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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최상
불기2562-05-07_관소연연론-K0628-001 본문
『관소연연론』
K0628
T1624
소연연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관소연연론』 ♣0628-001♧
소연연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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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중간 업데이트된 내용을 열람하고자 할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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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2019_1104_170939_nik_exc_s12
○
2019_1104_105540_can_ct19_s12
○
2020_1114_130741_can_bw4_s12
○
2018_1024_140548_nik_CT27
○
2018_1022_173704_nik_ar3
○
2018_1022_125546_nik_ct26
○
2020_1017_161604_nik_CT28
○
2020_1017_161127_nik_ct9_s12
○
2020_0930_150124_nik_AB4
○
2020_0909_143148_can_ori_rs
○
2020_0908_163517_can_CT28
○
2020_0905_162951_can_Ab31
○
2020_0904_161851_nik_ar18
○
2020_0904_142619_can_ar47
○
2020_0211_134502_can_ar5_s12
○
2019_1201_162928_can_ar47
○
2019_1106_161223_can_CT38_s12
○
2019_1105_161708_nik_CT38_s12
○
2019_1106_113534_nik_CT33
● [pt op tr] fr
○ 2019_1105_162934_can_fix
❋❋본문 ♥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觀所緣緣論
K0628
○ [pt op tr]
관소연연론(觀所緣緣論)
진나보살(陳那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모든 존재[有]가 눈 등 다섯 식[五識]으로 하여금 바깥 물질로써 연(緣)할 것의 연을 만들려고
하는지라,
혹 지극히 미세한 것을 고집하여 실체(實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능히 식을 내기 때문이다.
혹 화합한 것으로
고집하여 그것으로 식이 생길 적엔 저 모양을 띠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이치가 아니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지극히 미세한 것에 다섯 가지 식에 있어서
혹 연하더라도 연할 바가 아니니
저 모양은 식이 없기
때문에
마치 눈의 감관과 같은 것이네
연할 것의 연이란 이를테면,
연하는 식이 저 모양을 띠고서 일어나거나 또는
실체(實體)가 있어서 연하는 식으로 하여금 저것을 의탁하여 물질 등 지극히 미세한 것을 내는지라,
설사 실체가 있어서 능히 다섯 가지
식을 낸다면 용혹 연의 뜻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연할 것은 아니니,
눈 등이 눈 등의 식에 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극히 미세한 것은 눈 등의 식에 연할 것의 뜻이 없는 것이다.
화합이 다섯 가지 식에 있어서
혹 연할 바라도
연함이 아니니
저 체(體)가 사실 없기 때문에
마치 둘째의 달[第二月]과 같네.
물질 등의 화합이 안식(眼識)에 저
모양이 있기 때문에 연할 것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러나 연의 뜻이 없는지라,
마치 눈이 착란(錯亂)하여 하나의 달을 둘째의 달로 보는
것과 같음이니,
저 실체가 없어서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가은 화합이 눈 등 식에 연하는 뜻이 없기 때문에 바깥 두 가지
일이 그 연할 것이 연에 서로 한 갈래만 빠져도 모두가 이치에 맞지 아니한다.
물질이라고 고집하는 따위가 각각 많은 모양이 있되 그 중에
한 부분이 현량(現量)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지극히 미세한 것이 서로 어울려서 각각 하나의 화합하는 모양이 있긴 하지만,
이
모양이 실지에 있어서 각각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자기 모양의 식과 같기 때문에 다섯 가지 식과 더불어 연할 것의 연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 또한
이치가 아니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화합이 견고한 물질 같은 것은
눈 등의 식을 일으키지마는
이 연은 연할
것이 아니니
지극히 미세한 모양을 인정하기 때문이네
견고한 물질과 같은 모양이 비록 실지 있어서 눈 등의 식에 혹 연의 뜻이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연할 것은 아니니,
눈 등의 식 위에 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들의 지극히 미세한 모든 화합의 모양도
그 이치가 또한 그러하나니,
저 모두가 지극히 미세한 모양을 고집하기 때문에 눈 등 식의 연하는 것도 지극히 미세한 모양을 고집하기
때문에 눈 등 식의 연하는 것도 지극히 미세한 모양이라고 고집한다면,
모든 화합의 모양이 다시 따로 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병과 항아리 등의 깨닫는 모양은
저 고집이 응당 차별이 없으리니
형상의 차별 때문에 차별이 아님은
그
형상의 차별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네
병과 항아리 등 물건의 크고 작음이 동등한 것은 능히 지극히 미세함을 이룩함이 다소가 같기
때문에 저것을 연하여 깨닫는 형상도 응당 차별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저 물건의 형상 차별 때문에 깨닫는 형상도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치가 또한 그렇지 않다.
병 등의 형상 차별은 다만 그 병들의 가법(假法) 위에 있을 뿐이고 지극히 미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지극히 미세한 것도 역시 차별의 형상이 있다고 응답 고집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지극히 미세한
분량이 동등하기 때문에
형상의 차별은 다만 가법에 있을 뿐이니
저것을 분석하여 지극히 미세함에 이르면
저 깨달음은 결정코 버리기
때문이네
병과 항아리들이 지극히 미세함을 이룩하여 형상과 분량의 차별 있는 것이 아니니,
미세하거나 원만한 형상을 버리기
때문에 차별의 행상이 가법에 있고 진실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다.
또 형상의 차별된 물건을 분석하여 지극히 미세함에 이르면,
저
깨달음은 반드시 버리는 것이고 푸른 빛 등이 물건이 아니다.
분석하여 지극히 미세한 것에 이르면,
저 깨달음을 버리는 것이다.
이 현상의 차별로 말미암아 다만 세속에 있을 뿐이고 푸른 빛 등이 역시 실물(實物)에 있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이 때문에 다섯
가지 식의 연할 것,
그 연의 체는 바깥 빛 등이 아닌 그 이치가 충분히 성립되는 것이다.
저 연할 것의 연이 어찌 전연 있지
않거나 전연 있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또 어떠한 것인가.
안의 빛이 바깥의 나타남과 같아서
식의
연할 것의 그 연이 되나니
이는 저 형상을 인정하는 것이 식에 있고
또는 저 형상에 대한 식을 내기 때문이네
바깥 대경은
비록 없더라도 안의 빛이 있어서 바깥 대경의 나타남과 같은 거을 이르되,
식의 연할 것의 연이라 함이니,
눈 등의 식이 저 형상을
띠고서 일어나거나 또는 저 형상으로부터 생겨나는 이 두 가지 뜻을 갖추기 때문이다.
이 안의 대경과 형상이 이미 식을 떠나지 않는지라,
어떻게 함께 일어나서 식의 연을 지을 수 있는가 하면,
반드시 서로가 따르기 때문에
때를 함께 하고 또 연을
짓나니
혹시 앞 것이 뒤의 연이 되는 것은
저 공능(功能)을 이끌기 때문이네
대경과 현상이 식과 더불어 서로가 따르기
때문에 비록 한꺼번에 일어나더라도 역시 식의 연을 짓는 것이다.
인명론(因明論)자들은 말하기를,
“만약에 이것과 저것이 있거나
없거나 서로 따른다면 비록 한꺼번에 생겨나더라도 역시 인과(因果)의 모양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혹시 앞 식의 모양이 뒷 식의 연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나니,
이는 본식(本識) 가운데 생겨나는 자과(自果)와 비슷한 공능(功能)을 이끌어 어긋나지 않는 이치를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섯 가지 식의 생겨나는 것이 다만 안의 빛을 연할 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또 눈 등을 연이라고
말하겠는가.
본식 위의 다섯 빛 공능이
이른바 다섯 감관의 상응되는 이치이니
공능과 대경과 빛은
처음이 없는
때로부터 서로 인이 되는 것이네
능히 식을 내는 것으로써 있음을 견주어 아나니,
이는 다만 공능이 바깥의 조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식 위의 다섯 빛 공능인 이른바 눈 등의 감관이 역시 이치를 어기지 않는 것은 그 공능이 식을 내되 이치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식에 있고 다른 데에 있는 것을 비록 말할 수는 없지만,
바깥의 모든 법은 이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것이 식에
있고 다른 데에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감관의 공능이 앞의 대경과 빛과 더불어 처음이 없는 때로부터 서로가
전전(展轉)하면서 인(因)이 되었다.
이를테면 이 공능이 성숙위(成熟位)에 이르러서 현식(現識) 위의 다섯 가지 안의 대경과 빛을 내고
이 안의 대경과 빛이 다시 이숙식(異熟識) 위의 다섯 감관의 공능을 끌어 일으키는지라,
감관과 대경의 두 물질이 식과 더불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며,
혹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으니,
그 즐거워함에 따라 말해야 할지라,
이러한 모든 식은 다만 안의 대경과
현상이 그 연할 것의 연이 될 뿐이니,
이 때문에 이치가 잘 성립되는 것이다.
觀所緣緣論陳那菩薩造三藏法師玄奘奉
詔譯諸有欲令眼等五識以外色作所緣緣者或執極微許有實體能生識故或執和合以識生時帶彼相故二俱非理所以者何極微於五識 設緣非所緣
彼相識無故猶如眼根等所緣緣者謂能緣識帶彼相起及有實體令能緣識託彼而生色等極微設有實體能生五識容有緣義然非所緣如眼根等於眼等識無彼相故如是極微於眼等識無所緣義和合於五識
設所緣非緣
彼體實無故猶如第二月色等和合於眼識等有彼相故設作所緣然無緣義如眼錯亂見第二月彼無實體不能生故如是和合於眼等識無有緣義故外二事於所緣緣互闕一支俱不應理有執色等各有多相於中一分是現量境故諸極微相資各有一和集相此相實有各能發生似己相識故與五識作所緣緣此亦非理所以者何和集如堅等
設於眼等識
是緣非所緣許極微相故如堅等相雖是實有於眼等識容有緣義而非所緣眼等識上無彼相故色等極微諸和集相理亦應爾彼俱執爲極微相故執眼等識能緣極微諸和集相復有別失甁甌等覺相
彼執應無別
非形別故別形別非實故甁甌等物大小等者能成極微多少同故緣彼覺相應無差別若謂彼物形相別故覺相別者理亦不然頂等別形唯在甁等假法上有非極微故彼不應執極微亦有差別形相所以者何極微量等故
形別惟在假
扸彼至極微彼覺定捨故非甁甌等能成極微有形量別捨微圓相故知別形在假非實又形別物扸至極微彼覺定捨非靑等物扸至極微彼覺可捨由此形別唯世俗有非如靑等亦在實物是故五識所緣緣體非外色等其理極成彼所緣緣豈全不有非全不有若爾云何內色如外現
爲識所緣緣 許彼相在識及能生識故外境雖無而有內色似外境現爲所緣緣許眼等識帶彼相起及從彼生具二義故此內境相旣不離識如何俱起能作識緣決定相隨故 俱時亦作緣
或前爲後緣引彼功能故境相與識定相隨故雖俱時起亦作識緣因明者說若此與彼有無相隨雖俱時生而亦得有因果相故或前識相爲後識緣引本識中生似自果功能令起不違理故若五識生唯緣內色如何亦說眼等爲緣識上色功能
名五根應理
功能與境色無始互爲因以能發識比知有根此但功能非外所造故本識上五色功能名眼等根亦不違理功能發識理無別故在識在餘雖不可說而外諸法理非有故定應許此在識非餘此根功能與前境色從無始際展轉爲因謂此功能至成熟位生現識上五內境色此內境色復能引起異熟識上五根功能根境二色與識一異或非一異隨樂應說如是諸識惟內境相爲所緣緣理善成立觀所緣緣論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pt op tr]
f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Sardou - L'acteur.lrc
◎◎[개별논의] ♥ ❋본문
『관소연연론』을 살핀다.
여기에 소연이나 소연연이라는 낯선 표현이 나온다.
검색을 해보니 아름다운 여인이 나온다.
『관소연연론』 번역서 첫 부분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pt op tr]
『관소연연론』 번역서 첫 부분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 모든 존재[有]가 눈 등 다섯 식[五識]으로 하여금 바깥 물질로써
연(緣)할 것의 연을
만들려고 하는지라,
혹 지극히 미세한 것을 고집하여 실체(實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능히 식을 내기 때문이다.
혹 화합한 것으로
고집하여 그것으로 식이 생길 적엔 저 모양을 띠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이치가 아니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
>>>
그런데 번역 표현이 오히려 혼동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눈의 식 => 안식(眼識)
다섯가지 식 => 오식(五識)
바깥물질 => 외색(外色)
연할 것의 연 => 소연연(所緣緣),
지극히 미세한 것 => 극미(極微)
모양 => 상(相)
이렇게 한문표현으로 바꿔 이해하는 것이 낫다.
그러면 적어도 불교 사전을 참조해 그 표현의 의미를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불교 각 경전과 논서도 익숙해진다.
예를 들어 연할 것의 연, 이런 표현으로는
소연연에 해당한 사전설명을 참조하기 힘들다.
『관소연연론』의 분량이 작다.
그러나 이 논서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대단히 복잡하다.
이는 인식론과 논리학의 기본적 내용과 관련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는 문제와 관련이 많이 된다.
잘못 이 주제를 대하면 부지불식간에 망집에 바탕해 많은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논의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
또한 인식론과 논리학부분에서 잘못된 오류를 범하기 쉽다.
논서 내용이 짧아서 여러번 읽어 본다.
그리고 디그나가 보살이 무슨 내용을 제시하고자 한 것인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핵심을 추려 제시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한글 번역표현들로는 내용이해가 잘 안 된다.
한문본을 함께 참조해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대강 한문본을 참조해 내용을 파악해보면 대강 다음 내용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일반적으로 한 주체가 감각을 하는 과정[5식]이 있다.
이 과정에서 외색[마음밖 물질]에 해당하는 극미(極微)나 화합을
소연연[인식대상인 인과요소]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극미는 인식과정에서 그 모습을 얻지 못한다.
마치 눈이 눈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소연[인식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한편 화합은 무언가를 발생시킬 수 있는 실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마치 눈을 눌러 잘못 보게 되는 달모습[제2의 달]의 경우와 같다.
그래서 연[원인요소]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식안의 내색을 소연연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내색은 외경과 유사하게 나타나는 식안의 내용이다.
이것이 인식대상[소연]의 특성[인식된 내용과 같은 모습]과
인식내용을 발생시키는 연[인과요소]의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이를 소연연으로 이해해야 한다.
...
대강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디그나가는 유가행 유식학계열 논사로서 견분(見分), 상분(相分), 자증분(自證分)의 3분설(三分說)을 제시하였다.
또한 『인명입정리론』 등으로 신인명론 즉 논리학을 확립해 제시한 논사이기도 하다.
그는 3지작법과 인의 3상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 바탕해 이들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현실의 정체나 인식대상과 관련해 유식무경설에 바탕해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내용은 인식론과 논리학과 관련이 깊다.
다만 논서가 짧지만, 논의의 주제가 갖는 성격상 대충 살피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정한 분별을 다시 행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내용이 어떻게 이뤄지고 얻어지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즉 인식과정은 무엇을 대상으로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가 문제된다. [ 인식론]
한편, 현실에서 얻은 내용의 본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 그 대상과 관련해 옳은 내용인가도 문제된다. [ 인명론, 논리학 ]
그런데 이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 어떤 내용이 옳은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현실에서 많은 망상분별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논서 내용을 참조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이 부분을 대충 살피면 내용 파악을 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기 쉽다.
그런 상태로 논의에 함몰되어 지치기 쉽다.
그리고 일반인이 갖는 망집을 그대로 지니고 임하기 쉽다.
● [pt op tr] fr
이를 위해 먼저 기본적으로 소연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피기로 한다.
○ [pt op tr]
이를 위해 먼저
기본적으로 소연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피기로 한다.
● 능 소의 표현의 의미
논서에 소연, 능연, 소연연, 연,
이런 용어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것부터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우선 능, 소란 표현은 능동 수동의 관념을
나타낸다.
또 소는 이외에 무엇에 딸려 속하는 것[심-심소,아-아소], ~ 할 바[소유, 무소득]라는 의미도 자주
나타낸다.
능동 수동과 관련된 능소의 관념을 이해하려면 이런 예를 놓고 살필 수 있다.
철수가 공을 던진다고 하자.
이 현상은 하나다.
그런데 이를 무엇을 주체로 놓고 보는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누어 표현할 수 있다.
철수가 공을 던진다.
공이 철수에 의해 던져짐을 당한다.
하나의 현상을 놓고 무엇을 주체로 놓고 보는가에
따라 이런 능동 수동형태로 표현을 달리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나팔꽃은 줄기가 담을 의지해 올라가 피어난다고 하자.
이 현상은 하나다.
그런데 이 경우 줄기를 주어로 놓고 표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경우 줄기가 담을 의존해서 올라가
나팔꽃이 피게 된다고 표현할 것이다.
한편 담을 주어로 놓는다고 하자.
그러면 담이 줄기가 올라가는데 의존이 되어주어(의존당해)
나팔꽃이 핀다고 표현할 것이다.
● 능연 소연의 의미
능연[能緣, ālambaka]
소연[所緣, ālambya]이란 표현은 주로 인식과정과 관련해서 사용한다.
인식과정에서 마음은 인식대상을 대상으로 삼아 인식내용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이 경우 인식을 행하는 주관이 되는 마음을 '능연'이라고 보통 표현한다.
한편 인식과정에서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소연'이라고 보통 표현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표현이다.
'마음이 대상에 의존해' 인식내용을
발생시킨다고 하자.
이 현상은 하나다.
여기서 무언가에 의존함을 '연[緣, 반연(攀緣) ālambana]'이라고 표현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의존하는 측은 능동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마음은 '능연'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의존을 당하는 측은 수동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인식대상은 '소연'이다.
사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연(緣, 반연(攀緣), ālambana)】
대경을 의지한다는 뜻.
마음이 제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칡덩굴이 나무나 풀줄기가 없으면 감고 올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야 일어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대경(對境)을 의지하고 일어난다.
이런 경우에 칡덩굴은 나무나 풀을, 노인은 지팡이를,
마음은 대경을 반연 한다.
이 반연은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된다.
...
[참고: 운허
역경원사전]
...
【소연(所緣, ālambya, ālambana)】
마음으로 인식하는 대상.
6식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6경(境)과 같은 것.
[출처: 운허 역경원사전]
...
[참고]
ꊱ소연
‡소연
한편 문장 맥락에 따라 연을 □□에 '의존한다'는 '동사'로
해석해야 할 경우도 있다.
즉, '연'을 [○○이 생겨남에 있어서] □□에 '의존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관소연연론』에 '眼等識能緣極微' 이런 표현이 있다.
이 부분은 다음 의미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
안식 등(5식)이 극미를 연한다.
[안식 등 5 식(마음)이 인식대상으로 극미에 의존한다. (그래서 안식 등 5
식에서 인식내용이 얻어진다)]
...
그래서 이 경우는 연(緣)을 동사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한편, 다음
부분도 연(緣)을 동사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所緣緣者。謂能緣識帶彼相起及有實體。
令能緣識託彼而生色等極微。
이
부분을 우선 다음처럼 해석할 수 있다.
...
'소연연(所緣緣)'이라는 것은 '능연식(能緣識)'이 그 모습을 띄고
일어나는 한편 또 실체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능연식(能緣識)'이 그에 의탁해서 색(色, 물질) 등 극미를 생하는 것을 일컫는다.
...
이 문장에서 '능연식' 부분을 다음처럼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능연식을 '능연인' 식 이렇게 동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능연[=인식의 주체, 주관]인 식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동사로 해석해 '연하는 식'[인식과정에서
대상에 능동적으로 의존을 행하는 식]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소연연
한편
소연연[所緣緣 ālambana-pratyaya]은 무언가.
이것을 살피려면 먼저 4 연을 또 살펴야 한다.
불교에서는
어떤 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필요한 요소로 4 연을 든다.
인연, 증상연, 소연연, 등무간연이다.
여기서는 소연연만 일단
먼저 살핀다.
'소연'과 '소연연'은 표현상 구분된다.
소연연은 4 연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어떤 것이 발생하기
위해 의존하고 관여할 필요가 있는 요소들을 '연[緣, pratyaya]'이라고 표현한다고 하자.
한자어는 연(緣)으로 같다. 그러나
범어에서는 각 부분을 달리 표현한다.
따라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소연연을 '소연'[所緣, ālambana]인 '연[緣,
pratyaya]'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소연[인식대상]인 연[발생시키는 원인요소]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연 부분에서 연을 동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연해지는[ālambya] 연[pratyaya]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연함을 당하는 연 이런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인식주체인 마음에게 인식과정에서 인식대상으로 '의존을
당하는' 원인요소]
여하튼 소연연은 표현한 단순한 소연(인식대상)과 구별된다.
참고로 본래 능소나
인과는 모두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경우 먼저 동작과정에서 능소(능동, 수동)를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수가 공을 던졌다고
하자. 그래서 유리창이 깨졌다고 하자.
우선 공을 던진 행위에서 던진 이와 던져진 것을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반드시
인과관계에 놓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동작으로 인해 유리창이 깨졌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유리창이 깨진 결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식과정에서 의존한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의존해 인식행위를
한다.
그래서 마음내용을 얻게 된다고 하자.
이 경우 우선 마음이 대상[소연, ālambya]에 의존[緣, 반연攀緣,
ālambana]해 인식행위를 한다.
그렇다고 대상을 마음의 원인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인식된 내용은 여하튼 이들을 모두
다 함께 의존한다.
한편, 인식은 마음과 대상에 인과관계에 놓인다고 할 것이다.
즉 마음과 대상에 함께 '의존'해 인식내용이
'발생한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함께 인식내용을 얻게 한 원인요소[연, pratyaya]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한편 원인과 결과의 관계도 서로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a 가 b 의 '원인'이라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b
와의 관계에서 a가 원인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다른 c 와의 관계에서는 a 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연이나 소연연이란 마음작용과 관련해 사용한다.
원칙적으로 어떤 것이 인식의 대상(소연)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인식을 발생시키는
인삭대상인 '원인'(소연연)도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보통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불교사전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
소연연[所緣緣, ālambana-pratyaya]
4연의 하나. 연연(緣緣)이라고도
함.
소연은 심식의 대상.
이것이 우리의 마음 작용을 일으키는 연(緣)이 되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
[출처: 운허
동국역경원사전]
...
[참고]
ꊱ소연연
‡소연연
한편 더 자세히 살피면 소연연은
친(親)소연연 소(疏)소소연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친소의 구별은 이들 원인과 결과가 같은 영역에 있는
경우인가
아닌가에 따른 구별이다.
○ 관념분별에서의 소연연
예를 들어
관념분별의 경우는 관념분별이 행해지는 영역안의 내용을 의존해서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영희를 생각하니 이로 인해 철수도
생각난다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연상]
그러나 이 경우를 인식의 대상[소연]이라고 하기는 곤란할 듯 하다.
그런
가운데 삼각형을 떠올려 이를 대상으로 놓고 판단을 한다고 하자.
그래서 삼각형은 도형이다라고 판단했다고 하자.
이 경우 도형이라는
판단은 삼각형이라는 관념을 대상[소연]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경우 삼각형이나 도형이란 관념은 다 함께 관념영역안의
내용들이 된다.
한편, 관념분별은 관념분별 영역 아닌 다른 영역의 내용을 대상으로 의존해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어떤 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그 일정부분을 대상으로 삼아 판단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눈으로
본 전체 내용 가운데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은 바위다.
이런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바위라는 판단은 관념
영역안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 판단을 행하게 된 대상[소연]은 감각현실이다.
그래서 두 내용은 같은 영역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시인이 어떤 감각현실 부분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에 대해
약간 엉뚱한 어떤 생각을 떠올릴 경우도 있다.
즉 손으로 가리킨 (바위)부분을 대하니, 갑자기 남대문이 떠오른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이 경우를 인식대상[소연]이라고 할 것인지 우선 문제된다.
그렇다해도 이들은 같은 영역에 있다고 하기 곤란하다.
○ 감각현실에서의 소연연
한편, 감각현실을 얻는 경우도 역시 이런 문제가 제기 된다.
즉, 이들 감각현실은 무엇을 대상으로 어떤 과정으로 얻었는가하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일반적인 입장'에서 평소 인식하는
'대상'[소연]으로 여기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일단, '소연'이라는 표현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이들 부분을 진정한 인식대상[소연]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리고 인식과정도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형태로 이해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하튼 이들 인식작용은 무엇이 무엇을 인식대상으로
행하는가가 처음 문제된다.
그리고 인식내용은 무엇을 원인요소로 어떻게 인식해 얻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 경우
이를 살피려면 현실의 감각 및 분별과정을 놓고 천천히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한 주체가 눈을 떠 무언가를 보게
되는 과정부터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먼저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스스로 해봐야 한다.
이는 대단히 간단해
보인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누구나 늘 행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부분에 대단히 복잡한 망집이
관련된다.
그리고 이 부분에 인식론과 논리 인명론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얽혀 있다.
그래서 논의과정에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다음 부분을 미리 잘 정리하고 살펴야 한다.
우선 스스로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해보자.
그런
가운데 스스로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가 하는 잘 검토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 과정부터 먼저 기본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리고 감각한 현실내용의 특정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정체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그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각 주체는 이처럼 매 경우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내용을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은 어떻게 얻게 되는가를 재검토해본다고 하자.
이 과정에서는 우선 각기 어떤 영역의 어떤
성격의 인식내용을 문제삼는가부터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념영역안의 관념내용을 얻는 과정을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또는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을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 부분부터 잘 구분해야 한다.
한편 다시 이들 내용은
각각 무엇을 대상으로 얻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어떤 요소를 원인요소로 해서 나타나게 되는가의 인과 문제도 살펴야 한다.
한편, 논의과정에서는 이들 각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이 경우 그 언어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의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지도 잘 파악해야 한다.
● [pt op tr] fr
● 인식과정에서 한 부분이 갖는 성격과 언어표현사이의 혼동문제
○ [pt op tr]
○ 눈을 떠 대하는 한
부분이 갖는 성격에 대한 혼동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눈을 떠서 무언가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예를 들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하자.
그런 감각현실 가운데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자.
그래서 평소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를 I 라고 표시해보자.
한편 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W 라고 표시해보자.
그 가운데 다른
영희나 철수로 여겨지는 부분을 O 라고 따로 표시해보자.
한편, 그 가운데 '사과'로 여겨지는 한 부분을 A 라고 따로 표시해보자.
이 경우 이들 I,W,O,A 는 모두 눈을 통해 감각해 얻은 감각현실이다.
즉 이 모두 다 눈을 뜨면 나타나고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제 그 I,W,O,A 부분을 대해 각기 이들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래서
I,W,O,A 부분을 각기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 등으로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이처럼 생각해 얻는
내용은 관념분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처럼 생각해 얻는 관념내용은 감각현실과 구분해 우선 모두 B 라고 표시해보자.
그런데
이 과정에서 먼저 감각현실인 I,W,O,A 부분의 의미나 성격을 제각각 달리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대단히 잘못된 분별[망상분별]을
다양하게 일으킨다.
그래서 먼저 이들 내용을 간단하게 먼저 요약해 제시해보기로 한다.
>>>
○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관계에 대한 잘못된 분별
-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우선 자신이 관념분별을 일으킬 때 (정신내의) 내부'대상'이 되어줄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이에 대해 일으킨 여러 관념분별들 B들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 한편 이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 I,W,O,A 부분에 바로 그런 관념내용들 B들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는 그런 감각현실 I,W,O,A 부분이 바로 그런
관념내용들 B들'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즉 감각현실 I,W,O,A 부분을 곧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 등이 어디 있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I,W,O,A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즉 그는 바로 그런 부분이 곧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 등인 것으로 잘못 여기고 그렇게 행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감각현실 전체에서 그런 I,W,O,A 부분에서 상을 취해
임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에서 상을 취해 임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런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여러 망상분별을 다시 증폭시켜 나간다.
○ 감각현실에서 자신과 외부세계의 잘못된 구분
- 우선 이런 형태로
처음 감각현실 I 부분을 스스로 자신, 또는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나머지 부분 W 부분을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계로 '잘못' 여긴다.
- 한편 감각현실 I 부분에 자신의 감관이나 주관이 위치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귀,코,입,몸 등으로 색,소리,향기,맛,촉감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감각현실 I 부분에 그런
감각을 얻는 기관, 즉, 눈,귀,코,입,몸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이 가운데 눈,귀 등은 거울등을 통해서만 스스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들 감각을 얻는 감관 눈,귀,코,입,몸은 감각현실 I 부분 위에 위치하는 것으로 잘못 여긴다.
○
감각현실에서 주관과 외부대상의 잘못된 구분
- 그런 가운데 나머지 감각현실 W 부분들은 자신의 이들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 W 부분들은 자신의 눈을 떠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 한편, 이 상황에서
자신이 귀,코,입,몸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눈을 통해 얻은 그 감각현실 W 부분들이 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또는 시각의 경우처럼, 각 감관이 얻어낸 내용 자체를 그 감관이 상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기기도 한다.
즉, 소리, 향기, 맛, 촉감을 귀,코,입,몸이 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기기도 한다.
- 또 자신이
무언가를 손으로 쥐거나 동작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감각현실 W 부분들은 그처럼 손으로 쥐거나 동작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동작이 영향을 미치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꽃을 만져 촉감을 느끼고, 그 꽃을 손으로 쥔다고
하자. 그리고 그에 물을 뿌린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촉감을 얻게 된 대상은 A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손으로 쥔 동작의
대상도 A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물을 뿌려댈때 그 영향을 받은 대상도 A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이처럼 각 경우
대상을 모두 A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 감각현실에서 마음 부분과 마음 밖 물질에 대한 잘못된 구분
-
한편 자신의 눈으로 얻은 감각현실 I 부분 '안'에 자신의 마음이나 정신이 위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얻은
감각현실 I 부분 '안'에서 자신의 정신작용이 이뤄진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W 부분들은 자신의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성격이 다른 '외부물질'로 '잘못' 여긴다.
- 또 한편 자신이 이런 감각현실 I,W,O,A 를 얻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런 내용은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
(감각현실내) 타인과 외부세계에 대한 잘못된 구분
그런 가운데 다시 다음과 같이 잘못 여긴다.
- 우선 감각현실 O
부분을 다른 사람 영희나 철수로 잘못 여긴다.
- 그래서 감각현실 W 부분 등이 영희나 철수가 대하는 외부세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여기서 영희나 철수가 대하는 외부세상으로 여기는 부분은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면 W 부분에서 O 부분을 빼고 I 부분을 포함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하에 간략하게 W,I 부분'등'이라고 줄여 표현해보자.
○ 감각현실을 자신과 타인이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함
-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W 부분을 자신 밖의 외부세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한편 이 W 부분이 영희나 철수가 대하는 외부세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W 부분을
자신과 영희 철수가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인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 (감각현실내) 타인의 주관과
외부대상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구분
- 한편 감각현실 O 부분에 영희나 철수의 감관이나 주관이 위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이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가 눈,귀,코,입,몸 등으로 색,소리,향기,맛,촉감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O 부분에 영희나 철수가 그런 감각을 얻는 기관, 즉, 눈,귀,코,입,몸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 그래서,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W,I 부분 등은 그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W,I 부분 등은 영희나 철수의 '눈'을 떠 대하는 '외부 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 또 그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W,I 부분 등이 곧 영희나 철수의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한편 이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쥐거나 동작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자신이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 W는 영희나 철수가 취한 동작의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 W는 그 동작이 영향을 미치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 (감각현실내) 타인의 마음 부분과 마음밖 물질에 대한 잘못된 구분
- 한편
자신이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 O 부분 '안'에 영희나 철수의 마음이나 정신이 위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
O 부분 '안'에서 영희나 철수의 정신작용이 이뤄진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W 부분 등은 영희나 철수의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성격이 다른 '외부물질'로 '잘못' 여긴다.
○ 감각현실이 나타나는 인과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A가 나타나는 과정을 다시 살핀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인과관계에 대해 다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한다.
우선 이런 감각현실 W 안의 여러 부분이 서로 작용과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감각현실 A 가 나타나는데 감각현실의 나머지 부분들이 영향을 미쳐 그런 내용이 나타난다고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 A를 꽃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 감각현실 A로서 꽃이 나타나려면 전체 감각현실 W 안의 씨나 물 빛 등이 작용해 그런 내용이 나타난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 경우 감각현실 A가 나타나는데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각 주체의 감각과정은 잘못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데 감각현실 A를 인식하는 과정을 포함시키는 경우에도 다시 앞과 마찬가지로 이해한다.
우선 이는 감관과 그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내용들과 관련된다.
이 내용은 이미 앞에서 살폈다.
우선 자신의 감각과정을 스스로 관찰해
살핀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감각현실 I 부분에 자신의 감관 눈,귀,코,입, 몸 등이 위치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본 감각현실 W 부분들이 자신의 이들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 이런 경우 자신의
감각과정에서는, 자신이 본 감각현실 I 와 W 부분들이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런 결과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 즉 I 와 W를 얻게 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 타인이 감각하는 인과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자신이 영희나 철수의 감각과정을 관찰한다고 하자.
이 경우도 앞과 잘못된 이해는 비슷하다.
이 경우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O 부분에 영희나 철수가 그런 감각을 얻는 기관, 즉, 눈,귀,코,입,몸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W,I 부분 등이 그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 이런 경우 영희나 철수의
감각과정에서는, 자신이 본 감각현실 O 와 W 부분들이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운동이나 활동과정에 대한 인과관계도 이와 비슷하게 잘못 이해한다.
- 이 경우 자신이 감각한 현실 I 부분이 자신의 몸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감각현실 W 부분들이 자신의 동작이 영향을 미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현실에서
예를 들어 그 가운데 꽃 A 부분을 손으로 쥔다고 하자. 그리고 그에 물을 뿌린다고 하자.
- 이런 경우에도 자신이 본 감각현실 I 와
W 부분들이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한편, 다른 사람의 활동과정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 감각현실은 대상에 일치하여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이해함
- 한편,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자신이 감각과정에서 눈을 통해 감각해 얻는 '감각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마음안 내용물'이다.
그런데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이 앞과 같은 사정으로 자신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이기도 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감각현실 I,W,O,A 부분은 감각시 대한 대상이면서 또 한편 감각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
경우 '감각의 대상'과 '감각해낸 내용'은 서로 일치한 것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가 얻은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이런
사정으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한편, 이 상황에서도 다른 영희나 철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조금 달리
이해한다.
- 우선 감각현실 I,W,O,A 부분을 영희나 철수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해도 I,W,O,A 부분을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얻어낸 감각내용이라고 보통 여기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옆에서 영희나
철수가 눈을 뜨고 감는 상황을 지켜본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는 무언가 보고나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 상황에서 자신은 I,W,O,A 부분은 일정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영희나 철수가 얻는 감각내용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영희나 철수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이 경우 영희나 철수가 얻는 감각내용도 자신처럼 이런 외부대상과 일치하거나 유사할 것으로 추리하게 될 뿐이다.
○ 대상의 관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런데 감각과정에서 각 주체는 대상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내용을 얻는
것으로 잘못 여긴다.
- 한편 또 그런 사정으로 감각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자신이 얻어낸 감각현실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 또는 그런 사정으로 감각현실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내용이어야만, 그런 그런 감각을 얻게 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처음 어떤 내용을 무엇인가를 상대하여 얻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감각현실을 얻었다고 하자. 이 경우
그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얻는가은 것인가 문제된다고 한자. 이것이 원래 대상의 확인 문제다.
여기서 감각현실 밖에서 그와 일치한 무엇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대상과 그 내용이 일치한가 아닌가는 별개로 살펴야 할 문제다.
○ 타인의 분별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 한편,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우선 자신이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정신내의) 내부'대상'이 되어줄 수 있다. 이를 이미 앞에서 살폈다.
- 그런데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은 곧 다른 사람인 영희나 철수가 관념분별을 일으키는 (내부) 대상도 되는 것으로 잘못 여긴다.
○
자신의 분별과정에서 내부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을 대하면서 자신이 일정한
관념내용들 B들을 일으켰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관념내용들 B들은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
이는 앞에서도 기본적인 망상분별 형태로 가장 먼저 살폈다.
이를 이제 관념분별 부분을 주어로 놓고 다시 살피기로
한다.
○ 분별내용과 내부대상(감각현실)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그런 관념내용들 B들'에는 그
요소로 그런 감각현실 I,W,O,A 부분이 들어 있다고도 잘못 여긴다.
또 그런 '각 관념내용들 B들은 곧 그런 감각현실 I,W,O,A
부분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은 곧 감각현실 I,W,O,A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에서 이들 내용을 열심히 찾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들 I,W,O,A 각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런 현상이 곧 현실에서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상을 취하는 현상이다.
그런 가운데 그런 I,W,O,A 각 부분에 그런
모습과 성품이 그처럼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관념영역에서 다시 온갖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I,W,O,A 각 부분을 언설로 표현한다고 하자.
그리고 I,W,O,A 각 부분을 대해 좋다거나 나쁨을 느꼈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언설이나 좋고 나쁨등이 모두 그 I,W,O,A 각 부분에 그처럼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
실재 영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
그리고 이들 망상분별은 다시 본 바탕인 실재에 관련해서도 증폭된다.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은 한 주체가 관계해 얻어내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 주체가 관계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것이 실재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어떤 것이 본 정체를 파악할 때는 이런 측면의 고찰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앞과 같은 형태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 예를 들어 본 바탕인 실재에는 감각현실과 일치한 내용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또는 실재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도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실재와 관련된 내용은 일단 관련된 부분에서 별도로
살피기로 한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현실에서 감각현실 I,W,O,A 부분이 갖는 성격이나 지위 의미에 대해 매 경우 각기 잘못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이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간단하게 요약해 제시해보았다.
이들 판단은 대부분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각 주체가 현실에서 이렇게 임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각 주체가 현실에서 이렇게 잘못 판단해 임하게 되는
배경사정을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판단이 잘못인 사정을 이와 함께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살필 때는 이런 내용을 살펴야 하는 이유나 실익부터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내용을 살피는 것은 이 내용이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는데 근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이런 망상을 바탕으로 업을 행한다.
그렇게 되면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게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근본적으로 이들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깊이 망집을 일으킨 경우 이 제거가 쉽지 않다.
그리고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판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생사현실에 임한다.
결국 이런 경우에는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래서 가정적 논의를 통해 상대의 망집을 제거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먼저 상대가 망집바탕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세속제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세속제를 바탕으로
제일의제를 이해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망상분별을 잘 제거해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논의과정에서 언어표현과 관련해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각 논의의 성격과 취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이하에서는 이런 형태로 이들 각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하나하나 살펴나가기로 한다.
● [pt op tr]
fr
● 망집과 생사의 문제
○ [pt op tr]
● 망집과 생사의 문제
생사고통은 망상분별과 집착,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에 의해 발생한다. [혹-업-고]
따라서 생사고통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이 혹-업-고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기로 한다.
○ 망상분별
현실에서 각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들 재료를 바탕으로 이후 대부분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어떤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분별을 일으켰다고 하자.
그래서 어떤 부분을 대해 꽃이나 바위라는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런 내용이
그 감각현실 부분에 있는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 그 상황에서 바위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손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나 다른 '영희' '철수'는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그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감각현실에는 그런 관념분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부분이
곧 그런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이것이 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한 상태다.
한편 이런 감각현실 등은 어떤 본 바탕에서
얻는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에도 잘못된 판단을 한다.
본 바탕인 실재에서는 본래 그런 현실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은 마치 꿈과 성격이 같다.
즉, 현실은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본 바탕인 실재에도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현실을 대단히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고 집착하게 된다.
이런 망상분별은 다음 내용들과 관련된다.
우선 현실에서 우선 자신이 대하는 각
부분의 본 정체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사실판단]
그리고 그 내용을 어떤 사정으로 그처럼 얻게 되는가도 문제된다. [인과문제]
그리고 그런 내용은 과연 무엇을 대상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얻는가도 이와 마찬가지다. [대상과 마음의 관계]
그런 가운데 좋고
아름다움의 정체도 문제된다.
즉 각 부분 가운데 무엇을 어떤 사정으로 좋고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가치판단]
그리고
이들 가운데 무엇이 진정 오래오래 두루두루 좋음을 주는 선인가도 문제된다. [선악가치판단]
그리고 그런 상태는 어떤 방안을 통해
성취되는가도 문제된다. [희망의성취방안]
그런데 이런 각 경우에 온갖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거꾸로 뒤집힌
판단을 한다.
그리고 잘못된 내용을 오히려 옳다고 집착하고 고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당연한 내용으로 여기며 현실에
임한다.
이 망상분별과 집착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부작용이 경미해 보인다.
한 주체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당장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를 제거하지 않고 임하면 이후 이로 인해 문제상황에
처하게 된다.
○ 망상분별에 바탕한 집착
망상을 일으키면 그 주체는 그에 바탕해 집착을 갖게
된다.
각 주체는 망집에 바탕해 자신과 자신의 것에 가장 집착한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다른 이가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대범하게 임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손과 발이 잘라진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
이처럼 각 주체는 자신과 자신의 것에
집착한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그가 일으키는 모든 집착은 이에 연유한다.
그런데 그가 생사현실에서 과연 무엇을 자신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가가 문제다.
그래서 현실 상황에서 자신은 어디 있는가라고 스스로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역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그 부분에는 그가 있다고 여기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비유하면 이는 마치 벽돌을 붙잡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상태와 같다.
물론 그렇게 되는 기본배경은 그 주체가 생을
출발하는 이전 단계에서부터 형성된다.
그리고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무명 근본 어리석음에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킨다. [근본무명,
구생기신견]
그런 바탕에서 일정 부분을 붙잡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취하게 된다. [행]
그렇게 되면 근본정신으로부터 여타 정신이
분화생성되게 된다. [3능변]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명색 즉 육체와 정신이 함께 성장하게 된다. [식-명색-6입...]
그리고
망집에 매듭이 단단히 지어진 상태에서 생을 출발하게 된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현실내용이 환과 같고 꿈과 같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또 그렇게 매순간 임해 삶을 살아가게 된다.
○ 망집에 바탕해 일으키는 소원과 업
현실에서 자신과
자신의 것에 대해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망집 번뇌를 일으켜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그는 자신에게 좋다고 여기는 내용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관념영역에서 희망을 만들게 된다.
즉,
관념영역에서 좋다고 보는 내용을 조합해 희망을 만들어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아름답게 되고 싶다고 소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좋은 차를 갖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과 자신의 것에 대해 소원을 일으켜 갖는다.
이
경우 그런 희망 자체는 관념영역안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매 순간 소원을 제각각 추구한다.
그런데 그는
망집에 바탕해 희망이 성취된 상태를 감각현실 영역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그가 원하는 차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어떤 것인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역시 그는 손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부분이 자신이 원하는 차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망집에 바탕해 소원을 추구해간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일으키는 소원은 주로 다음형태가 된다.
- 우선 자신에게 좋다고 보는 것을 붙잡고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아끼고 필요로 하는 이에게 베풀지 않으려 하게
된다.
- 한편 자신에게 당장 좋은 것을 추구하면서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생명, 신체, 재산, 가족 등]을 함부로
침해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생명에게 나쁨을 가하게 된다.
이는 예를 들어 한 주체가 식사를 하는 과정을 살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그런 가운데 자신의 좋음을 침해당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이를 평안히 참지 못하고 불같이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 상대에게 미움과 원망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상대를 해치려 하게 된다.
- 한편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이를 방관하고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 선을 키우고 악을 제거하는 노력을 행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그는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즉, 망집 번뇌에 묶여 분주하게 업을 행해 나간다.
그런 가운데
결과적으로 감각현실 영역을 휘젖게 된다.
○ 업과 생사고통의 관계
각 주체는 망집에 바탕해 자신과 자신의 것과
좋고 나쁨을 분별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망집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켜 추구해간다.
그래서 그런 경우 우선 망집번뇌에 묶여 스스로 사역을 당한다.
한편 그런 망집에 바탕해 다른 생명도 마찬가지 형태로 묶어
사역을 시켜나간다.
어떤 이가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매 순간 그렇게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여기며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그래서 감각현실 영역을 휘젖게 된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오로지 한 주체만의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욕계에는 망집을 갖고 임하는 다른 주체들이 함께 있다.
그런데 그런 업을 행하면 다른 주체에게 함께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다른 주체가 집착하는 것을 침해하게끔 된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주체와 가해와 피해관계로
얽히게 된다.
그래서 업장을 쌓게 된다.
예를 들어 거리에 있는 어떤 부분을 좋다고 여겨 자신이 취한다고 하자.
또는 어떤 부분이 좋지 않다고 여겨 이를 부수거나 해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욕계내 다른 주체는 이를 좋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해 소원을 추구하며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주체와 가해 피해관계로 얽히게 된다.
그래서 업의
장애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심하게 받는 3
악도로 묶여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가며 살아간다.
그런데 욕계에서는 세상의 온갖 생명이 다
그런 상태로 임하게 된다.
숲속의 다람쥐나 박쥐까지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사문제다.
● 생사고통의 제거와 예방 방안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혹업고의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한다고 하자.
이 망상분별에 바탕해 살아간다고 해도 당장은 큰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한 업의 장애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한번 행한 업은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과보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 현실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쌓여진 업장으로 인해 생사고통의 과보를 받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 생사고통을 망집에 바탕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본래 실답지 않은 생사고통을 매순간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받아들이고 겪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 사정이다.
[ 혹- 업 - 고의 관계]
생사현실에서 이 생사고통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하자.
이런 생사고통은 망집에 바탕해 받아나가게 된다.
즉, 생사고통의 근본원인은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집착이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우선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는 생사고통을 당면해
받는 상태에서 망집을 제거해도 된다.
원칙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도 망집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고통을 당면해 받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번뇌와 고통을 직접 받는 상황에서는 그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집을 제거하는 것도 생사고통을 당장 겪지 않는 상황에서 미리 제거하는 것이 낫다.
한편, 생사고통을 제거하는 것도
생사고통을 당면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예를 들어 벼랑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져 고통을 겪는다고 하자.
이 경우
물론 고통을 당장 겪는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리 벼랑을 향해 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훨씬
쉽다.
그렇지 못하면 이후 매순간 망집을 바탕으로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형태로 무량겁을 그렇게 벗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 3 계 6 도를 그런 형태로 매순간 헤매 돌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미리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려면 매순간
그런 업을 행하게 만드는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즉, 근본원인이 되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업장을
쌓게 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더 이상 업을 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과거에 쌓아 놓은 업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쌓여진 업장을 제거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매 상황에서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수행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칼로 자꾸 상처를 내서 피가 나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이 경우 우선 칼로 상처를 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상처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상처가 난 부위를 붕대로 묶고 이미 발생한 상처를
치유시키는 노력이 함께 행해져야 한다.
생사고통은 망집에 바탕해 받는다.
그래서 망집만 제거하면 바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선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미 쌓여 있는 업장이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번뇌에
묶여 쉼없이 바쁘게 사역을 당하는 상태에 놓인다.
그리고 고통을 매순간 심하게 받는 3 악도(아귀,축생, 지옥계)에 묶이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망집자체를 제거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들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망집부터 직접 먼저 제거해는 것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망집상태를 기본 전제로 놓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즉, 망집을 전제로 하더라도 우선 당장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게 할 방안부터 기초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불교에서는 가장 기초가 되는 10 선법의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즉, 하늘을 믿고 10 선법을 행하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 된다.
그러면 인간과 하늘을 오가는 상태가 된다.
그런 상태가 되면 우선 번뇌에 묶여 바쁘게 사역을 당하는 상태로부터는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그런 상태에서 더 이상
업장을 쌓지 않는 한편, 망집을 제거하는 수행을 점차 행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계의 덕목에 해당하는 수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자신의 것에 대해 망집을 제거하고 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것에 아끼지 않고 필요한 다른
생명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 [보시]
한편, 자신의 좋음을 추구하려고 다른 생명을 해치면서 나쁨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
즉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생명, 신체, 재산 가족 등]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정계]
한편 자신이 좋음을 침해받는
경우에도 이에 대해 망집에 바탕해 상을 일으켜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평안히 참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분노를 일으켜 보복을 가하며 상대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안인]
한편 늘 없는 선은 만들고, 있는 선은 키워야 한다.
그리고 없는 악은
만들지 않고, 있는 악은 키우지 않아야 한다.
이런 수행에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
그렇게 계의 덕목에 해당하는 수행을
정진하면 쌓여진 업장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업장이 다 제거되면 이후 이를 통해 복덕자량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예금을
꾸준히 할 때 이로 인해 부채가 다 제거되고 이후에는 예금 잔액이 쌓여가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복덕자량이 쌓이게 되면 이후 정려와 반야
수행을 원만히 닦아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게 된다.
그래서 점차 망집을 제거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끝내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면 그 자신은 이제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수행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해탈신을 이룬
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런 경우 생사에 묶여 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들이 문제로 남게 된다.
물론 그 개개인이 위의 방안으로
다 개별적으로 스스로 노력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생사에 묶인 중생의 사정상, 그렇게 방치하면 무량겁을 두고
스스로 벗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결국 생사에서 벗어난 수행자가 자비심을 바탕으로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곧 니르바나 상태와 같음[생사 즉 열반]을 관하고 생사현실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묶인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처해 중생을 제도하려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만일
생사현실에서 이를 구비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결국 생사현실에서 수행자
자신부터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다시 쌓아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앞에 제시한 계의 덕목을 꾸준히 잘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계의 덕목을 원만히 성취하려면 또 한편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갖추어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각 상황에서 망집을 일으켜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위와 같은 수행방안을 매
상황에서 취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하다.
그러나 망집을 제거하면 이런 수행도 원만히 즐겁게 여기며 잘 성취해갈 수 있다.
따라서
망상분별과 관련된 사항부터 주의깊게 다시 잘 살펴야 한다.
● [pt op tr]
fr
● 마음내용인 감각현실을 변화시키는 업이 업장을 형성하는 사정
- 마음내용이 오로지 그 주체 마음안의 내용인가의 문제
○ [pt op tr]
● 마음내용인 감각현실을 변화시키는 업이 업장을 형성하는 사정
- 마음내용이
오로지 그 주체 마음안의 내용인가의 문제
○ 감각현실 일체는 마음내용
한 주체가 평소 자신이나 외부 세계로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외부대상이나 외부물질,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주체가 대하는
현실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망집 제거에 중요하다.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아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그가 대하는 현실 일체가 마음내용임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 외부대상에 대한 망집
현실에서 외부 대상[소연,
소연연]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이는 처음 일정 부분을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기는 데에서 바탕한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가운데 자신 몸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외부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감관이 스스로 자신 몸으로 여기는 부분에
위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 감관은 감각현실에서 나머지 부분을 상대해 감각을 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감각현실에서
자신의 몸 부분을 제외한 부분이 곧 감각과정의 대상이 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를 감각과정의 외부대상[소연,
소연연]이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망집을 제거하려면 먼저 그런 부분이 사실은 자신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감각을 통해 그 결과로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그것은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것은 감관이나 마음이 상대한 대상이 아니다.
즉 그런 부분은 외부대상[소연. 소연연]이 아니다.
즉 평소 외부대상[소연.
소연연]으로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은 사실상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것이 외부대상[소연. 소연연]의 정체를 깊게 살피는 과정에서
문제된다.
그래서 외부대상[소연. 소연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망집의 제거와 관련된다.
그래서 이는 외부대상[소연. 소연연]과
밀접한 문제가 된다.
○ 본 바탕 실재의 공함의 이해
한편 망집을 제거하려면 본 바탕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현실 내용은 실재나 다른 영역에서는 얻지 못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실은 마치 침대에 누어
꾼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현실은 마치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에 묶이지 않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의 몸이나,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는 부분에 모두 공통한다.
따라서 자신과
세상에 대해 일으키는 망집의 제거에 실재의 공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마음 밖의 내용에 대한 입장
현실 일체가 마음 내용이라고 하자.
그리고 평소 외부대상[소연. 소연연]으로 여긴 부분이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하자.
그리고 본 바탕 실재를 얻지 못하여 공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감각현실들은 무엇을 대상으로 얻는 것인가가 문제되게 된다.
여기에 다양한 입장이 있다.
우선 현실 일체는 마음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인정할 때도 다시 앞 문제와
관련해 조금씩 입장 차이가 나타날 수있다.
우선 마음 밖 외부 영역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이해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실재의 공함을 무의 극단에 치우쳐 이해하는 입장이 된다.
이 경우 우선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이 자체적으로 자체분열해
얻는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한편, 마음은 '자신안의' 다른 마음내용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한편 일반적인 경우는 촉각을 시각내용을 대상으로 일으킨다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잘못된 이해다.
그러나 한편 관념분별 등은 감각현실을 대상으로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은 근본정신내 내용을 대상으로 일으킨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관소연론』입장은 이에 가깝다.
한편 이런 가운데 세상에는 오직 자신 마음하나 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반면 '다른 주체나 그 마음'이 자신 마음 밖에 있다고 인정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한 주체는 다른 주체의 마음내용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입장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 이와 달리 다음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우선 현실 내용일체는 마음 내용이다.
그런데 마음은 마음 밖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마음
밖에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내용을 얻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있다 없다라고 2 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이렇게 제시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마음은 마음 밖의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마음은 스스로 그
마음 자체를 얻지도 못한다.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들 논의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상당히 복잡한 주제가 된다.
○ 업이 만드는 가해피해관계와 업장
감각현실은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한 주체가 업을 행해 감각현실을 변화시킨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은 오로지 그 주체만의 일이 아니다.
이 경우 그로
인해 다른 주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서로 간에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관계로 얽히게 된다.
그래서 업장을
쌓게 된다.
그리고 생사에 묶여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가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주체가 대하는 현실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이가 가게 물건을 그냥 들고 왔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가게 물건도 역시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일로 다른 이에 의해 체포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현실 일체가 모두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이 일체가 자신의 마음내용임에도 그가 그런 업을 행하면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t op tr] fr
● 현실내용을 오직 한 주체의 마음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사정
○ [pt op tr]
● 현실내용을 오직 한 주체의 마음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사정
○ 일체가 자신의 마음만으로 발생한다는 입장의 문제점
한 주체가 망집을
일으켜 업을 행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가 대하는 현실 주체는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이들 내용이 오로지 그 주체의
마음내용임만을 치우쳐 강조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칫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하기 쉽다.
이들은 모두 마음내용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만으로 독자적으로 자체 분열해 나타난다.
또는 마음내용은 다른 마음안 내용을 대상[소연,
소연연]으로 삼아 얻게 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마음 밖 영역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마음 밖 본 바탕인 실재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잘못 오해하기 쉽다.
그런 경우 실재의 공함을 극단적으로 무에
치우쳐 이해하는 입장이 된다.
그런 경우 한 주체가 행하는 행위[업]도 그 주체의 마음안 일일뿐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아무렇게 업을 행해도 무방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한 주체가 업을 행해 그가 대하는
감각현실을 변화시킨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업을 행해도 오직 자신 마음안 내용만 변화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이
경우 모두 오직 그 주체 마음안 일일뿐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 경우 그것은 오로지 그 개인의 일일뿐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주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생사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잘 살펴야
한다.
○ 시각 감각현실 각 부분이 서로 다른 성격을 갖는 사정
한 주체가 눈을 떠 세상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데 우선 이 감각현실에서 각 부분의 성격이 다름을 파악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동시에 촉각을 얻을 수 있다.
이 촉각을 기준으로 각 부분을 판단해보자.
먼저 한 주체가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한편, 자신과
엇비슷한 주체인 영희나 철수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한편, 또 다른 생명으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한편, 그런 생명이 아닌
무정물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보면 이 각 부분의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이들 내용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는 모두 같다.
그런데도 이 각 부분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파악된다.
그리고
이것이 한 주체가 평소 자신과 외부 세상으로 여기게 되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들 각 부분이 모두 마음내용인 점은 같지만,
그러나 각 부분 성격이 서로 달리 파악되게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각 부분의 성격이 다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보자.
- 자신의 몸 부분
예를 들어 자신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만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양쪽 부분에서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부분만 변화해 이동해감을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다른 부분들은 또 그렇지 않다.
한편, 자신이 책상(무정물)을 만진다고 하자.
이 경우는 자신의
몸 부분에서만 촉감을 느낀다.
그래서 스스로 몸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과는 차별이 있다.
- 자신과 동류인 다른
이들
한편, 다른 영희나 철수도 사정이 자신과 엇비슷함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영희와 손을 맞대어 악수를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은 앞 경우와 달리 한 측면에서만 촉감을 느낀다.
즉 자신의 손 부분에서만 촉감을 느낀다.
한편 자신이 사과를 들어 영희에게 건넨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영희가 사과를 만질 때도 자신은 촉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서로간에 언어표현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의 경험을 보고받을 수 있다.
그러면 자신과 사정이
유사함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경우 영희도 자신처럼 한 측면에서만 촉감을 느낌을 보고받게 된다.
- 자신과 다른
생명체
한편 다른 유정물인 생명은 언어소통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해도 생명은 위처럼 손을 댄다거나 하는 경우 그에 대해
반응을 달리한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상태임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유정물이 각 경우 자신과 유사하게 반응함을 외관상 관찰할 수
있다.
한편, 자신이 공을 굴린다고 하자.
그래서 공이 굴러 문에 가 닿는다고 하자.
이 경우는 앞과는 또 사정이
다르다.
이 경우, 공이 문에 닿은 상황에서 자신은 촉감을 느끼지 못한다.
( 다만 그 상황에서 공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 정도를
듣게 된다. )
그래서 역시 자신의 몸부분과는 다르다.
- 생명이 아닌 무정물 부분
한편, 공은 영희나
기타 다른 생명과도 다르다.
공이 문에 닿는 순간 일정한 반응관계[작용 반작용의 관계]는 보인다.
그런데 공이 굴러 문에 닿는다고
해서 공이 어떤 촉감을 얻는 것도 아니다.
물론 공과는 언어소통도 곤란하다.
그리고 공이 굴러가고 뛰어 나오는 작용 반작용 관계는
각 경우 생명이 행하는 반응과는 다르다.
즉, 공은 영희나 철수 및 생명과 사정이 다르다.
[img306] 실재진여와
심-자신과 남
08pfl--image/실재진여_마음과자신과남2.jpg
결국 감각현실의 각 부분은 이처럼 서로
성격이 달리 파악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모두 감각현실이라는 점은 같다.
즉, 이 모두가 한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도 각 부분의 성격이 달리 파악된다.
그래서 이런 감각현실의 특성은 한 주체의 마음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이들이 오로지 자신 마음 내용만으로 나타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각 부분이 일정하게 특성이 달리 파악되는 사정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을 오로지 그 주체의 마음만으로 독자적으로 얻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각 부분이 이렇게 다른
사유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특히 자신의 몸 이외의 부분과 자신 몸 부분의 차이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자신의 몸은 비교적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나머지는 다른 주체의 뜻이나 일정한 인과 법칙성에 지배받는 듯 여겨진다.
이들은 다 함께 자신
마음내용이다.
그럼에도 각 부분 성격이 이처럼 달리 파악되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결국 이런 감각현실의 특성은 한 주체의
마음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한 주체의 마음 밖 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자신 마음 밖 다른 주체의 존재 인정 문제
○ 독아론의 문제
현실에서
영희나 철수 및 다른 생명체를 대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모습은 모두 자신의 마음내용이다.
사정이 그렇기에 세상에 오직
자신만 존재한다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그래서 세상에 오직 자신 마음 하나만 존재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에서 자신이 대하는
수많은 생명과 관련된 내용들을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는 다른 사람도 있다. 축생인 닭이나 양 소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자신 마음안 내용일 뿐이라고 하자.
그래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 마음내용인 점에서 같다고 하자.
그럼에도 이들이 모두 각기 다른 형태를 보이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이 경우 이들 다수 주체와 자신의 정신이 하나로 합쳐
있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문제된다.
예를 들어 부처는 깨달아 생사를 벗어났다고 하자.
그런데 이 역시 자신의 마음안 내용일 뿐이라고 하자.
또는 자신 마음과 하나로 합쳐 있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자신은 왜
부처의 상태와 다른가를 설명해야 한다.
한편 현실에서 축생인 닭이나 양 소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역시 자신의 마음안
내용일 뿐이라고 하자.
또는 자신 마음과 하나로 합쳐져 있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자신은 왜 축생과 달리 현실에 임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 다수 주체와 그 마음의 인정과 마음 밖 내용의 관계
세상에
오직 하나의 정신만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수 주체가 서로 상태가 다른 현실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자신 마음 밖에 다른
생명 주체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렇게 자신 마음 밖에 다른 주체를 인정하는 근거는 다음이다.
우선 처음
감각현실 가운데 일정 부분을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 가운데 자신 몸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외부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시 일부를 영희나 철수, 소, 양, 닭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이런 바탕에서 자신 외 다른
주체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처음 자신의 몸을 근거로 자신을 시설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자신의 정신을 시설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주체의 정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설하게 된다.
즉, 자신이 보게 되는 다른 주체의 몸을 통해 다른 주체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다른 주체도 그런 정신이 있다고 하게된다.
자신 '마음 밖'에 따로 다른 생명주체의
정신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근거는 이런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 '마음 밖에' 다른 영희나 철수, 소, 양, 닭의 몸들이 있다고 인정한다.
또 이를 바탕으로 그런 다른 생명의 '정신'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 밖'에 우선 다른 생명의
'정신'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평소 외부 세상으로 본 각 부분에 대응한 부분도 마음 밖에 있다고 해야 한다.
처음 자신의 몸과 다른 생명의 몸, 그리고 기타 외부 세상(무정물)로 여긴 부분들이 있었다.
이에 따라 처음 자신의
'마음'을 시설한다.
또 이에 준해서 자신의 몸과 유사한 영희나 철수의 '마음'도 시설하게 된다.
이에 따라 처음 자신 '마음
밖'에 다른 생명의 '정신'을 시설한다.
그런 경우 이는 처음의 독아론 입장과는 어긋나게 된다.
처음 독아론 입장은
다음처럼 주장한다.
세상 일체가 오직 자신 마음 내용 뿐이다. 그리고 마음 밖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
여하튼 마음 밖에
다른 주체의 마음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다른 주체의 몸은 눈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주체의 정신을 직접 보거나
만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주체의 정신이 있다고 시설한다.
그것은 자신이 보게 되는 다른 주체의 몸과 말 행위 태도 동작
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는 다른 주체의 몸만 본 것이 아니다.
다른 생명을 포함해 다른 사물들도
본다.
그런 가운데 마음 밖에 오직 그런 다른 주체의 '정신'만 따로 뽑아낼 사정이 없다.
즉, 다른 주체의 몸이나, 기타
무정물에 대응한 내용들을 제외시키기 곤란하다.
그래서 자신 마음 밖에는 오직 다른 주체의 정신만 있다고 주장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 다수가 대하는 현실내용의 성격
- 마음안의 공종자라는
입장의 문제
현실에서 어떤 이가 건물을 하나 짓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건물 앞을 지나는 이는 모두 이 내용을 일정하게
대하게 된다.
현실에서 다른 이들도 그런 건물을 마찬가지로 대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이런 사실을 보고한다.
그런데 이 일체는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오직 그 주체의 마음만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주체도 그런 내용을 일정하게 대하게끔 되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입장에 따라서는 이처럼 여러 주체가 함께 얻는 내용을
[공종자(共種子)]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종자는 자신의 근본정신에 담겨진 내용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게 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한 주체의 마음운 다른 주체의 마음내용을 포함시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다른 주체도
역시 자신의 마음을 포함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 마음과 다른 주체의 마음은 서로 따로 있다고 시설해야 한다.
그런데 한 주체가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근본정신내 공종자[건물]를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하자.
이 경우 한 주체가 자신의 근본정신내 공종자만 변화시킨다고 하자.
그렇다면 다른 주체가 자신 근본정신안의 공종자를 인식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건물을 세우면 거리를 지나는 이들이 건물을 모두 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 다음처럼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주체가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주체 마음안 내용[공종자(共種子)]까지 모두 다
변화시키게 된다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다른 이들이 그 내용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의 '마음 밖' 다른 주체의 마음을 다 그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건물을 하나 지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세상에서 그 건물을 대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 마음을 모두 다 그렇게 변화시켜야 한다.
한편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도 자신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이가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도 역시 자신의 마음안 내용[공종자]를 그렇게 변경시킬 수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마음안 내용은 자신의
마음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결국 자신 마음 밖의 다른 주체에 의해 그런 근본정신내 내용[공종자]가 나타난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일체가 자신 마음 내용 뿐이라는 입장과는 적어도 어긋나게 된다.
결국 마음안 내용만으로 이를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 다수간, 시간, 공간, 상황에서 일정 관계가 반복되는
현실의 사정
○ 현실은 실재나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꿈과 같이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꿈과 다르다.
즉 현실은 꿈과 달리,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무량겁에 걸쳐 엇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그래서 꿈과 달리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게 된다.
이를 네 가지 난점[四事: 처處ㆍ시時ㆍ상속相續ㆍ작용作用]이라고도 한다.
책상에 연필을 두었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날 다시 책상을 살펴도 여전히 연필이 그대로 있다.
또 거리를 지나다닌다고 하자.
일정 위치에 가면 일정한 건물을 매번
일정하게 대하게 된다.
여기에 위치 파악함에 기준이 되는 책상이나 거리도 마음 내용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파악되는
연필이나 건물도 마음 내용이다.
한편, 해가 떠오르거나 지는 것으로 시간을 파악한다.
그런데 해가 뜰 때는 매번 동쪽산에서
떠오른다고 하자.
또 그 해가 질 무렵에는 매번 서쪽 바다로 진다고 하자.
한편 이런 내용은 오직 자신만 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영희나 철수도 마찬가지 경험을 하고 보고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일정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이후 배가 부름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배고픔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처럼 일정 내용들이 다른 내용과 일정한 관련성이 파악된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자신 마음내용일 뿐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이들 간에 이런 관련성이 파악되게 되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이 현실이 오로지 한 주체의 마음만으로 얻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왜 그런 내용이 다수 주체에게 엇비슷하게
나타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또 왜 엇비슷한 내용이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 조건에서 일정하게 반복되는가도 설명해야 한다.
꿈도 마음안 내용인 점에서 같다.
그래서 꿈과 비교하면 이 차이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꿈은 현실과
달리 이런 특성이 파악되지 않는다.
즉, 다수 주체가 다 함께 꿈을 꾸는 일도 없다.
한편, 일정 시기 공간에서 일정 조건으로
반복되는 경우도 드물다.
같은 시각에 일정한 꿈을 매번 꾸는 것도 아니다.
한편 일정한 내용에 일정한 결과가 반복해 뒤 따르지도
않는다.
감각현실이나 꿈이나 모두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꿈과 달리 이처럼 다른 특성을 갖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한편 한 주체의 마음내용에는 여러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 느낌, 관념분별내용 등이다.
이 경우에도 각기
특성이 달리 파악된다.
그런데 이들은 역시 마음 내용으로서 모두 같다.
그래서 이 경우도 앞과 마찬가지로 이들
각각이 다른 특성을 갖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 마음이 마음 내용을 자유롭게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정
한편 현실일체가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이것이 오로지 자신 마음만으로만 나타난다고 하자.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자신이 자유롭게 변화시키지 못한다.
관념분별이나 감각현실 사이에서도 그 정도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관념분별도 자신의 자유로 얻어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읽은 내용을 모두 뜻대로 되살려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모든 수학문제를 다 답을 잘 적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매순간 모든 옳은 내용을 잘 판단해 내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관념은 감각현실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한 순간에 꽃도 생각하고 별도 생각하고, 과거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이에 비해 훨씬 제한이 많다.
한 순간에 일정 내용만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순간에 다시
되살려 내지 못한다.
이런 차별이 있다.
거리에서 건물이나 나무를 보았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은 매일 보아도
그대로다.
그런데 다른 것은 또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일정 거리에서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경우와 같다.
이 가운데
거리나 건물 나무는 어느 정도 오래 반복해 유지된다.
그래서 이를 기준으로 다른 내용을 또 일정한 관계로 파악한다.
이들은 또
자신의 뜻대로 변경시키는 데 상당히 제한이 많다.
그런 경우 이들 내용을 오직 자신 마음안으로만 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자신 마음 내용안에 이런 기준 역할을 하는 내용이 따로 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기준은 어느 정도 고정적으로
파악된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또 이들 사이에서 들고 난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다 같은
마음내용이다.
그래서 그런 서로간 관계나 차별이 어떤 사정으로 얻어지게 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내용인 점은 같다.
그런데 이것을 모두 오직 자신의 마음만으로 얻는다고 하자.
그래서 같은 마음 내용사이에서 그렇게 차별이
있게 되는 사정을 또 설명해야 한다.
한 주체가 대하는 감각현실에는 다양한 내용이 있다.
-자신의 몸,
-자신과 비슷한 영희나 철수,
- 다른 생명,
- 그리고 바위나 돌과 같은 무정물 등이다.
이것이 한 주체가
파악하는 자신과 외부 세상의 모습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 이들 내용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는 모두 같다.
그런데도 이 각 부분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파악된다.
현실에서 자신이 사과를 본다고
하자.
우선 이 상황에서 자신은 눈,귀,코,입,몸으로 다양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사과를 집어 다른 영희나
철수에게 보인다고 하자.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다른 영희나 철수도 그런 경험을 언어로 보고하게 된다.
이를 통해 영희나 철수의
상태가 자신과 서로 엇비슷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다른 주체는 자신의 뜻과는 독립해 따로 활동한다.
그래서
자신과는 별도의 다른 주체의 존재를 우선 인정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현실에서 보는 자신의 몸과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시설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주체의 몸과 활동을 통해 다른 주체의 '정신'을 시설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자신 마음 밖에 무언가를
시설하게 된다.
한편, 현실에서 이들 다수 주체는 엇비슷한 현실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무량겁에 걸쳐 엇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사람들이 모두 거리를 나서 일정한 회사를 다닌다고
하자.
그래서 일정 위치에 가면 일정한 건물을 매번 일정하게 대하게 된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모두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배가 부른다.
이런 현실이 다수 주체에게 엇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일부 입장에서는 이런 각 경우가
오로지 자신 마음만으로 그처럼 나타난다고 제시한다.
그런 경우 이런 현실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결국 자신
마음 밖에 무언가를 시설하게 된다.
● [pt op tr] fr
○ 유식무경에 바탕해 무에 치우친 극단적 입장의 문제
○ [pt op tr]
○
유식무경에 바탕해 무에 치우친 극단적 입장의 문제
현실에서 망집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 내용
일체가 마음내용임을 올바로 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각 부분이 그가 이해하는 것처럼 그런 성격의 내용이 아님도 이해해야 한다.
즉, 현실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없다. [유식무경]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를 자신 밖의 외부세계로 잘못
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나 외부 세계의 내용이 아니다.
또 자신의 마음이 그런 부분에 위치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감관이 또 그런 부분에 위치한 것도 아니다.
또 세계로 여긴 그 부분은 자신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도 아니다.
한편, 외부세계로 여긴 부분은 마음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마음과 별개의 외부물질도 아니다.
이처럼
그 정체를 올바로 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이해하는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 내용에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현실 내용이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감각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감각현실은 꿈처럼 임시적으로 얻게 되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감각결과를 얻는 정신 영역에서만 얻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관념등을 얻는 관념영역 등 다른 정신 영역에서는 얻지 못하는 내용이다.
더욱이 자신의 마음을 떠나 본 바탕
실재영역에서도 얻지 못하는 내용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현실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없다.
유식무경이란 표현은 이런 측면에서는 타당하다. [유식무경]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마음 밖에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내세우는 것은 지나치다.
이는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 된다.
○ 실답지
않음을 내세우기 위해 '전혀 없음'을 주장할 필요가 없는 사정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자.
그렇다고 꿈 영역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그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기 위해서 꿈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꿈
밖 영역에 현실의 침대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꿈은 실답지 않다.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은 다음이다.
꿈
내용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꿈내용과 침대가 놓인 현실 내용은 서로 엉뚱하다.
그리고 꿈은 그런 조건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이다.
꿈에서 얻는 내용은 그에 기대하는 다른 성품도 얻을 수 없다.
그런 사정만으로도 꿈을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하다.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기 위해 꿈 밖 현실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사현실도 사정이 이와 같다.
생사현실은 마음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그런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고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생사현실을 얻는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어야만
마음내용이 실답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 밖에 무언가 있다고 해도 관계없다.
다만 그것이 마음안 내용과 엉뚱한 관계에서
임시적으로 얻는다는 사정만으로 충분하다.
즉 침대와 꿈의 관계처럼 이들 관계가 엉뚱한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내세울 때 무의 극단에 치우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마음 밖 본 바탕 실재영역에 아무 내용이 전혀 없다고 치우쳐 이해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불가득]
그렇다고 그것이 아무 것도 전혀 없음[무]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두 차이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감각현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눈으로 본 내용은 다른 소리,
향, 맛, 촉감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눈으로 본 내용은 느낌이나 관념을 얻는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감관을 통해 얻을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또 관념영역에서 얻을 내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에서도 불가득과
무는 차이가 있다.
그런 가운데 이들은 각기 서로 엉뚱하다.
또 각기 각각의 영역에서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간에 실답다고 할 내용이 아니다.
한편, 마음과 마음 밖 실재의 관계도 이와 같다.
마음으로는 마음 밖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음 밖에 아무런 내용이 전혀 없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이
경우에서도 불가득을 무로 혼동해 이해하면 안 된다.
그래서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실재는 얻지
못하는데 반해 감각현실은 얻는다.
그래서 서로간 지위와 성격이 다르고 엉뚱하다.
그래서 감각현실은 실답다고 할 내용이 아니다.
실재영역도 마찬가지다.
실재 영역에 참된 진짜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실재를 공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그것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실재는 무아 무자성이며, 또 한편 그 내용을 얻지 못하기에 공하다고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공한 실재도 실답지 않다.
실다운 내용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실재는 현실의 본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실재'라고 표현하는 것 뿐이다.
한편, 감각현실 안에서 각 부분에서 차별이 있다.
-자신의 몸,
-자신과
비슷한 영희나 철수,
- 다른 생명,
- 그리고 바위나 돌과 같은 무정물 등이다.
이런 차별이 각 부분에서 달리 파악된다.
그런데 이런 차별이 파악되는 배경사정을
마음 밖 내용들과 관련시켜 이해할 여지도 있다.
● [pt op
tr] fr
○ 유무 양극단(양변)을 떠나는 실재의 공함
;○ [pt op tr]
○ 유무 양극단(양변)을 떠나는 실재의 공함
현실 일체가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이들 각 부분의 성격이 다르다.
또 일정한 관계성이 파악된다.
이것을 오로지 자신 마음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 주체의 마음 밖 사정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본 바탕 실재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 실재의 불가득 공의 이해과정에서 유무 극단
한 주체가 대하는 현실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마음 밖 본 바탕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한 주체는 오로지 마음이 관계해 화합해 얻는 내용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
마음은 마음 밖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 밖 본 바탕인 실재는 내용을 끝내 직접 얻지 못한다.
그래서
실재는 온갖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난다.
그래서 무엇이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등등의 온갖 분별을 떠난다.
그런 사정으로 아무 의미를 갖는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려
공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본 바탕인 실재는 공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실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유무 양 극단을
떠남을 뜻한다.
그래서 '공하다'는 표현은 유무 분별을 떠남을 뜻한다.
그래서 실재 영역에 무언가가 적극적으로
있다[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재 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무]고 하는 것도 아님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내용을 얻지
못함[불가득]은 '아무것도 전혀 없음[무]'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 밖 실재 영역에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함의 표현을 이해할 때 유무 분별의 앙변을 떠나야 한다.
이런 사정을 비유를 통해서 이해해보자.
예를 들어 소리는
색이 아니다.
또 색은 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서 소리를 색으로만 가리켜
표현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색으로는 어떤 소리도 끝내 표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흰색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검은 색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사정으로 방편상 흰색과 검은 색도 아닌 회색으로 표현해 가리켰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경우 회색이 가리키는 의미를 주의해 이해해야 한다.
이는 그 소리가 흰색이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소리가 흰색이 아닌 다른 색이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어느 입장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공이란 표현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현실에서 유무분별을 행하고 있다.
그런데 실재는 마음이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유무분별을
행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려 이를 나타낸다.
이런 경우에 공이란 표현의 의미를 유무 가운데
유라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무라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 어느 입장에 치우쳐 이해해서는 안 된다.
- 다른 영역과의 관계에서 유무에 치우친 극단적 입장
공하다는 표현을 놓고 유무 어느 쪽 의미로
치우쳐 이해하는 입장도 유무극단에 치우친 입장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을 비교하는 가운데 실다운가를 문제삼게 된다.
이런 가운데 유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도 있다.
이 둘은 서로간에 별개 문제다.
따라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하튼 이 각 경우에 극단적으로 한 쪽으로 치우쳐 이해하는 입장이 다 문제된다.
아래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른 영역에서도' 그대로 그처럼
얻을 수 있는가
그래서 실답게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 여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예를 들어 a 가 어떤 영역에
얻어진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사정으로 그 a 는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사정으로 그 a 를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러면 그 a 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게 된다.
그러면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 된다.
이는 무언가 a 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참된 진짜의 내용으로 잘못 여기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에 집착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해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한편, a 는 한 영역에서만 임시로
화합해 얻어질 뿐이다.
그래서 다른 영역에서는 그런 a는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사정을 그것을 실답지 않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지한다.
그런데 이제 그런 사정
때문에 다시 무에 치우친 입장이 나타난다.
즉, 그렇게 얻는 a 는 실답지 않다.
그런 사정으로 그런 a 는 전혀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잘못 이해하기도 쉽다.
또는 그런 사정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 얻는 B,C 등 일체의 것도 또 없다고 잘못 이해하기도 쉽다.
더 나아가 이들 각각은 서로 떠나서 독립되어 별개로 얻어진다고 여기기도 쉽다.
또 이들은 서로 떠나 있는 별개의 것이라고 여기기도
쉽다.
이는 또 실답지 않음을 극단적으로 강조해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이해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는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생사현실에서 행할 수 있는 온갖 선을 행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무량한 공덕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처럼 유무 양 극단에 치우치면 곤란하게 된다.
이를 살펴보자.
우선 얻지 못함[불가득 공]과 유무의 관계를 다음처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각 감관에 따라 각기 어떤 내용을
얻거나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눈을 색을 본다. 그러나 소리를 얻지는 못한다.
귀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색을 보지 못한다.
이런 상호 관계를 놓고 이를 생각해보자.
○ 각 감각현실의 상호 관계
- 유의
극단
눈으로 색깔을 본다.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는다.
그래서 눈을 기준으로 하면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색깔이 다른 영역에 그대로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눈으로 색깔을 보았다고 해서, 색깔이 소리나,
냄새, 촉감을 얻는 영역 등에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그렇게 잘못 여기면 그가
얻는 색깔을 실답다고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유의 극단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그것은 실답지 않은
형태로만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는 것이다.
- 무의 극단
눈으로는 색깔을 본다.
그런데 색깔은 다른
감관으로는 얻지 못한다.
그래서 색깔은 다른 감관으로 얻는 내용과 비교하면 엉뚱하다.
그래서 눈으로 얻는 색깔은 다른 것에
비교하여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 색깔마저도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눈으로는 다른 감관으로 얻는 내용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귀로 듣는 소리를 끝내 얻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다고 귀로 듣는 소리가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눈으로 소리를 얻지 못한다고 해서 소리가 전혀
없다고 여긴다고 하자.
더 나아가 다른 영역의 내용들을 얻지 못하므로,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한 주체는 각 감관은 각 영역에서 각기 서로 엉뚱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이들이 서로
완전히 떠나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각 감각내용이 서로 엉뚱하다.
그렇다고 해서 각 내용을 다른 내용과 완전히 독립해 별개로
얻는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색,성,향,미,촉 들은 서로 완전히 무관하고 별개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지나친
것이 된다.
이들은 모두 무의 극단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 유무 극단을 떠남
각
감각현실을 각 감관으로 얻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실답게 참된 진짜로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실다운 어떤 내용은 없다.
눈으로 본 색깔이나 각 감관으로 얻는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떠나 임해야 한다.
그런데
실답지 않다고 해서 이들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눈으로 본 색깔이 실답지 않다고 색깔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다른 감관으로 얻는 소리, 냄새, 맛, 촉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처럼 실답지 않은 형태로는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 감각현실은 서로 완전히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또 각
감각현실은 서로 완전히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함께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현실과 실재의 관계는 꿈과 현실의 관계와 같다.
꿈의 비유를 통해 현실과 실재의 관계를
다시 이해해보자.
○ 꿈과 현실의 관계
- 유의 극단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침대에 누어 꿈을 꾼다고 하자.
그래서 꿈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는 꿈에서 그런 바다나 황금을 생생하게 얻었다고 하자.
그래서
꿈꾸는 상태를 기준으로 하면 그런 내용은 그처럼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꿈 내용이 다른 영역에 그대로 있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꿈을 꾸었다고 그 내용이 침대가 놓인 현실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그렇게 잘못 여기면 그는 꿈 내용을 실답다고 잘못 여긴 가운데 집착하게 된다.
그것은 유의 극단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그것은 실답지 않은 형태로만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는 것이다.
- 무의 극단
꿈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는 그런 바다나 황금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꿈 내용은 현실 내용과 비교하면
엉뚱하다.
그래서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은 현실과 비교해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런 꿈 내용을 전혀
꾸지 않았고, 그래서 꿈은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꿈에서는 꿈만
꾸고 침대 현실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 놓인 이불이나 베개를 얻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다고 현실에서는 감관으로 얻을
내용들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꿈에서 얻지 못한다고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이 전혀 없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더
나아가 다른 영역의 내용들을 얻지 못하므로,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한
주체는 꿈과 현실 각 영역에서 각기 서로 엉뚱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현실을 완전히 떠나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꿈과 현실은 서로 각각 엉뚱하다.
그렇다고 해서 꿈을 현실과 완전히 독립해 별개로 얻는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꿈이 현실과는 완전히 무관하고 별개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지나친 것이 된다.
이들은 모두 무의 극단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 유무 극단을 떠남
현실에서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실답게 참된 진짜로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실다운 어떤 내용은 없다.
꿈에서 본 바다나 황금은 실답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떠나 임해야 한다.
그러나 실답지 않다고 해서 꿈에서 꾼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꿈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꿈꾼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현실에서 감각현실이나, 침대 베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그처럼 실답지 않은 형태로는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꿈은
현실을 완전히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꿈과 현실이 서로 완전히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함께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과 실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 현실과
실재의 관계
-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
예를 들어 현실에서 마음으로 어떤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래서
예를 들어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기준으로 하면 그런 내용은 그처럼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감각현실이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 그대로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을 얻었다고 그 내용이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그렇게 잘못 여기면 그는 감각현실을 실답다고 잘못 여긴 가운데
집착하게 된다.
그것은 있음[유]의 극단에 치우친 것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그것은 실답지 않은 형태로만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는 것이다.
-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
어떤 이가 감관을 통해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데 마음을 떠나 마음 밖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감각현실은 이런 본 바탕 실재와 비교하면, 엉뚱하다.
그래서 감각현실은 본 바탕 실재와 비교해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런 감각현실을 얻지 않았고, 이런
현실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현실에서는 감각현실을 얻고 본 바탕
실재를 끝내 얻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다고 본 바탕 실재 영역에 아무런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끝내
얻지 못한다고 실재 영역에는 아무 내용이 전혀 없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더 나아가 감관으로는 다른 영역의 내용들을 얻지 못하므로,
그런 내용도 전혀 없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한 주체는 현실에서 본 바탕 실재와는 엉뚱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본 바탕 실재를 완전히 떠나 감각현실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과 실재는 서로
엉뚱하다
그렇다고 해서 감각현실은 실재와 완전히 독립해 별개로 얻는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감각현실은 본 바탕 실재와 완전히
무관하고 별개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지나친 것이 된다.
이들은 모두 무의 극단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 유무 극단을 떠남
실재나 감각현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실답게
참된 진짜로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실다운 어떤 내용은 없다.
마음으로 얻는 감각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떠나 임해야 한다.
그런데 실답지 않다고 해서 이들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감각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감각현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본 바탕 실재를 얻지 못한다고 본 바탕 실재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그처럼 실답지 않은 형태로 그처럼 그와 같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본 바탕 실재를 완전히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또 각 감각현실은 본 바탕 실재와 완전히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함께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해야 한다.
○ 다른
내용들간의 상호 관계
앞에서 각 감각현실의 상호관계를 살폈다.
그리고 꿈과 현실의 상호관계를 살폈다.
그리고 현실과
실재의 상호관계를 살폈다
.
이외에도 상호간 내용의 관계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과 좋고 나쁨의
관계가 문제된다.
한편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가 문제된다.
또 좋고 나쁨과 선악의 관계가 문제된다.
그리고 이들은
마음이 얻는 마음안 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얻는 마음을 시설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마음과 마음안 내용의 관계가
문제된다.
그리고 다시 마음 그 자체와 마음밖의 실재의 관계가 문제될 수 있다.
한편, 거울과 거울면의 관계도 문제될 수
있다.
이런 관계들에서 모두 위와 같은 형태로 그 상호관계를 살필 수 있다.
이들 각 내용의 상호관계를 모두
놓고 살펴보자.
[img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
예를 들어 어떤
내용을 현실에서 얻는다고 하자.
감각현실, 느낌, 분별내용 등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는 측면을 기준으로
하면 그런 내용은 그처럼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런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얻었다고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그렇게 잘못 여기면 그는 그 내용을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그에 집착하게 된다.
그것은 있음[유]의 극단에
치우친 것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그것은 실답지 않은 형태로만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는 것이다.
또 설령 직접
얻지 못해도 그런 내용을 언어로 시설해서 살피게 되는 것이다.
- 마음과 실재 관런해 유에 치우친 입장
한편 마음은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그래도 마음에서 얻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런 마음을 언어로 시설해 살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있다고 시설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그런 마음이 곧 본 바탕 실재에도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길 여지가
있다.
또는 마음이 곧 본 바탕 실재라고 잘못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과 실재의 지위를 혼동할 수도 있다.
한편 마음을 떠난 본 바탕을 실재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를 실재나 실상이라고 표현하면 또 이는 실다운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이와 관련해 간단히 살펴보자.
- 마음의 시설과 유의 문제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이처럼 얻는 현실 내용을 기초로 마음을 시설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은 그 마음을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 내용을 얻는 과정에서 마음이 없다고 하면 이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런 사정으로 마음을 있다고 시설하게 된다.
[참고- 수능엄경]
그런데 그런 사정으로 마음은 마음안 내용과 부착된 것이다.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 곧 현실 내용이기 때문이다.
- 실재의 시설과 유의 문제
한편, 이와 별개로 실재가 무엇인가를 또 문제삼게 된다.
마음을 경계로
마음이 얻는 현실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마음과 관계하지 않고 마음을 떠나서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 무언가가 또 문제된다.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자신의 눈이
관계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신이 본 내용은 전혀 사라져 없게 되는것인가.
아니면 눈이 관계하지 않아도 무언가는 있다고 할 것인가가 처음
문제된다.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것이 곧 실재의 문제다.
즉,
마음과 관계하지 않고서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이 무언가를 문제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재라고 시설해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살피게 된다.
그런데 이 실재는 마음이 얻지 못한다.
문제삼는 실재는 마음을 떠나 있다고 할 무언가를
살피는 문제다.
그런데 마음은 마음안에 들어온 내용만 얻는다.
그리고 각 주체는 그렇게 마음이 화합해 얻는 내용만 현실에서
얻게된다.
그래서 그런 사정에 놓여 있는 주체로서는 문제삼는 실재를 끝내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실재는 일체의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난다.
그리고 본래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란 표현을 빌려, 실재는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실재, 실상이라는 것은 마음이 얻는 현실내용의 본 바탕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실'재나 '실'상이라고 표현하는 것
뿐이다.
이는 문제삼는 실재는 참다운 진짜로서 '실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문제삼는 실재는 '참다운 진짜'로서 실다운
것이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만일 그런 참된 진짜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실재가 무언가라고 물을 때 그 내용을
그렇게 제시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공하다고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사정을 살피면 그렇지 않다.
그런 가운데 문제삼는
실재의 내용은 마음이 얻어내지 못한다.
그런 사정으로 실재는 무아, 무자성, 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재가
공하다는 표현에는 이들 내용이 함께 포함된다.
따라서 실재는-다른 현실내용과는 달리, 참된 진짜의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또는 실재에는-참된 진짜의 내용이 그처럼 '있다'-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그런 실다운 참된 것이 없는
가운데[무아, 무자성, 무소유]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불가득]
그래서 공하다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 마음과 실재의 관계
마음은 마음 자체를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한편 현실 일체는 마음이
얻어낸다.
그래서 현실 일체는 마음을 바탕으로 얻어낸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 실재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리고 또 실재도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이 되는 내용으로서 시설해 찾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과 실재는 이런 점에서 공통한다.
그런 사정으로 또 마음과 실재의 지위를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마음과 실재는 다음처럼 지위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마음이 이런 내용을 얻게 한다고 시설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은
이런 현실 내용을 그 안에 담아 얻어낸 그 무엇이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마음을 떠나 본래 있다고 본 바탕 실재를 문제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은 현실 내용과 실재의 두 영역의 경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그 지위가 본래 서로 다르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그런 가운데 마음과 실재의 관계를 다시 살펴야 한다.
마음은 곧 실재가 아니다.
실재도 곧 마음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편 그런 마음은 본 바탕 실재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 둘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img303] 상이 맺히지
않은 심
08pfl--image/실재와심.jpg
[img304]
실재진여와_마음의관계.
08pfl--image/실재진여와_마음의관계.jpg
- 무의
극단
한편, 어떤 이가 감관을 통해 감각현실을 얻는다.
눈으로 색깔의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는
다른 감각현실 영역 즉, 소리, 향, 맛, 촉감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불가득]
이는 또 좋고 나쁨의 느낌을 얻는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또 이는 관념을 얻는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그리고 이는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한편 다른 내용도 서로 간에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예를 들어 관념내용을 놓고 살펴보자.
어떤 이가
사랑이나 평화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다고 하자.
이런 내용은 감각현실 영역 즉, 소리, 향, 맛, 촉감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불가득]
이는 또 좋고 나쁨의 느낌을 얻는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또 이는 관념을 얻는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그리고 이는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나머지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한편
이들 내용을 마음에서 얻는다고 하자.
그래서 마음을 시설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은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래서
마음은 그 마음자체를 얻을 수 없다. [불가득]
그리고 마음은 마음 밖 실재 영역을 얻을 수도 없다. [불가득]
그래서 이들은
각각 다른 내용과 비교하면, 엉뚱하다.
그래서 이들은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이들 내용을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현실에서는 각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각기 다른 영역 내용들을 끝내 얻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다고 다른 내용들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얻지 못한다고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지나친 입장이 된다.
한편 한 주체는 현실에서 각기 다른
내용과는 엉뚱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각 내용이 다른 영역 내용을 완전히 떠나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각각 엉뚱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서로 완전히 독립해 별개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들이 서로간에
완전히 무관하고 별개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지나친 것이 된다.
이들은 모두 무의 극단이 된다.
그리고
잘못이다.
- 유무 극단을 떠남
실재나 감각현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실답게 참된 진짜로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실다운 어떤 내용은 없다.
본 바탕 실재나, 마음, 그리고 마음으로 얻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리고 참된 진짜의 내용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답지 않다고 해서 이들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각 영역에서 그처럼 생생하게 또
명료하게 각기 얻는다.
또 보거나 얻지 못해도 이런 내용을 얻게 하는 마음을 그처럼 시설해 가리키게 된다.
한편 마음은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실재의 공함도 이와 마찬가지다.
한 주체는 오직
마음이 관계한 내용만 마음영역에서 얻는다.
따라서 마음과의 관계를 떠난 본 바탕 실재는 마음이 끝내 얻지 못한다.
그렇지만, 마음
밖 실재 영역에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얻지 못함을 아주 없음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아주 없다고 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을 떠나야 한다.
이들은 모두 그처럼 실답지 않은 형태로 그처럼 그와 같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들은 서로간에 각기 완전히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또
이들은 서로 완전히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를 통해 이 관계를 이해해보자.
현실에서 거울에 책상 모습이 비추인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책상 모습이 곧 거울이 하는 기능을 하는 거울인 것도 아니다.
거울은 책상 모습이 아니다.
책상 모습이
거울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경우 거울을 떠나 책상 모습이 비추인 것은 아니다.
책상 모습이 거울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거울이 책상 모습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각각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본 바탕 실재를 떠나 감각현실을 얻는 것이 아니다.
실재가 감각현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현실이 실재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외 나머지 내용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감각현실을 떠나 느낌이나 분별을 얻는 것이 아니다.
느낌이나 분별이 감각현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현실이 느낌이나 분별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떠나 감각현실이나 느낌이나 분별을 얻는 것이 아니다.
감각현실이나 느낌이나 분별이 마음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감각현실이나 느낌이나 분별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함께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해야 한다.
○ 불가득과 유무의 극단
유무 판단이 극단에 치우친 사례들을 살폈다.
먼저
불가득 공이란 표현이 유무 가운데 무엇을 나타내는가가 문제된다.
즉 공이란 표현이 유무 가운데 어떤 의미를 나타낸다고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불가득 공은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무엇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또 아무 것도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유무 분별에 치우쳐 이해하면 안 된다.
그런데 공의
표현의 의미를 유무 가운데 어느 하나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공이라는 표현 자체를 놓고 유무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된다.
한편 불가득 문제는 어떤 내용을 '다른 영역에서도' 그대로 그처럼 얻을 수 있는가 여부로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는
별개 문제다.
이 경우 한 영역에서 내용을 얻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도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치우쳐 이해할 수 있다.
또는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하기에 실답지 않다고 이해할 경우
얻어진 내용 자체도 아예 존재성이 없다고 치우쳐 이해할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영역에 아무 내용이 전혀 없다고 치우쳐 이해할 수도 있다.
여하튼 이 각 경우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이해하는 입장이 다 문제된다.
이들은 무언가를 얻는가 여부를 함께 문제삼는다.
예를 들어 실재에서 어떤 내용이라도 얻어낼 수 있는가.
또는
실재에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그대로 얻을 수 있는가.
이런 문제로도 문제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은 서로 혼동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완전히 같은 측면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실재의 공함의 의미를 유무의
양변을 떠나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한편 실재와 현실의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들을 살핀다고 하자.
그리고 실답게 있고 없음의
판단과정에서 유무 어느 한변에 치우친 입장을 떠난다고 하자.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이 관계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각 부분의 성격이 다른 사정을 살핀다고 하자.
즉, 감각현실 안에서 각 부분에서 차별이 있다.
-자신의 몸,
-자신과 비슷한 영희나 철수,
- 다른 생명,
- 그리고 바위나 돌과 같은 무정물 등이다.
이런 차별이 각 부분에서
달리 파악된다.
그런데 이런 차별이 파악되는 배경사정을
마음 밖 내용들과 관련시켜 이해할 여지도 있다.
그런
경우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배경으로 실재를 관련시켜 살펴나갈 수 있게 된다.
이는 유무의 양변에 치우친 입장과 다르다.
현실 내용은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무에 치우친 입장이라고 하자.
그러면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하게
된다.
또 이들 현실 내용은 실재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리고 서로 떨어져 별개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오직 마음만으로
마음안 각 내용의 성격이 다른 사정을 설명해나가려 하게 된다.
그러면 현실의 각 부분이 서로 다른 차별이 있는 사정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또한 각기 마음이 따로인 다수 주체가 서로 엇비슷한 내용을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반복해 얻는 사정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체 현실이 자신 마음이어서 오로지 자신 개인만의 일일 뿐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심지어 현실에서 겪는 자신과 다른 이의
생사고통도 가볍게 여기기 쉽다.
그리고 현실에서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또 반대로 아무 일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한편 유에 치우친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 처럼 이해하게 된다.
어떤 이가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실재를 포함해 그런 내용이 그처럼 각 영역에 그대로 있다.
그래서 그것을 실답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집착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매 상황에서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이런 입장의 잘못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유무 양극단에 치우친 입장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현실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잘 살펴야 한다.
● [pt op tr] fr
○ 마음 밖 실재 영역을 바탕으로 한, 감각현실
○ [pt op tr]
○ 마음 밖 실재 영역을 바탕으로
한, 감각현실
마음 밖 본 바탕 영역에 아무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물론 마음밖 실재는 한 주체가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에서 분별하는 형태로 무엇이 있다거나 없다고 시설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설명의 편의를
위해 임시적으로 본 바탕에 어떤 벽돌들이 있다고 방편상 시설해보자.
그런 가운데 현실을 이해해보기로 하자.
그런 경우
감각현실 각 부분의 성격이 다른 사정을 이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즉 마음 밖에 각기 그런 내용을 엉뚱하게 얻게 하는 부분들을 따로
시설할 수 있다.
즉 본 바탕에 벽돌이나 돌들이 있다.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각 부분에서 그런 차별을 얻게 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한편 다수가 일정한 조건에서 엇비슷한 내용을 함꼐 얻는 관계도 이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주체는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각 주체나 현실 일체는 다 함께 실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실재를 바탕으로 각 주체가 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감각현실을 얻는다.
즉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각 주체는 각
감관을 통해 엉뚱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엇비슷한 감관을 가진 주체들끼리는 이 사정도 서로 엇비슷하다.
그런 사정으로 각 주체가
얻는 현실 내용도 엇비슷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자신이 평소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한 주체의 업은 오직 그 주체의 마음내용 영역만 관련될 뿐이라고 하자.
즉 오직 그 주체의 마음내용만 일정하게 변화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마음 밖 다른 주체들이 영향받는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다른 주체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경우 업은 마음이 오직 마음내용만을 변화시킨다고 이해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도 이를 실재와 관련시켜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업은 자신의 마음이 오직 자신 마음안 내용만을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다
.
그래서 그로 인해 앞에서
실재영역에 시설한 벽돌이 그로 인해 변화한다고 하자.
그리고 나서 각 주체가 그런 실재바탕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각 주체는
그런 감각현실을 마음에서 결과적으로 얻게 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 경우 각 주체가 대하는 현실 일체는 역시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각 주체가 내용을 얻는데 실재가 배경이 되어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관계를
다음처럼 파악하게 된다.
한 주체의 마음으로서 의업 구업 신업 => 실재 => 그 주체 및 다른 주체의 마음내용의 변화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은 본 바탕인 실재를 떠나 있지 않다.
그런 바탕에서 각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데 이는 다른 주체들도 모두 사정이 그와 같다.
그래서 한 주체가 업을 통해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을 변화시킨다고
하자.
그런데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은 본 바탕인 실재를 떠나 있지 않다.
그런데 다른 주체도 마찬가지로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바탕해 임한다.
그래서 다른 주체도 함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서로 간에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관계로 얽히게 된다.
그래서 업장을 쌓게 된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 마음밖 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하는 방식
마음 밖 본 바탕 영역에 아무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그런 경우 마음안 내용의 각
부분의 차별이나 관계성을 이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주체의 '마음 밖' 내용들과 이를 관련시켜 이해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A + B => C 의 화합관계를 놓고 이해하면 쉽다.
현실에서 같은 B
가 관여하지만, 매번 다른 내용이 나타나는 관계가 있다.
비유로 산소 화합물들을 놓고 생각해보자.
탄소 + 산소 =>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CO, CO2]
질소 + 산소 => 이산화질소 [NO2]
철 + 산소 => 산화철
[FeO]
구리 + 산소 => 산화구리 [CuO, Cu2O]
수소 + 산소 => 물 [H2O]
이들은 모두
산소가 관여한다.
그런데 각 경우 화합물 특성이 다 다르다.
이는 물론 산소에 관여하는 내용이 달라서다.
이
관계식에서 우선 확인할 일이 있다.
여기에 산소가 공통적으로 관여한다.
그렇다고 이 모든 차별을 오직 산소만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산소 외의 요소와 관련시켜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화학식을 놓고 마음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해해보자.
위에서 산소가 마음이고 얻어진 결과물을 마음이 얻어낸 내용으로 놓고 살펴보자.
모든 경우에 마음이 관여하는 점은
같다.
그런데 그 마음안 내용이 다른 것은 오직 마음만으로 설명하려면 곤란하다.
한 주체가 대하는 현실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그 마음안 내용들이 위처럼 여러 특성으로 달리 파악된다.
그렇게 각 부분에 차별이 있다.
그
사정을 마음 밖 내용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를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먼저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각 주체는 각 감관을 통해 서로간에 '엉뚱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엇비슷한 감관을 가진 주체들끼리는 이 사정도
서로 엇비슷하다.
그런 사정으로 각 주체가 얻는 현실 내용도 엇비슷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사과를 집어 다른 영희에게
건넨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자신은 눈,귀,코,입,몸으로 다양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영희도 그런 사정을
보고하게 된다.
그래서 한 주체가 어떤 업을 행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가 대하는 현실 일체는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 업으로 다른 주체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은 본 바탕인 실재를 떠나 있지 않다.
그런 바탕에서 각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이 변화되는 상태는 그 상황에서 실재영역도
관련된다.
그런데 다른 주체도 사정이 그와 같다.
그래서 한 주체의 업은 다른 주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
관계를 꿈내용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침대에 누어 영희와 철수가 함께 자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영희가 꿈에서 황금을 잡아
당겼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은 침대에 있는 베개였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베개는 황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꿈에서 꾼
내용은 엉뚱한 내용이다.
그런데 철수는 그 상황에서 꿈을 꾸며 자신의 식탁을 누가 당긴다고 여겼다고 하자.
물론 꿈에서는
이런 상황이 희박하다.
그러나 굳이 비유한다면 이런 상황과 유사하다.
● [pt op tr]
fr
○ 마음의 실재가 공함과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사정
○ [pt op tr]
○ 마음의 실재가 공함과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사정
마음 밖 본
바탕 영역에 아무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그런 경우 마음안 내용의 각 부분의 차별이나 관계성을 이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현실 내용을 좀 더 실답다고 잘못 여길 여지가 커진다.
예를 들어 마음 밖에는 일체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과 비교해보자.
현실 내용은 마음내용이다.
그런데 마음 밖에는 일체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 내용은 좀 더 실답지 않다고 여길 수는 있다.
즉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가운데 그런 내용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밖 본 바탕 영역에 아무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고 현실내용이 실다운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해도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이런 점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꿈과 사정이 마찬가지다.
침대에서 자며 꿈을 꾼다고하자.
그래서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꾼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런 꿈내용을 침대에서 얻을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꿈은 엉뚱하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꿈은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침대에 아무런 내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꿈 밖에 아무 내용도 전혀 없어서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한 것이 아니다.
꿈 밖 침대에 여러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꿈이 실답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꿈이 실답지 않은 것은 침대가 놓인 현실과 꿈이 전혀 엉뚱하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침대와 베개가 놓여 있다고 하자.
그러나 꿈에서는 바다와 황금꿈을 꾼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엉뚱하다.
즉
현실영역에서 얻지 못할 내용을 꿈이 엉뚱하게 얻는다.
그렇기에 꿈은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현실
내용도 사정이 이와 같다.
현실내용 일체의 본 바탕을 실재라고 하자.
한 주체는 그런 실재를 바탕으로 해서 현실내용을
생생하게 매순간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현실 내용을 실재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현실 내용은 엉뚱하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현실을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마음 밖 실재에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 밖 실재 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어서 현실을 실답지 않다고 한 것이 아니다.
실재 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해도 현실이 실답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현실이 실답지 않은 것은 본 바탕 실재와 현실이
전혀 엉뚱하기 때문이다.
실재는 한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엉뚱하다.
즉 본 바탕에서 얻지 못할 내용을 현실에서 엉뚱하게 얻는다.
그렇기에 현실은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함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을 다시 다음처럼 이해해보자.
현실 내용은 각 영역에서 각기 달리 얻는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제각각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서로간에 대단히 엉뚱한 관계로 내용을 얻는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그래서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주체는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각 주체나 현실 일체는 다 함께 그 실재를 떠나지 않는다.
각 주체는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래서 실재를 바탕으로 각 주체가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각 주체는 우선 각기 각
감관별로 다른 내용을 얻는다.
한 주체가 눈을 떠 세상을 대한다고 하자.
그리고 예를 들어 사과를 하나 붙들고 대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이 사과를 눈과 귀, 코, 입, 몸으로 대해 감각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모두 하나의 대상[소연,
소연연]을 같이 대한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각 감관은 하나의 대상을 대해 제각각 다른 내용을 얻는다.
눈으로는 색을
얻는다.
귀로는 소리를 얻는다.
코로는 냄새를 얻는다.
입으로는 맛을 얻는다.
몸으로는 촉감을 얻는다.
이처럼 주체는 각기 각 감관별로 다른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은 서로 비교해본다고 하자.
이들 각각은
이런 감각현실영역에서부터 서로간에 대단히 엉뚱하고 다르다.
한편, 이런 감각현실의 상호관계도 실재와 현실의 관계처럼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으로는 색을 얻는다.
그리고 눈으로 얻는 영역에서는 소리는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눈으로 소리를 얻지 못한다고 하여, 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얻는 색은 귀로 듣는 소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간에 엉뚱하다.
그래서 이는 실답지 않다.
그런데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한 주체는 마음으로 현실에서 일체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마음은 마음 밖의 내용을 끝내
얻지 못한다. 즉, 실재는 공하다.
그런데 마음이 마음 밖 내용을 얻지 못한다고 하여,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마음이 얻는 내용은 마음 밖 실재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간에 엉뚱하다.
그래서 이는 실답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침대와 침대에서 꾼 꿈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한편, 산소가 공통적으로
관여하는 여러 화학식을 비유적으로 살필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소가 수소와 결합하여 물을 얻는다.
산소가 철과 결합하여 산화철이
된다.
이런 식이다.
이들 관계에서 이들 각 요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각각의 화합관계에서 다 같이 산소가
관여해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산소가 수소와 결합해 물이 얻어졌다고 하자.
그러나 화합결과로 얻게 된 결합물에는 산소나 다른
요소, 다른 화합물은 얻을 수 없다.
결과물에는 산소나 그 다른 요소의 특성이 파악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과물을 그대로 앞 부분에
있다고 밀어 넣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화합결과물은 그런 요소들과 같은 지위의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간에
엉뚱하다.
즉 수소 + 산소 => 물의 화합관계가 파악된다고 하자.
그렇다고 물을 수소나 산소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물의 성품이나 모습을 수소나 산소에서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수소나 산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서로 간에 엉뚱하다.
그리고 이들 각 내용들이 서로간에 엉뚱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음이 관계해 얻는 현실
내용도 이런 화합과 성격이 같다.
따라서 이처럼 서로 관계가 엉뚱함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마음이 얻는 내용이 다른
영역에도 그대로 있다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
실재 본 바탕은 얻지 못한다.
그렇지만 일단 비유적으로 벽돌과 같은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각 주체는 각 감관으로 이를 제각각 엉뚱한 내용을 달리 얻는 상태다.
마음은 하나로서 같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모두 마음이 관여해 얻어낸 마음내용인 점에서는 같다.
그럼에도 이들 각 부분의 특성이나 성격이 다르다.
그렇게 되는 사정은 위처럼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런 화학식의 예에 준해서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통해 다음을 이해할 수 있다.
현실내용을 한 영역에서 얻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그 내용을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즉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각기 얻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현실 내용은 서로간에 엉뚱하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을 실답지 않다.
즉 침대에서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꿈에서 그처럼 꾼 것이다.
또 환영이나 그림자와 사정이 같다.
현실의 성격은 이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img326]
실답지않음
08pfl--image/나의실답지않음3.jpg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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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시작시점 2565_0314_235912
■■■ 이하 편집중
● 유식무경 공과 수행 방향
○ [pt op tr]
● 마음내용인 현실의 실재가 공함과 수행
방향
○ 현실에서 수행을 행해야 할 필요성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는다.
이 해결이 필요하다.
수행은 이런 생사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다.
현재 살피는 내용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바위를 밟다가 낭떨어지에서 떨어졌다고 하자.
그래서 팔 다리와 허리가 부러졌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이런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해결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그렇게 고통을 겪는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한편 그렇게 고통에 처하게 된 과정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런 상태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을 해야 한다.
그가 낭떨어지에 떨어진 것은 그 전에 그가 낭떨어지를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걸어간 것은 또 일정한 사정이 있다.
예를 들어 그가 낭떨어지 방향에 보석이 있다고 잘못 여겨
걸어갔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관계를 다음처럼 제시할 수 있다. [ 혹(무명,망집번뇌)- 업 -
고 ]
그런데 낭떨어지에 떨어진 상태에서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것이 가능해도 미리 이를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예를 들어 낭떨어지를 향해 가기 전 앞에 그런 보석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걸음을 멈춘다고 하자.
그러면 그 노력과 시간이 덜 들면서 그 효과는 크다.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 문제도 이와 사정이 같다.
생사고통의 해결을 위해서 각 주체가 노력한다.
그 입장의 차이를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부터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까지 비교해 설펴보자.
이를 통해 현실에서 수행의 방안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
★1★
○ < 일반적인 입장과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잘못된 입장
>
한 사람이 바위를 밟다가 낭떨어지에 떨어졌다고 하자.
이런 경우 대부분 그 바위나 낭떨어지를 외부 세상의 사물들로
여긴다.
또 대부분 그의 발이 바위를 밟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의 발이 밟은 대상을 그 바위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그의 눈이 상대한 외부대상[소연, 소연연]도 그 부분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떨어진 것은 자신의 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심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곧 죽게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죽으면
그로써 자신과 관련된 내용은 이제 전혀 없게 된다고 여긴다. [단멸관]
더 나아가 이들 현실 내용은 곧 영희나 철수가 다
함께 대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또는 본 바탕에 그런 현실과 일치한 내용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을
대단히 실다운 참된 내용으로 여긴다.
이는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잘못 이해한다.
< 경전의 입장 >
그런데 경전에서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마음 밖의
본 바탕 내용은 한 주체가 끝내 얻지 못하여 공하다.
그래서 현실 내용 하나하나는 꿈과 같다.
현실은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황금꿈이나 바다꿈과 성격이 같다.
즉 다른 영역에서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화합해 얻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
하나하나는 실답지 않다.
그래서 이에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주체와 대상[소연,소연연]이라고 여긴 내용도 잘못이다. [유식무경]
즉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부분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또 현실에서 자신이 대하는 대상[소연,소연연]으로 여긴 부분도 그런 성격의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은
죽음으로서 끝이 아니다.
현실에서 매 순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자신 마음 내용의 일부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그렇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게끔 되는 배경사정이 있다.
즉 매순간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바탕해 그렇게
잘못 여기고 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근본 마음의 구조와 기제는 생사를 넘어 이어진다. [근본정신 아뢰야식]
그래서 생사과정에서
한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생사를 이어갈 기간은 무량겁에 걸치게 된다.
그래서 생사과정에서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
한편 이런 구조와
기제도 참된 진짜의 나는 아니다.
<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잘못된 입장 >
한편, 현실 일체가
마음내용임을 강조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칫 현실은 오직 그 주체의 마음내용일 뿐이라고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세상에는 오직 자신 마음 하나만 있다고 잘못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오직 자신만 있는 것이라는 독아론을 잘못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주체는 닭,양,소와
부처님을 포함해 모두 자신 마음에 들어와 있다고 잘못 여길 수도 있다.
또는 여러 주체의 마음이 서로 포함되거나 겹쳐져 있다고 잘못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본 바탕 실재를 얻을 수 없어 공함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일체가 본래 차별이 없음을
강조한다고 하자.
그래서 모든 것이 다 하나로서 같다고 잘못 여기기도 한다.
이는 같고 다름을 얻을 수 없음을 같음으로 잘못
이해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주체와 대상[소연,소연연]의 차별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자칫
현실에서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아예
아무 것도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극단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면 생사고통을
극복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 유무 양극단의 문제점>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도
잘못이다.
그렇지만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도 잘못이다.
이 각 경우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극복하고 해결하는데 문제가 있게 된다.
이 각각의 문제는 이들을 서로 비교해 봄으로써 오히려 잘 파악할 수 있다.
- 현실의 생사고통과 수행의 필요성
세상에 오직 자신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해도
아무렇게 행하면 곤란하다.
자신만 있다해도 지금의 자신은 미래의 자신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오로지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부처님도 계시지만, 한편 생사에 묶인 중생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실재가 공한 가운데 받는 생사고통의 문제
현실 내용은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본
바탕 실재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본 바탕 실재는 공하다.
그래서 현실은 꿈과 같다.
그리고 현실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 자신과 외부세상이 아니다.
즉, 평소 자신으로 여겼던 부분들도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또 평소
외부대상으로 여겼던 부분들도 그런 부분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생사고통이 문제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도
생사고통이 문제되는 사정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자.
- 일반적으로 망집을 제거하기 힘든 현실 사정
-
실상과 관련한 내용을 얻지 못하는 기본 한계
마음은 마음을 떠난 본 바탕의 실재를 본래 직접 얻지 못한다.
한편, 마음은
마음도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한다.
이처럼 평소 그 내용들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 그 내용을 파악하기 곤란하다.
그런
가운데 일반적으로 현실의 본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감각의 생생함 다양함과 느낌 분별의 명료성
한편,
실답지 않는 현실을 실답게 여기게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현실은 꿈과 같다.
그러나 한 주체는 매 순간 감각현실을 대단히 생생하게
얻는다.
그리고 다양한 감각을 중첩해서 얻는다.
이들은 비유하면 실재 영역의 벽돌을 대해 각기 엉뚱한 내용을 얻는 관계다.
동시에 각 감관에서 얻는 내용으로 서로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한 주체는 이들 내용을 동시에 중첩해서 얻는다.
[부대상황의 관계]
그리고 한편 이들에 명료하게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이들은 서로간에 엉뚱하다.
그러나 마음에서
이들을 각기 동시에 함께 얻는다. [5구의식(동연,부동연 5구의식)]
그런 사정으로 이들을 서로 접착시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즉
한 영역에서 얻는 내용이 다른 영역에도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동시부대상황에서 얻어지는 이들을 서로 인과관계에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 다수에게 일정한 관계로 반복하는 현실의 특성
현실 내용은 하나하나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꿈이 아니다.
현실내용은 꿈과 달리, 다수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에 의해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는다.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은 꿈과 달리,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 생사과정의 망상분별
평소 본 바탕과 자신의 마음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마음이
일정한 구조와 기제에 바탕해 내용을 얻는다.
근본 무명[어리석음]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각 내용을 접착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바탕에서 삶을 출발한다. [3능변] [구생기신견]
그러면 이후 매순간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바탕해
현실 내용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현실에서 다시 상을 취하게 된다.
즉, 분별에 바탕해 감각현실의 일부를
취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의 일부를 자신으로 여기게 된다. [분별기신견]
그리고 그 나머지를 외부세상,
외부대상[소연,소연연], 외부물질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를 객관적실재인 것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은
그런 자신과 외부대상의 관계로 얻어지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 바탕에서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아가게 된다.
망집을
기준으로 잡고, 현실을 대하게 되면 모든 것을 이를 기준으로 대하고 처리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그것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 바탕에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그 부분들을 그처럼 잘못 여기고 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일반적으로
망상분별내용을 당연히 옳은 내용으로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 묶이게 된다. [3계]
그런 상태에 처하면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 업장과 번뇌에 묶여 사역당하는 상태
망상분별에 바탕해
삶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일으킨 번뇌에 묶여 심하게 사역을 당하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매순간 어쩔도리
없다고 여기며, 업을 쉴틈없이 바삐 행해나가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자신이 행하는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인 것 자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리고 매순간 그렇게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업의 장애가 쌓이게 된다.
그러면 그 주체가 처음 업을 행할 때 의도한
뜻과 다른 상태에 처하게 된다.
즉 생사고통을 극심히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욕계, 3 악도, 생사고통]
또 그렇게 3
악도에 처하게 되면 다시 그로 인해 매 순간 그처럼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장구하게 묶이게 된다.
그래서 근본 망상분별도 제거하기 힘들게 된다. [ 악순환 ]
- 공 및 유식무경 이해와 생사현실
현실 내용은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엉뚱한 내용이다.
본 바탕 실재는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래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실재의 공함]
현실은 본 바탕 실재에
바탕하여 마음이 화합하여 얻게 된 내용일 뿐이다.
현실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모두 자신 마음에 얻어진 결과물로서 마음내용이다.
현실에서 매 순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평소 외부세상 외부대상[소연,소연연] 외부 물질
객관적 실재로 여기고 대하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평소 일반적으로 잘못 여기고 대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얻은
내용에는 외부대상[소연,소연연]이 없다. [유식무경]
그런데 일정한 계기를 통해 현실 사정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그는 곧바로 생사현실을 벗어날 듯 하다.
그러나 현실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해도 그가 놓인
현실 사정은 일반적인 경우와 여전히 마찬가지다.
즉 다음과 같다.
- 본 사정을 깨달아도, 그로 인해 실상과 마음을 직접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여전히 본 바탕 실재는 얻지 못한다.
- 또 마음은 여전히 그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 한편, 본 사정을 이해해도 그것만으로 평소 얻던 내용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엉뚱한 감각현실은 여전히 생생하고
다양하게 얻는다.
- 그리고 엉뚱한 분별은 매순간 명료하게 일으킨다.
- 그리고 그것은 망집에 바탕해 대할 때 여전히 일정한
관계로 반복함을 경험하게 된다.
- 자신과 외부세상이나 대상[소연,소연연]으로 여긴 그 부분들은 여전히 그런 형태로 반복해 얻게
된다
- 다만 그 상황에서 이들 내용들은, '일반적으로 잘못 여기는 그런 내용이 아님'을 이해하고 대할 뿐이다.
- 한편 과거의
행한 업으로 인한 업장은 여전히 그대로 쌓여 있다.
- 그리고 그런 가운데 과거의 행한 업으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직면하게도
된다.
망집에 바탕해 더 이상 업을 행하지 않는다해도 그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런 바탕에서 일상생활이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그 하나하나 내용이 그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님을 이론상 이해해도 사정은 같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벗어나려고
한다고 하자.
또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수행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식사한 후 계를 지키고 정려 수행을 닦고 경전을 읽고 실천하려 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런 수행 역시 이와 같은
바탕에서 행하게 된다.
즉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그런 부분을 여전히 수행자 자신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부분이 그런
수행을 행하게 한다.
즉, 평소 일정부분을 대샹[소연,소연연]이자 밥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 가운데 밥을 취해 식사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계를 닦게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앉혀서 정려 수행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경전을
붙잡아 읽고 실천하게 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어떤 상황을 적당히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그 자체만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특별히 수행을 행하지 않는 경우에서조차도 이런 상황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그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황이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사정을 이해한 것만으로는 극심한 생사고통을 곧바로
극복하기 힘들다.
그렇게 매순간 임하게 하는 배경사정이 있다.
수행자나 일반인이나 매 순간 생을 출발시킨 망집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망상분별을 증폭해 일으키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런 망집은 현실에서 행하는 망상분별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을 출발하는 이전 단계에서 근본무명을 바탕으로 일으킨 근본 망집이 그 바탕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망집의
해결이 쉽지 않다.
그래서 현실에 그렇게 임하게끔 되는 이들 배경 사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
한편
수행에서는 다음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수행의 목표는 우선 자신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
그런데
수행자는 다시 다른 중생도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목표를 함께 잘 성취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업을 행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했다고 하자.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묶여 손을 톱으로 켜켜이 잘리우는
상태에 놓인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해결이 문제된다.
그래서 그 해결방안을 찾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다음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일반적인 상황에서 생사고통에 대한 방안
우선 극심한 고통을 받는
경우, 별 방안이 없으면 그대로 그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의식을 아예 잃는다고 하자.
아니면 오늘날
병원에서 사용하는 마취제를 투여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좀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이 고통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방안을 고통을 겪을 때마다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굳이 경전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에 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곤란하다.
이런 방식은 부작용이 있다.
이런 방식에 의존하면 한 두번은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약물이라면 이후 계속 많은 양을 섭취해야 효과를 얻게 된다.
또 그
약물 효과가 끝나면 다시 고통에 노출되게끔 된다.
그리고 고통을 해결해주는 한편 다른 많은 심신상 문제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한편 그런 고통을 대할 경우 그 현실은 꿈이라고 여기며 외면하고 무시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또는 마치
관우가 화살을 뽑는 수술을 할 때 바둑에 집중해 견디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최면에 들어 이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고통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방안을 고통을 겪을
때마다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굳이 경전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에 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곤란하다.
비유하면 꿩이 여우를 만났다고 하자.
그런데 모래에 머리를 박고 그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그리고 여우가 다가와 살을 다 파먹게 된다.
그러면 결국 고통을 받는 현실에 노출되게 된다.
한편
최면도 마찬가지다.
최면도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통증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최면을 걸어 그
상황에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고 하자.
이것만 놓고 보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근본 원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서 최면이 풀리면 다시 고통에 노출된다.
그렇다고
계속 최면상태에 들게 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다.
한편 현실 자체가 잘못된 망상분별 상태다.
일정
부분을 일반적으로 칼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즉 칼이 어디 있는가하면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킨다고 하자.
일상생활에서는 이것을
정상이고 옳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고 분별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렇게 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분별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처럼 상을 취해 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최면이란 다시 이
상태에서 한번 더 잘못된 상태를 만드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대부분 칼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최면을 걸어 꽃으로 여기게 한다고 하자.
그 부분을 처음 칼이라고 여기는 것도 문제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더 나아가 그 부분을 꽃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은 더 문제다.
물론 그 상황에서 칼은 고통을 주는 내용일 수 있다.
그리고 최면을 걸어 잘못 인식시킨 꽃은 대신 좋은 내용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통해 고통을 주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우선 계속 지속될 수는 없다.
결국 문제상황에 노출되게 된다.
더욱이 고통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취한 그것은 옳은 내용도 아니다.
이는 잘못된 기본적
망상분별상태에서 한번 더 망상을 증폭해 일으켜 임하게 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그런 방안을 계속 취하면 역시 그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또 최면은 각 주체별로 관념영역에서 효과가 일어난다.
그래서 다수가 관여되는 현실 문제에서는 좋은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다수가 칼이라고 여기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고통을 다수가 겪는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한 사람이 최면에 걸려 그것을 꽃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 수행에서 제시하는 생사고통 대처방안 - 사마타와 무생법인
한편 수행하는 이라면 이런 경우
정려 수행으로 피할 수도 있다. [사마타]
그러나 이런 경우도 완전한 방안은 되지 못한다.
정려 수행에 들 때만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려에 들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상태에서 다시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면
다시 고통상황을 대하게 된다.
때로는 정려에 들기 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를 대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정려 수행도 그 수행자
개인적인 효과에 그치기 쉽다.
그래서 역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는 못한다.
심지어 정려 수행을 닦아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 임한다해도 사정이 같다.
그 자체만 따로 놓고 보면 색계 무색계 일체가 하늘의 상태여서 생사고통에서 먼 상태다.
그렇다해도
그 상태에서는 색탐과 무색탐을 일으키고, 근본 무명 망집에 바탕한다.
그래서 존재에 대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인 이상 역시 생사유전을 결국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러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다시 생사현실의 고통에 노출되게끔 된다.
그래서 이 역시 생사고통 문제에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은 중생제도를 목표로 수행하는 경우에서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색계 무색계는 그 자체만 따로 놓고 보면 하늘의 상태여서 생사고통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색계
무색계 중생도 근본적인 생사문제는 여전히 갖는다.
그래서 장구한 기간을 놓고 보면 결국 생사유전을 하게 된다.
그런 한편,
수명이 긴 장수천 등에서는 중생제도를 행하기 힘든 사정이 있다.
중생이 생사고통을 겪고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태는 욕계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수행자가 색계 무색계에 임하면 중생제도를 행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욕계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욕계 현실 안에서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고 수행자가 함께 임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욕계 현실 그 자체를
그대로 놓고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생제도를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려면 가장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 그대로 평안히 참고 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무생법인을 증득하는
수행과제가 된다.
어떤 이가 실상이 공함을 이해한 바탕이라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현실에서도 평안히
임하는 상태를 성취할 수도 있다. [무생법인]
○ 실상의 공함을 깨달음으로서 생사고통을 벗어남[해탈, 공해탈삼매 ]
그러려면 우선 이론적으로 현실의 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은 본 바탕 실재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은 실재 본 바탕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그대로 곧 공한 실재를
떠나지 않은 상태임을 이해해야 한다. [생사즉 열반, 번뇌즉 해탈 ]
이는 마치 침대에 누어 침대를 떠나지 않은 바탕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는 상태와 같다.
즉, 그 꿈은 침대를 떠나서 따로 얻는 것이 아니다.
한편, 꿈은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꿈 속에서 그 사정을 이해하고 꿈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꿈 속에서 아무리 심한 악몽을 꾸는 상태에 처해도 이런 측면을 이해하고 잘 극복할 수 있다.
결국 생사현실도 사정이 이와
같다.
일반적으로 생사현실에서 생멸이나 생사가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본 바탕 실재에는 그런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본 바탕 실재에서는 생사고통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실재
영역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의 해결을 요청한 적도 없다.
또한 그런 공한 실재는 어떤 수행을 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사현실에서 누구나 그리고 어떤 상태도 모두 공한 실재를 떠나지 않고 있다.
한편 어떤 이가 그런 사정을 이해하던 이해하지
않던, 공한 실재가 다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즉 본 바탕이 공함을 이해한다고 해서 공하지 않던 실재가 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 본 바탕이 공하지 않다고 여긴다고 해서 공한 실재가 공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한 실재에서는 본래부터 생사고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오로지 이 측면만 고려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현실은 마치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래서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 문제는 그냥 그대로 방치하고 그대로 두어도 무관할 듯 하다.
본 바탕은 그러하다.
그리고 생사현실은
하나하나 침대에서 꾸는 바다꿈과 성격이 같다.
만일 생사현실이 완전히 꿈과 같다고 하자.
그렇다면 꿈처럼 그대로 방치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지만, 정작 꿈이 아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것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하는
배경 사정이 있다.
그런 사정들 때문에 각 주체는 생사고통을 꿈과 달리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매순간 생생하게 겪는다.
그래서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임에도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실답게 겪는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이를 극복할
수행이 별도로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사고통을 꿈과 달리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는 정도에 비례해 수행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이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다.
그래서 이 생사현실 안에서 본 바탕이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의미를 갖는다.
어떤 이가 그런 사정을 이해하던 이해하지 않던, 공한 실재가 다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본 바탕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고,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 본
바탕의 측면을 기준으로 99% 정도 취한 가운데 생사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고통을 대하는 상황에서도 이를
꿈처럼 관해서 평안히 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악몽을 꿀 때 꿈 안에서 그것이 현실에서는 얻지 못하는 꿈임을 자각하고 대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겪는 고통을 제거하는데 현실의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본 바탕이
공함믈 현실에서 잘 관하고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해탈삼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이 그런 공함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님을 한편 관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여여하게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내용이 곧 『반야심경』첫 부분에서
제시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런 내용이
바로 이와 관련된다.
즉 본 바탕의 이런 사정을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것이 생사현실에서 겪는 일체의 고액을 벗어나
건너는 원칙적인 방안이 된다.
한편, 현실 안에서는 감각현실을 대하는 가운데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적으로 자신이 어디 있는가라고 물을 때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을 취해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런 것이 일정한 생각[상(想
Saṃjña)]을 바탕으로 감각현실 부분에서 상(相 Lakṣaṇa )을 취하는 현상이다.
그것이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겪게 하는 망상분별
현상이다.
그런데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그런 관념분별은 얻을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그런 자세로 임하면 곤란하다. [무상해탈삼매]
그래서 감각현실에는 그런 분별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그처럼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감각현실에는 생멸을 얻을
수 없음도 이해하게 된다.
현실에서 생멸한다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감각현실 영역에서 각 내용이 들고 나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경우도 그렇게 가리키는 그 부분에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면
생사고통으로 여기고 상황에서도 평안히 잘 안인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킨 상황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임하기 힘들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는 이론처럼 평안하게 대하기 곤란하다.
물론 망집에 바탕해 상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일으킨 분별에 바탕해 집착하고 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론처럼 그대로 현실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사현실이 큰 고통을 주지 않을 때는 굳이 수행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큰 문제없이 임할 수 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해결이 문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극진한 수행
노력을 통해
극한 고통을 겪는 상태에서도 이론 그대로 평안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본래 생멸이 없음을
단순히 이론으로만 이해한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
생사현실에서 직접 그 내용을 적용해 임하게 된 상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그
내용을 스스로 인증하고 증득한 상태가 된다. [무생법인]
그렇게 되면 생사현실 일체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어떤 상태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수준높은 수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즉, 극심한 생사고통에 처해도 이전 망집 상태로 물러나지
않게 된다. [불퇴전위]
그래서 한층 수준이 높은 수행단계에 오르게 된다.
○ 일반적인 상황에서 무생법인의
증득의 어려움
일반적으로는 수행자가 취하는 방안을 곧바로 실천해 성취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수행을 행하더라도 현실에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론상 실상이 공함 등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다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평안히 참고 임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안인을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불퇴전위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
앞과 같은 사정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인이 망상을 일으켜 임하게 된 배경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당면해 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에는
망집상태를 전제로 해서 생사고통을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고통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노력을 먼저 취해야 한다.
그러려면 생사 현실 내에서도 우선 인과를 넓고 길고 깊게 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 단멸관을 제거해야 한다.
현재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이런 내용이 생사과정에서 없어진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자신의
생사는 이어진다는 사정을 먼저 잘 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떠 대할 때 스스로 자신이나 세상으로 여긴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것은 눈만 감아도 없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눈을 감아도 자신은 여전이 있음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감각현실이나 분별은 여전히 행할 수 있다.
그런데 나머지 다른 감관을 통해 얻은 내용들의 경우도 사정이 이와 같다.
즉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 내용도 사정이 앞과 같다.
따라서 그처럼 감각한 내용 가운데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 내용은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대신 감각을 하는
상황이나 하지 않는 상황에서나 계속 있다고 할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다시 의식을 잃어 감각뿐 아니라, 분별까지
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이를 옆에서 간호하는 이는 그가 여전히 계속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숨 쉬고
일반적인 생존활동을 계속 행한다.
한편, 그런 그가 의식에서 깨어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역시 그리고 의식을 잃기 전 상황에
이어서 삶을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는 의식을 깨어난 순간 없었던 자신이 갑자기 새로 생겨나게 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의식을
상실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가 계속 존재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감각과 분별을 행하는 순간에서나, 그 둘을 못하는
순간에서도
다 함께 계속 존재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그가 생사과정에서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후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이나 들어간 이후로도 계속 존재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만일
화장터에 들어간 이후로는 그런 내용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화장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그는 자신의 삶의 기간으로 고려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현재에서도 함께 찾을 수 있다.
그것을 근본정신 또는
아뢰야식 제 8 식 등으로 칭하게 된다.
그런 근본 정신의 구조와 기제는 생사 과정에서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상속된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전후에 걸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관계가 생전과 생후 그리고 사후로도 다르지 않다.
그 전후관계가
달라져야 할 사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근본정신은 생사과정에서 그런 상태로 무량겁을 통해 이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해 한 주체가 자신과 관련한 생사를 고려할 기간으로 무량겁을 잡게 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유가사지론』제 51 권 부분을
참조하면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매순간 이런 일정한 내용을 붙잡고 자신과 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여기에는 그런
사정이 배경이 된다.
즉, 각 주체는 일정한 정신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마음에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들 내용을 이처럼 잘못 여기고 대하게 되는 것 뿐이다.
우선 한 주체는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두 재료를 동시에 얻는 상황에서 이 둘을 접착시켜 대한다.
그런 가운데 관념영역에서 망상분별을 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과 관련해서는 다음처럼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즉,
마음에서 얻는 감각현실 등의 일 부분이 곧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근본 정신의 구조와 기제는 생사 과정에서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상속된다.
그래서 이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또는 이해하지 못해도 경전에서 제시해주는
내용을 잘 믿고 받아들여 수행을 실천해야 한다 .
그런 가운데 이를 잘 대비해야 한다.
○ 구체적 생사과정을
모르는 일반적인 경우의 선택방향
그런데 만일 이들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또 경전에서 제시해주는 내용들을
믿어 받아들이지도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생사현실에서 각 경우수를 나눠 생각해야 한다.
우선 이런 내용이 잘못된
내용이라고 하자.
그래서 죽음 이후에는 자신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다고 하자. [단멸관]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는 생사현실안에서
오직 자신의 현재의 삶만 놓고 고려해야 한다.
즉 죽기 전까지만 놓고 그 안에서 가장 좋은 상태를 성취하려고 임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래서 죽음 이후 자신의 생사가 다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다해도 자신이
현생에 행한 업이 사후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역시 앞과 같은 자세를 취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현생에 행한 업이 다음 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자. [이숙]
그렇다면 이것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번 생에
행한 업이 이후 생에서 어떤 과보를 받게 하는지 까지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생만 놓고 보면 좋음을 가져다 준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후 생에서는 고통을 대단히 장구하게 가져다 준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이것을 미리 고려해 피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이 경우 현생만 고려한 경우와 이런 내용을 함께 다 고려한 경우는 정반대가 된다.
그래서 어느 기간까지 고려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학생이 방학기간만 놓고 고려하는 경우의 문제와 같다.
어떤 학생이 졸업과 진학 취직
결혼문제까지 고려하고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앞 경우와 극단적으로 매 순간 선택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게 된다.
한편
이는 농부가 행하는 농사와 사정이 같다.
농부가 봄 춘공기에 당장만 고려한다고 하자.
그러면 종자를 모두 식량으로 삼아 먹는 것이
낫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종자를 밭에 뿌리면 그 종자 당 100 배의 수확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옥수수를 심으면
옥수수가 그렇게 열린다.
또 벼를 심으면 벼 이삭당 그런 볍씨가 열린다.
그래서 농부가 봄 기간만 놓고 고려하는 경우와
가을까지 함께 고려하는 경우는 그 판단 내용이 서로 정반대가 되게 된다.
그런데 그 기간은 예를 들어 인삼농사나 숲 나무를
재배하는 경우는 또 달라진다.
생사현실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이 각 경우를 놓고 잘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 관계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이가 전해주는 내용도 그대로 믿고 실천해가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자.
그렇다면 마치 도박하는 이가 가능한 각 경우를 놓고 현명하게 선택하듯 임해야 한다. .
그래서 그런 경우라면 이 어느
경우라고 해도 좋다고 할 형태를 취해 임하는 것이 낫다.
예를 들어 먼저 생사가 무량하게 이어진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한
생에 행한 업이 이후 생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무량하게 좋게 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는 그런
내용이 옳은 경우에만 효용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생사가 단지 이번 생 한번 뿐이라고 가정하자.
그 경우에도 앞
방안을 이 경우에도 가장 좋은 상태가 되게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게 임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모두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생사를 벗어나고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얻게 하는
수행방안이 제시된다.
그래서 그런 수행을 현실에서 행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위한 수행 자체를 매 순간 유희 자재
신통하게 임한다.
그래서 매 순간 즐겁게 잘 이를 행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어떤 경우라고 해도 가장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다.
즉, 그 한순간만 놓고 보아도 그것이 좋다.
그리고 다시 한 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그 방안이 좋다.
그런데 무량한
생사가 이어진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이 방안이 좋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생사의 묶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또 그런 측면에서도 이 방안이 좋다.
그래서 이렇게 임하게 되면 어느 경우에도 좋은 상태를 얻게 된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경우에는 그런 내용을 취해 임하는 것이 낫다.
구체적 내용을 잘 모른다. 믿지도 못한다.
그런
경우 가능한 모든 경우를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된다.
그래서 결국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행방안을 취하여
즐겁게 잘 실천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생사과정에서 이후 생을 전제로 한다고 하자.
즉 단멸관을
취하지 않고 사후의 삶을 함께 고려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인천교적인 가르침이 먼저 필요하다.
즉 길게
생사과정을 놓고 볼 때
이번 생에 행한 업으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면 안 된다.
그래서 우선 당장은 3 악도에
처하게 되면 안 된다.
그리고 최소한 인간과 하늘을 오가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10 선법을 닦아야
한다.
마음에서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제거해야 한다. [무탐, 무진, 무치 ]
마음에 대신 다른 생명을 이익되게 할 서원을 채우고,
자비, 지헤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연히
거짓된 내용,
서로간을 이간시키고 싸우게 하는 내용,
다른
이를 비난하고 욕하는 내용,
기이한 내용을 말하면 안 된다.
[ 불망어, 불양설, 불악구, 불기어]
대신 정직한 말,
다툼을 화해시키는 말,
부드럽고 사랑스런 말,
성실한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재산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가족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 불살, 불여취, 불사음 ]
대신 다른 생명을 죽음에서 벗어나고 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방생)
그리고 아끼는
인색한 마음을 버리고 다른 생명이 필요한 것을 보시해야 한다. (보시)
그리고 청정하고 깨끗한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정행)
이런 10 선법을 성취해야 3 악도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인간과 하늘세계에 오갈 수 있다.
하늘세계에 오르려면 또 그 하늘세계를 믿고 따른 것이 요구된다.
이런 것이 인천교적인 기본 가르침이 된다.
이는
아직 자신과 세상에 대한 망집을 전제로 한 내용이 된다.
즉 신견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를 전제한다.
그래서 기본적인 내용에
그친다.
부처님은 이들 내용을 제시한다.
다만, 부처님은 이를 수행의 최종목표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수준이
낮은 이를 위한 임시 방편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는 수행의 기본적 내용이다.
3 악도를 벗어나 인간과 하늘세계에 이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10 선법 내용들을 기본적으로 잘 성취해야 한다.
다만 이는 수행에 있어 가장 기본적 내용이다.
그래서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수행은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남과 함께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일단 기본 목표로 한다. [심해탈, 혜해탈, 회신멸지, 아라한의 상태]
더 나아가 다른 중생도 그처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함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우선 생사고통의 예방노력은 필요하다.
즉 그런 상태에서 3 악도에 묶일 업을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과거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계의 수행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수행을 막 시작해 망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상태라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는 이런 예방적 수행도 대단히
힘들다.
일반적인 경우는 더더욱 사정이 그렇다.
그래서 이런 계의 기본 덕목부터 잘 성취해야 한다.
계의 덕목을 실천하면 처음 쌓여진 업의 장애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다 제거되면 이후 그로 인해
복덕자량이 쌓이게 된다.
마치 은행 잔고와 같다.
부채가 많은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 꾸준히 예금을 하면 우선
그 부채가 줄어든다.
그리고 부채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하자.
그 이후 예금을 꾸준히 하면 예금잔고가 축적되게 된다.
이런
사정과 같다.
그렇게 업의 장애가 제거되고 복덕이 쌓인다고 하자.
그러면 비로소 번뇌의 사역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래서 이후 수행을 좀 더 깊게 행할 바탕이 마련된다.
즉 정려와 반야 지혜를 닦을 바탕이 마련된다.
그러나 아직
업장이 남아 있고 복덕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자.
그러면 이런 수행을 행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업장이 남아서
여전히 감옥에 갇혀 사역을 바삐 당해야 하는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정려나 반야 수행을 닦기 힘들게 된다.
마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태와 같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자동차가 부서지고 자신도 심한 부상을 받게 된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는 정려 삼매를 닦기가 힘들다.
더 나아가 깊은 지혜 반야를 닦는 것도 쉽지 않다.
망집 번뇌에 묶이면 번뇌가
그를 묶어 이리저리 쉼없이 바삐 이끌고 다니게 된다.
도무지 평안하게 수행에 전념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먼저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복덕 자량을 먼저 잘 쌓아야 한다.
그러면 이후 이런 바탕에서 정려와 반야 수행을 닦아 지혜자량을
구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복덕 자량을 쌓는 계를 성취하는 고비점에 안인 수행의 성취가 있다.
이 부분이 계를
성취하는데 가장 어려운 고비점이 된다.
계의 덕목에 보시, 정계, 안인, 정진 등의 항목이 있다.
이 가운데 보시는 가장
기초적인 수행 덕목이다.
한편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정계[지계]의 덕목에 해당한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등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역시 수행 처음에는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하면 성취해갈 수 있다.
보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음을 베푸는 성격이다.
정계는 자신의 좋음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는
성격이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뺏지 않고 침해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좋음을 추구하면 된다.
그런데 안인[인욕]수행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이는 자신이 집착하던 것을 다른 상대로부터 침해받는 상황에서 문제된다.
이는 물론 다양한 배경 사정 때문에
겪게 된다.
이는 과거에 자신이 행한 업으로 인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업장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서 겪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은 경우일 수도 물론 있다.
즉, 처음 상대의 악행으로 이런 상태에 처할 경우도 있다.
배경 사정이 어떻든 그 자신이 당장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하자.
즉, 상대가 자신의 신체와 생명을
위협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가 끊긴다. 그리고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하자.
한편, 자신의 재산을 뺏기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 침해받는 경우도 있다.
안인 덕목이 요구되는 상황은 이런 성격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히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분노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상대에 대해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상대가 침해한 것에 대해 보복하고 해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그 상대에 자비심을 일으켜 용서하고 포용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널리 고통을 벗어나게 하고 좋게 이끌려는 서원을 일으켜 임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침해를 받는 상태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런 안인의 덕목을 잘 성취해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아 꿈과 같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할 수 있게 된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임하게 된다고 하자.
그래서 안인 수행을 성취하고 물러나지 않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계를 모두 잘 성취하고 높은 수행단계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안인을 성취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금강경』에 나오는 가리왕의 내용이 이와 관련된다.
가리왕이 수행자를 억울하게 붙잡아 사지를 절단하고 고문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인을 성취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
그런데 어떤 이가 수행에 정진하여 그런 상태를 성취했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해도 그것은 일반적으로 대단히 희박한
사례가 된다.
그리고 현실 대부분의 다른 중생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거의 예외없이 망집 상태를 전제로 반응해 임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하려는 수행자는 이런 사정을 기본적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기본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한편, 그런 가운데 어떤 극한 고통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자.
그리고 스스로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물론 그 하나하나가 실답지 않다.
그리고 자신은 어떤 고통도 평안히 임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라고 해도 여전히 생사고통에 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생사고통을 예방할 수행을 행해야
한다.
즉, 계의 덕목을 꾸준히 성취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현실에 그렇게 임하는 것은 자신의 수행이나 중생제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통을 스스로 매번 자처해서 받는 고행 수행이 있다.
그렇게 고행을 닦는 수행은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 처하면 오히려 다른 중생제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업장을 제거하지 못해 그 과보로 고통을 받는 경우는 한층 더 문제가 된다.
그런 경우는 그 자신부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불과하다.
그런 상태에서는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도 힘들게 된다.
즉 자신부터 업장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래서 그 자신부터 감옥에 갇혀있다고 하자 .
또는 자신부터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시달린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부터 극히 빈곤하고, 다른 이에게 묶여 지내야 한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부터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즉 그 자신부터 다른 이로부터 도움을 받아야할 상태다.
그리고 자신부터 고통에서 벗어나기 바쁘게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는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힘들게 된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생사현실에서 자신부터 계의 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즉 보시, 정계, 안인, 정진의 수행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업의 장애를 쌓을 업을 중단하고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부터 쌓여진 업장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현실에서 복덕 자량을 쌓고 구족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임해야 한다.
다른 중생들을 제도하려면 중생들이 이해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다시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는 예방적 수행을 먼저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계의 덕목을 먼저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 수행과정부터 쉽지 않다.
그래서 실답지 않음에 대한 이해로 이를 극복하고 성취해야 한다.
즉,
예방적 수행과정의 어려움을 그런 자세로 극복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예방적 수행부터 이를 통해 잘 성취하는 것이 낫다.
- 무의 극단에 치우친 수행 입장과 현실적 어려움
앞에서 그런 바탕에서 행할
수행방안의 대강을 살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행방안을 다시 자세히 살펴야 한다.
○
꿈과 같지만, 꿈이 아닌 현실의 문제점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그렇지만, 생사현실은 또 꿈과는 다르다.
만일 정말 현실이 꿈과 완전히 같다고 하자.
그렇다면 설령 현실에서 고통을 겪어도 그대로 방치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꿈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꾼 경우와 마찬가지다.
꿈은 다수가 함께 겪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꿈은 깨나면 그만이다.
반복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현실이 완전히 꿈이라면 그대로 방치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실은 하나하나 꿈과 성격이 같다.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 다르다. 꿈이 아니다.
현실 내용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어 나가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각 주체는 이를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이는 마치 영화나 만화그림이나 게임과 성격이 같다.
그 하나하나의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다수 주체가 일정한 관계로 반복해 그것을 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자.
그림으로 그린 내용은 현실 영역의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도 그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런 모습이 매번 그렇게 나타난다.
그래서 이에 초점을 맞추면 그런 내용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며 집착하게 된다.
한편 오늘날 전자게임에서 일정 부분에 커서를 대면 아이템을 얻게 된다고 하자.
그 화면 내용이나 아이템은 다른 현실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러나 다수가 그런 게임을 그런 조건에서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내용을
그처럼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이에 초점을 맞추면 그것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며 집착하게 된다.
현실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 내용 하나하나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리고 각 주체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즉 대부분 일정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다른 부분은 외부 세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그 주체의 마음 내용이다.
그렇지만, 우선 각 주체가 각 마음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
즉 우선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켜 얻는다.
즉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지만, 그것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본 바탕인 실재영역에도 아무런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는 감각현실을 매 순간 대단히 생생하게 얻는다.
한편 이에 대해 행하는 분별은 대단히 명료하게 일으켜
행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다수 주체가 일정 시기 상황에서 일정 조건에서 무량겁에 그런 관계로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이를 참된 진짜 내용으로 실다운 것으로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된다.
그리고 그에 집착을 갖고 대하게 된다.
그렇다해도 그
하나하나는 역시 꿈과 성격이 같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는 그런 성격의 내용도 아니다.
-- 대상과 주관이 아니라고 해도 -- 그 부분 자체를 못 얻는 것은 아니다.
대상과 주관이 아니라고 해도 대상과 주관으로 여기고 대한 내용 자체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자동차를
거리에서 운전하고 있다고 하자.
여기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모습은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 자동차나 거리모습
들은 외부세상이나 외부대상이 아니다.
그런 사정을 어떤 이가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럼에도 그런 모습은 그처럼 얻는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할 때 자신과 외부세상으로 여기게끔 하는 형태로 주어진다.
즉 액셀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나아간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멈춘다.
핸들을 붙잡고 돌리면 차가 방향을 돌린다.
이들은 물론 서로 인과관계 있지 않다.
다만 동시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들 내용을 대하는 상황에서는 인과관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자.
차를 운전하고 달려가는 이런 상황에서 핸들을 아무렇게 잡고 달릴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길에 그냥
자동차를 세우고 쉴 수도 없다.
- 태생적인 배경 [ 근본 망집 및 구생기신견 ]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 부분은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이 아니다.
또 나머지 부분은 자신이 이해하는
외부 세상이 아니다.
또 외부대상이나 외부 물질도 아니다.
그리고 다수가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매순간, 그 각 내용을 그처럼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그가 그렇게
여기고 대하게 된 데에는 배경 사정이 있다.
그것은 그가 생을 출발하기 이전에 그렇게 망집에 바탕해 묶여진 것이다.
그렇게 묶여진
상태에서 생을 출발하였다. [3능변]
그리고 그런 정신 구조와 기제에서 매 순간 현실을 대하면 그처럼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된다.
그런 배경 사정 때문에 생사현실에 임하는 이상 그 상황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의 몸으로 여기는
것은 사실상 자신이 감각한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곧바로 그 현실 상황에서
벗어나올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늦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모임에 나갔다.
그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머리나 손과 발에 대해 일체 분별을 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모임에 자신의 머리나 손과 발을
떼놓고 가게 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들 내용은 생을 출발하기 전의 사정에
바탕한다.
생을 출발하기 전에 근본정신과 제 7 식의 관계에서 그렇게 망집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매순간 여기고
붙잡는다. [아견, 아치, 아애, 아만 ]
그런 사정을 바탕으로 각 주체는 현실에서 태어나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표면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그런 배경에서 그처럼 얻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후 분별을 행할 때 다시 이를 바탕으로 그런
잘못된 분별을 행하게 된다. [분별기신견]
이 역시 잘못된 분별이다.
그래서 역시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곧바로 바탕이 되는 근본망집까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생사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내용이 된다.
그런 점에서 분별기에 행하는 신견은 2 차적인 망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곤란하다.
이 2 차적인 망집이 다시 심각한 부작용을 생사과정에서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는 칼을 베어 상처가 나는 경우와 같다.
그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염증이 생긴다고 하자.
이는 처음 칼을 벤 상처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처로 다시 피가 흐르고 염증이 생긴다.
이 경우 이것을 방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다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2 차적인 증상도 잘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음식을 짜게 먹어 혈압이 높다고 하자.
혈압은 음식에 의해 나타났다.
그렇지만, 높은 혈압을 방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다시 신장이나 심장 및 혈관 등에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생사과정에서 처음 망집을 일으킨 문제도 사정이 이와 같다.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제 7 식이
망집을 일으켜 생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바탕해 생사현실 안에서 망상분별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
즉 감각하는 현실을 대해
일정부분을 붙잡고 자신과 외부세상으로 여기며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업을 행하게 된다.
이것을 방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망집에 바탕해 행한 업으로 인해
다시 욕계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테에 묶이게 된다.
그래서 이를 방치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이를 제거하고 수행으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망집도 이와 함께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수행에 임해야 한다.
○ 주체와 대상이 아님과 현실 수행
일체 현실은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주체가 이런 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긴다.
또한 대부분 그런 부분을 그처럼 자신이나 외부세상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제각각 외부 대상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고 대하는 주체가 현실에 대단히 많다.
현실에서 그처럼 이를 그처럼 실답게 잘못 대한다.
그리고 그 정도에 비례해 이를 극복할 수행이 필요하게 된다.
● [pt op tr]
fr
●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사정
○ [pt op tr]
●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사정
○ 감각현실에 대한 망상분별
-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우선 자신이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정신내의) 내부'대상'이 되어줄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감각현실 I,W,O,A 부분은 이에 대해 일으킨
여러 관념분별들 B들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 한편 이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 I,W,O,A 부분에 바로 그런
관념내용들 B들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는 그런 감각현실 I,W,O,A 부분이 바로 그런 관념내용들 B들'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즉 감각현실 I,W,O,A 부분을 곧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 등이 어디 있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I,W,O,A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즉 그는 바로 그런 부분이 곧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 등인 것으로 잘못 여기고 그렇게
행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감각현실 전체에서 그런 I,W,O,A 부분에서 상을 취해 임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에서 상을
취해 임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런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여러 망상분별을 다시 증폭시켜 나간다.
=>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은 바로 이런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망상분별의 제거가 중요하다.
그런 망상분별을 행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어떤 이는 감각현실을
대하는 가운데 일정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또는 관념분별을 먼저 일으킨 다음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에 상응할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렇게 일으킨 관념분별[상想 Saṃjña]을 바탕으로 감각현실을 대한다.
그래서 그런 분별을
바탕으로 하여 감각현실 부분을 나누고 묶어 취한다.
그리고 그렇게 묶고 나눈 감각현실 일정 부분[상(相 Lakṣaṇa]이 곧 그런
것이라고 여기고 대하게 된다.
결국 이는 'B가 없는' A 부분에서 상을 취하는 현상이다.
또 'B가 없는' A
부분을 곧 B라고 잘못 여기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를 망상분별이라고 한다.
이런 망상분별은 분별을 행하는 영역에서
행해진다.
그런데 그 대상과 재료는 그런 분별이 없는 감각현실 영역 등을 대상으로 한다.
즉, 위와 같은 경우는 감각현실을 재료로
해서, 분별영역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본 바탕이 되는 실상(實相)이나,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망상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본 바탕에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그대로 있다고 망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는 느낌이나 언어에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그대로 있다고 망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렇게 임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것은 각 주체가 그런
A 부분 등을 대할 때 그런 B 라는 분별을 반복해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A 부분을 대하면 꽃이라는 생각을 자주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나 다른 부분을 대할 때는 또 그렇지 않다.
그런 사정 때문에 그는 A 부분이 곧 B 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이가 연필을 마음에서 떠올렸다고 하자.
그리고 연필을
떠올리면 다시 늘 기차를 떠올린다고 하자.
예를 들어 연필은 길다. 길은 것은 기차다. 이런 식으로 연상해 떠올릴 수 있다.
또는
연필과 기차에 얽힌 개인의 과거 추억때문에 연필을 대하면 늘 기차를 떠올릴 수도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연필이 기차는 아니다.
또 그런 연필이란 생각에 기차란 생각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망상환자의 경우를 놓고 보자.
어떤
망상환자가 다른 것을 대할 때는 다른 이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꽃만 보면 자신의 할머니라고 여기고 대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은 할머니가 아니다. 거기에는 할머니가 없다.
그런데도 이런 증상을 심하게 일으키면 망상환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분별을 반복해 일으키는 경우도 사정이 이와 같다.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감각현실에 관념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관념은 감각현실을 구성요소로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대하면서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일정부분을 대하면서 곧 '자신' '외부세상' '타인(영희,철수)' '꽃' 등으로 잘못 여기고 대한다.
이를 망상분별이라고 하게 된다.
이는 잘못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자신이 대하는 감각현실 부분이 그런 내용이라고 굳게 믿고 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그런 판단이 옳은 것은 너무 자명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옳음은 척 보면 척 아는 내용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진리라고까지 여긴다.
하얀 색이 좋은가는 사람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저 하얀 부분이 꽃이라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여기게 되는 진리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에서도 반드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인을 놓고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얀 부분을 대하면서 과거의 연인을 떠올려 시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일정 부분을 대해서 늘 고정된
관념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사람을 넘어서 다른 생명들까지 고려하면
그 사정은 더욱 그러하다.
한 사람을 놓고 보아도 하나의 부분을 대할 때마다 일으키는 관념이 다 다르다.
그 이전에 무엇을
생각했고 어떤 경험을 했는가에 따라 일으키는 관념이 다르다.
하나의 부분을 대할 경우에도 그 시기나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르다.
그래서 자신이 일정부분을 대해 일으킨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감각현실 자체는 관념분별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런 감각현실을 떠나 그런 관념분별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그렇다해도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그런
관념분별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이 내용을 이해하면 이후 내용은 모두
이 바탕에서 잘못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바탕에서 모든 것을 대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망상분별의 제거가 한층 더 힘들고 어렵게 된다.
○ 자신과 외부에
대한 망상분별
- 앞에서 가장 기본적인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과정을 살폈다.
그런데 이런 형태로 우선 처음 감각현실
I 부분을 스스로 자신, 또는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나머지 부분 W 부분을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계로
'잘못' 여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 사정들이 있다.
우선 감각현실 가운데 일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자신이 감각한 감각현실이 있다고 하자.
평소 이 가운데 일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평소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켜본다고 하자.
물론 색,수,상,행,식 전체나 일부를 자신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감각현실 가운데 일 부분을 자신이라고 가리키게 된다.
그런 부분을 자신의
몸으로 평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데에는 일정한 사정이 있다.
눈을 뜬 가운데
대하면 다른 부분은 들고 남이 있다.
그러나 그 부분만 늘 일정하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또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고 하면 그 부분만 따라 움직인다.
또 그 부분이 다른 부분에 닿으면 촉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 부분이 주관이 위치한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긴다.
이제 그처럼 자신의 몸으로 여기는 부분을 I 라고
표시해보자.
그래서 그런 I 부분을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신견]
즉 그런 I 부분을 자신으로 여겨 그처럼 상을 취한다.
[아상]
이렇게 감각현실 가운데 일정 I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다고 하자.
이 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W 라고 표시해보자.
그러면 이로 인해 나머지 부분 W 는 모두 자신 밖에 있는 외부세계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 각 부분을 다른 사람, 생명, 무정물(바위, 담) 등으로 잘못 여긴다.
이 W 가운데 일부분에 처음 문제삼은 사과 즉 A가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A 부분은 외부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처럼 처음 자신과 외부세상을
가른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에서 일으키는 잘못된 망상분별의 한 내용이 된다.
이하에서는 이런 형태로 이들 각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하나하나 살펴나가기로 한다.
[ 이하, 내용 보충 및 순서
정리+ 중복부분 제거 필요 ]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
○
한편 그런 A 부분은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 볼 때 눈이란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은 감각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I 부분이 다른 부분을 상대할 때 다른 감각내용(촉각 등)을 얻는 경험을 반복하는 가운데 갖게 된다.
-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뜬 가운데 사과하나를 붙잡는다고 하자.
그 상태에서 그에 대해 눈,귀,코,입,몸 등으로 색,
소리,향기,맛,촉감의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A 를 손을 대 만진다고 하자. 그 경우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이 붙잡고 대하는 부분을 그런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즉 그런 촉감을 얻게 된 대상을 A 라고 잘못 여긴다.
눈으로 볼 때 이들 감관이 대하면 그런 감각을 얻는 경험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그 상황에서
눈을 감고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런 내용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 또 자신이 무언가를 손으로 쥐거나 동작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그처럼 손으로 쥐거나 동작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동작이 영향을 미치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앞과 사정이 같다.
예를 들어 위 예에서 그 A를 손으로 쥔다고 하자. 그리고 그 A 를 굴린다고 하자.
이 경우
그 A 부분이 손에 붙잡혀지고, 그리고 그 A 가 굴러가는 내용을 관찰하게 된다.
이 경우 손으로 쥔 동작의 대상, 굴릴 때 굴러가고 그
영향을 받은 대상은 모두 A 부분 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관찰과 경험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그렇게 동작을 취하는 상황에서 눈을 감는다고 하자.
그래서 A 를 얻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도 위 내용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한편 그런 A 부분은 자신의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성격이 다른 '외부물질'로 잘못
여긴다.
우선 앞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정신작용 및 마음은 감각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I 부분에 위치한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I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마음 밖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마음과는 성격이 다른 내용으로서
외부물질로 잘못 여기게 된다.
- 한편 어떤 이가 A 라는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런
내용을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A 부분을 자신과
영희, 철수가 함께 대한다고 하자.
이 경우 영희 철수도 자신과 같은 내용을 경험하고 보고하게 된다.
따라서 그런 잘못된 판단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A 부분은 자신의 마음이 얻어내는 감각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가 자신의 마음안 내용을
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각상을 함께 대한다고 하자.
영희는 뒤에서 보고, 철수는 옆에서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
제각각 다른 감각현실을 얻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얻는 A 부분을 모든 이가 대하는 객관적 실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A를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다시 다음과 같이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눈을 통해 무언가 본다고
하자.
이 경우 영희나 철수의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기도 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영희나 철수의 각 감관이 대한 외부대상이기도 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
또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쥐거나 동작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영희나 철수가 취한 동작의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동작이 영향을 미치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 한편 이는
자신이나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대상'이다.
- 그런데 이를 영희나 철수가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대상'이기도 한 것으로 잘못
여긴다.
- 한편 이 상황에서 그 부분에 바로 그런 관념분별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는 그
부분이 바로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어떤 이가 위 상황에서 꽃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위와 같은 망집을 바탕으로 그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즉 그는 바로 그런 부분이 곧 꽃이라고 잘못 여기고 그렇게
행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감각현실 전체에서 그런 부분에서 상을 취해 임하게 된다.
- 한편, 이는 자신이
감각과정에서 눈을 통해 감각해 얻는 '감각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마음안 내용물'이다.
- 그런데
A 부분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A 는 자신의 감각시 대한 대상이면서 또 한편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 경우 '감각의 대상'과 '감각해낸 내용'은 서로 일치한 것이어서 그가 얻는 감각현실은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다른 영희나 철수는 위와 사정이 다르다.
- 이 경우에도 A 부분이 영희나 철수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해도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얻어낸 감각내용은 A는 아니다.
영희나 철수가 눈을 뜨고
감는 상황에서 A를 얻고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영희나 철수가 눈을 뜰때 보게 되는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경우는 위처럼 판단하기 곤란하다. 다만 자신의 경우처럼 서로 일치하거나 유사할 것으로 추리하게 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각기 그 A란 부분이 갖는 성격이나 의미를 각기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
이 각 경우 A 라는 부분을 다
함께 같이 붙들고 문제삼는 것처럼 보인다.
설령 그렇다해도 그 A 부분은 각 경우마다 위에 나열한 다양한 의미와 다른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 그 A 부분은 각 경우 일반적으로 그 A 부분이 갖는다고 잘못 여기는 그런 의미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 A 부분은 영희나 철수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 아니다.
또한 그 A 부분은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 또한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해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바탕에서 이 A 부분이 갖게 되는 지위와 의미에 대해
서로 많은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위 각 경우마다 논의를 진행해나가게 된다.
이런 사정으로 혼란스런 논의를
진행하기 쉽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될 때
그 가운데 A 란 부분과 관련해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 이와 관련해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먼저 서로 잘
구분하고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가 자신이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이 상대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자신이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거나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는 또 다른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서 그들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거나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외부대상라고도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란 내용을 얻고 나서 어떤 생각이나
관념내용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런 관념 내용이 그 A 부분에 '있다'거나
그 A는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더 나아가 자신이 그 A 부분을 붙잡고 더 나아가 영희나 철수도 같이 그 A 부분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영희 철수가 함께 그 A 부분에 대해 논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라고 해도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자신과 같은 내용 A 부분을 놓고 논의한다고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즉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A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대하는 내용이 바로 그 A라고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 자신의 경우 A
부분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A 부분이 동시에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 사정으로 대상과 그에 대해 감각한 결과내용이 서로 일치한다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또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감각한 내용
A 부분이 대상에 일치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처음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내는 A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 부분은 자신의 마음안에 얻어진 내용물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A 부분은 앞에 나열한 것들과 같은 내용이 아님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 눈을 떠
대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표현과 관련한 혼동
눈을 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부분을 갑과 을이 논의하려 한다고
하자.
그래서 예를 들어 현실에서 함께 손을 대어 꽃이나 바위를 함께 붙잡고 살핀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상황은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을 서로 함께 붙잡고 살피는 상황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각 주체가 눈을 떠 얻는 내용 자체가 서로 같다고 할 수
없다.
한편, 그런 감각현실의 한 부분이 갖는 의미와 성격에 대해서는 각 입장에서 달리 이해한다.
따라서 이들 간에 여전히 혼동이
발생한다.
한편 각 주체가 눈을 떠 얻는 내용은 다른 주체에게 직접 전달할 수도 없다.
이는 관념분별내용도 사정이
같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그 생각 내용 자체를 다른 주체에게 꺼내 보일 수 없다.
그리고 전달할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결국 논의과정에서는
일정한 언어표현으로 이를 가리키면서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언어표현으로부터 혼동이 다시 심해지게 된다.
우선 하나의 언어표현은 다양한 측면의 다양한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우선 일정한 언어표현이 정확히 어느 측면의 어느 내용을 가리키는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언어표현은 각 감각현실의 한 부분!, 관념내용@, 언어자체#, 또는 본바탕의 실재#, 실체$ 등 다양한 측면을 가리킬 수 있다.
이
가운데 일정한 표현을 사용한 이가 그 표현으로 가리키고자 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 나름대로 이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이 두 내용이 서로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정하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어떤 논서를 직접 쓴
당사자가 옆에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우선 각 언어표현을 한 이가 내심상 어떤 뜻을 나타내고자 했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편 어떤 표현이 외국어로 번역되는 경우 이런 어려움이 더 증대된다.
각 외국어마다 각 단어가 나타낼 수 있는
의미범위부터 다르다.
그리고 표현 방식도 다르다.
그런 가운데 번역과정을 여러번 거치면 이런 어려움이 다시 더
증대된다.
예를 들어 번역된 판본을 읽다가 전후 맥락상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한문 원전을
참조하게 된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면 한문번역의 토대가 된 범어원전 등을 참조하게도 된다.
이는 표현의 의미를 파악함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전이나 언어 표현이나 구문이 이런 혼동을 해결해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한편, 마음
현상은 현실에서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다.
이런 경우 어떤 표현이 자신의 마음안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를 언어
표현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한편, 일정한 부분이라고해도 이를 어떤 형태의 성격과 의미로 제시하는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특히 불교 논서에서는 일정 표현이나 구절이 혼동을 많이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이런 경우 논의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오기도 힘들다.
이런 경우 전후 맥락을 통해 그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찾아내야 한다.
즉 일정한 표현과 그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잘 대응시키면서 내용을 살펴가야 한다.
이를 이전에 맵핑문제로서 살핀 바
있다.
[참고]
●경전 및 논서 표현과 맵핑
문제
https://buddhism007.tistory.com/3547#001
sfed--삼무성론_K0622_T1617.txt
☞하권
sfd8--불교단상_2561_09.txt ☞ ☞●경전 및 논서 표현과 맵핑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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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은 꽃이나 철수 또는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이런 내용들은
어떤 과정으로 얻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해 각 입장별로 대단히 차이나는 형태로 이해한다.
또 이를 표현하는
언어로부터도 대단히 많은 혼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래서 먼저 자신이 직접 현실에서
눈을 뜨고
감는 가운데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가 하는 실험부터 잘 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먼저 기본적으로 잘 살퍼야
한다.
이를 크게 다음 둘로 나누어 살피기로 한다.
우선 그림을 겻들여서
언어표현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혼동을
가능한 줄이기로 한다.
지금 문제삼는 내용은 자신이 눈을 떠서 그 순간 보게 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어떤 성격을
갖는 것인가에 대해 먼저 살피기로 한다.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갖는 잘못된 망집을 기본적으로 제거하기로 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내용을 다시 언어로 표현해 제시할 때
기존에 각 경전과 논서에서 사용한 일정한 언어표현을 놓고
어떤 형태로 다시 혼동을 일으키고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어 살피기로 한다.
경전과 논서에서 색이나, 근, 경, 식, 대상, 소연연,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이런 표현을 비롯해서 일반 논리학이나 인식론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다 사정이 같다.
그러나 일단 경전과 논서에서 사용하는
표현과 관련해서 기본적으로 내용을 살피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는 다음 내용을 먼저 주의해야 한다.
불교 경전과
논서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일정한 내용은 본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러나 상대가 그런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상대가 그런 사정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해 방편으로 일단 그런 중생의 입장에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대가 이해하는 형태대로 언어를 시설한다.
그리고 그런 언어시설로 그런 내용을 가리켜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런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이끈다.
그래서 그런 사정과 그런 취지에서 각 내용을
제시한다.
따라서 경전과 논서를 대할 때 그런 배경사정부터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다음
현실을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있다.
우선 어떤 이가 현실에서 눈을 떠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 상황에 자신이 문제삼는 영희나 철수, 그리고 자기자신 그외 바위나 꽃 등이 거기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또는 종이에 불을 붙이면 재와 연기가 나타난다고 이해한다.
또는 자신이 눈으로 보는 사과 부분이 있다고
하자.
한편 눈으로 손이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손 부분으로 사과 부분을 만져 집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촉감을
얻게 됨을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과를 다시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러면 그 영희나 철수도 그
상황에서
그것을 사과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자신에게 언어로 보고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이런 현상들이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나타나는가에 대해 살펴야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바탕에서
여러 내용에 대한
인과(연기)관계를 살피게 된다.
이런 경우에
처음 인연, 증상연, 소연연, 등무간연 이런 4 연의 내용을 살피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이런 각 언어표현에 대해 여전히 혼동을 일으키게 되기 쉽다.
즉,
이는 자신의 현실상황에서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이를 어떤 입장에서 어떤 성격으로 이해하고 대하는가.
이런 내용을 그
표현만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그 한 부분에 대해
이해하는 내용이 서로 제각기
다르다.
이에 따라 각 언어표현으로부터 이해하게 되는 내용도 제각각 다르게 취하기 쉽다.
그래서 이들 각
표현이
본래 어떤 바탕에서 어떤 취지로 제시되었는가를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각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정확한 의미와 그 성격과 지위를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경전과 논서상의 각 언어표현으로부터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바탕에서 1차적으로는
현실에서 그런 언어 방편으로 가리키는 의미와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부처님께서 이런 내용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해시키고자 한 내용도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뜨는 순간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이런 일은 대단히 쉽게 각 주체가
반복해 행한다.
그릭 대부분의 현실 생활이 이에 바탕해서 이뤄진다.
그래서 큰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바로 위와 같은 사정 때문에
하나하나 살피자면 사실은 대단히
복잡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잘 이해하고 정리하여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매 순간 그런 망집상태에 바탕해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해 가게 된다.
그런 하는 가운데 무량한 겁동안 극심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우선 다음을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위 상황에서 그 주체의 눈이 상대한 대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 주체가 본 내용 안에는 그런 '외부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안에는 다른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상대하게 되는 대상도 없다.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이 손을 내밀어 사과를 붙잡아 영희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리고 영희가 이를 받는다고
하자.
이런 상황을 놓고 살펴보자.
여기에서 자신이 보는 사과모습은 손을 내밀어 붙잡는 대상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촉감을 얻는 경우에도 자신이 보는 그 사과는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그 상황을 위와 같이
이해하고 임하는 상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 위와 같이 그 사정을 잘못 이해하고 임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잘못된 망상분별을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고 평소 대하는 그 일체 내용이
그 주체의 마음안에 얻어진 내용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즉 한 주체가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눈을 떠서 보게 된
내용은 눈이 대한 대상이 아니다.
=> 그런데 대부분 이 내용을 눈이 대한 대상으로 잘못 여기고 대한다.
그래서 이를 소연연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런 상태에서 눈을 떠서 보게 된 내용이나 그 대상을 살피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떤 표현으로든
눈이 본 내용을 표현해야 한다.
이를 상대는 눈이 무언가를 볼 때 눈이 대한 대상(소연연)이라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일단
그렇게 표현하고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연기(인과)관계를 살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선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형태로 각
내용을 제시한 가운데 이를 살펴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키는데 본 취지가 있다.
또
이를 위해 일단 각 언어 표현으로 방편적으로 그런 내용을 그처럼 가리키게 된다.
[방편 시설]
이 경우 이들 표현이 현실에서 대하는
어떤 부분을 어떤 취지 어떤 의미로 나타낸 것인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긴 내용을 통해서 제시하고자 하는 결론적
내용을 처음부분에 대강 제시했다.
그런 가운데 관련된 내용을 이어서 살펴 나가기로 한다.
>>>
●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 대한 기본 실험
방안
● 감각내용을 얻게 한 대상을 살피는 실험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이 있다.
이는 대부분
스스로 실험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스스로 실험해 보는 가운데
이에 관련된 문제를 살펴나가기로
한다.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s://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1 이 눈을 감았다가 뜬다고 하자.
눈을 감았을 때 보이지 않다가 뜨는
순간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은 눈을 감으면 또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런 내용을 위 그림처럼 그려
놓았다.
지금 자신이 눈을 감았다가 한번 떠본다고 하자.
알고보면 이는 자신이 평소 늘 행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간단하다.
그런데 눈을 감아서 무언가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시 눈을 떠서 그 순간 무언가를 위 그림처럼 본다고
하자.
그런데 이 순간에 그처럼 얻는 내용을 잘 붙잡아 보려고 해보자.
결국 위 그림은 그런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 계속 눈을 떠 현실을 대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하루에 여러번 눈을 떴다 감았다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런 현실 내용을 얻게 된다.
그리고 위 단면에서 살피는 내용은 현실 전반에
공통된다.
그런데 이 안에 지금 논의하는 주제와
문제가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실험을 통해 사정을 잘 파악하려면
옆에 자신과 유사한 상태인 영희나 철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과 감관상태가 엇비슷한 영희나 철수가 자신 옆에 위치한 가운데
자신과 같은 실험을 행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이를 옆에서 관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위 그림에서
철수와 영희가 2와 3으로 표시되어 있다.
위 그림에서 1 은 실험자 자신이다.
자신은 자신의 눈이나
이마 허리 등을 보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먼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겪는 경험을 스스로 잘
관찰한다.
그래서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언가가 보이거나 보지 못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내용을 철수나 영희에게
보고한다고 하자.
한편 철수2 가 자신의 옆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실험을
행한다.
그리고 매 순간 겪는 경험을 자신에게 보고한다고 하자.
그리고 1자신은 그 과정을 옆에서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그런 제 3 자인 철수의 상태가 자신의 상태와 엇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2
가 보고한 내용과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놓고 음미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놓고 다시 제 3 자인 철수나 영희의
입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를 놓고 다시 되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이해할 때는
먼저 다음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의 구분
현실에서 눈을
떠서 어떤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이 과정에서 각 주체는 매 순간 생생하게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비교적
명료하게 관념분별을 행한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위 내용을 서로 먼저 잘 구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눈을 감는 상황에서는 얻지 못하다가
눈을 뜨는 그 순간 얻게
되는 내용을 먼저 정확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내용은 눈을 뜨는 순간 비록 생생하게 얻지만,
눈을 감고 나면 다시
되살려 얻어낼 수 없다.
따라서 계속 확보해 보관하기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마음으로 어떤 내용이 그에 해당하는 내용인가를
잘
구분해 파악해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는 상황에서 얻는 감각현실은
각
부분이 각각의 색깔형태로 생생한 형태로 전체로 얻는다.
○ 관념분별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런데 그 주체는 그런 내용을 얻는 상태에서 각 부분을 묶고 나눈다.
그리고 이 부분은 꽃, 저 부분은 영희, 이 부분은 철수
등이라고 여긴다.
또 이 부분은 자신의 몸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눈을 떠 일정한 내용을 보게 되는 상태에서
어떤
부분을 각기 무엇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생각도 그 생각대로 붙잡아서 잘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는 눈을 떠서 감각현실을 얻는 영역에서 행하는 일은 아니다.
이는 위와 같은 감각현실 내용을 전체적으로 얻은 이후
관념분별을 행하는
영역에서 행한다.
이들 관념분별은 눈으로 보는 감각현실과는 다르다.
감각현실과 달리, 그 모습도 얻지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래서 위 그림에선 제외되어 있다.
위 그림에서는 감각현실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부분을 일정하게 구분했다.
즉, 1 은 자신 2 는 철수 3 은 영희 4 는 꽃 이렇게 표시해
놓았다.
그러나 이는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감각현실을 얻는 영역에서는 이들 전체를 하나의
감각현실로 얻는다.
그리고 이런 구분을 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구획과 구분은 관념영역에서 행하는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다만 위 내용에 대해 살피려면 편의상 이처럼 구분해 표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방편상 그렇게 구분해 표시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사이에서 구분을 잘 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미리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에서 감각현실을 생생하게 얻는다.
또 한편
이와 함께 관념내용도 동시에 명료하게 얻게 된다.
즉 이 두 내용이 함께 진행되어 마음에 머문다.
따라서 이들이 각각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둘을 다음처럼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눈을 뜨면 그 순간
얻고 눈을 감음에 따라 사라지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를 여기서 '감각현실'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그런데 눈을 뜨고 감음에
관계없이 마음에서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는
'느낌'이나 '관념분별내용'으로 구분해 표현해보기로 한다.
한편, 감각현실을 살필 때는 시각정보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청각, 후각, 미각, 촉각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시각정보를 대표로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나머지 감각은 이에
준해서 이해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 이런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애 대해 다음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그 주체가 그런 내용을 왜 그렇게 얻게 된 것인가를
살펴보자.
감각현실은 앞에 말한 것처럼 전체로 하나로 얻어진다.
그리고 각 부분이 나뉘고 묶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논의의 편의상 각 부분을 구분해 표시하여 살피게 된다.
그림에서 1 부분은 이 상황에서 스스로 본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기게 되는 부분이다.
2 는 그가 다른 사람 철수라고 잘못 여기게 되는 부분이다.
3 은 그가 다른 사람
영희로 잘못 여기게 되는 부분이다.
4 는 그가 꽃이라고 잘못 여기게 되는 부분이다.
이는 관찰자가 이 상황에서 보게 되는 여타
내용을 대표한다.
위에서 이들을 잘못 여기게 되는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그런 판단이 옳다고 여긴다.
그래서 일단 그 각 부분을 그런 내용이라고 이해하기로 한다.
즉, 그렇다고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런 가운데 이 상황을 이해해보기로 한다.
이 상황에서 철수2 도 1 처럼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함께 행한다.
그리고 서로 보고를 한다.
이 상황에서 철수가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철수가 본
내용을 일단 위 그림에서는 5 ^ 로 표시했다.
여기에서 철수 입장에서 보는 철수 자신의 모습을
2^
철수가 보는 1 의 모습을 1^
철수가 보는 다른 사람 영희의 모습을 3^
철수가 보는 꽃을 4^ 이렇게
표시했다.
물론 위 그림은 방편상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그림을 그려 이해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망상분별의 하나다.
그러나 설명의 편의상 이렇게 표시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눈을 떠서 보는 상황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위 그림과 위 숫자를 반복해 사용하게 된다.
자신이 현실 상황에서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반복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숫자로 나타낸 부분이 자신에게서 어떤 내용들인가를 잘 찾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상황에 맞게 대응시켜
이해해야 한다.
특히 기호상 캐럿(caret) ^ 표시가 붙은 숫자로 나타낸 부분이 있다.
이 내용과 캐럿이 붙지 않은 숫자 부분을
주의 깊게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하나 책상 위에 놓았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 철수와 함께 같이
사과를 만진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보는 사과모습은 4 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철수
쪽에서 보는 사과모습은 4 가 아니다.
철수가 본 사과모습은 4^ 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 표시 부분을 잘 구별해야 한다.
각
기호가 나타내는 의미는 이런 의미다.
현재 '소연'이란 표현에 대해 살핀다.
그런데 논서
등에서 소연이라고 표현하는 내용이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가 문제된다.
그리고 그 부분을 어떤 지위에서 어떤 성격을
갖는 내용으로 가리키는가가 문제된다.
이는 반대로 다음의 문제도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서 보는
4 와 같은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부분을 과연 경전과 논서에서는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또 그
표현은 어떤 의미로 그렇게 표현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또 그런 표현은 그 부분이 어떤 성격을 갖는 어떤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위 실험이 먼저 스스로 잘 행해져야 한다.
다만
처음부터 이런 언어표현을 놓고 논의에 바로 들어가기 곤란하다.
이미 그 사정을 처음에 제시했다.
즉, 4 라고 표시한 한 부분을 놓고
제각각 입장이 다르다.
그리고 그 부분이 갖는 의미나 성격에 대해 제각각 다 달리 이해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혼동이 서로
극심하다.
여기선 그런 문제를 일단 피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그림에 그려진 상황처럼
어느 순간 눈을 떠서 사과나 꽃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 부분을 붙잡아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각현실은 물론 본래 그렇게 붙잡아 머물러 둘 수 없다.
그러나 마음에서 그렇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관찰자 1 의 입장에서 눈으로 본 내용 한 부분을 4 라고 일단 표시해보자.
그런 가운데 이 부분이 갖는 성격 등을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 그림에서 숫자와 캐럿^이 붙은 숫자를 잘 구분해야 한다.
즉 4 와 4^로 표시한 부분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위 숫자들이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가를 미리 잘 이해하고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눈을 뜨고 반복하는 가운데 이 내용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다음 내용을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
●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의 구분
위와 같이 그림을 그려 놓고
직접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행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살펴나간다고 하자.
예를 들어 자신이 현실에서 눈으로 어떤 모습을 보았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그런 모습은 여기에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또는 이런 모습은 자신이 어떻게 보게 되는 것인가라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럴 경우에도 이들에 대해 논의하려면
결국 일정한 관념분별과 언어를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는 먼저 확인할 일이 있다.
자신이 눈을 뜨면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해 관념영역에서
일정 부분을 나누고 묶는 가운데
일정 부분에 대해 꽃이라는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꽃'이라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언어표현은 앞 상황에서 어떤 부분을 가리킨 것인가.
즉 감각현실인가. 아니면
관념분별부분인가를 잘 구분해야 한다.
이것부터 구분을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먼저 구분하지 않고 논의한다고
하자.
그러면 나중에 자신이 이 혼동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논의한 상대도 마찬가지가 되기
쉽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내용이 각기 어떤 과정으로 얻게 되는가는 제각각 다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감각현실을 처음에 살피기로 한다.
즉,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한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눈을 감았을
때는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눈을 뜨는 그 순간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눈을 감으면 사라지고 보지 못하는
내용이 있다.
이를 감각현실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림에서 일단 4 라고 표시한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처음에
살펴야 한다.
따라서 이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4 라는 부분은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얻게
되는것인가를 살펴보자.
이를 위해 다시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하는 실험을 스스로 해보자.
그리고 그 상황을 다시
검토해보기로 한다.
이제 다시 실험을 해보자.
● 인과관계 판단과 4
연
- 눈을 떠 보는 과정에 개입하는 요소를 찾는 실험 -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과정을 인과관계로 이해하게 된다.
이 경우 인과관계는 다음 관계를
말한다.
어떤 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자꾸 넣고 빼고 해본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넣고 빼고 함에 따라서 내용을 얻는데에 변화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들 내용이 서로 관계가 있다고 일단 혐의를 두게 된다.
알고보면 온 세계의 과학자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실험실에서 온갖 실험을 한다.
한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일정한 상황에서
무언가A 를 붙잡고 그것을 넣고 빼고를 반복해 본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어떤 B에 별 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사정이
이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일단 이 내용으로는 그 A 가 B 와 인과의 관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물론 여기에서도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사정이 위와 같다고 해서 그 A 는 B가 전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실만으로는 A
와 B 가 서로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인과 판단을 위해서는 위 부분부터 주의해야 한다.
이 사정을 쉽게
다음처럼 살펴보자.
나무와 석유와 가스가 함께 섞여서 불타고 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나무를 빼고 넣고 해도 불이 계속 타는데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나무가 불과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나무만 있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나무를 빼고 넣고 했다고 하자.
그래서 불이 타는 부분에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하자.
이렇다면
일단 그 나무와 불은 서로 관계가 깊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 불을 일으킨 원인으로 혐의를 두게 된다.
그러나
앞 경우는 나무를 빼고 넣고 함에 따라 불에서 차이를 보기 힘들다.
그것은 그 상황에 불을 일으키는 석유나 가스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판단해야 한다.
결국 인과관계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일정한 상황에서
무언가A 를 붙잡고 그것을 넣고 빼고를 반복해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에 따라 어떤 B에 변화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일단
이로써 그 A 가 B 와 인과의 관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인과관계를 다시 깊게 관찰하고 음미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바로 이런 판단 자체가 망상분별을 대단히 증폭시키는 과정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잘 살피고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내용을 잘 파악함으로써 그런 망상분별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기
대문이다.
따라서 먼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실험해보자.
철수가 자신의 옆에
서 있다.
그리고 철수가 눈을 뜨고 꽃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어떤 요소들이 있어야 철수가 꽃모습을 보게 되는가를
찾는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로 어떤 요소들이 없게 되면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는가를 찾는다고 하자.
이것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인과관계의 문제가 된다
우선 이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실험해보기로 하자.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 꽃을 다른 곳에 치워버린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갖다 놓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한편 꽃앞에 어떤
널판지를 놓아서 가로 막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 널판지를 치우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또 하나 실험이
있다.
이를 어두운 날 어두운 방에서 행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전등 불을 켠다고 하자.
그 다음 다시 불을 끄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또 하나 실험이 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철수 옆에 다가가 철수 눈을 숫가락 등으로 가린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숫가락을 떼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이들은 간단한 실험이다.
그러나 의외로
중요하다.
각 경우마다 철수가 어떤 상태가 되는가를 보고하게 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 꽃 모습을 보게 되는가. 보지 못하게 되는가를
보고하게 한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의 상호 관계를 관찰한다.
위 경우들은 각 경우마다 철수가 보거나 보지 않는데
관계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다시 다음과 같은 실험을 다시 행해보자.
이들은 단순한
실험이다.
그러나 이런 실험들이 갖는 의미가 크다.
우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땅을 두번 친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땅을 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한편, 탁자 위에 있는 지우개를 조금 움직여 본다고
하자.
그리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두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또는 옆에 있는 라디오 음악 볼륨을 키웠다가 끄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또는 철수의 코를 막아보았다가 열어보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또는 철수의
귀를 손으로 막아보기도 하고 열어보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이들 내용을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관련이 없는
듯 하다.
그리고 역시 각 경우마다 철수가 어떤 상태가 되는가를 보고하게 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 꽃 모습을 보게
되는가. 보지 못하게 되는가를 보고하게 한다.
그래서 역시 이들 각 내용의 상호 관계를 관찰한다.
그런데 이 경우들은 앞의 경우와
달리 보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보고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단순한 실험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이
실험에 추가해야 한다.
그래야 앞에서 행한 실험들의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다.
만일 위와 같은 경우와 비교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여러 실험이 갖는 의미를 잘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런 실험을 대부분 유치한 실험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간단한 이들 실험이 갖는 의미가 크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내용을
넣거나 빼거나 한다.
그런데 그에 따라 철수가 꽃의 모습을 보거나 보지 못하는데 차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에 반해 다른 내용은
또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렇다면 처음의 내용들은 뒤의 내용들과 달리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들 상호관계를 인과관계로 파악하게
된다.
우선 현실에서 위와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하자.
그리고 이를 통해 철수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에 관련있는 것들을
찾아내게 된다.
그런 경우 일단 다음내용을 나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철수가 눈을 통해 상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꽃 부분
1- 그리고 철수가 이 꽃을 보는데 사용하는 철수의 눈
1- 그리고 이 두 내용을 매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빛
1 - 이들을 장애하고 방해하며 가리는 것들이 없음
이런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인과관계로 이해하는 내용은 대강 위와 같다.
우선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우선 앞에 나열한
내용들이 그 상황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가 일정한 내용을 보게 된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구비되지 않거나 제거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현실에서 대단히 많이 반복된다.
그래서
앞에 실험한 내용을 그대로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연유에 대해 잘 설명한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래서 망집증상을 일으킨 경우
이런 내용에 바로 속아 넘어가게 된다.
○ 세속제와 승의제의
관계
세속에서 진리라고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
이를 불교에서 '세속제'[세속에서 확립한 진리]라고
표현한다.
한편, 본 바탕과 관련하여 언설을 초월한 진리가 있다.
이를 불교에서는 '제일의제', 또는 승의제[언설을
초월한 진리]라고 표현한다.
쉽게 이를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독특한 차 맛을 본다고 하자.
그리고 이것을 언어로
자세히 표현한다고 하자.
아무리 언어로 이를 자세히 표현해도 그런 언어표현이 차맛 자체는 되지 않는다.
차맛은 감각현실이다. 이런
감각현실조차도 이런 문제를 갖는다.
그런데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무언가가 문제된다.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은 한
주체가 관계해 얻어내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 주체가 관계하지 않으면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것이 실재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어떤 것이 본 정체를 파악할 때는 이런 측면의 고찰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어떤 것의 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의제가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이런 문제는 더 심해진다.
그리고 이는 언설을 초월한 내용이
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속제와 승의제의 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속제는 승의제를 이해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즉, 세속제를 잘 이해해야 이를 통해 승의제를 이해하게
된다.
또 승의제는 세속제를 그렇게 확립시키는 근거가 된다.
즉, 승의제가 그러한 내용이므로 세속제가 그렇게 성립되게
된다.
이런 관계가 있다.
지금 살피는 인과 관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과관계를 살필 때도
이런 측면을 주의해야 한다.
우선 일상적으로 눈을 뜨고 감는 상황이 있다.
이 상황에서 인과관계를
살핀다고 하자.
즉, 연기(인과)의 판단을 이런 바탕에서 행한다고 하자.
어떤 상황에서 무언가를 넣고 빼고를 반복해
본다고 하자.
그런데도 별다른 의미있는 차이를 볼 수 없다.
이런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A 는 그렇지
않다.
즉 A 를 넣고 빼고 할 때마다 B 와 관련해 대단히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문제삼고 살피게
된다.
일단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런 바탕에서
A와 B 가 서로 연기(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 내용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다시 이들 판단이 왜 문제가 되는가를 이어서 살피기로
한다.
그런 경우 우선 세속제적인 측면에서 다음처럼 제시하게 된다.
즉, 이를 우선 다음과
같이 설명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일정한 내용이 있으면 그런 내용을 얻는다.
즉 대상, 빛, 감관으로서 눈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접촉해 화합하면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반대로 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빼면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들 사정이 으레 그렇다.
그래서 이들간에는 그런 상호관계가
있다.
이를 인과관계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설명하게 된다.
이 경우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인과관계가
된다.
그리고 이는 연기관계의 공식과도 관련된다.
연기관계는 차유고피유~ 라는 구문형태로
제시된다.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
한편, 세속에서 대단히 타당하고 옳다고 여기는 내용을 세속제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세속제의 바탕에서 인과관계는 이런 형태로 시설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철수가 무언가를 보게 한 원인요소를
현실에서 찾아낸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그 관계가 왜 하필 그런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과정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각 내용을 이처럼 서로 관련시켜서 보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제시하면
이들 내용과 관계에 대해 잘 이해했다고 여기고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거의 대부분 이런 내용을 옳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런 내용을 세속에서 옳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된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런데 이런 이해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런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시키고자 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런 망집에서 상대를 벗어나오게 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입장에서도 일단 이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바탕에서 살펴 나가야 한다.
그 사정은 간단하다.
그래야 상대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세속에서 누구나 옳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내용[세속제]이 있다.
그래서 그런 세속제를 먼저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이를 통해 그 주체가 그에 대해 일으킨 망집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주체가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된 사정도 살펴야 한다.
따라서 위 실험을 간단히 대하고 넘어가면
곤란하다.
그래서 위 내용을 놓고 좀 더 깊게 잘 살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망집 상태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
그로 인해 대부분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고통을 받아가게 된다.
따라서 간단한 실험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잘 관찰해야
한다.
앞에서 제시한 관계성은 일상생활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들 각
내용은 서로 엉뚱한 내용들이다.
비유하면 이들 각각은 벽돌과 사과의 관계처럼 서로 엉뚱하다.
그래서 이들 간에 그런 관계성이 나타나는
것은 알고보면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손을 마주친다. 그러자 소리가
난다.
그런데 아무리 손을 바라보아도 그 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만 마주치면 매번 소리가 난다.
이런 현상은
매번 반복된다.
그래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손 모습과 소리를 서로 놓고 대조해본다고 하자.
이들은
사실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한편, 사실 귀로 듣는 소리는 눈으로 대하는 시각정보를 통해 얻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정확히
관찰하면 다음처럼 이해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서 눈을 감고 손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해도 소리는 듣게
된다.
그러나 눈을 뜨고 이 상황을 지켜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될때마다 그런 소리가 매번 남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는 또 손뼉소리가 나지 않음도 파악할 수있다.
그래서 왜 하필 그렇게 되는지 그
사정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왜 그런가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 내용과 연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처럼 세속제 내용을 통해 다시 승의제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 주체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 관계된 요소를 위와
같이 찾아보았다.
그런데 일단 이 과정에서 다시 이를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 철수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위처럼 관찰했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요소를 나열해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놓고 판단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앞과 큰 차이가 있게 된다.
우선 자신이 눈을 통해서 무언가를 본다는 상황을 놓고
살펴보자.
이 상황에서 자신의 눈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이를 위해 먼저 자신이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은 자신의 눈을 직접 보지 못한다.
이는 철수의 눈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여기는 것과
다르다.
우선 자신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직접 보지 못한다.
자신이 허리나 눈썹 눈 등을 직접 보지
못한다.
그래도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무언가를 보는 눈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우선 거울의 도움을 빌릴 수도 있다.
그러나 눈을 감은 경우에는 역시 어려움이
있다.
한편 거울마저 없으면 더 곤란하다.
여하튼 현실적으로 자신은 직접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눈을 감고 뜰 때 이를 촉감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런 촉감이 눈을 뜨는 행위라고 하기도 곤란하다.
또 그런 촉감을 통해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하기도 곤란하다.
따라서 철수의 경우처럼 이 관계를 바로 제시하기
곤란하다.
한편 자신이 본 꽃 모습을 놓고 판단해보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철수의 경우에서는 이
꽃모습을 철수의 눈이 상대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자신의 경우는 이와 또 사정이 다르다.
이 꽃 모습은 사실은 자신이 눈을 떠서
얻어낸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한 빛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이 갖는 성격이 일단 크게
다르다.
즉, 철수나 영희를 옆에 놓고 관찰해 관계를 이해할 때와 다르다.
즉 자기 자신을 놓고 이해할 때와 다른 이를 놓고 이해할
때가 다르다.
이런 점부터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경우에서 어떤 경우를 더 기본으로 놓고 중시해야 할
것인가.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가장 우선시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상황을 놓고 기본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런데 제 3 자를 관찰하는 것이 비교적 살피기 쉽다.
우선 철수는 자신과 거의 비슷한 상태의
사람이다.
이런 철수가 바로 옆에 서 있다고 하자.
그리고 철수에게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행하게 한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이를 옆에서 관찰한다고 하자.
물론 이 상황에서 철수가 보게 되는 내용을 직접 확인할 도리는 없다.
그래도 앞에 제시한 문제에서는
우선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조금 편하다.
그런 가운데 이들을 서로 관련짓게 되는가부터 살피기로
한다.
● 현실에서 감각과정에 대한 원인요소의 판단문제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을 살폈다.
예를 들어 철수가 꽃을 바라본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한 주체가 꽃을 감각하는 과정만으로 그
설명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실의 한 단면에서 꽃은 어떤 연유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도 살펴야 한다.
또는 변화과정에서 예를 들어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고 하자.
그 때 연기와 재가 왜 나타나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 때 일반적으로 인과관계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종이와 불 이런 내용을 연기와 재의 원인으로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 불교에서는 이에 대해 4 연을 제시한다.
그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책상에 꽃이 피어진 화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꽃은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
일반적인 입장
이런 경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처음 화분에 뿌려진 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 꽃이 자라나는데는 흙과 공기 태양 물 이런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물도 주고 태양도 비추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 씨가 싹을 피웠다.
그리고 줄기가 뻗치고 꽃이 피었다.
이런 사정을 다양하게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꽃이 나타난 원인요소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로써 꽃이 나타나는 인과관계를 이해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이를 살피게 된다.
따라서 과학자도 이런 내용을 주로 인과관계로 제시하게 된다.
○
불교의 입장 - 4연 (6인-5 과)
세속적인 측면의 설명인 경우에도
불교 논서나 경전에서는 그 인과를 단순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4 연을 제시하게 된다.
씨 => 인연
흙, 공기, 태양 물 => 증상연
이 부분만 보면 일반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소연연'과 '등무간연'을 다시 추가해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인과를 문제삼는 측면으로서 감각현실
만일 인과의 관찰에서 소연연과 등무간연을 빠뜨린다고 하자.
그러면 소풍간 이가 소풍간 인원을 셀 때 자기 자신을
빼고 세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엉터리가 된다.
이 사정을 다음처럼 살펴보자.
현실에서 A 가
왜 나타나는가를 설명하려 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꽃'은 왜 그자리에 있게 되었는가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데
여기서 '꽃'이란 언어표현이 무엇을 문제삼는가를 생각해보자.
우선 언어표현으로서 '꽃' 자체가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종이에 왜 그런 글자가 써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한편, 꽃이라는 관념이 왜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런 관념이 왜 연상되어 떠오르는가 등을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꽃'이 왜 나타나는가를 살필 때는 주로 감각현실 부분을 문제삼는다.
이는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갖는 다음 망집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꽃이 무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래서 문제삼는 꽃이
어디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고 하자.
이 때 제각각 손가락으로 꽃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꽃'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문제는 주로 이 부분과 관련된다.
만일 이런 측면에서 꽃이 생겨나는 관계를 살핀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으로서 꽃을 문제삼는 것이 된다.
○ 감각과정과 인과
감각현실의 한 부분으로서 꽃의 발생과정이 문제된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늘 한 주체가 그런 내용을 감각해 얻는
과정이 포함된다.
따라서 매 경우 그런 감각현실을 한 주체가 얻는 과정을 포함해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꽃이 보인다고 하자.
그 경우 그 상황에서 한 주체가 그렇게 눈을 통해 그런 꽃을 보게 되는 과정이 전제가 된다.
그래야 또
어떤 이가 그런 내용을 비로소 문제삼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물리적으로 운동하거나 화학적으로 반응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과학자나 관찰자가 이 과정을 관찰해 학계에 보고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관찰자가 대하는 각 단면마다 이들 문제가 다
포함된다.
즉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그렇게 대하고 파악하는 과정이 다 포함된다.
그런데 이 측면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어떤 주체도 아무 내용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뜬 가운데 꽃을 보면서 그 꽃의
발생과정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매 상황에서 그가 눈을 감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는 앞에서 문제삼는 내용 자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이 문제를 계속 살필 수 없다.
물론 눈을 뜨고 있으면, 이 점을 지나칠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눈으로 관찰하게 되는 내용은 일체 얻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눈을 떠 대할 경우에만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
그래서 각 상황에서 이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함께 문제삼게 된다.
그럼에도 관찰된 내용이 주관과 관계없는 객관적 실재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이 각 내용에서 관찰자의 감각과정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감각과정을 다 빼내어도 그 내용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 관계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단면의 내용도 결코 그렇지 않다.
따라서 한 주체가 감각해 얻는 내용의 인과문제에서는 이
부분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들 내용을 함께 넣어서 4 연으로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대하는 주체의 마음과 대상을 관련된 요소를 추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등무간연과 소연연이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 차이를 갖는다.
● 감각현실을 얻게 한 주체의 마음으로서 등무간연
○ 감각과정을
물리적 생리적 변화로 이해하는 입장
어떤 이가 무엇을 감각하는 과정을 단순한 물리적 육체적 생리적 변화로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면 이 경우 관찰자의 마음을 별도로 시설할 필요성은 없다고 여길 수 있다.
이 경우 이들은 외부의 물질적 변화와 함께
관찰자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물리적 변화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면 충분할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변화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한다.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
한편 연못에서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난다.
그리고 파장이 점점 퍼져나간다.
그리고 연못가에 파장이 가
닿는다.
한편 작은 판들을 죽 이어 도미노 형태로 세워져 있다고 하자.
이 경우 한 쪽을 쓰러 뜨린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쪽이 계속 연이어 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지게 된다.
물론 이런 내용도 이를
관찰하는 관찰과정이 포함된다.
그런 내용을 어떤 관찰자가 관찰해야 그런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어떤 이가 이런 내용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내용은 관찰자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런 형태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어떤 이가 눈을 떠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이 감각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할 수도 있다.
우선 철수 외부에 사물이 있다.
그리고
철수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있다.
사물들간에는 작용 반작용과 같은 운동과정이 있다.
한편 철수 육체안의 물질은 자극과
반응관계가 있다.
그래서 철수의 감각과정은 이런 물리적 변화의 연속일 뿐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은 다시 다음과 같이 여기게 된다.
철수의 육체 부분은 질병이나 사고로 소멸된다 .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따라서 철수의 사망이후 철수와 관련한 내용은 더 이어 생각할 내용은 없다.
이를 단멸관이라고 한다.
○ 마음의 존재와 마음의 시설
그래서 과연 그런가에 대해서 추가 실험이
다시 필요하다.
즉, 철수가 무엇을 보는 과정을 위와 같은 형태로 설명할 수 있는가 .
아니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한가를 살펴야 한다.
즉, 철수가 무엇을 보는 과정에서 철수의 마음을 별도로 시설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 경우 단순히 철수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의 존재가 이 감각과정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별도로 존재한다고 시설해야 하는 사정을 살펴야 한다.
이는 별도로 『수능엄경』에서 마음의 존재를 제시하는 내용을
참조해야 한다.
또는 『해심밀경』 『유가사지론』 등에서 제시되는 유식학 내용을 참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존재가 확인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문제삼는 감각현실 A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것은 관찰자의 마음에 얻어진 감각내용 A로서 그것을 문제삼아야 한다.
그런 경우에는 그 내용을 감각하고 관찰하는 주체의 감각과정을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그런 경우에는 또 이에 관여하는 그 주체의 '마음'을 함께 전제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관찰자의 마음에서
그런 A가 그처럼 얻어지는 과정을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감각현실 A는 그런 배경에서 문제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배경사정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 그런 A가 얻어진 상태의 관찰자의 마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A가 얻어지지 않고 있던 상태에서의 마음과 함께 이를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모습을 눈을 통해 볼 때 별도의 마음이 개입한다.
또한 그런 감각현실은 무엇을 대상으로 해 얻었는가도 이와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런 경우 등무간연과 소연연을 제시하게
된다.
인과를 이해할 때 처음부터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곤란하다.
● 감각과정에서의 등무간연
예를 들어 감각현실로서 어떤 A 의 발생과정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우선 마음에서 그런 A를 얻어내는
과정을 살펴야 한다.
이런 부분이 곧 불교에서 제시하는 등무간연(等無間緣 samanantara-pratyaya)이다.
이는 마음에서 마은 내용이 전후로 변화할 때의 마음 상황을 제시한다.
즉, 마음에서 한 영역에 두 내용이 동시에
차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의 한 영역에 어떤 내용이 얻어지려면 그 이전의 마음내용이 비워져야 한다.
이전 순간의 마음내용이
비워지지 않으면 뒷 순간에 마음내용이 생기지 못한다.
한편 이들 전후의 마음내용은 앞 뒤 내용의 자격이 평등하다.[등]
또한 이들
사이에 그 간격이 없다. [무간]
그래서 이런 마음작용의 사정을 등무간연이라고 표현한다.
● 감각현실을
얻게 한 대상으로서 소연연
한편, 어떤 주체가 마음에서 감각현실로서 어떤 A 를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주관이
상대한 대상을 또 살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대상으로 이런 내용을 얻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어떤
주체가 눈을 떠서 어떤 A 를 보게 되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A 는 그 주체가 눈을 떠 얻어낸 감각내용이다.
이는 그 주체가 감각을 통해 얻어낸 감각결과다.
즉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 A를
그 주체의 눈이 상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그 A 내용을 곧 A라는 감각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것을 곧 곧 A라는 감각내용을 얻게 한 '소연연'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이해다.
이 문제는 이하에 간략하게 살피기로 한다.
○ 소연연과 관련된 망집문제
현실에서
문제되는 내용이 있다.
처음 어떤 이가 눈을 떠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일정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부분은 꽃이나 바위라는 식으로 분별을 행하게 된다.
이 경우 그런 꽃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이 경우 꽃이 발생한 인과를 살피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 다양한 망상분별이 개입하게 된다.
우선 여기서 '꽃'이라는 표현으로 가리키는 내용이 정확히 어떤 부분인가가 문제된다.
하나의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이 다양할 수 있다.
이 사정을 이미 살폈다.
그래서 이 경우 꽃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생긴 것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관념분별이 생기는 과정도 역시 위와 마찬가지로 4 연을 문제삼을 수 있다.
이 경우
'꽃'이라는 관념은 사전이나 글자를 보고도 생길 수 있다.
또는 나무라는 생각을 한 다음 이후 꽃이라는 관념을 연상해 떠올려서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꽃이라는 관념이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대해서 일으키는 경우라고 하자.
이 경우 그 관념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상대한 '대상'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감각현실은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즉 그 주체가
감각을 통해 얻어낸 감각결과로서 감각내용이다.
그래서 이 경우 소연연은 그 주체의 마음안 감각내용이 된다.
그래서 이는 마음안
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다.
그래서 마음안 내부의 대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만 관념분별과 감각현실은 서로 마음안에 위치하는
영역이 다르다.
그런 사정으로 이 경우 소연연은 소소연연(疎所緣緣)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
감각현실의 인과를 문제삼는 경우의 망집
어떤 이가 '꽃'의 발생과정을 살핀다고 하자.
이 경우 그가 '꽃'이란
언어표현으로 가리키는 내용이 '감각현실' 부분이라고 하자.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그처럼 있게된 연유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데 여기에는 다양한 망집이 들어 있다.
우선 이 상황에 어떤 이에게 문제삼는 꽃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우선 마음 속에서 '꽃'이란 관념을 떠올린다.
즉 그가 눈을 감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런 관념은
떠올릴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가 눈을 떠 주변을 찾아 보게 된다.
그런 다음 일정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즉 그는 그런 부분이 꽃이라고 여기면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상(相)을 취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기본적인 망상분별에 해당한다.
이 상황에서 그가 가리킨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관념내용'이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한 관념분별도 감각현실이
아니다.
한편 감각현실에는 그런 관념분별이 들어 있지 않다.
또한 관념분별은 역시 그런 감각현실이 없다.
그래서 일정
감각현실 부분을 그런 관념내용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이처럼 망상분별을 일으켜 현실에
임한다.
그가 가리키는 감각현실 부분에는 그런 관념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곧 그런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한편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다고도 잘못 여긴다.
또 반대로 그가 생각하는 관념내용은
그런 내용을 요소로 지닌다고도 여긴다.
그런 가운데 그는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그런 내용이라고 잘못 여겨 상을
취(取)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가장 기본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이후 그 감각현실이
발생한 사정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다시 4 연의 내용을 살핀다고 하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다시 한번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주체가 눈을 떠서 어떤 A 를 보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소연연을 살핀다고 하자.
이는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대상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문제가
된다.
그런데 그가 감각해 얻어낸 A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A 내용을 일반적으로 곧 그 주체가 상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런 경우 그것을 곧 곧 A라는 감각내용을 얻게 한 '소연연'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경우 그 A 는 그 주체가 눈을 떠 얻어낸 감각내용이다.
이는 그 주체가
감각을 통해 얻어낸 감각결과다.
즉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만일 어떤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게 한 외부대상을
찾는다고 하자.
이는 그 주체의 마음이 관계한, '마음밖 실재'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밖 실재는 끝내 한 주체가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실재는 공하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 결과 마음내용을 얻게한 외부대상이 무언가의 문제도 마찬가지가
된다.
○ 방편적인 세속제
감각현실로서 어떤 내용이 나타나는 원인요소를 찾을 때 4
연을 제시하게 된다.
불교에서 제시하는 기본 내용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방편상 시설해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제거해나가게 된다.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다른 영역에도 있는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이해시키는데 본 취지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일단 일반적인 입장에 눈높이를 맟추어 설명을 행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일반적으로 세속에서 옳다고 여기는 세속제를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일의제를 이해하도록 이끌게 된다.
이는 그래서 일종의 '가정적' 논의 형태가 된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본래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일단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을 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가운데 세속에서 옳다고 보는 내용을
방편적으로 시설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내용을 일단 살펴나간다.
그런 가운데 그 내용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일의제의 내용을 이해시키려는 취지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에도
일단 다음과 같이 제시하게 된다.
즉, 한 주체는 일정한 감각현실[경]을 눈[근]에 의존해 안식[식]을 통해 얻는다고 제시하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세속제의 차원에서 제시하는 내용이다. [근경식 화합]
현실내용들이 나타나는 관계를 4 연으로
제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연, 증상연, 소연연, 등무간연의 내용이 그런 취지다.
즉 4 연의 설명은 이를 통해 본 바탕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한 취지에서 제시한다.
즉, 위와 같은 4 연을 제시하는 기본 취지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을
일단 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 이를 통해 그에 대한 망집을 제거하고자 한다.
이런 취지로 이런 내용을 시설해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실다운 내용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이를 곧 실다운 내용이라고 제시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4 연의 내용을 실다운 내용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으킨 망집을
제거하는데 이르러야 한다.
즉, 이런 연기관계를 바탕으로 현실이 공함을 파악하는데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을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 안 되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미리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취지에서 제시하는 내용들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념두에 두고 이후 문제를 살펴나가야 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그런 사정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과학자나 일반인이 어떤 내용을 피상적으로 관찰하고 보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쉽다.
그것은 현실의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할 언어나, 수학 논리학 분야도 사정이 같다.
그리고 그외 일반적인 일상생활의 경우도 대부분 이와 같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망집에 바탕해 무언가를 관찰하고 문제를 논의해간다.
그렇지만, 본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잘못된 망집을 일으키고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런 내용을 보고한다.
그리고 그런 이해가 옳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입장이나 과학자의 상태가 이와 같다.
이는 문제다.
이는 단순한 진리판단과정의 오류에 그치게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무언가를 관찰한다고 하자.
그래서 어떤 내용을 알아냈다고 하자.
이를 위와 같은 형태로 세상에 보고하게 된다.
그리고 옳은 진리를 찾아낸 것처럼
임하게 된다.
그리고 한편 이런 내용에 바탕해 무언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좋음을 준 일이 100
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로 인해서 피해를 키운 일 역시 또 그 이상이 된다.
현실에서 대부분 각 주체는 이처럼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업을 행해간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런 판단과정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부분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처음에 먼저 제시하였다.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과 관련해 오류를 다시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 모든 경우에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한 주체가 관찰한 내용은 외부세계에 객관적으로 그대로 존재하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 그런 내용을 그렇게 관찰하는 '이' 자신'의 마음을 빼면 곤란하다.
그리고 한 주체가 감각한 내용은 그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도 그런 입장에서 잘 판단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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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과 인식결과
지위의 혼동
어떤 이가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내용을 얻게 되었는가를 살피게 된다.
우선 자신 혼자 눈을 뜨고 감으며 이 실험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과 상태가 엇비슷하고 자신이 신뢰하는 영희나 철수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옆에 철수나 영희를 세우고 철수나
영희가 눈을 뜨고 감으면서 감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자신이 옆에서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이가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판단을 좀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혼자 행하는 실험과
옆에 철수를 세워 놓고 행하는 실험
사이에서 심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리고 이 차이를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혼동을 바탕으로 각 논의를
살펴가기 쉽다.
따라서 이 부분을 먼저 잘 살피고 주의해야 한다.
먼저 자신이 직접 실험을 한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보거나 보지 못하게 되는 경험을 반복한다고 하자.
한편 자신이 신뢰하는 자신과 엇비슷한 철수가 있다고 하자.
이런 철수를 옆에 놓고 실험을 한다고
하자.
이제 위 상황에서 철수에게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해보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철수의 상태를 관찰한다.
그리고 철수가
말해주는 보고 내용을 음미한다.
이 실험 주제는 다음이다.
각 주체가 어떤 상태에서 무엇을 조건으로
꽃을 보게 되는가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많은 잘못된 분별을 하게 된다.
그 사례를 앞에 나열하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처럼 잘못된 판단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것이 잘못된 망상분별인가는 위 실험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그림에서 4 라는 숫자로 꽃을 표시했다.
이를 앞에 놓고 2(철수)가 보게 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이를 관찰하는 1 자신도 4 라는 꽃을 지금 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철수가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무언가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를 보고하게 한다.
그리고 그 보고와 함께 철수의 상태를 옆에서 잘 관찰해 보자.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과 그 관계를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우선 자신이 눈으로 보는 모습
가운데 철수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자신이 꽃으로 여기는 모습이 있다.
그래서 이 경우 이 4 라는 꽃
부분을 철수가 대하는 대상이라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1 자신이 감각을 통해 얻어낸 감각내용이다.
즉 1
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래서 2 와 같은 부분을 곧 '철수' 그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4와 같은
부분을 곧 철수의 눈이 대하는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런데 이런 2 부분이 곧 철수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4 와 같은 부분이 곧 철수의 눈이 대한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그 4 라는 꽃부분이 갖는
지위에 대해 혼동이 시작된다.
지금 논의하는 주제가 이를 문제삼는다.
그런데 다시 앞과 같은 사정으로 1 자신의
경우도
그 4 라는 꽃을 1 자신이 대하는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기 쉽다.
스스로 볼 때 2(철수)나 1 자신이 거의 같은 상태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한번의 혼동이 시작된다.
그러나 철수가 대할 때 4 라는 부분이 갖는 지위와
자신이 대할 때 4 라는 부분이 갖는 지위는 다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4 라는 부분은 어느 경우에나 그 지위나
성격이 같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이 논의를 하기 쉽다.
그러면 대단히 곤란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혼동과
망집은 이후 쉽게 해소되지 않게 된다.
지금 어떤 주체가 눈을 떠 어떤 내용을 얻을 때 무엇을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는가를 살핀다.
그런 경우 처음에 위에 제시한 실험을 스스로 행하면서 앞에 제시한 내용들을 잘 해결해야 한다.
위 상황에서 이렇게 문제를 반대로 제기해보자.
그래서 앞의 문제가 무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 2(철수) 가 눈을 떠서 그의 마음으로 보는 꽃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1 도 그
꽃을 본다고 하자.
그런데 1 은 무엇을 대상으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가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2(철수)가 이를 옆에서 거꾸로 관찰한다고 하자.
이 경우 2(철수)가 눈을 떠 보는 내용들이 있다고 하자.
예를 들어 위
그림에서 5^와 같은 부분이다.
그런데 이는 2(철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직접 파악하기 곤란하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내용 가운데 2(철수)가 본 꽃 모습이 있다고 하자.
그것을 4^ 라고 하자.
이 경우 4^는 2(철수)가
눈을 떠 본 꽃모습이다.
그런데 이 경우 2(철수)는 1이 꽃을 보는 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하기 쉽다.
즉 1의 눈이 그런 4^ 를
대상으로 삼아 꽃모습을 본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1 자신은 2(철수)가 눈을 떠서 보는 1^가
아니다.
또 1 은 4^와 같은 내용을 대상으로 어떤 모습을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1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1은 눈을 떠 4 와 같은 꽃모습을 본다.
그리고 또 4 와 같은 꽃모습을 2(철수)의 눈이 대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앞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2(철수)가 대한다고 여기게 되는 꽃 4와
1 이 보는 꽃 4는 그에 부여할 지위가 다르다.
꽃4 는 1(자신)와
관련시키면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감각결과다.
그러나 꽃4 는 2(철수)와 관련시키면 대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는 물론
앞에서 보듯 잘못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인정해도 이들 각각에 부여하는 성격과 지위가 다르다.
그런데 대부분 이 4가 같은
지위를 갖는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한편 앞에 꽃4 가 놓여 있다고 하자.
이를 놓고 자신과 영희가
함께 꽃을 만진다고 하자.
이 과정에서도 이를 서로 같은 내용이라고 여기기 쉽다.
이 상황에서 꽃이 어디 있는가라고
서로에게 묻는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은 꽃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영희도 그와 같은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그리고 그 꽃을 함께 만진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그 부분은 자신과 영희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지위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대하는 꽃 부분은 우선 자신의 눈으로 얻어낸 감각 결과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의 손이 이런 부분을 만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눈으로 그렇게 여겨지는 모습을 보는 것 뿐이다.
그런데 영희 입장을 다시 살펴보자.
이
경우 그 꽃 부분은 영희가 손으로 대하는 대상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영희는 자신이 마음 속 감각내용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은 아니다.
한편 영희는 자신의 마음속 감각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만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정을 일반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 부분을 일정한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소연연이나, 경]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 표현이 갖는 의미에 혼동을 대단히 많이 일으키게 된다.
●
하나의 내용을 인식대상이자 인식결과물로 혼동하는 사정
옆에 철수가 서 있다.
이 철수에게 눈을 감고 뜨고 하는 실험을
반복하게 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 과정을 1이 관찰한다.
그런데 철수는 눈을 감으면 어떤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꽃이 다시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이 경우 관찰하는 1 입장에서는 그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
1 자신이 대하는 4 라는 꽃도 그대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2(철수)는 성실하게 그런 변화를 보고해준다.
이 상황에서 1 은 2(철수)가 정작 매 순간 무슨 내용을 얻는지는 직접 파악하지 못한다.
이것이 일단 1의
약점이다.
그래서 1 입장에서는 그런 변화는 2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2
가 얻는 내용은
2 안에서 예를 들어 5^ 영역에 표시한 것처럼 얻게 될 것이라고 추리를 행하게 된다.
물론 이는 잘못된 추리다.
다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2 가 각 상황마다 어떤 내용을 얻고 얻지 못하는가는
1 입장에서는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언어를 통해서 그런 사정을 그렇게 추리하게 된다.
그리고 위 그림처럼 1 은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2 의 그런 상황이 1의 상황이기도 하다.
1 도
알고보면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음을 반복함에 따라 보거나 보지 못하게 된다.
이는 2 가 보고한 내용과 유사하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이 부분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인식과정을 이해하는데 심각한 혼동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감각
인식과정을 살피는 경우 망집을 일으키게 한다.
이 사정을 보자.
1 이나 2 나 본래 사정은 엇비슷하다고 하자.
그래서 1 이 눈을 뜨는 순간 위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고 하자.
그래서 1이 본 4 라는 꽃은
1 의 입장에선
자신이 그런 인식과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4 라는 꽃 모습은
1 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눈을 떠 감각해 자신의
마음에 얻어 놓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앞과 같은 실험을 행하면서
철수를 놓고 관찰을
하게 되면 달리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4 라는 꽃내용을 놓고 다음처럼 이해한다.
4 가 눈을 감고 뜨고 하는
과정에서 2가 그 눈으로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다시 2 는 이 4 를 대상으로 마음안에서 2 나름대로 따로 얻는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똑같은 4 부분에 대해 서로 달리 이해한다.
즉, 2 를 놓고 관찰을 행할 때는 그 내용이 곧 2
가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한편 1 이 스스로 무언가를 보게 되는 과정을 곰곰히 생각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바로 그 내용이 1이 눈을 떠 매 순간 얻는 '인식결과'다.
즉, 감각과정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이다.
그래서
1의 마음 내용이다.
따라서 하나의 내용을 놓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지위와 성격을 갖는 내용으로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면서 혼동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부분은 자신이 눈을 떠 얻는 인식'결과
내용'이면서
동시에 그런 인식을 얻게 한 그 외부'대상'이라고 혼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혼동을 바탕으로 논의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논의과정에서 이 부분을 다 같은 언어표현으로
꽃이나 대상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반대로 다시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즉, 이들 각 표현은 어떤 입장에서
대하는 어떤 성격의 부분을 가리키는지 혼동하게 된다.
위 과정을 살펴본다고 하자.
그러면 하나의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각 지위의 내용을 뒤섞어 이해하게 된 사정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 어떤 사정으로 이런 혼동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기 쉽다.
그래서 처음에 이 문제를 입장을 바꾸어서 이 상황을 잘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가정적 논의를 통한 감각과정의 이해
한 주체가 눈을 뜨면 무언가를 보게 된다.
이를 감각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이 과정에 대해 많은
혼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를 가정적 논의방식으로 살피게 된다.
처음 옆에 2(철수)(철수)가 서 있다고
하자.
그 2(철수)가 무엇을 보는 과정에 대해 잘못된 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이 과정을 그처럼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이해에 담긴 잘못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 이 내용을 그렇다고 일단 전제한다.
그리고 이후 다음
내용들을 살펴나가게 된다.
그런 사정 때문에 이것을 '가정적' 논의라고 표현한다.
이는 다음의미다.
즉, 그런 이해는 옳지 않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대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상대가 이해하는 내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시설'을 해 놓고 살펴나간다.
그럴 경우 이로 인해 어떤 문제점이 있게
되는가를 살핀다.
또 이런 문제점을 통해 처음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시키게 된다.
이런 취지로 논의해가는 것을 가정적 논의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그런 경우 이런 방식으로 감각과정을 살펴갈 수 있다.
○ 일반적인
잘못된 이해
가정적인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우선 일반적으로 감각과정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내용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감각과정에 대해 다음처럼 파악한다.
예를 들어 1 입장에서
이 상황을 다음처럼 이해한다.
우선 눈을 떠 보게 되는 4 (꽃 모습) 부분에 대해 그 지위를 잘못 이해한다.
우선
4 라는 부분은 1 이 눈을 떠서 보게 된 감각내용이다.
즉, 자신이 얻는 감각내용이다.
즉 1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2(철수) 를 바로 1 자신 옆에 세워 놓고 관찰한다고 하자.
이 경우 1 은 1 부분을 평소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2(철수) 부분은 또 다른 사람 철수라고 잘못 여기고 대한다.
그런 가운데 1과 2(철수)를 서로
비교하면 큰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 가운데 1과 2(철수)의 입장을 오가면서 이 내용을 관찰한다고 하자.
먼저 2(철수) 입장을 놓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4는 2(철수)가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1이 옆에 있는 2(철수)와 자신을 서로 비교하면 큰 차이가 거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4는 1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여긴다.
그런 결과 이 4는 모든 각 주체 밖에 있는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한편, 이들 외부대상을 대해 감각해낸 내용이 무언가를 생각한다고 하자.
그래서 1이 2의 감각과정을
지켜본다고 하자.
그러면 2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어떤 내용을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1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그 내용은 2(철수) 안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라고 여긴다.
그래서 2가 눈을 뜰 때
얻는 감각결과는 2 내부에 있게 될 것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2(철수) 내부 즉 5^ 와 같은 부분에 그 내용이 얻어진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4는 여전히 2 가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여전히 여긴다.
한편 자신이 이 2 를 대하여 감각해 낸
내용이 무언가를 스스로 생각해본다고 하자.
그래서 스스로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해 본다고 하자.
그럴 때 나타나고 사라지는
내용은 곧 4와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의 경우에는 역시 이 4를 자신이 감각해낸 감각내용이라고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이 4
는 1의 경우에서는 1이 감각과정을 통해 얻어낸 감각결과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4 는 1의 경우에는 두가지 지위를 함께
갖는다고 잘못 여긴다.
즉 1자신의 경우에는 1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대상을 대해 감각해낸 감각내용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감각 과정도 이를 바탕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감각과정으로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얻어진 내용은 바로 감관이 대한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대상을 통해
자신이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 하나의 내용이 성격이 다른 지위를 다 갖는다고 잘못 이해한다.
한편 감각과정에서 그 대상은 그 내용을 얻는 순간에 감각내용과 함께 겹쳐 있다고도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 경우
감각한 내용은 그 대상과 일치한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사정으로 감각한 내용은 곧 대상과 일치되는 '옳은' 내용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이처럼 한 내용에 대해 각 지위를 섞어 표현하고 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 각 내용을 함께 중첩시겨
이해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하나의 4 라는 내용이 어떤 지위의 어떤 내용인지를 구분하기 힘들게 된다.
그리고 매번 1 자신의
입장과 2(철수) 의 입장을 오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내용에 대해 뒤죽박죽이 된 상태로 대하게 된다.
4는 2 의 입장을 놓고
보면 외부대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2 가 감각한 감각내용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1 의 입장을 놓고 보면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1이 감각해낸 감각내용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다시 4 라는 하나의
부분에 대해 매 경우 각기 다른 표현으로 가리키며 논의를 해나간다.
그런 경우 4 라는 내용을 가리키기 위해 어떤 경우는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표현한다.
또 때로는 그 4 라는 내용을 감각결과라고도 표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경우 이런 표현을 대하는 입장도 함께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즉 각 표현으로 정확히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지
구분하기 힘들게 된다.
그렇게 혼동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에 바탕해 온갖 망상분별과 혼동을 증폭시켜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들이 이들 내용에 중첩되고 얽히게 된다.
여하튼 이들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감각현실과 관련해 일반적인 입장에서 대부분 잘못 이해한다.
이들 내용을 처음에 제시했다.
그래서 이 실험에서 이들
내용을 천천히 잘 검토해가야 한다.
우선 4 라는 부분은 1 이 눈을 떠서 보게 된 감각내용이다.
즉, 자신이 얻는
감각내용이다.
즉 1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잘못된 이해다.
그리고 이 사정을
살피기 위해 가정적인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 방식으로 살펴나가게 된다.
즉, 그런 이해는 옳지 않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대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상대가 이해하는 내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시설'을 해 놓고 살펴나간다.
그럴 경우 이로 인해 어떤 문제점이 있게 되는가를 살핀다.
○ 다른 이 입장에서 자신의 감각과정에 대해 이해하는 내용의 검토
우선
2(철수) 가 거꾸로 1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과정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2(철수) 는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를 살펴본다.
이런 경우 2(철수)가 이해하는 방식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리고 5^ 부분을 초점을 맞추고 잘 살펴야 한다.
그런 경우 이제 2(철수)는 2자신의 모습에서 일부만 보게 된다.
즉, 2(철수) 는 2(철수) 자신의 허리나 눈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처음 제시한 그림에서 1의 상황처럼 된다.
그런 가운데 2(철수)가 1이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는 상황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상황에서 2(철수)는 1^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2(철수)
입장에서는 1^ 부분을 곧 1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곧 1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1^가 2(철수)에게 보고한다.
즉, 1^가 매번 무언가가 보이지 않거나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래서 2(철수)는
이를 통해 다음처럼 생각한다.
여기서 4^ 는 2(철수)가 보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대상으로 1^의 눈이 대한다고 여긴다.
즉, 4^ 를 1^가 대하는 외부대상으로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1^가 어떤 내용을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2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그 내용은 1^ 안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라고 여긴다.
따라서 2(철수) 자신이 보는 1^ 와 같은 부분에 그 내용이 얻어진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2가 이해하는 내용을 1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이해는 이치에 맞지 않음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우선 4^는 2(철수) 의 마음에서 얻는 내용이다.
따라서 1 이 그런 4^ 를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 1 자신이 눈을 떠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은 1^ 와 같은 부분에서 얻게 된다고 할 수도
없다.
1^는 2(철수) 자신이 마음에서 얻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2(철수) 는 그렇게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1은 그런 이해가 잘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사정을 위 그림을 놓고 살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자신이 다른 이의 감각과정에 대해 행하는 판단에 대한 재검토
그런데 1 자신이
2(철수) 가 무엇을 보고 보지 못하는 과정을 살피는 방식도 그와 같다.
그래서 그처럼 엉터리 추론을 바탕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런 경우 이제 1은 1자신의 모습에서 일부만 보게 된다.
즉,
1은 1 자신의 허리나 눈은 보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1이 2(철수)가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는 상황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상황에서 1은 2(철수)의 상태를 보게 된다.
그리고 1 입장에서 2 부분을 타인 철수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곧 2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2(철수)가 매번 보고한다.
즉, 2가 매번 무언가가
보이지 않거나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래서 1은 이를 통해 다음처럼 생각한다.
우선 4는 1 자신이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대상으로 2(철수)의 눈이 대한다고 여긴다.
즉, 4 를 2(철수) 가 대하는 외부대상으로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2가 어떤 내용을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1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그 내용은 2(철수) 안에서만 일어나는 변화라고 여긴다.
따라서 2(철수) 내부 즉 5^ 와 같은 부분에
그 내용이 얻어진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1이 이해하는 내용을 2(철수)가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이해는 이치에 맞지 않음을 역시 쉽게 이해하게 된다.
우선 4는 1의 마음에서 얻는 내용이다.
따라서 2(철수)가 그런 4를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 2(철수)가 눈을 떠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은 5^ 와 같은 부분에서 얻게 된다고 할 수도 없다.
2(철수)는 1 자신이 마음에서 얻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
● 일정 부분에 대한 언어표현으로 인한
혼동
1이 눈을 떠 보니 4 와 같은 꽃이 보인다고 하자.
그래서 그 꽃을 손으로 붙잡는다고 하자.
그리고
이것을 무엇이라고 볼 것인가라고 스스로 묻는다고 하자.
또는 2 에게 묻는다고 하자.
이 경우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 1이나 2나 그 상황이 마찬가지다.
이 경우 그것을 눈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 할 것인가.
또는 손이 붙잡은 대상이라고 할 것인가.
또는 단순히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꽃을 매번 올려 놓고 손으로 가리키며 논의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언어로 그것을 나타내면서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 어렵게 된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으로 보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꽃일 수도 있다.
또는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보는
부분일 수도 있다.
또는 자신과 비슷한 영희나 철수로 여기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감각을 통해 얻은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감각현실은 어떤 요소를 원인으로 해서 나타난 것인가를 살핀다고 하자.
이런 경우 소연연이란 표현으로 그
원인의 하나를 제시하게 된다.
즉,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된 대상을 소연연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한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즉 마음이 무언가를 상대해 얻은 내용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밖 내용은 마음이 끝내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영역이다.
그래서 이를 공하다고 표현한다.
경전에서 부처님의 입장은 이와 같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 그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대한다.
원칙적으로는 그 사정을 곧바로 잘 관해야 한다.
그래서 망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처님은 그처럼 문제되는 내용을 일단 방편상 언어를 시설해서 가리키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본래의 상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게 된다.
이는 부처님이 가르침을 베풀 때 사용하는 방편으로서 언설이다.
그리고 이는 마치 강을 건네기 위한
뗏목과 같다.
그리고 이를 시설 안립 가명 이런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이렇게 언설 방편을
사용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기본적으로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 부분적으로는 망집을 제거하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그런 시설
방편에 대해서 다시 다른 망집을 일으켜 대하게도 된다.
그 사정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자.
1 이 눈을
떠 보는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하자.
그것을 꽃이라고 하자.
그래서 이를 그림과 같이 4 라고 표시하여 제시한다고
하자.
그런데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본래 1 이 눈을 떠 얻는 그런 감각현실에는 그런 내용을 처음부터
얻을 수 없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감각현실 자체는 그렇게 생생하게 얻는다.
그리고 그 주체는 이후
그에 대해 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각 부분을 묶고 나눈다.
그래서 일정 부분은 무엇이라고 분별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관념내용들은 관념분별 영역에서 일으킨 내용이다.
그리고 정작 감각현실 영역 자체에서는 얻을 수 없다.
더욱이 그런
관념분별 내용은 본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 내용도 사정이 같다.
감각현실 역시 본 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이 사정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망상분별에 바탕해서 그런 부분을 대한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일반적으로 꽃이라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서 꽃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손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는 그런 부분이 곧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일단 가정적으로 상대가
주장하듯
그런 내용이 그 각 부분에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부분을 꽃이나 4 라고 표시해 시설해 놓게 된다.
그리고 그 4 는 어떤 과정으로 얻게 되는가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그 4 의 지위는 과연 무언가를 살피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시키려 노력하게 된다.
앞에서 이 내용을 기본적으로 살폈다.
이제 1
이 눈을 떠서 보고 4 라는 꽃의 모습을 얻게 된다고 하자.
한편, 이 상황에서 다른 이 2(철수)를 기준으로 놓고 이
과정을 살핀다고 하자.
이 경우 4 라는 꽃 부분이 2 가 대하는 외부대상이 아니다.
한편, 이 4 라는 부분은 1
의 눈이 상대한 외부대상도 아니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앞과 같은 실험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4 라는 부분을 바로 2 가 눈으로 상대하는 그
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경우에서도 그 4 라는 부분이 자신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한편 자신이 손을 뻗쳐 그 4 라는 꽃 모습에 손을 갖다 댄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순간 자신이 촉감을 얻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그 4 라는 꽃 모습이 바로 그런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라고 다시
잘못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그런 일반적인 경우를 전제로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4 가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를 살피면 결국 4 연을 제시하게 된다.
세속에서 이런 4 연이 옳다고 보게 되는 사정은
다음과 같다.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
이것이 연기(인과)관계에 해당하는 각요소를 서로
관련시키는 형식이다.
그래서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찾아서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사정이 그렇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씨가 없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땅에 아무리 태양이 비추고 비가 내리고 물을 주어도 꽃이
피는 것을 보기 힘들다.
따라서 그 씨가 그 꽃과 관계가 있다고 제시한다.
이는 꽃에 대해서 망치를 제시한 것과는
다르다.
이들은 그 상황 그 자리에서 넣거나 빼거나 해도 꽃과 별 관계가 없다.
그리고 나머지 요소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과연 그 씨만 그 자리에 있으면 꽃이 핀다고 보기 힘들다.
즉, 그 씨가 있다고 해도 만일
태양이 일체 비추지 않는다고 하자.
또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다고 하자.
또는 심지어 꽃을 싫어해 꽃만 보이면 뽑아 내는 이가 그
장소에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꽃을 보기 힘들다.
그리고 꽃이 피어난데 필요한 요소를 수없이 많이 나열할 수 있다.
그런데 무언가가 있거나 없거나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들은 그와 그런 관련성이 있다고 제시하기 곤란하다.
결국 앞의 연기(인과)의 관계성이 있는 것들을 원인요소로 나열하게 된다.
그래서 각 요소를 관련지어
살피게 되는 핵심은 다음이다.
즉, 일정 상황에서 어떤 것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문제삼는 것(꽃)이 있거나 없게 되는
관계가 있는가이다.
한편 증상연과 인연을 구분하는 취지는 다음이다.
우선 땅이나 태양은 지금 문제삼는 꽃과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적다.
즉, 땅이나 태양은 땅 위에 있는 수많은 내용들과 다 그런 관계성이 있다고 보게 된다.
그 꽃과의 사이에서만
그런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반해서 씨는 또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된다.
한편, 꽃을
문제삼는 경우
어떤 주체가 그런 내용을 보는 것이 늘 전제된다.
만일 이를 빠뜨리면
소풍을 가서 돌아오면서
인원을 세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은 빠뜨리고 수를 세는 이와 사정이 같게 된다.
한편, 이런 감각현실로서 꽃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가 어떤 관념분별을 일체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감각현실만 가지고 이를 문제삼기
곤란하다.
즉, 관념분별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감각현실이 얻게 된 사정도 문제삼기 곤란하게 된다.
그래서 인과(연기) 문제를 살피는 일은 일정한 분별을 전제로 한다.
즉, 감각현실의 각 부분에 대해서 분별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즉, 그 각 부분이 꽃이다 바위다 이런 식으로 분별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이점을 잘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인과문제는 그런 망상분별과 희론을 일으킨 상태를 전제로 한다.
이런 경우 과연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분별을 행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문제삼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한편 그 감각현실은
또 감각현실대로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들에서도 혼동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잘 구분해야
한다.
● 하나의 내용이 갖는 여러 지위
관념내용이 무엇을 대상으로 일으켜 얻은 것인가도
문제된다.
그런데 한편 감각현실은 무엇을 대상으로 일으켜 얻은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그런데 여하튼
무엇을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고 문제삼는 것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데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게 된 대상을 찾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대상은 1 이 얻는 감각현실 안에도 없다.
한편 2 가 얻는 감각현실 안에도 없다.
또 1 이 얻는
감각현실 역시도 2 가 얻는 감각현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놓고 이 경우를 살펴보자.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s://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 눈으로
본 내용이 어떤 입장의 대상도 아닌 사정
1 이 눈을 떠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핮.
그림에서 4 와 같은 부분이 그런
내용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런 부분은 감관이 대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이는 비록 망상분별에 바탕한 내용이다.
그런데 위 그림에서 2 안에 그려진 5^ 부분을 놓고 살피면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 가 눈을 떠서 4^ 와 같은 꽃 모습을 얻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4^ 는 그가
꽃 모습을 얻게 된 대상이 아니다.
즉, 4 ^ 를 대상으로 2 ^가 상대해 4 ^를 얻는 것이 아니다.
즉 2 ^의 눈이
상대하는 것은 4^ 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그처럼 잘못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
2 의 입장에서 5 ^ 와 같은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이 경우 1 ^가 4 ^를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1 ^ 가 4 ^를 대상으로 삼아 내용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이 내용은 위 그림을 놓고 5^ 안의
내용을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 이 눈을 떠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것을 위 그림 내용 전체가
나타낸다.
그래서 이 내용 전체는 2 의 5^내용과 성격이 같다.
1 이 보는 4 라는 꽃 모습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도 4 는 1 자신이 대하는 대상이 아니다.
1 이 관찰할 때는
자신이 본 4 라는 꽃 모습을 2 가
상대한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래서 2 가 어떤 내용을 얻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4 는 1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래서 다른 이가 마음안 내용을 대상으로 삼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어떤 입장을 놓고 이해해도 마찬가지다.
이
각 경우마다 각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 대상은 여기에 없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된다.
예를 들어 어떤 주체가 마음에서 4 와 같은 꽃 모습을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4 는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4 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님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제 감각현실을 얻게 한 대상을
실재 영역에서 찾기 쉽다.
그 경우 실재 영역에 감각현실을 그대로 밀어 넣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얻게 된 4와
일치하는 내용이 실재 영역에 실재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처럼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아가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래서 외부대상을 실재 영역에 놓고 문제를 살핀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이 문제는 실재와 관련된 논의가 된다.
그래서 논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그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그 사정은 알고보면 꿈과 같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어서 꾼 바다나 황금의 꿈과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은 그런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실재 영역에서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찾으면 곤란하다.
그런데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의 정체를 살핀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감각현실 등의 본 바탕으로서 실재 영역을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앞에서 제시한 4 연 등의 연기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을 꽃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 꽃이 어떤 사정으로 그 자리에 있게 되는가를
살핀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일정한 상황에서 씨를 제거한다고 하자.
또는 태양빛이나 물을 제거한다고 하자.
이런 식으로 4 연에 해당한 내용들을 제거한다고 하자.
또 반대로 그 상황에서 이들 내용을 다시 넣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따라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얻거나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a + b => C 의 관계로 나타내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연기관계 식은 다음을 의미한다.
우선 그렇게 연기관계를 통해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그런 연기관계로 얻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사정으로 그 내용은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내용은 무상, 고 , 무아, 무자성, 열반적정, 공함을 나타낸다.
한편 실재 영역의 내용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 내용은 링크를 걸고 생략하고자 한다.
여하튼 여기서 소연연에 대해서 살핀다.
이는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얻는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들 내용과 다 관련이 된다.
본래 그런 관계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본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일정한 측면에서는
앞에서 1 이 눈을 떠 보는 4 와 같은 꽃 모습을
그에 대해 그것이 나팔꽃이라는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삼게 된다.
이 경우 그것을 일단 소연연이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4
연에 포함시켜 제시하게 된다.
그렇게 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그런 감각현실이 곧 그 외부대상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감각현실을 얻게 한 대상을 소연연이라는 표현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소연연을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 찾아나선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실재 영역과 관련된 문제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물론 그런 표현으로 그런
실재 영역의 내용까지
가리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재 영역은 현실 내용과는 성격이 다르다.
현실 내용은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실재 영역은 그렇지 못하다.
실재는 그 내용이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 주체는 그 내용을 직접 얻어낼 수 없다.
각 주체는 각 내용을 일정한 관계를 통해 마음에서 얻는다.
그러나
실재는 마음을 떠나 별도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래서 실재 영역에서 어떤 a 를 시설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그것을
넣거나 빼거나 하면서 관계성을 살필 수 없다.
실재 영역에서 대상의 유무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실재
영역에 그런 대상이 있고 없음 자체를 분별할 수 없게 된다.
실재 영역에서 무엇인가를 얻어야 그것을 넣거나 빼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감각현실을 얻거나 얻지 못하는 관계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관계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재영역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실재가 공함은 유무 자체나 분별 자체를 모두 떠난다.
한편 현실내용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한편 실재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을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감각현실을 공한 실재와 관련시켜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감각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꾼다고 하자.
꿈 속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
그렇지만, 침대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비록 생생하게 꿈을 꾸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침대에 어떤 내용이 아무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계와 성격이 같다.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현실 내용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이 점이 이들 논의의 핵심이다.
이들
주제는 논의 과정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가 대단히 많다.
따라서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 이들 내용을 다
상세하게 살필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 내용만 살핀다.
관련된 부분은 링크로 연결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조각글을
마치기로 한다.
참고
○실재에
대한 여러
입장
https://buddhism007.tistory.com/3560#002
sfx--자신의-정체에-대한-판단오류와-수행.txt
☞○실재에 대한 여러 입장
100m 앞에 영희가 서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영희는 자신의
손가락보다 더 작게 보인다.
그런 영희가 자신을 향해 뛰어 온다고 하자.
그런 경우 매순간 그 모습이나 형태가 달라진다.
그런데 현실에서 어떤 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를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런 형태로 일단 표시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무엇이 옳은 내용인가를 살핀다고 하자.
즉 이 수많은 모습 가운데 어떤 모습이 영희에 대한 가장
옳은 내용인가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앞의 문제를 모두 함께 생각해야 한다.
우선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의 각 내용에서 α 를 옳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머지가 다 엉터리가 된다.
그런데 β 를 옳은 내용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또 그 외 나머지가 엉터리가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또는 그런 부분을 영희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 경우 이 각 내용을 매순간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각 경우 무엇을 대상으로 이런 내용을 얻은 것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데 그 각 내용을 얻은 실재 대상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내용도 그런 실재 외부대상과 일치 불일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
그렇기에 그런 내용이 확실하고
실답고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이와 같다.
그런데 망상분별에 바탕해 이와 반대로
잘못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이런 점이 문제다.
a+ b=> C 의 인과 관계식을 놓고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본래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망집 상태에서는 이에 대해 잘못 생각한다.
즉 이런 연기관계로 무언가를 얻기에 그 각 내용이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 언어가 가리키는 내용과 관련한 혼동
언어로
논의를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각 언어표현이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그런데 언어 표현 자체만으로는 이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곤란하다.
논서 등에서 어떤 표현이 사용된다고 하자.
이 경우 각 표현이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
혼동을 일으킨다.
한편, 그것을 어떠한 관계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 지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서도 혼동과 착오를 많이 불러
일으키게 된다.
현실에서 무언가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일반인이 갖는 망상분별의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먼저 잘 확인해야 한다.
그림을 통해 이 사정을 살피는 것이 이 사정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그림을 통해 논서내용을 살필 필요가 있다.
mus0fl--Vanessa Paradis & Maxime Le Forestier - Mistral
Gagnant.lrc
● 일반적인 망상분별의 내용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망상분별에 바탕해 감각현실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나 자신에 대한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하나 엉터리가 된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전체적으로 거꾸로 뒤집힌 이해가 된다.
이는 단순한 잘못된 이해에 그치지 않는다.
각 주체가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무량겁에 걸쳐 생사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나가게 된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그
사정을 천천히 잘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내용을 여기에 다시 반복해보자.
---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신다고 하자.
그리고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하자.
그리고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본다.
귀로는 컵 소리를 듣는다.
코로는 커피 향을 맡는다.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본다.
손으로는 촉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
그러자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다.
이런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편 현실에서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런 내용이 외부 세계의
내용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또 이들은 정신 밖에 있고,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는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또 이런 내용 가운데 스스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주체로 잘못
여긴다.
즉, 감각과정에서 이들 내용을 얻는 주체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일반적으로 이런 전도망상을 일으킨다.
이런 내용들이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위와 같은 내용을 대단히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입장이 잘못된 이해임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어리둥절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이 잘못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내용이 수행과정에서 요구되는 핵심이기도
하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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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시작시점 2565_0309_10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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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 1 ]-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망집의 내용
○ 상을 취해 임하는 망상분별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얻게
된다.
그리고 감각현실을 얻는 가운데 이에 대해 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감각현실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가며 분별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부분은 바위, 저 부분은 영희 등으로 분별을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망상분별을 행하게
된다.
즉 그 감각현실에 그런 분별내용이 그처럼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 감각현실은 곧 그런 분별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분별내용은 그런 감각현실을 그 구성요소로 갖고 있다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바위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손가락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그런 부분이 곧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바위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 상을 취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그런 내용이 없는 부분을 취하여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는 잘못이다.
감각현실에서는 분별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관념내용에도 감각현실이 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한편 관념분별도 감각현실이 아니다.
따라서 상을 취해 임하는 것은 잘못된
망상분별이 된다.
○ 실재와 관련한 망상분별
한편, 자신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바탕 내용을 살핀다고 하자.
그리고 이를 실재라고 칭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실재와 관련해서도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현실내용을 얻는 경우 그 내용이 실재 영역에도 그처럼 들어 있다고 여긴다.
또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그런 내용을
현실에서 얻게 된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현실 내용을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실재는 마음과의
관계없이 마음을 떠나 있는 본 바탕을 뜻한다.
그리고 한 주체는 마음과 관계하여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실재는 끝내 어떤 주체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감각기관을 통해 일정한 조건에서만 얻는 내용이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 된다.
따라서 이들 내용은 본 바탕인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한편, 눈으로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하자.
그리고 이 내용을 다른 감관을 통해 얻는 내용과 비교해본다고
하자.
예를 들어 귀나 코 등으로 얻는 내용과 비교해보자.
이들은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그래서 어떤 감관으로 얻는
감각현실은 다른 감각 영역에서조차도 얻을 수 없다.
또한 이런 감각현실은 관념영역에서도 역시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실재 영역에서만 감각현실과 일치한 내용이 있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는 마치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의 꿈의
관계와 같다.
감각현실은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사정으로 꿈처럼 실답지 않다.
● [ 망상 2 ] - 자신과 세계에 대해 망집을 갖는 사정
한편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도 사정이 앞과 같다.
현실에서 눈을 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본다고 하자.
그런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은
없다.
그외 현실에서 자신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색,수,상,행,식 등을 나열할 수 있다.
이들도 사정이 이와 같다.
현실에서 전도 망상분별을 일으켜 스스로 자신을 잘못 파악한다.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내용이다.
평소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게 하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또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얻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판단한다.
매번 눈을 뜨면 다른 주변모습은 그 때마다 달라진다.
그런데 늘 일정 부분을 계속 보게 된다고 여긴다.
[상]
또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겠다고 뜻을 갖고 움직이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부분만 그런 뜻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 부분은 뜻에 따라 움직여 즐거움과 좋음을 가져다 주는 부분으로 여긴다.
[락]
한편 그 부분이 다른 부분에 닿을 때는 그로 인해 촉감을 느끼게 된다.
또 그 부분에 손을 대면 양 쪽에서
촉감을 느끼게도 된다.
그런데 다른 부분은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 부분은 다른 부분을 대상으로 하여 감각을 얻는 주관이
위치하는 부분으로 여긴다. [아]
그런 사정들로 이 부분은 다른 존재와 달리 깨끗하고 소중한 자신으로 여긴다.
[정]
이런 사정으로 그런 부분을 평소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이런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외부세계의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는 정신
밖에 있고,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이는 자신뿐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는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신다고 하자.
그리고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하자.
그래서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는다.
그리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본다.
그리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낀다.
이 때 자신이 눈으로 보는 컵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이를 각 감관이 대하는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한편,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러니 영희나
철수도 역시 같은 내용을 보고한다.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래서 이는 자신과 영희나 철수 등이 다 함께 대하게 되는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를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
[ 비판]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이 눈을 뜸으로써 얻는 감각현실이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마음에 머무는 마음 내용이다.
그래서 마음을 떠나 마음 밖에 있는 외부 세계의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 없다. [유식무경]
그런데 그런 특성으로 자신을 찾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들 내용을 얻는 마음을
차라리 자신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이런 상황을 다음처럼 비유로 설명한다.
원래의 자신을 바다로
비유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바다에 들어온 티끌이나 물거품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바다가 티끌이나 물거품을 스스로 바다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 사정을 위 내용에서 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다음은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한
가정적 논의다.
그런데 2 의 입장을 위 그림처럼 놓고 살핀다고 하자.
2 가 평소에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은 2^와
같은 부분이다.
그런데 그것은 2 가 얻는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 사정을 살피면 앞 비유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부처님은 경전에서 이에 대해 올바른 내용을 제시한다.
이런 망상분별을 벗어나려면 위 실험에서 각 내용을
하나하나 잘 검토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집힌 잘못된 분별을 행하기 쉽다.
그리고 경전 내용을 거꾸로 비방하게 되기
쉽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 얻는 내용의 정체를 살핀다고 하자.
그래서 그 정체가 무엇인가를 살핀다고 하자.
그 내용은 누가 무엇을 대상으로 그렇게 얻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사정을 먼저 살펴야 한다.
다음이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종이에 불을 붙이면 반복해 연기와 재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의
내용이다.
● [망상 3 ] - 인과관계와 실답지 않음의
해석
---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이를 바탕으로 하여 어떤 내용이 나타나는
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해보기로 하자.
그래서 이를 a + b => C 의 인과관계로 표시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원인 a, b 등에 본래 그런 C가 있다고 잘못 여기기도 한다.
한편, 그런 관계는 현실에서 반복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C 는 매번 이런 관계에서 그것을 반복해 얻게 된다.
즉 다수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되면 엇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와 재가 난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 그렇게 행하면 그런 모습을
엇비슷하게 경험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들이 하나같이 한 주체의 마음내용이라고 하자.
그러면 왜 그 주체의 마음 내용을 다수가 일정
시기 상황에서 일정조건이 되면 엇비슷하게
반복해 얻게 되는가라고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들 내용을
대단히 실답게 여긴다.
그러나 이들 각 내용 하나하나는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마치 종이에 그리는
그림이나 만화 또는 오늘날 전자게임과 그 사정이 같다.
이들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얻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의 관계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실답지 않다고
한다.
이 경우 a + b => C 의 관계식
자체가
그런 내용을 얻는 바탕이 되는 a 는 그런 C가 아님을 제시한다.
그리고 a 에는 그런 C가 없는 상태임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각 내용을 얻는 현실 일체가 이런 사정으로
무상, 고, 무아무자성, 열반, 공인 사실도 제시한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즉 그런 C 를 그런 관계로 그렇게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는 그런 C 가
그런 조건에서 얻고 그런 조건을 떠나면 얻지 못함도 나타낸다.
그런 사정으로 그런 C 는 영원한 것이 아님도 함께 나타낸다.
따라서 그런 C 는 무상한 것이다.
한편 그런 무상한 C 에 집착을 갖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따라
고통을 얻게 됨을 제시한다.
그 C 는 그런 조건에서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런 조건이 아니면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
C 를 얻거나 얻지 못함에 따라 고통을 얻게 된다.
한편 그런 C 는 그런 조건을 떠나 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 아니다.
그런 불변하고 고정한 진짜의 내용이 있다면 그런 C를 얻을 수 없음도 제시한다. [무아]
그리고 그런 C 는 그런
관계를 떠난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음도 제시한다.
그래서 이들은 본래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음도 제시한다.
그래서 그런 것은 적어도 아닌 그 무엇으로서 청정한 니르바나다. [ 열반 ]
한편 실재하는 본 바탕은 그런 관계를
떠나 본래 있다고 할 내용이다.
따라서 그런 관계로만 내용을 얻는 주체로서는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재는 온갖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난다. [불이不二]
즉,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온갖 2분법상의 분별을 떠난다.
그래서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내게 된다. [공함]
a + b => C 라는 인과관계는
결국 이런 내용을 함께 나타낸다.
---
이를
불교 경전이나 논서에서 망상분별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위 내용은 이런 판단을 오히려 올바르고 적절한 판단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렇게 여기게 되는 사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잘못 이해하면 이런 사정으로 그런 판단을 이 대단히
옳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그것이 거꾸로 뒤집혀 전도된 잘못된 망상임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망상분별임을 살피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처럼 잘못 여기게 되는 배경 사정을 제시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이런 상태에서 매 순간 이들 내용을 대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무량겁을 걸쳐서도 쉽게 그런 망집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런 배경 사정을 위처럼 제시하는 취지다.
언뜻 보면 위와 같은 사정 때문에 앞에서 제시한
판단이 옳은 것처럼 잘못 여겨진다.
그러나 그 사정도 알고보면 잘못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정으로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그렇게 망상분별에 묶이게 된다.
그런 배경 사정을 제시한다.
따라서 그렇게 되는 배경 사정까지 함께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망집상태를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런 상반되는 두 입장을 잘 실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 내용을 살피는 일은 상당히 복잡하다.
다만 기존 조각글에서도 이를 꾸준히 살펴왔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뽑아서 살피기로 한다.
---
이처럼 논의를 통해 살펴서 얻어낼 결론을 먼저 간단히
살폈다.
또 제거해야 할 망상분별 내용도 함께 간단히 살폈다.
물론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그 근거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이어서 천천히 살펴나가야 한다.
● 망집이 일으키는 폐해와
부작용
현실에서 일으키는 대표적인 망상분별을 살폈다.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 사정으로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이 그 침대에도 그렇게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그 침대가 곧 그 바다나 황금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이 꾼 바다나 황금이 실답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꿈을 통해 일으킨 망상증상이라고 하게 된다.
현실에서 얻는 이들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각 주체가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가게 된다.
이들을 나열하면
무량하다.
현실에서 맞이하는 온갖 사건 사고도 마찬가지다.
어떤 견해가 옳고 그르다며 시시비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대립하고 서로 상대를 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간 소송이나 국가간 전쟁도 알고보면 그런
사정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산에서 개미와 개미가 그렇게 임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현실 인간세계에서 각 개인도
그렇게 임한다.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각 생명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3 악도의 세계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이 부분을 잘 정리해야 한다.
● 망집을 망집으로 이해하는 논의의
취지
이들 논의를 통해서 얻어낼 내용을 미리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통해서 현실에서 얻어야 할 올바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어떻게 임해야 할지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할지도 잘 파악해야 한다.
논의를 통해 얻어내야 할 결론은 결론대로 잘 얻어내지도 못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결론을
바탕으로 성취해야 할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도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실천해나가지 못하게 되면
곤란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즉 자신이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는 실질적으로 실다운 자신이 아니다.
비유하면 거리에 놓여 있는 벽돌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 임시적으로 걸치는 옷과 같은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일으켜 갖는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업의 장애를 해소시켜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생사현실에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통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망집을 일으켜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매순간 행할 도리밖에 없다고 여기며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그러면 업장이 쌓이게 된다.
또 그로 인해 3 악도에 묶여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들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행을 잘 행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일정한 계기를 통해서 이들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하튼 일단
앞과 같은 내용만 먼저 제시한다.
그리고 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나가기로
한다.
>>>
○ [pt op tr]
▼mus0fl--La Fouine feat Ixzo - Crick Crick.lrc
옥상기지에서 쉬는 동안 상당히 시끄러운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영 4 개 영 4 개 외치는
부분을 듣고
이 부분이 본 논의와 관련해 상당히 깊은 메세지를 전한다.
본래 공한 실상을 바탕으로 공
가운데 공중 3 회전에 걸쳐
매번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 생을 출발한다.
어떤 노끈이 매듭을 3 번 단단하게 묶고
나면
그 노끈이 스스로 그것을 쉽게 풀어낼 수 없게 된다.
마치 이와 같이 각 주체가 처음 그렇게 망집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삶을 출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대하는 내용을 외부세계나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의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이는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래서 현실내용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고 거꾸로 뒤집힌 망상분별이다.
이 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본 사정이 그와 같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각 주체는 그렇게 잘못된 형태로 임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배경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이 부분이
생을 출발하기 전에 일으킨 공중 3 회전에 걸친 전도망상분별과 관련된다.
이를 3 능변이라고 표현한다.
소연연을 놓고
살피는 가운데 이들 주제를 모두 살피면 너무 길게 된다.
이들 내용은 관련 경전과 논서를 살필 때 살피기로 한다.
다음 페이지에 이들과 관련된 링크가 정리되어 있다.
이들은 내용을 정리해가는
중이다.
https://buddhism007.tistory.com/4053
dict-list--editing_text.TXT
출처:
https://buddhism007.tistory.com/entry/마음-현상의-이해#gsc.tab=0 [불교진리와실천]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한편 평소 자신이
대하는 내용을 외부세계 외부대상 외부물질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현실내용이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들이 자신 마음 내용임을 다음
실험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https://buddhism007.tistory.com/4035#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본 논서에서는 주로 소연연을 살핀다.
따라서 소연연과 관련된 내용에
살피기로 한다.
소연연의 문제를 잘 살피자.
이 상황을 잘 해결하기 위해
다음 그림을 놓고 문제점을 잘
정리해보기로 한다.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s://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
일단 대단히 중요한 실험을 일단 마쳤으므로
또 잠깐 쉬자.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 Gabin - Maitenant Je Sais .lrc
'소연연'에 대해서 살필 수 있는 기본적인
실험을 대부분 소개했다.
더 특별한 실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들 내용을 정상적이고 옳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깊게 살피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 논리학에서
옳은 인식의 판단 문제
어떤 주체가 눈을 떠서 꽃을 보게 된다고 하자.
이런 꽃모습이 나타났는가를 4연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소연연은 그 일부분이다.
한편 이는 현실 내용을 얻는 과정을 세속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
뿐이다.
그런데 논리학이나 인명론의 분야에 들어가면 이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살핀다.
논리학에서는 어떤 내용이 과연
옳고 참된 내용인가를 살핀다.
그리고 인명론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옳은 지식을 얻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 가운데 옳은
지식을 직접적으로 내용을 얻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를 현량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감각과정은 현량의 하나가 된다.
『관소연연론』에서도 이를 '현량'의 하나로 제시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대하기 쉽다.
그래서 또 다른 전도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가기 쉽다.
현실에서 실답지 않는 내용을 일으켜 얻는다.
그런 가운데 어떤 내용을 어떤 주체가 직접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얻은 것인지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사정만으로 어떤 내용을 올바른 인식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다음문제를
살펴보자.
영희가 100m 떨어진 곳에 서있다고 하자.
그런 영희가 자신이 서 있는 곳까지 달려온다고 하자.
이 과정에
영희는 수없이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현실에서 100m 떨어진 영희를 보게 되면 자신의 손가락보다 더 적게
보인다.
그리고 매순간 영희의 모습은 다르다.
그 모습을 매순간 직접적으로 현량을 통해 얻는다고 하자.
그러면 매 순간 그
내용이 다름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매순간 크기나 그 모습이 달라진다.
그렇게 현량으로서 매순간 직접지각한
내용을 다음처럼 표시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 이런 형태로 표시한다고 하자.
이 가운데 영희의 대표적이고 표준적인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가운데 어떤 모습이 영희의 올바른
모습인가를 생각해보자.
이 가운데 어떤 내용을 선택해 제기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내용을 무슨 근거로 옳은
인식이라고 할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각 주체가 감각현실을 가장 기본적으로 얻는다.
그리고 이 부분을 놓고
잘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식론은 인식과정을 주로 살핀다.
논리학은 어떤 내용이 왜 옳다고 하는가를 주로 살핀다.
그래서 인식론과 논리학은 이 부분에서 서로 관련이 된다.
인식과정에서는 이런 내용은 무엇을 대상으로 어떤 과정으로 얻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논리학 분야에서는 어떤 내용은 대상과 어떤 관계에 있기에 옳다고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살피려면 자신부터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뒤집힌 상태에서 혼동을 일으켜 문제를 살펴나가기
쉽다.
그래서 처음에 제시한 그림을 놓고 감각과정을 잘 살펴야
한다.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s://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mus0fl--Desireless - Voyage Voyage.lrc
『관소연연론』에서 소연연을 살핀다.
이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일으키기 쉬운 망상분별
내용을 살폈다.
이 문제를 기본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경전이나 논서를 대하면
이와 관련해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리고 어떤 표현도 망집을 바탕으로 대하기 쉽다.
어떤 논서에서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을 직접
넣어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한편 어떤 표현이 마음안 내용 가운데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는 눈앞에
꽃이 있는 화분을 올려 놓고 살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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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Il Était Une Fois - J'ai Encore Révé D'elle.lrc
금강경에 다음 구절이 제시된다.
...
상이 실로 상이 아닌 줄 알면
여래를 볼
수 있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
이는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일으키는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평소 제각각 자기자신에 대해 가장 집착을 갖고 임한다.
그래서 특히 이 부분에서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을 갖고 임하면 수행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런 내용을 금강경에서 제시한다.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또 그런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제각각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한편 감각현실은 무엇을 대상으로 얻었는지 살피기도 곤란하다.
마음안 내용에는 그 대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침대에 누어서 꾼 바다나 황금꿈의 관계와 사정이 같다.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배고픈 가운데 어떤 음식을
먹었다고 하자.
그래서 그 음식이 맛이 있고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좋음이 그것을 느낀 대상 음식에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한편 그런 느낌을 그 음식에 대해 옳은 내용으로도 잘못 이해하기 쉽다.
한편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내용도 상대하는 감각현실에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한편
그런 내용들이 또 본 바탕 실재영역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이렇게 이해하면 감각현실은 꿈과 성격이 다르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를 꿈과 성격이 다른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고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어떤 이가 음식을 대해 좋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a + b => C 라는 관계식이
나타내는 의미다.
현실에서 그런 각 내용의 유무나 생멸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실답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상태 자체가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이것이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그런 상태는 처음 근본 무명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그런 현실이 그에게 그렇게
나타나게 된다.
그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 12 인연의 내용이다.
그래서 그런 생사현실에서 그런 인과를 잘 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망집과 어리석음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한다.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런 생사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하면 그런 상태로 매 순간 매순간을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그런 바탕에서 업은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과보로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과 세계를 놓고 일으키는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avid Hallyday
- Pour Toi. .lrc
● [pt op tr]
fr
◆vamc1996
◈Lab value 불기2562/05/07 |
○ 2020_0907_124526_nik_ct18.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eter-Paul-Rubens-drunken-silenus
○ 2018_0419_103441_nik.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1280px-Sumadera_Gomado_02
♥Château de Saint-Germain ,France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 (Yvelines) Photo JH Mora, août 2005 From french wiki, uploader by Spedona 23 août 2005 à 22:29 Camera location 48° 54′ 00.4″ N, 2° 05′ 41.7″ E 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이하 줄임...]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Roger Sy & L'orchestre Jo Philippe - L'etoile Des Troubadours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Roger Sy & L'orchestre Jo Philippe - L'etoile Des Troubadours.lrc ♥단상♥ ♥ 잡담 ♥말로만 듣던 몰디브의 소연양 >>> 이번에 소연연을 살폈다. 그런데 이는 그림에 붙인 소연양이나 몰디브와도 상당히 관련이 깊다 글을 쓰는데 일전에 방문한 몰디브가 나온다. 몰디브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으면 mun 님은 목포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자신이 목포에서 몰디브에 가보았다고 한다. 본인은 몰디브는 구글에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 공부하는 과정에서 발음을 잘못해서 고통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 어떤 분은 다라니를 암송하고 거리를 걸어가는데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다라니는 조용히 암송하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조금 소리내서 다라니를 외우고 다니다 그런 것이다. 여하튼 현실은 그런 상황이다. 동음이의어에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또 낯선 단어가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소연이란 표현도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소연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놓고 논의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선 각 단어가 가리키는 내용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결국 감각과정을 추상화해서 그림을 그려 이를 살펴나가기로 한다. 그래야 혼동이 덜 발생하기 때문이다. >>> ♥ 잡담 ♥ 이번 조각글에 상당히 긴 내용을 적었다. 이로 인해 상당히 피로감을 느낀다. 일단 상당히 피곤하다. 현기증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이런 상태로 혹시 쓰러져서 생을 마치게 되지 않을까도 생각하게 된다. 일단 부족하지만 이 상태로 마치기로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와 관련이 된다. >>> 극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극미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원자 핵분열이 되면 핵폭발 위험이 있다고 한다. 핵이 융합되면 수소폭탄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여서 이를 살피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망집에 바탕해 임해 생사과정에 묶여 생사고통을 겪는 것이 문제다. 또 이것을 벗어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이것이 핵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논서를 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주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평소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실험이 본 논서 주제와 관련이 깊다. 그리고 논서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들 주제는 지금까지 과거 조각글에서 반복해 살폈다. 그래서 과거 조각글에서 관련된 부분을 찾아 링크를 걸고 생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문제 부분을 다시 하나하나 천천히 살피기로 했다. 이 주제와 관련해 일으키기 쉬운 망집이 있다. 이를 잘 제거해내는 것에 목표를 두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같은 형태로 망집을 증폭시켜 대하기 쉽다. 그래서 조금 내용이 길더라도 다시 정리하고자 한다. 내용 가운데 중복되는 부분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한다. 기존에 이런 주제와 관련해 일으키기 쉬운 망상분별의 내용을 반복해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이처럼 반복되는 내용을 핫키로 축약시켰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그 내용이 자체로 독립적으로 잘 이해될 수 있도록 내용을 정리했다. 그래서 망1, 망2, 망3 핫키에 새로 배당했다. 그리고 결론적인 내용을 압축해 넣어 보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대표적 내용도 넣었다. 일단 긴 글을 마치기로 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1996 sfed--관소연연론_K0628_T1624.txt ☞소연연 sfd8--불교단상_2562_05.txt ☞◆vamc1996 불기2562-05-07 θθ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K0628
자기의 허물을 부끄러워 하여 마음을 고침.
답 후보
● 회심(廻心)
후세(後世)
흑승지옥(黑繩地獄)
희수(喜受)
금강심(金剛心)
금륜(金輪)
기(機)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음악
Michel Sardou - L'acteur
CLAUDE FRANCOIS - Chanson Populaire
Marie-Paule Belle - Du Gris
Sandrine Kiberlain - Placebo
Piaf Edith - C'etait Un Jour De Fete
Hugues Aufray - Le Gorille
■ 시사, 퀴즈, 유머
뉴스
퀴즈
퀴즈2
유머
■ 한자 파자 넌센스 퀴즈
【 】 ⇄✙➠
일본어글자-발음
중국어글자-발음
■ 영어단어 넌센스퀴즈- 예문 자신상황에 맞게 바꿔 짧은글짓기
■
번역퀴즈
번역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 Makyo
[san-chn] ābhatā 光
[san-eng] kalayatāṃ $ 범어 of subduers
[pali-chn] cattāri vesārajjāni 四無所畏, 四無畏
[pal-eng] pari.naamita $ 팔리어 pp. of pari.naametichanged into;
appropriated; turned to somebody's use.
[Eng-Ch-Eng] TWO DEATHS Two Deaths 二死 Two Deaths refer to
1.share-sectioned birth and death 2.changed birth and death
[Muller-jpn-Eng] 授 ジュ give, grant, confer, invest with,
impart, teach
[Glossary_of_Buddhism-Eng] PILGRIMAGE SITES☞
See also:
Ajanta (Caves); India (Buddhism in); Sacred Mountains.
(I) Indian
sites:
“The ancient tradition of pilgrimage to the Buddhist centers in
India
associated with the life of the Buddha fell largely into abeyance
after
the Muslim conquest of North India. It has revived considerably
in
the last century. Local pilgrimages are widespread. Centers of
pilgrimages in
India / Nepal include Lumbini (q.v.) [birthplace of the
Buddha], Bodh-gaya
(q.v.) [Enlightenment site], Sarnath (q.v.) [site of
the Buddha’s first
sermon] and Kushinagar (q.v.) [site of the Buddha’s
Nirvana].”
Hinn:
313
(II) Chinese sites:
See the following entries: “Four Famous
Mountains;” “E-Mei Shan;”
“Wu T’ai Shan;” “P’u T’o Shan;” “Lung-men;”
“Tun-Huang”.
#1926
[fra-eng] engin $ 불어 apparatus, appliance, device,
unit
■ 암산퀴즈
450* 352
778766 / 926
■ 다라니퀴즈
자비주 49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19
번째는?
49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다라니를 외우고 지니면서
강이나
바다에서 목욕하는 경우,
그 속에 있는 중생들이
이 사람이 목욕한 물이
몸에 닿게 되면
일체 악업과 큰 죄가 다
녹고
곧 다른 정토에 옮겨 태어나
연꽃에 화생하며
다시는 태의 몸이나
내지 습기와 알로 낳는 몸을 받지 않거늘
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자이겠는가.
● 나라근지 那囉謹墀<四十九> na ra kin di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19
소아다
아감 마
蘇誐哆<引>惹敢<二合>摩<十九>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127일째]
극락세계일겁 $
127▲不可說不可說為 一 ● 不可說轉, ○□□□□,袈,不,離,善
□□□□□□,於袈裟幢世界金剛堅佛剎為一日一夜;袈裟幢世界一劫,於不退轉音聲輪世界善勝光明蓮華開敷佛剎為一日一夜;
不退轉音聲輪世界一劫,於離垢世界法幢佛剎為一日一夜;離垢世界一劫,於善燈世界師子佛剎為一日一夜;
□□□□□□,어가사당세계금강견불찰위일일일야;가사당세계일겁,어불퇴전음성륜세계선승광명련화개부불찰위일일일야;
불퇴전음성륜세계일겁,어이구세계법당불찰위일일일야;이구세계일겁,어선등세계사자불찰위일일일야;
극락세계의 한 겁은
금강견불(金剛堅佛)이 계시는 가사당(袈裟幢)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가사당 세계의 한 겁은 선승광명연화개부불(善勝光明蓮華開敷佛)이
계시는 불퇴전음성륜(不退轉音聲輪) 세계의 하루 낮 하룻 밤이요,
불퇴전음성륜 세계의 한 겁은 법당불(法幢佛)이 계시는 이구(離垢)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이구 세계의 한 겁은 사자불이 계시는 선등(善燈) 세계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66째]
처처분신불가설 $ 066▲鉢羅麼怛羅鉢羅麼怛羅為 一 ● 尸婆麼怛羅,
○□□□□,親,作,種,清
□□□□□□□, 親近諸佛不可說,
作諸供具不可說, 種種無量不可說,
□□□□□□□, 친근제불불가설,
작제공구불가설, 종종무량불가설,
곳곳마다 나누는 몸 말할 수 없고
부처님 친근함을 말할 수 없고
공양거리
마련함도 말할 수 없고
가지가지 한량없음 말할 수 없고
●K0625_T1625.txt★
∴≪A관소연론석≫_≪K0625≫_≪T1625≫
●K0628_T1624.txt★ ∴≪A관소연연론≫_≪K0628≫_≪T1624≫
●K1374_T1030.txt★ ∴≪A관자재대비성취유가연화부염송법문≫_≪K1374≫_≪T1030≫
법수_암기방안
127 [little finger-넉클knuckle] 새끼마디
66
상완(上腕)
49 두째발가락 second toe
19 자뼈 (알너 - ULNA)
158400
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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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4_175043_can_bw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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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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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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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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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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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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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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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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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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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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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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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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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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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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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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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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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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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6_121252_can_c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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