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思量)의 뜻을 갖는다. 말나식(末那識)은 8식(八識)의 하나다. 제7식(第七識)이라고도 한다. 사량(思量)을 본질로 하는 식(識)이다.
제6 의식(第六意識) (mano-vijñāna ) 의(意)의 식(識), 말나(末那)에 의한 식(識))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도 범어를 음역해서 말나식(末那識)이라 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 식(識)은 아치(我癡)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의 4 번뇌(煩惱)와 상응(相應)한다.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의 견분(見分)을 항상 심사(審思)하여 「아(我)ㆍ아소(我所) 라」하고 집착하는 항심(恒審) 사량(思量)욜 성격(性格)으로 한다.
아집(我執)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염오의(染汚意)라고 한다. 사량식(思量識) ㆍ 사량능변식(思量能變識)이라고도 한다. 구역(舊譯)에서는 집착식(執著識)이라 뜻으로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한다.
무시(無姓)이래로 미세하게 상속하여,힘 들이지 않고 자연히 일어나며 그 성질은 유부무기(有覆無記)라고 했다.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수행(修行)의 단계에 응(應)해서 말나식(識)에 다음과 같은 3 위(位)를 세워 이것을 말나(末那)의 3위(三位)라고 한다*
⑴ 보특가라(補特伽羅)(또는 인(人))아견상응위(我見根應位)
말나식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연(緣)으로 하여 인아(人我)의 견(見)을 일으키는 단계이다. 범부 2승(二乘)의 유학(有學) 7지(七地) 이전의 보살과 같은 유루심(有漏心)의 단계를 말한다.
(2) 법아견상응위(法我見相應位) 말나식(識)이 제8 이숙식(異熟識)에 법아(法我)의 견(見)을 일으키는 단계 (곧 어느 정도 청정하여지기는 했지만 아직 법집(法執)과 아집(我執)을 다 버리지 못한 지위(地位)), 곧 범부ㆍ2승(二乘) 및 법공지과(法空智果)를 얻지 못한 보살(菩薩)의 단계를 가리킨다.
⑶ 평등성지상응위(平等性智相應位). 무루(無漏)의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일으켜 얻은 지위, 곧 보살(菩薩)이 법공관(法空觀)을 가지고 견도(見道)에 들어가는 경우와 수도위(修道位)에서 법공지과(法空智果)를 일으켜 얻는 경우, 또는 불과(佛果)의 경지를 말한다.
성유식론(成唯識論) 권5(卷五)에 의하면, 말나식(末那識)의 존재는 2 가지 교설(敎說)과 6 가지 이론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것을 2교6리(二敎六理)라고 한다.
2교(二敎)라 함은 입능가경(入楞伽經) 권9(卷九)의 「장식(藏識)을 심(心)이라 하고, 사량(思量)하는 성질을 가리켜 의(意)라 하며 모든 경계의 대상을 능히 인식 료별(了別)하는 식(識)이라 한다」고 하는 설(說)과,
해탈경(解脫經)의 「염오(染汚)는 항상 제혹(諸惑)과 함께 생멸(生滅)한다」고 하는 설(說)을 가리킨다.
6리(六理)라 함은
★⑴ 불공무명증(不共無明證) 곧 제6식(第六識)의 작용에는 늘 간단(間斷)이 있는데 범부는 불공무명(不共無明)이 항상 간단(間斷)없이 상속(相續)하기 때문에 말나식(末那識)이 없으면 안되는 이치.
★(2) 6이연증(六二緣證). 곧 전5식(前五識)이 전5근(前五根)을 소의(所依)로 하고 전5경(前五境)을 소연(所緣)으로 하는 것처럼 제6의식(第六意識)도 소의(所依)인 의근(意根) 곧 말나식(末那識)이 없으면 안된다는 이치 .
(3) 의명증(意名證). 곧 말나(末那) 즉 의(意)라고 하는 이름은 항심사량(恒審思量)이기 때문에 말나식(末那識)은 항존(恒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치.
⑷ 2정차별증(二定差別證). 곧 성자(聖者)가 들어 가는 멸진정(滅盡定)과 외도가 들어가는 무상정(無想定)이 구별되는 것은, 멸진정(滅盡定)에는 말나식(末那識)이 없으나 무상정(無想定)에는 말나식(末那識)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치.
⑸ 무상유염증(無想有染證). 곧 무상정(無想定)을 닦아서 얻은 무상천(無想失)에는 제6의식(第六意識)이 없으나 아집(我執)이 있기 때문에 말나식(末那識)이 있어야 된다는 이치 .
★(6) 유정아불성증(有情我不成證) 곧 범부는 보시 등의 선(善)을 해도 무루(無漏)가 되지 않고 아집(我執)올 벗어나지 못함은 말나식(末那識)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치를 말한다.
참고 문헌[■편집]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현양성교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571(16-1), T.1602(31-480).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K.614, T.1579). 《유가사지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570(15-465), T.1579(30-279).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황욱 (1999). 《무착[Asaṅga]의 유식학설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미륵 조, 현장 한역 (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편집] ↑ 이동:가나운허, "末那識(말나식)". 2013년 1월 28일에 확인 "末那識(말나식): 【범】 manas 8식의 하나. 제7식이라고도 한다. 말나가 곧 식으로서 제6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하여 범어대로 말나식이라 한다. 8식이 모두 사량(思量)하는 작용이 있으나, 이 식은 특별히 항(恒)과 심(審)의 두 가지 뜻을 함께 가지고 있어, 다른 7식보다 나은 것이므로 말나(意)라 한다. 제8식을 소의(所衣)로 하고, 제8식의 견분(見分)을 반연하여 그것으로써 자내아(自內我)라고 사량ㆍ집착하며, 모든 미망(迷妄)의 근본이 되는 식(識). 제7식과 상응(相應)하는 것은 아치(我癡)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의 4번뇌, 5변행(遍行)ㆍ별경(別境)의 혜(慧)ㆍ대수혹(大隨惑)의 8이다." 인용 오류: 잘못된 태그; "FOOTNOTE운허"[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A790EB8298EC8B9Drowno1 末那識(말나식)]". 2013년 1월 28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 이동:가나다라星雲, "末那識". 2013년 1월 28일에 확인 "末那識: 末那,為梵語 manas 之音譯,意譯為意,思量之義。唯識宗將有情之心識立為八種,末那識即為八識中之第七識。為恆執第八阿賴耶識為「我」之染污識。為與第六意識(梵 mano-vijñāna,意之識,乃依末那之識)區別,而特用梵語音譯稱為「末那識」。此識恆與我癡、我見、我慢、我愛等四煩惱相應,恆審第八阿賴耶識之見分為「我、我所」而執著,故其特質為恆審思量。又此識為我執之根本,若執著迷妄則造諸惡業,反之,則斷滅煩惱惡業,徹悟人法二空之真理,故稱染淨識,又稱思量識、思量能變識。且其自無始以來,微細相續,不用外力,自然而起,故其性質為「有覆無記」;乃不引生異熟果,卻能覆聖道、蔽心性。 法相宗依修行階段之淺深,而在末那識中立三位,稱為末那三位,即:(一)補特伽羅(梵 pudgala,即人)我見相應位,為末那識緣第八阿賴耶識而起人我見之位。如凡夫、二乘之有學、七地以前之菩薩等有漏心位。(二)法我見相應位,為末那識緣第八異熟識起法我見之位。此乃指凡夫、二乘及未得法空智果之菩薩位而言。(三)平等性智相應位,乃起無漏平等性智之位,即菩薩以法空觀入見道,又於修道位起法空智果及佛果。以上三位之中,前二位屬有漏之位,第三位則屬無漏之位。 又依成唯識論卷五載,末那識之存在,可引用入楞伽經、解脫經二種教說,及六種道理證明之,此謂「二教六理」。二教,即:(一)入楞伽經卷九謂,思量之性,名意。(二)解脫經謂,染污意恆時與諸惑俱生滅。六理,即:(一)不共無明證,謂第六識之作用雖有間斷,凡夫不共無明,則恆無間斷而相續,故須有末那識。(二)六二緣證,前五識以前五根為所依,以前五境為所緣,第六意識亦須有末那識作為其所依之意根。(三)意名證,末那名意,因係恆審思量,故末那識必須恆存。(四)二定差別證,聖者所入之滅盡定與外道所入之無想定有所區別,因滅盡定無末那識,而無想定有末那識之存在。(五)無想有染證,修無想定而得生之無想天,雖無第六意識,但仍有我執,故須有末那識。(六)有情我不成證,凡夫行布施等善,不會成為無漏,無法脫離我執,乃因有末那識之故。〔入楞伽經卷八、瑜伽師地論卷六十三、顯揚聖教論卷一、成唯識論卷四、成唯識論述記卷四末、卷五本、卷五末、成唯識論樞要卷下、大乘義章卷三末〕" 인용 오류: 잘못된 태그; "FOOTNOTE星雲"[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8610DTITLEA5BDA8BAC3D1 末那識]". 2013년 1월 28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인용 오류: 잘못된 태그; "FOOTNOTE星雲"[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8610DTITLEA5BDA8BAC3D1 末那識]". 2013년 1월 28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인용 오류: 잘못된 태그; "FOOTNOTE星雲"[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8610DTITLEA5BDA8BAC3D1 末那識]". 2013년 1월 28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곽철환 2003, "말나식(末那識)". 2013년 1월 28일에 확인 "말나식(末那識):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남.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운허, "平等性智(평등성지)". 2013년 1월 28일에 확인 "平等性智(평등성지): 5지(智)의 하나. 제7식을 전(轉)하여 얻은 무루 지혜니, 통달위(通達位)에서 그 일부분을 증득하고,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체를 증득한다. 일체 모든 법과 자기나 다른 유정들을 반연하여 평등 일여한 이성(理性)을 관하고 너와 나의 차별심을 여의어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며, 보살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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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Manas-vijnana<구글번역>
Manas-vijnan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Manas-vijnana (Skt. "'मानस-विज्ञान"'; mānas-vijñāna; "mind-knowledge", compare man-tra, jñāna) is the seventh of the eight consciousnesses as taught in Yogacara and Zen Buddhism, the higher consciousness or intuitive consciousness that on the one hand localizes experience through thinking and on the other hand universalizes experience through intuitive perception of the universal mind of alayavijnana. Manas-vijnana, also known as klista-manas-vijnana or simply manas, is not to be confused with manovijnana which is the sixth consciousness. Contents
Overlapping Pali terms for "mind"[■Edit] According to Bhikkhu Bodhi, the post-canonical Pali commentary uses the three terms viññāṇa, mano and citta as synonyms for the mind sense base (mana-ayatana); however, in the Sutta Pitaka, these three terms are generally contextualized differently: Viññāṇa refers to awareness through a specific internal sense base, that is, through the eye, ear, nose, tongue, body or mind. Thus, there are six sense-specific types of Viññāṇa. It is also the basis for personal continuity within and across lives. Manas refers to mental "actions" (kamma), as opposed to those actions that are physical or verbal. It is also the sixth internal sense base (ayatana), that is, the "mind base," cognizing mental sensa (dhammā) as well as sensory information from the physical sense bases. Citta includes the formation of thought, emotion and volition; this is thus the subject of Buddhist mental development (bhava), the mechanism for release.[1] Overlapping Sanskrit terms for "mind"[■Edit] According to Daisetz Teitaro Suzuki (who uses the term "Manas" rather than "Manas Vijnana" for the seventh consciousness) the Lankavatara Sutra presents the Zen view of the Eight Consciousnesses rather than the Yogacara view. In his introduction to his translation of the Lankavatara Sutra he clarifie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overlapping terms: What may be termed Buddhist psychology in the Laṅkā consists in the analysis of mind, that is, in the classification of the Vijñānas. To understand thus the psychology of Buddhism properly the knowledge of these terms is necessary: citta, manas, vijñāna, manovijñāna, and ālayavijñāna.To begin with Vijñāna. Vijñāna is composed of the prefix vi, meaning "to divide", and the root jñā which means "to perceive", "to know". Thus, Vijñāna is the faculty of distinguishing or discerning or judging. When an object is presented before the eye, it is perceived and judged as a red apple or a piece of white linen; the faculty of doing this is called eye-vijñāna. In the same way, there are ear-vijñāna for sound, nose-vijñāna for odour, tongue-vijñāna for taste, body-vijñāna for touch, and thought-vijñāna (manovijñāna) for ideas—altogether six forms of Vijñāna for distinguishing the various aspects of world external or internal.Of these six Vijñānas, the Manojivñāna is the most important as it is directly related to an inner faculty known as Manas. Manas roughly corresponds to mind as an organ of thought, but in fact it is more than that, for it is also a strong power of attaching itself to the result of thinking. The former may even be considered subordinate to this power of attachment. The Manas first wills, then it discriminates to judge; to judge is to divide, and this dividing ends in viewing existence dualistically. Hence the Manas' tenacious attachment to the dualistic interpretation of existence. Willing and thinking are inextricably woven into the texture of Manas.Citta comes from the root cit, "to think", but in the Laṅkā the derivation is made from the root ci, "to pile up", "to arrange in order". The Citta is thus a storehouse where the seeds of all thoughts and deeds are accumulated and stored up. The Citta, however, has a double sense, general and specific. When it is used in the general sense it means "mind", "mentation", "ideas", including the activities of Manas and Manovijñāna, and also of the Vijñānas; while specifically it is a synonym of Ālayavijñāna in its relative aspects, and distinguishable from all the rest of the mental faculties. When, however, it is used in the form of Citta-mātra, Mind-only, it acquires still another connotation. We can say that Citta appears here in its highest possible sense, for it is then neither simply mentation nor intellection, nor perception as a function of consciousness. It is identifiable with the Ālaya in its absolute aspect. This will become clearer later on.Ālayavijñāna is ālaya+vijñāna, and ālaya is a store where things are hoarded for future use. The Citta as a cumulative faculty is thus identified with the Ālayavijñāna. Strictly speaking, the Ālaya is not a Vijñāna, has no discerning power in it; it indiscriminately harbours all that is poured into it through the channel of the Vijñānas. The Ālaya is perfectly neutral, indifferent, and does not offer to give judgments.Various descriptions of "Manas-vijnana"[■Edit] One of the primary functions of Manas-vijnana is to perceive the subjective position of the store consciousness and erroneously regard it as one's own ego, thereby creating ego attachment. The basic nature of Manas-vijnana is that of thought.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the "thought" of this seventh consciousness, Manas-vijnana, and the sixth consciousness "thought" of cognition. Not consciously controllable, Manas-vijnana is said to be a mind of a realm that gives rise to contradiction of conscious decisions, and to incessant self-love. Manas-vijnana can be described as "the consciousness which sees the limits of human variation from within". Manas-vijnana consciousness is also described as the place where good and evil are eternally accumulated. Manas-vijnana consciousness is theorized as the connecting realm between the mano-consciousness and the ālayavijñāna.[2] Manas-vijnana as the seventh consciousness is the basis of human existence, which unceasingly continues and changes, and serves as the ground for the sixth consciousness of cognition. In part II of Daisetz Teitaro Suzuki's Introduction,[3] to his translation of the Lankavatara Sutra, the Manovijñāna, or "that which knows thought", is directly related to an inner faculty known as "Manas". "Manas" is a strong power that attaches to the result of thinking. From this viewpoint one could discern that the "thought-consciousness", that part of the mind that is conscious of thought, also has the power to "velcro" itself to a completed thought process. This would explain the human difficulty of observing one's own thoughts, as the "manas" or "velcro" must first be detached, so to speak. References[■Edit] ^ Bodhi (2000b), pp. 769-70, n. 154. ^ Goddard, Dwight (1932). The Lankavatara Sutra: An Epitomized Version, p. 38 ^The Lankavatara Sutra: Introduction
"마음"에 대한 겹치는 Pali 용어 [ 편집 ] 비구 보리( Bhikkhu Bodhi ) 에 따르면 , 사후(post-canonical) 팔리어 주석은 마음 감각 기반( manaayatana )에 대한 동의어로 viññā ṇ a , mano 및 citta 라는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합니다 . 그러나 경전 에서 이 세 가지 용어는 일반적으로 다르게 문맥화됩니다. Viññā ṇ 은 특정 내부 감각 기반, 즉 눈, 귀, 코, 혀, 몸 또는 마음을 통한 인식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Viññā ṇ a 에는 여섯 가지 감각별 유형이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삶 내에서 그리고 삶 전반에 걸쳐 개인적 연속성을 위한 기초입니다.
마나스 는 육체적 또는 언어적 행동과 반대되는 정신적 "행동"(업그것은 또한 여섯 번째 내부 감각 기반( ayatana ), 즉육체적 감각 기반의 감각 정보뿐만 아니라dhammā 마음 에는 생각, 감정, 의지의 형성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불교의 정신 발달( bhava )의 주제인 해방의 메커니즘입니다. [1] "마음"에 대한 중복되는 산스크리트어 용어 [ 편집 ]
Daisetz Teitaro Suzuki (제7의식에 대해 "Manas Vijnana" 대신 "Manas"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따르면 Lankavatara Sutra 는 Yogacara 견해보다는 8개의 의식 에 대한 Zen 관점을 제시합니다 .
Lankavatara Sutra 번역에 대한 서문에서 그는 중복되는 용어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했습니다. Laṅkā에서 불교 심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마음 의 분석 , 즉 Vijñānas의 분류에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음(citta), 마나스(manas), 위냐나(vijñāna), 마노비냐나(manovijnāna), 알라야비냐나(ālayavijñāna)라는 용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Vijñāna 로 시작합니다 . Vijñāna는 "나누다"를 의미하는 접두사 vi와 "인식하다", "알다"를 의미하는 어근 jñā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Vijñāna는 구별하거나 분별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물체가 눈 앞에 제시되면 빨간 사과나 흰 아마포 조각으로 인식되고 판단됩니다. 이것을 하는 능력을 눈-비냐나(eye-vijñāna)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소리를 나타내는 귀식(耳識), 냄새를 나타내는 코맛나나, 미각을 나타내는 혀식(身識), 촉각을 나타내는 몸맛(身識), 생각을 뜻하는 생각맛(manovijnāna)이 있는데, 모두 여섯 가지 모양을 구별하는 지혜이다.
외부 또는 내부 세계의 측면. 이 여섯 가지 Vijñāna 중에서 Manojivñāna는 Manas로 알려진 내부 기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합니다.
마나스는 생각의 기관으로서의 마음에 대략 해당되지만, 사실 생각의 결과에 집착하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그 이상이다.
전자는 이 애착의 힘에 종속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마나스는 먼저 의지하고 그 다음에 판단하기를 분별한다.
판단하는 것은 분열하는 것이며, 이 분열은 존재를 이원적으로 보는 것으로 끝난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에 대한 마나스의 집요한 애착. 의지와 생각은 마나스의 질감에 불가분의 관계로 짜여져 있습니다.
Citta"생각하다"라는 어근 cit에서 유래했지만 Laṅkā에서는 "쌓다", "정렬하다"라는 어근 ci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citta는 모든 생각과 행위의 씨앗이 축적되고 저장되는 창고입니다. 그러나 Citta는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그것은 Manas와 Manovijñāna, 그리고 Vijñānas의 활동을 포함하여 "마음", "mentation", "idea"를 의미합니다.
특히 그것은 상대적인 측면에서 Ālayavijñāna의 동의어이며 나머지 모든 정신 기능과 구별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만 있는 마음(Citta-mātra)의 형태로 사용될 때,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얻습니다. 우리는 Citta가 가능한 최고의 의미로 여기에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언급도, 지성도, 의식의 기능으로서의 지각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측면에서 Ālaya와 동일시됩니다. 이것은 나중에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ālayavijñāna 는 ālaya+vijñāna이고, ālaya는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물건을 비축해 두는 저장소입니다. 누적된 능력으로서의 마음은 따라서 ālayavijñāna와 동일시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알라야는 Vijñāna가 아니며 그 안에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Vijñānas의 수로를 통해 그것에 쏟아지는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숨겨줍니다. Ālaya는 완전히 중립적이고 무관심하며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Manas-vijnana"에 대한 다양한 설명 [ 편집 ]
Manas-vijnana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저장 의식 의 주관적 위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자아 로 잘못 간주하여 자아 애착 을 만드는 것 입니다. Manas-vijnana의 기본 속성은 생각 의 속성입니다 . 이 일곱째 의식인 Manas-vijnana의 "생각"과 인식의 여섯째 의식 "생각"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Manas-vijnana는 의식적인 결정의 모순과 끊임없는 자기 사랑을 일으키는 영역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Manas-vijnana는 "인간의 변이의 한계를 내부에서 보는 의식"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Manas-vijnana 의식은 또한 선과 악이 영원히 축적되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Manas-vijnana 의식은 mano-의식과 ālayavijnāna 사이의 연결 영역 으로 이론화 됩니다 . [2]
제7의식으로서의 마나스식(Manas-vijnana)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변화하는 인간 존재의 기초이며 제6식의 인식의 근거가 된다.
Daisetz Teitaro Suzuki 의 서론의 파트 II 에서 [3] Lankavatara Sutra 의 번역에 대한 Manovijñāna 또는 "생각을 아는 것"은 "Manas"로 알려진 내부 기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나스"는 생각 의 결과 에 붙는 강력한 힘입니다 .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생각을 의식하는 마음의 부분인 "생각의식"이 완성된 생각 과정으로 스스로를 "벨크로"하는 힘도 가지고 있음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나" 또는 "벨크로"가 먼저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인간의 어려움을 설명합니다.
참고문헌 [ 편집 ] ^ Bodhi (2000b), pp. 769-70, n . 154. ↑ 고다드, 드와이트 (1932). Lankavatara Sutra: 요약 버전, p. 38 ^Lankavatara 경전: 소개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ovanni-Battista-Piranesi-two-fireplaces-overlapping-the-support-with-a-mask-of-medusa-in-a-shell-the-inf-with-an-eagle.jpg!HD
Artist: Giovanni-Battista-Piranesi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Piranesi Title : two-fireplaces-overlapping-the-support-with-a-mask-of-medusa-in-a-shell-the-inf-with-an-eagle.jpg!HD Info
50 또 이 사람이 길을 갈 적에 큰 바람이 불어와 이 사람의 몸이나 터럭이나 옷에 스친 바람이 모든 종류의 중생들을 스쳐 지나가는 경우 이 사람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을 몸에 쏘인 이는 일체 무거운 죄와 나쁜 업이 아울러 소멸하며 다시는 삼악도의 과보를 받지 않고 항상 부처님 곁에 태어나게 되니라. ● 타리슬니나(타리슬니나) 他唎瑟尼那<五十> dha r ṣi ṇi n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