法三昧)ㆍ네 갈래에서 나고 죽는 삼매ㆍ무상등행삼매(無想等行三昧)ㆍ왕예불퇴도량삼매(往詣不退道場三昧)ㆍ여럿의 마음을 관찰하는 삼매ㆍ일생보처를 생각하는 삼매ㆍ형상이 없는 삼매ㆍ땅 속에서 솟아나는 삼매ㆍ해박전투삼매(解縛戰鬪三昧)ㆍ정수최승삼매(頂受最勝三昧)ㆍ중생이 기쁘게 보는 삼매ㆍ부사의(不思議)에 들어가는 삼매ㆍ부처님 세계인 부사의 삼매ㆍ법계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삼매ㆍ성스러운 대중의 삼매ㆍ중생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부사의 삼매ㆍ용의 힘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부사의 삼매ㆍ무리의 위와 중간에 있는 임금[王] 부사의 삼매ㆍ용맹하여 원수를 항복시키는 부사의 삼매ㆍ수명이 헤아릴 수 없는 부사의 삼매ㆍ다섯 갈래에 있으면서 괴로움을 받는 부사의 삼매ㆍ모든 부처님의 현재 부사의 삼매ㆍ네 사물로 공양 올리는 부사의 삼매이니라. 이와 같은 1억 1천 삼매로 그 몸을 꾸미느니라. 또 빠른[速疾] 삼매라고 이름하는 것이 있으니, 하루 중에 출가하여 도를 행하고 나무 아래 나아가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국토를 정화하는 부사의 삼매이니라. 또 머물러 인연을 기다리는 부사의 삼매가 있으니, 여래가 이 삼매를 반연하여 수명이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에 머물러 인연이 있는 중생을 위하여 남음이 없는 열반의 세계로 제도하게 하며, 열반을 취하지 않고 다시 인연의 행과 보살의 도를 짓느니라. 또 부처님의 힘이 부사의한 삼매가 있으니, 한 부처님 세계에서 한 부처님 세계에 도달하게 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합장하거나 손가락을 튕기는 사이에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다시 저들로 하여금 하루에 성불하게 하니 태에 있는 보살의 신력(神力)이 이와 같으니라.”
2. 유보품(遊步品)
이때 미륵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팔을 드러낸 채 오른쪽 무릎을 꿇고 세존에게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부사의법은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지금 이 대중 가운데는 도의 자취를 밟은 이도 있고 아직 도의 자취를 밟지 아니한 이도 있으며, 신지(信地)에 머문 이도 있고 아직 신지에 머물지 아니한 이도 있습니다. 어떤 보살은 광음천(光音天)ㆍ합천(廅天)ㆍ파찰타천(波刹陀天)ㆍ타파마나천(陀波魔那天)ㆍ아회긍수천(阿會亘修天)ㆍ도가천(道呵天)ㆍ수건천(須乾天)ㆍ수실기욕천(須室祇褥天)ㆍ고나천(告那天) 나아가 일구경천(一究竟天)ㆍ화자재천(化自在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있으며, 어떤 보살은 공처(空處)ㆍ식처(識處)ㆍ불용처(不用處)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있는데, 어떻게 저들에 대해 태에 들어가 교화하였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질문은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여래는 끝까지 이 뜻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는 나에게 대답하여라. 미륵아, 공(空)은 형질(形質)이 있는가, 형질이 없는가?”
미륵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아, 만약 공에 형질이 없다면 어떻게 중생에게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형질이 없으면 이 중생들에게 누가 결(決:수기)을 줄 수 있으며, 누가 결을 받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보살이 나무 아래에 나아가 어떤 때에는 경행(經行)하며, 어떤 때에는 정에 든다고 말하느냐? 어떻게 보살이 스스로 신상(身相)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의 신상을 관찰한다고 말하느냐? 어떻게 보살이 일곱 걸음을 나타내고 스스로 많은 마군을 항복받고 부처를 이루었다고 말하느냐? 어떻게 보살이 도량을 닦고 다스려 시방의 모든 중생을 부른다고 말하겠느냐?”◂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러한 것도 공적하여 형질이 없습니다. 여래의 신상도 이름을 빌린 것이며, 더 나아가 한 구경의 뜻까지 모두 공하여 있는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공을 행하는 보살은 어떻게 시방세계를 유행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가?”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공을 행하는 보살은 세계도 보지 않고 또한 부처도 없으며, 부처님 자신에게도 부처가 없거늘, 어떻게 부처님과 지ㆍ수ㆍ화ㆍ풍ㆍ식이 있겠습니까? 아(我)ㆍ인(人)ㆍ수명(壽命)이 모두 공적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태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삼십삼천에 있으면서 모든 하늘 사람에게 공의 행법(行法)을 말하는데 그 자리의 대중 가운데 자취를 밟은 이가 있는가, 없는가?”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 모든 하늘 사람은 상(常)ㆍ낙(樂)ㆍ정(淨)을 생각하며, 아(我)를 헤아려 나[我]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밟은 자취가 없으며 자취를 밟음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 모든 하늘 사람들에게 색음(色陰)과 행음(行陰)이 있는가, 없는가? 보응음(報應陰)이 있는가, 없는가? 깨뜨릴 수 있는 음이 있는가, 없는가? 받아들일 음이 있는가, 없는가? 소리의 음이 있는가, 없는가? 중간의 음이 있는가, 없는가? 저것과 이것의 음이 있는가, 없는가? 구경의 음이 있는가, 없는가? 묵연(默然)의 음이 있는가, 없는가? 미륵아, 어떠하냐? 그대가 하늘 궁전에 있으면서 모든 하늘 사람들에게 참된 법을 말해줄 적에 이 모든 음(陰)은 이름이 있다고 말했느냐?”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아,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기별(記別)을 주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바르고 참된 도가 있다고 하였는가? 바르고 참된 도가 없다고 하였는가?” 미륵이 대답하였다.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있다는 것도 이름을 빌린 것이며, 미륵이라 말하는 것도 이름을 빌린 것이며, 자성(自性)의 본말도 이름을 빌린 것이다. 여래의 색신인 몸은 스스로 공하며, 상은 상이 스스로 공하며, 본말(本末)은 본말이 공하며, 저것과 이것은 저것과 이것이 공하니, 어찌 스스로 미륵이라 부르기로 결정된 것을 안다고 말하겠는가? 성품을 말한다 해도 성품은 스스로 공하며, 있음을 말해도 있음은 스스로 공하며, 없음을 말해도 없음은 스스로 공하며, 없음은 스스로 항상 머물기도 하고 없음은 머물지 않기도 하느니라. 머문다고 말해도 머묾은 스스로 공하며, 스스로의 상을 말해도 스스로의 상은 공하며, 음을 말해도 음은 스스로 공하며, 태(胎)를 말해도 태는 스스로 공하며, 더 나아가 도량에서 행을 말해도 행음은 공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밟은 자취가 없으며 자취를 밟을 것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자취를 밟는 이가 있는가, 없는가? 과(果)는 증득할 것이 있는가, 없는가? 이 함이 있는 성품은 함이 있는 성품인가, 함이 있는 성품이 아닌 것인가? 이것은 함이 있는 가운데 함이 없는 성품인가, 함이 없는 성품 가운데 함이 없는 성품인가? 이것은 번뇌가 있는 가운데 번뇌가 없는 성품인가, 번뇌가 없는 가운데 번뇌가 없는 성품인가? 이것은 욕계(欲界) 가운데 다함이 있는 성품인가, 욕계 가운데 다함이 없는 성품인가? 이것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가운데 다함이 있는 성품인가, 색계와 무색계 가운데 다함이 없는 성품인가? 공계(空界)에서 식(識)을 없앤 성품인가, 공계 가운데 식을 없앤 성품이 아닌가? 더 나아가 함이 있는 공ㆍ함이 없는 공ㆍ자성공(自性空)에서 있음은 있음으로써 공이라 하는가, 없음은 없음으로써 공이라 하는가? 대공과 취공(取空)과, 같은 상[一相]이면서 상이 없는 공[一相無相空]과 남음이 있는 열반의 공과 남음이 없는 열반의 공은 실천할 성품인가, 실천할 성품이 아닌가?”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실천할 법은 법이 아니며, 법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실천하지 아니합니다.” “미륵아, 어찌하여 함이 있는 법은 함이 없는 법이 아니며 함이 없는 법은 함이 있는 법이 아니라 말하느냐? 어찌하여 그대는 실천함이 있는 법은 실천이 없고, 실천이 없는 법도 또한 실천이 없다고 말하는가?”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최상의 제일의(第一義)는 상이 있고, 상이 없는 법 가운데 함이 있음을 구하면 함이 없음이 아니며, 함이 없음을 구하면 함이 있음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노라. 진실한 근본으로 논의하면 근본으로 논의할 것이 없지도 않은데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은 무엇에서 생기며 어떠한 이름이 있는가?” 미륵이 세존에게 말씀드렸다. “허공의 적멸한 성품에 대한 글자의 뜻과 이름은 모두 진실이 아니니, 근본으로 논의할 것이 없으므로 근본으로 논의할 것이 있지 아니합니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근본적인 뜻은 어찌하여 근본적으로 논의할 것이 없는 데서 생긴다고 말하느냐?”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속의 뜻[世俗義]으로는 근본이 법성이 되고, 근본 없음이 징정(澄靜)함이 되며, 부동(不動) 또한 부동이 아닙니다. 일상(一相)ㆍ무상(無相) 나아가 함이 있는 법ㆍ함이 없는 법ㆍ번뇌가 있는 법ㆍ번뇌가 없는 법ㆍ유대법(有對法)ㆍ무대법(無對法)ㆍ색법(色法)ㆍ무색법(無色法)ㆍ볼 수 있는 법[可見法]ㆍ볼 수 없는 법[不可見法]은 머물지도 않고 또 머물지 아니하지도 않으니 이것은 근본적으로 뜻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미륵아, 공으로 행하는 보살은 근본이 없음을 환히 아는구나.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미래를 상대할 것이 아니고 현재는 머물지 아니하고 과거는 이미 없어져 집착할 것도 없고 끊을 것도 없으며, 머물지 않는 것도 또한 머물지 않는 것이 아니니라.” 그때 모인 이들 가운데 분별신관(分別身觀)이라고 이름하는 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여래께서 근본적인 뜻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신상(身相)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신상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자성이 있어 공하다고 말씀하시고 자성이 없어 공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근본적인 뜻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여(如)한 가운데서 온 것입니까, 여한 가운데를 따르지 않고 온 것입니까? 근본적인 뜻이 없다는 것은 나고 없어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법(對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색법(色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함이 있는 법입니까, 함이 없는 법입니까? 번뇌가 있는 법입니까, 번뇌가 없는 법입니까? 상이 있는 법입니까, 상이 없는 법입니까? 신관(身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분별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 것을 몸이라 하며 어떠한 것을 관(觀)이라 하며, 몸은 누구를 위하여 이 관을 행하느냐?” 분별신관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ㆍ수ㆍ화ㆍ풍을 신음(身陰)이라 이름하며, 식으로써 분별함을 관(觀)이라 이름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地)라고 말하지만 지는 스스로 공하며, 수(水)라고 말하지만 수는 스스로 공하며, 화(火)라고 말하지만 화는 스스로 공하며, 풍(風)이라고 말하지만 풍은 스스로 공하며, 식(識)이라고 말하지만 식은 스스로 공하며, 공(空)이라 말하지만 공은 스스로 공하나니 어떠한 것이 몸이며, 어떠한 것을 관(觀)이라 말하느냐?” 분별신관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허공계와 법계는 모두 공적하여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아도 부처님을 말하고, 법이 없어도 법을 말하고, 승가가 없어도 승가를 말하며, 지금 세상과 뒤의 세상이 없으며, 죄가 없고 복이 없으니 장차 대사(大師)와 같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분별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멸진정(滅盡定)에 들었을 때 눈으로 색을 관하여 보고, 더 나아가 뜻으로 법을 관하여 보았느냐?” 신관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멸진정 가운데서는 태어남도 멸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눈으로 색을 관해도 색은 나의 색이 아니고 나는 저 색이 아니며, 식도 나의 식이 아니고 나도 저 식이 아니며, 더 나아가 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도 이와 같으니라. 법은 나의 법이 아니고 나는 저 법이 아니며, 근본적인 뜻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며, 근본이 청정하면 도도 청정하며 상과 공이 청정하고 더 나아가 구경의 공도 청정하며, 하나가 청정하면 둘이 없고, 5음(音)이 청정하면 행이 청정하고 도(道)도 청정하며, 유대(有對)가 청정하고 무대(無對)가 청정하면 색이 청정하고 도도 청정하며, 보살의 관함이 청정하면 6진(塵)이 청정하며 도도 청정하며, 권속이 청정하면 성품이 청정하고 도도 청정하며, 땅이 청정하고 머묾이 청정하면 도도 청정하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근본적인 뜻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청정하고 불고불락(不苦不樂)이 청정하면 도도 청정하며, 부문[門]이 청정하고 종성이 청정하고 태어남이 청정하면 도도 청정하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근본적인 뜻이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도량이 청정하고 국토가 청정하고 중생이 청정하면 도도 청정하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근본적인 뜻이 없음이며, 근(根)이 청정하고 역(力)이 청정하고 각의(覺意)가 청정하고 도품(道品)이 청정하면 도도 청정하느니라. 신관보살아,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묻나니 그대는 마땅히 나에게 대답하여라. 여래가 도량을 다스리고 나무 아래에 앉아 어떻게 중생의 유(類)를 분별하였느냐? 유기법(有記法)을 사용했겠느냐, 무기법(無記法)을 사용했겠느냐? 유기법이라는 것은 티끌과 때[垢]이며 무기법이라는 것도 티끌과 때인데 어찌 무기로써 중생에게 결(決)을 주겠느냐?” 신관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유기법은 티끌과 때가 아니며, 무기법도 티끌과 때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티끌과 때라는 것은 비천한 법이며 유기법과 무기법은 높은 법이므로 무기로써 티끌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티끌의 법이라는 것은 여래의 종성(種姓)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만 하여라. 그러한 말을 하지 말아라. 그대가 말한 티끌의 법은 나고 죽음의 법인데 지금 다시 여래의 종성이라고 말하겠느냐?” 신관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여래의 몸이 변화로 태어남도 중생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 변화로 태어난 것이라면 티끌과 중생의 갈래에는 없습니다. 설사 중생이라 해도 여래의 몸이 있으니 티끌과 때가 여래의 종성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구나.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이름을 빌리자면 티끌이 있으나 제일의 뜻 가운데는 티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신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은 항상 천안으로써 시방세계 아승기 중생이 의식(意識)으로 내는 생각을 관한다. 즉 욕심이 많은 이도 있고 욕심이 없는 이도 있으며, 성내는 마음이 많은 이도 있고 성냄이 없는 이도 있으며, 어리석은 마음이 많은 이도 있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 이도 있으며, 해탈하려는 마음이 있는 이, 해탈하려는 마음이 없는 이, 증상만(增上慢)이 있는 이, 증상만이 없는 이, 쉽게 구경에 이르는 이도 있고, 어렵게 구경에 이르는 이도 있으니 보살은 모두 알고 다 관하여 가서 그들을 제도한다. 어떻게 보살은 천안으로 관하여 욕심이 적은 이도 있음을 알고 욕심이 많은 이도 있음을 알며, 보살은 저들 무리 가운데 있어 음녀(婬女)의 형상을 나타내어 음욕을 설명해 주는가? 쾌락은 잊기 어렵고 보고서 싫어하거나 만족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저 욕심으로 하여금 배로 기쁨과 즐거움을 내게 한 뒤에 점차로 몸은 더러우며 무상하고, 내가 없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아니며, 욕심은 불구덩이로 식과 마음을 태우고 지지는 것임을 설명한다. 그들로 하여금 싫어하고 근심하게 하여 음욕을 없게 한다. 이러한 중생들은 곧 태 안에서 위가 없는 기(記)를 받느니라. 신관보살아, 그대는 마땅히 이것을 알아야 하니, 이와 같은 중생은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서 욕심을 끊고 도를 얻는다. 어떤 보살이 저 무리들 가운데 함께 좋은 벗이 되어 살생하는 짓은 쾌락이며 잊기 어렵고, 산 것을 죽이는 것은 쾌감이며 그의 수명을 감소시켜 나의 수명을 더하는 것이라 설명하여 주다가 뒤에 점점 산 것을 죽이는 것은 받는 죄가 지극히 무겁고, 백여덟 가지 산 것을 죽이는 것은 무거운 죄로 고뇌가 된다고 말해서 이끌고 되돌려서 도에 있게 단속하고 탐욕의 어리석음이 없도록 하나니,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보살은 저 무리들 가운데 함께 벗이 되어 열 가지 좋지 못한 도와 또한 신교(身敎)ㆍ구교(口敎)ㆍ의교(意敎)가 좋지 못하다 말하고 진실로써 허위라 하고, 덧없음으로 항상하다 말하고, 공한 데도 실제로 있다 말하고, 몸이 없는 데도 몸이 있다 말하고, 괴로움에 즐거움이 있다 말하고, 세상이 없는 데도 세상이 있다고 말하다가 뒤에 점차로 광대하고 깊은 지혜와 헤아릴 수 없는 변재와 연법(燃法)과 치법(熾法)을 말해 주어 법깃대를 세우고 점점 지혜의 무성한 숲에 이끌어 들이나니, 모든 사람은 꼭 알아야 하느니라. 만약 내가 있는 곳에서 의혹이 있으면 당연히 지혜의 불로써 그대들의 의심을 태워버려야 한다. 만약 보시하려는 사람과 손으로 잡는 재물과 받을 사람이 있다면 세 가지 일이 공하여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면,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사람이 계율을 지켜 계품(戒品)에서 터럭 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하고 성취함을 보아도 비고[虛] 적정하여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참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있었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손과 발을 자르고 죽여도 마음으로 성내는 생각이 없고, 머리ㆍ눈ㆍ골수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것이 없으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만약 중생이 금강과 같이 깨뜨릴 수 없는 마음이 있어도 어떤 사람이 부드러운 말로 유혹하게 되면 겁(劫)의 수로 헤아리기 어렵도록 나고 죽음에 헤매어 제도하기 어렵게 되거늘, 어찌 여기에서 스스로를 제도하지 않고 이미 중생이 되어 괴로움에 시달리는가? 보살의 마음으로 나아가 끝까지 나고 죽음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만약 사람이 선정을 행하여 심식(心識)을 옮기지 아니하면 마왕 파순이 허공 가운데서 우레와 번개로 선정을 깨뜨리려고 하나 그로 하여금 하나의 터럭도 움직이게 하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그로 하여금 선정의 길에서 물러나게 하겠는가?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만약 중생이 모든 행을 분별하면 이것은 곧 행하고 이것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느니라. 만약 사람이 몸을 탐하여 집착하고 사랑하여 좋아하는 이라면 네 가지 의지법(意止法)을 말해주고, 낱낱이 모든 법요(法要)의 장(藏)을 분별하여 헤아릴 수 없는 법계(法界)를 막힘없이 통하도록 연설해 주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보살은 자삼매(慈三昧)에 들어 동쪽 방향으로 제한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에 두루 가득한 중생의 종류를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고 애정으로 생각하여 해탈하게 해 주고자 함이 있느니라. 비유하면 항하의 모래 가운데서 하나의 모래알을 취하여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가 그곳에 그 한 모래알을 두고 또 그렇게 하여 항하의 모래가 다한다 해도 자심(慈心)은 다하지 아니하나니, 보살의 발원이 견고하여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마치 사람이 와서 보살의 몸에서 살덩이를 취하려고 베어냄이 있어도 곧 그때에 피가 변하여 젖이 되고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함과 같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면 이것이 보살이 자삼매를 행하는 것이니,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때 보살은 비삼매(悲三昧)에 들어 남쪽 방향으로 제한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에 두루 가득한 중생의 종류를 슬피 여기는 생각으로 해탈하게 해 주고자 하느니라. 항하의 모래 가운데서 하나의 모래알을 취하여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가 그곳에 그 한 모래알을 두고, 또 그렇게 하여 항하의 모래알이 다한다 해도 비심은 다하지 아니하나니 저 중생이 받는 괴로움을 대신 견디는데, 모두 보살의 견고한 서원 때문이다. 보는 중생은 마음이 청정해지고 모든 악을 멀리 여의고 잘못된 생각을 이미 끊나니,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때 보살은 희삼매(喜三昧)에 들어 서쪽 방향으로 제한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에 가득 찬 중생 무리에게 기쁜 마음으로 중생을 해탈시키고자 하느니라. 항하의 모래 가운데서 한 알의 모래를 취하여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 그가 지녔던 한 알의 모래를 버리고 또 이와 같이 하여 항하의 모래를 다 옮겨도 희심은 다하지 않느니라. 만약 저 중생이 기쁨에 들면 스스로 하여금 오락(娛樂)하게 하는데 다 보살이 낸 뜻이 견고하기 때문이니,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때 보살은 사삼매(捨三昧)에 들어 북쪽 방향으로 제한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에 중생의 무리가 가득한데 저 중생이 행을 빠뜨려 없어짐이 있을까 두려워 장차 양육하고 옹호하여 깊이 빠지지 아니하게 하고자 하느니라. 항하 가운데서 한 알의 모래를 취하여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가 그 한 알의 모래를 버리고 또 이와 같이 하여 항하의 모래를 다 옮겨도 사심(捨心)은 다하지 않느니라. 모두 보살의 서원이 견고하기 때문이니,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이러한 때에 보살이 진실한 법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분명하게 닦으니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행할 것은 아니니라. 사방에 두루 가득한 중생들로 하여금 한번 음성을 들으면 소리를 찾아 곧 도착하는데 모두 보살의 서원이 견고하기 때문이니,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3. 성제품(聖諦品)
부처님께서 보살마하살ㆍ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ㆍ하늘 사람ㆍ용ㆍ귀신ㆍ아수라(阿修羅)ㆍ가유라(迦留羅)ㆍ긴타라(緊陀羅)ㆍ마후륵(摩睺勒)ㆍ비사차(毘舍遮)ㆍ구반다(鳩槃茶)ㆍ부단나(富單那)ㆍ마누사(摩㝹舍)ㆍ아마누사(阿摩㝹舍) 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들을 위하여 보살마하살의 현성제(賢聖諦)를 말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왜냐하면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으로부터 도과(道果)를 닦고 익혀서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나며 다섯 갈래를 두루 떠돌면서도 보살의 현성제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살이 닦고 익히는 현성제라고 하는가? 어떤 때 보살이 처음 마음을 일으킨 때부터 도량에서 막힘이 없는 법을 행하기까지 선정의 증득을 취하지 아니하고 모든 나쁜 생각을 없애며, 어떤 보살은 초선(初禪)의 지위에 들어서 청정한 행을 보고 부끄러워 싫어하며 근심하여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 여섯째 주(住)에 오르고 싶어 간절히 나아간다. 이선(二禪)의 지위에 들어서 마음이 확연히 깨달은 것이 마치 구름 걷힌 달과 같아서 스스로의 몸을 관하고 마음으로 ‘견고한가, 견고하지 못한가?’라고 서원을 내느니라. 자기의 마음으로써 다시 중생의 마음을 관찰하여 제도하기 쉬운지 제도하기 어려운지 모두 아느니라. 이때 보살의 마음은 최고로 크게 기쁘게 되어 ‘나는 장차 부처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세상이 청정하여 중생의 번뇌가 제거되고, 마를 항복시켜 위없는 현성의 법륜을 굴리느니라. 유쾌하구나, 복의 보답이여’라고 하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짐을 아느니라. 이때 보살이 불란정(不亂定)에 들어 마음으로써 마음을 들고 몸으로써 몸을 들어 곧 신족(神足)의 성도(聖道)를 성취한다. 그리하여 한 부처님 세계에서 다른 한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ㆍ세존을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하며, 깊은 법을 듣고도 어렵게 여기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 점차 삼선(三禪)에 들어 모든 색과 상(像)이 모두 공하여 없는 줄을 관하느니라. 삼선(三禪)에 머물러 중생의 종류를 관찰하여 저기에서 죽어 여기에 나고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나는 줄 다 분별할 수 있다. 자기의 숙명도 알고 또한 저 찰리(刹利)의 종성ㆍ바라문(婆羅門)의 종성ㆍ거사(居士)의 종성ㆍ장자(長者)의 종성이 어느 곳에서 왔는가를 아느니라. 이것은 행하는 사람에게 알맞고 이것은 행하는 사람에게 알맞지 아니하며, 과를 받음에 알맞고 과를 받음에 알맞지 아니하며, 날숨과 들숨을 쉬는 것이고 날숨과 들숨을 쉬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근력(根力)ㆍ신족ㆍ각의(覺意)ㆍ8도(道)이며, 이 사람은 수기를 받아 아무 세계 아무 곳의 아무 중생 중에서 부처를 이룬다는 것을 모두 아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삼선지(三禪地)에서 청정한 마음을 얻는다고 말하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은 삼선지에서 8주(住)를 희망한다. 비록 희망하나 얻지 못하여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청정한 마음을 구하여 사선정(四禪定) 가운데 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서 사선에서 물러나거나 옮기지 않는 법과 걸림이 없는 해탈행과 네 가지 신족을 말해주어, 한 몸을 나누어 헤아릴 수 없는 몸이 되고 헤아릴 수 없는 몸을 합하여 한 몸이 되느니라.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한 저 중생들로 하여금 화광삼매를 보고 마음으로 두려워하여 옷과 털을 곤두서게 하여 스스로 와서 보살의 처소에 귀의하게 하고, 삼매의 힘으로 인하여 제도하여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이때 사선 가운데서 세계의 진여법성(眞如法性)을 분별하고 마음으로 물러나 돌아와 떨어져서 6주(住)의 행을 익히며,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도 아직 불퇴전지를 얻지 못했으니, 어찌 8주를 얻겠는가?’ 라고 하느니라. 그리고는 사선(四禪) 가운데서 간절히 닦고 익혀 중생의 행을 깨끗이 하고 그 집착하는 괴로움을 대신하느니라. 비록 이 법을 행하나 이 법에서 스스로 칭찬하거나 기리지[譽] 아니하며, 교만을 제거하여 나를 없애고 여섯 가지 생각을 닦느니라. 비록 다시 도를 행하나 아홉 종류 중생의 처소에 있으면서도 마음으로 나고 죽음에 물들어 집착하거나 생각하고 사모하지 아니하며, 마음으로 활연히 깨달아 물러나거나 바뀌지 아니함에 미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성제에서 청정한 마음을 얻는다고 말하느니라. 이에 보살이 공처삼매(空處三昧)에 들어 이 삼천대천세계 중생의 마음과 식을 관하고, 깨끗한 법을 닦으며 속박과 집착을 여의며 생각하거나 사모함이 없이 스스로 한 겁, 두 겁 헤아릴 수 없는 겁에 이르도록 머무르면서 아무 겁 가운데 중생을 교화하되, 태어난 이와 없어진 이를 점점 인도하여 청정한 도를 얻게 하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때 보살이 식처삼매(識處三昧)에 들어가 이 삼천대천세계의 식신(識神)이 나아갈 천도(天道)ㆍ인도(人道)ㆍ아귀도(餓鬼道)ㆍ축생도(畜生道)ㆍ지옥도(地獄道)를 관하고 쉽게 제도할 것과 어렵게 제도할 것을 모두 알면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때 보살이 불용처삼매(不用處三昧)에 들어가 이 삼천대천세계 중생의 무리에서 청ㆍ황ㆍ적ㆍ백이 많음과 적음이 있음을 보고 관하며, 곧 스스로 싫어하고 근심하여 불용처삼매에 오래 머물지 않으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어떤 보살이 비상비불상처삼매(非想非不想處三昧)에 들어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식신이 나아가 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과 청ㆍ황ㆍ적ㆍ백이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음을 관찰하고, 저 중생으로 하여금 목숨이 다함을 알게 하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이에 보살이 대허공대적정삼매(大虛空大寂定三昧)에 들어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위로 끝없고 다함없는 세계에 이르는 중생의 종류[類]가 식신이 나아갈 것을 관하고 생각하여 공하고 없는 법임을 분별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이룬다고 말하느니라. 이에 보살이 무형계삼매(無形界三昧)에 들어 널리 삼천대천세계 중생의 종류가 마음이 얽매이고 또한 얽매임이 없으며 식신은 형상이 없고 관하는 식법도 또한 다시 형상이 없으니 법에 형상이 없으면 곧 태 안에서 위없는 도를 성취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형질이 없으면 이 중생들에게 누가 결(決:수기)을 줄 수 있으며, 누가 결을 받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보살이 나무 아래에 나아가 어떤 때에는 경행(經行)하며, 어떤 때에는 정에 든다고 말하느냐? 어떻게 보살이 스스로 신상(身相)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의 신상을 관찰한다고 말하느냐? 어떻게 보살이 일곱 걸음을 나타내고 스스로 많은 마군을 항복받고 부처를 이루었다고 말하느냐? 어떻게 보살이 도량을 닦고 다스려 시방의 모든 중생을 부른다고 말하겠느냐?”◂
세간에서는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당연한다고 여긴다. 현재 현실을 살아가는 이는 대략 앞으로 200 년 후에는 그 구체적 과정이야 여하튼 남김없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경전에는 본래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대하는 수많은 중생의 생노병사 현상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열반에 드는 과정도 함께 포함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이미 사망사고에서 죽음을 벗어나는 방안에 대해 며칠전 내용을 살폈다.
이는 알고보면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례식과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전후에 걸쳐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 자체를 본래 얻을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현실에서 보이는 생노병사과정도 다시 원하는대로 나타나게 하는 방안이 추가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생제도를 위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렇게 행하는 취지를 다시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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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bg9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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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Balerdi mountain rises on top of the town of Azkarate. On the right Urreako Haitza can be seen, and just above, on the horizon, Anboto and Udalaitz. Author Keta Camera location 43° 02′ 06.49″ N, 1° 58′ 00.01″ W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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