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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5-05-22_고금역경도기-k1059-002 본문

근본불교_대승불교_종교적진리와실천

불기2565-05-22_고금역경도기-k1059-002

선현 2021. 5. 22. 07:55



®





『고금역경도기』
K1059
T2151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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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고금역경도기』 ♣1059-002♧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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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古今譯經圖紀卷第二 吹
K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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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역경도기』 ♣105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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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n (Fowler) ,Mayo ,Ir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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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Duteil - La Rouille


♥단상♥피해를 주는 루팡과 이익을 주는 복팡의 차이


오래전부터 인명론이나 논리추론이 갖는 문제를 살폈다.
이들 인명론은 가장 기본 바탕부터 엉터리다.
그 사정은 서양 논리학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이들이 옳은 내용처럼 여겨지게 한다.


그래서 이 두 사정을 살펴야 한다.
즉 왜 이들 내용이 엉터리인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 다음 그럼에도 이들 내용이 왜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가를 다시 살펴야 한다.
그런데 또 사정이 그렇다면 어떻게 올바른 진리를 깨달을 것인가를 다시 또 살펴야 한다.

이들은 인식론과 논리학분야가 모두 관련된다.
골치가 아프게 되기 쉬운 분야다.


이들 내용은 용어풀이 인명 부분에서 처음 살피려고 했다.
그런데 관계된 페이지가 용량이 가득찼다.
ꊱ인명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일단상에 조금씩 적어서 모으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본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씩 살펴갈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살폈던 문제는 중복을 피해 생략한다.
약간 비약이 있더라도 그냥 한 항목을 불쑥 꺼내 살피는 방식으로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키워드를 통해 링크로 나중에 체계적으로 배열하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처음 문제삼아 보는 것은 현량 상위과다.


○ 현량상위과가 갖는 오류성

고인명에 사종 9과(似宗九過)라고 하는 것이 있다.
어떤 내용의 참거짓을 추론식을 세워 추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내세우는 결론을 종(宗)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고인명에서는 내세운 결론 자체부터 잘못을 갖는다고 보게 되는 9가지 경우를 든다. (=似宗사종)

그리고 이런 사종구과에 해당하면
이하 추론내용을 살피지 않고도 바로 그런 주장이 잘못임을 바로 논파해 밝힐 수 있다고 제시한다.


거기에서 현량상위과(現量相違過)나 비량상위과라는 것이 있다.

우선 현량상위과를 살펴보자.
이는 현실의 직각적(直覺的) 지식(知識) <곧 현량(現量)>에 상위(相違)하는 사실올 종(宗)으로 하여 세우는 과실(過失)이다.
그 예를 들어 「뱀에는 발이 있다」라고 하는 종(宗)을 세우는 것 같은 경우라고 제시한다.
먼저 이것이 어떤 문제를 갖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량(現量pratyakṣa-pramāṇa)이 무엇인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런데 간단히 말하면, 어떤 내용을 (추론이나 비판과정없이) 곧바로 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현량이 무엇인가라는 내용에서부터 각 논자마다 오류가 가득하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일일히 다 살필 수는 없다.

그런데 현량에는 통상 4 가지 종류를 든다.
감관지, 의식(manovijnana), 자증지, 요가수행자의 직각 이런 내용들을 나열한다.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어떤 모습을 본다.
귀로 어떤 소리를 듣는다.
이처럼 감각현실을 얻는 경우가 그 하나다.
이 경우는 감각지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대할 때
어떤 부분이 책상이거나 영희라고 곧바로 분별한다.
이 경우는 그 성격이 관념내용을 바로 일으켜 얻는 경우를 뜻한다.

그외에도 선정 수행시 얻는 내용을 들기도 한다.
참고로 선정 수행시 얻는 내용은 감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 가운데 정중의식으로 분류되는 내용이다.

또 자증지를 들기도 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거나 생각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그 자신이 그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느낌을 얻고 있는 중이다라고 생각할 때와 같다.

이 가운데 의식(manovijñaāa)의 개념이 명료하지 않다.

우선 처음에 현량을 다음처럼 정의하는 입장이 있다.
현량은 개념을 떠나서 착란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경우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감각내용을 대하고 어떤 관념을 곧바로 일으켜 얻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눈을 뜨니 앞에 무언가 보인다.
그것이 바위나 나무 또는 영희라고 곧바로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떤 추론을 행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입장에서는 이는 마치 현량에서 제외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어떤 논자가 현량의 개념을 처음부터 그렇게 정의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위와 같은 경우를 다시 어느 항목에 분류해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눈을 떠 일정 부분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떤 추론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그것들은 바위나, 영희, 안경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즉, 그런 내용을 대하면 그런 부분이 바위나 영희 안경이라고 곧바로 분별한다.
그런데 그런 사정으로 이것을 현량이라고 할 것인가는 별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위 경우는 비량에도 속하지 않는다.
종-인-유-합-결 이런 식으로 추론을 행해 얻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일으킨 관념내용은 현량 비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을 빠뜨리면 인식론이나 논리학 전체에 큰 흠결이 생긴다.

눈을 뜨면 어떤 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 경우 그렇게 본 모습은 무엇인가.
이런 것이 현량과 가장 밀접한 논의대상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그것이 바위다 아니다를 따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 논의에서 과연 감각현실 자체를 가지고 논의하는가부터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

그런데 관념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어떤 감각현실이 옳고 그름을 과연 문제삼을 수 있는가.
이것부터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벌써 골치가 아파올 수 있다.

우선 각 논자의 입장이 너무 다양하다.
어떤 한 논자의 입장만을 바탕해 논의하면 혼동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논사가 어떠한 주장을 했는가 안 했는가를 일일히 살피면서 노력을 기울이기도 힘들다.

그래서 각기 문제되는 내용을 나열해 살피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리고 현량에 관련되어 여러 논사가 행하는 엉터리 주장은 별도로 살피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는 이런 현량과 어긋난 주장을 제시하면, 그것만으로 곧바로 잘못이 된다는
회괴망칙한 주장만 살피기로 하자.

우선 이 문제를 다음처럼 살펴보자.

누군가 안경을 찾고 있다고 하자.
또는 영희를 거리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철수에게 물을 수 있다.
내 안경은 어디 있는가.
또 영희는 어디 있는가.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이 질문의 성격은 마찬가지다. 안경이나 영희에 초점이 있지 않다.

그런데 철수가 손으로 앞 부분을 가리킨다.
저것이 안경이다.

그런데 병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하자.
저것은 안경이 아니다. 저것은 물병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그래서 논의가 시작된다.
한 사람은 저것은 안경이다.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망집 상태에서 일반적으로 수많은 잘못된 판단을 행한다.
그런데 철수와 병수의 각기 달리 주장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무엇이 현량에 어긋나고 어긋나지 않은 것인가를 놓고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일 현량상위과를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주장이 대립될 경우 이 가운데 하나는 현량상위과에 해당하는 주장으로 폐기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같은 사정으로 경전에서 제시하는 대부분 명제는 현량상위과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경전 대부분 내용을 현량상위과에 해당한다고 폐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부분은 자신이 아니다라고 제시하려 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자신이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하자.
그런데 책부분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자신인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당연히 아니라고 답한다.
그러면 자신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은 일정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손이나 발 부분이 포함된 일정 부분을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다.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얻는다.
이제 그런 부분을 취해서 자신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대부분 이처럼 상식적으로 잘못 임한다.
그리고 이것이 망집이다. 즉 엉터리 잘못된 분별이다.
그래서 그런 판단이 잘못임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입장이 잘못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량을 무엇으로 여기는가에 따라서, 이런 주장이 곧 현량상위라고 여기게 된다.

이미 앞에서 의식((manovijñaāa)의 개념이 무엇인가와 관련해 살폈다.
그런데 눈을 떠 얻는 내용을 놓고 그것이 영희나 자신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런 관념판단은 일반적으로 어떤 추론을 거친 것은 아니다.
눈을 떠 대하면 곧바로 그렇게 분별한다.
그래서 인명론에서 말하는 비량으로 넣을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판단이 잘못임을 밝히려 한다고 하자.
그리고 불교 경전의 대부분 내용은 여기에 초점이 있다.
즉 그런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밝히려고 한다.

그런데 인명론에서 앞과 같이 바로 일으킨 관념을 현량이라고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처음부터 이런 주장은 잘못이라고 배척하게 된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곧바로 일으키는 관념분별(현량)과 어긋난 주장이라는 이유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봐야 한다.
이런 경우에 그런 현량과 어긋나지 않은 주장은 과연 어디 있는가라고 다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현량의 정체가 문제된다.
이제 만일 현량을 감각현실로만 한정한다고 하자.
그런데 일체 분별 판단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관념이나 이런 감각현실과 일치하는 내용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감각현실에 대해 행하는 일체의 분별 판단은 다 현량상위과에 해당한다고 해야 한다.

한편, 감각현실을 대하면서 바로 일으키게 되는 분별을 현량(현량 가운데 의식)에 넣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눈을 떠 보니 앞에 있는 것이 바위임을 곧바로 알겠다는 경우와 같다.
그런 경우는 또 그렇게 일으키는 일체의 분별은 다 현량이므로 다 옳다고 해야 할 듯 하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대부분 어떤 감각현실을 대하면 곧바로 수많은 분별을 다 일으킨다.
그런 측면에서는 이들이 다 그런 의미의 현량에 해당한다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눈을 떠 보는 꽃모습을 대해 그것은 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시인은 그런 내용을 대해서 시집간 누님이 떠오른다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그런 내용을 대해서 나비가 바로 생각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만유인력이 생각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관념을 바로 일으켜 얻게 된 방식 자체는 같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떤 것은 현량상위라고 하고 어떤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문제된다.

그런데 여하튼 이 상황에서 눈을 떠 얻게 된 감각현실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관념 일체는 결국 그 감각현실에 대해서 어긋난 내용들이라고 해야 한다.
결국 이들 관념은 어느 것이나 그런 감각현실에 대한 옳은 내용이 아니다.
그것을 의식인 현량이라고 하던 아니던 사정이 마찬가지다.

한편, 이제 일체의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감각현실만 문제삼는다고 하자.
즉 감각현실을 오로지 감각현실로서만 문제삼으려 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어떤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그 내용이 사라진다.
이런 감각내용만 오로지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경우는 또 논의할 수 없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을 옳다 그르다 하기 힘들다.
내용을 얻은 것 뿐이다.

비유하면 학생이 시험문제에 어떤 답을 적었다고 하자.
답을 적어 넣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옳다 그르다 할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

감관으로 얻는 내용도 사정이 같다.
어떤 이가 안경을 벗고 사물을 본다고 하자.
밤에 전등빛이 뿌옇게 보일 수 있다.
노란 색안경을 쓰고 본다고 하자.
노란 빛으로 보일 수도 있다.
또 멀리 떨어져서 본다고 하자.
손가락보다도 작게 보일 수도 있다.
가깝게 다가서서 본다고 하자.
사과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각 경우마다 각기 다른 내용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다 얻었다.
그런데 이 각각의 내용을 무엇을 기준으로 옳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얻어낸 감각현실을 심지어 자신의 감관이 대한 대상이라고까지 혼동한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을 하나 놓고 그것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한 주체가 얻어낸 감각내용이라고 지위를 혼동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사정 때문에 그것은 대상과 일치한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감각내용은 옳다고 잘못 여기기도 한다.
이런 오류는 별도로 『관소연연론』에서 살피고 있는 중이다.

★★★
참고 => 이는 다음 페이지에 모아 시간나는대로 정리해가는 중이다.
일단 다음처럼 링크를 걸어두기로 한다.
『관소연연론』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
★★★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일 감각현실 그 자체만 놓고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자신 뿐아니라, 타인과도 일체 논의를 할 수 없게 된다.

감각현실은 다른 이에게 직접 전할 수 없다.
자신의 경우에서도 다음 순간까지 보존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어떤 순간에 얻은 어떤 감각현실을 논의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다음 순간까지 그것이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매 순간 순간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었다.
이 정도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이제 다시 그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을 붙잡고 그것이 바위다 아니다를 따진다고 하자.
그것은 벌써 감각현실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여기서 바위다 아니다라는 판단 자체가 이미 감각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만일 문제삼는다면 그런 부분은 당연히 바위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런 감각현실은 역시 그런 관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 경우는 여기에서부터 혼동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망집 상태를 바탕으로 위와 같은 주장들이 처음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엉터리다.

그리고 사종 9과로 나열되는 다른 내용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에 해당되는 각 주장은 사실은 다 함께 참 거짓을 열심히 살펴야 할 내용들이다.
단지 그런 사항에 해당한다고 폐기할 내용이 아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대부분 일반적으로 당연이 옳다고 여기는 내용들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바람이 불어, 종이 소리가 난다. 깃발이 흔들린다고 하자. .
그래서 무엇때문에 깃발이 흔들리는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일반인은 다음처럼 생각한다.
그것은 바람때문이다.
=>
(승가난제) => 깃발이 흔들린 것이 아니다.
네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리고 망식이 흔들린 것이고,
본래 마음은 그런 것도 없다.

이런 입장이다.

지구가 도는가 태양이 도는가가 한 때 문제된 적이 있다.
과거에는 태양이 돈다고 했다.
그 뒤에는 지구가 돈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그 뒤에는 태양이나 지구가 함께 돈다고 했다.

경전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여기에 무언가가 돈다는 현상은 얻을 수 없다.
돈 것은 네 마음이다.
이렇게 제시한다.

당신이 달이라고 보는 것은 가짜 달이다.
태양이라고 보는 것도 가짜다.
돗수가 들어간 안경을 쓰고 벗고 해보자.
이 순간마다 크기나 모습이 달라진다.
그 상황에서 크기나 모습이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인 어떤 달이나 태양 등이 따로 있지 않다.
그런데 자신이 안경 하나 쓰고 벗는다고 해서
크기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진짜 달이고 태양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본다고 하자.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평소 자신으로 여기며 취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 것은 자신이 아니다.
이것을 먼저 깨닫게 하고자 여러 내용을 제시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제시하면
처음부터 바로 상식과 어긋난다고 하여 논의삼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사종9과의 입장이다.

어려움이 많다.




문서정보 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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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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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알고 어기지 않는 마음. 지(止)와 관(觀)이 균등하게 일어나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서로 도와서 행함으로 얻는 마음.

답 후보
● 유연심(柔軟心)
유인(誘引)
유전진여(流轉眞如)
유폭류(有暴流)
육계취(六界聚)
육근청정(六根淸淨)
육대체대(六大體大)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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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004_160313_can_bw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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