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최상

불기2565-08-17_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k0989-001 본문

근본불교_대승불교_종교적진리와실천

불기2565-08-17_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k0989-001

선현 2021. 8. 17. 15:36



®


『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
K0989
T0847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 ♣0989-001♧





상권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2019_1106_155435_can_ct8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9_1106_130737_can_Ab35 화순 영구산 운주사



❋❋본문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乘修行菩薩行門諸經要集卷上
K0989

○ [pt op tr]


『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 ♣0989-001♧






◎◎[개별논의] ❋본문


○ 축생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보살의 수행방안










◆vcqu6404

◈Lab value 불기2565/08/17


○ 2020_1114_125731_can_ab41_s12.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yodor-Solntsev-the-fun-palace.jpg!HD



○ 2018_0419_140338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riad_of_Yakushi_Nyorai



♥Avis ,Portugal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Yves Duteil - La Farandole



♥단상♥남산 위 철갑 두른 소나무 작전

그간 연구시 매기마다 연구작전명을 걸고 연구를 해왔다.

아직도 그런 작전들이 떠오른다.
서해안 해변에서 쭈구미 사체를 보고 이름지은 추구미작전
다라니 삼매 앞 글자를 따 지은 다삼작전
청정무구작전
등등이 그런 것이다.

연구를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매일 뽑혀지는 경전을 놓고 대강 같은 내용만 중복해 기술하고 하루를 보내기 쉽다.
그런 가운데 일단 사찰탐방을 다녀오려 했다.
그러나 더위나 코로나 영향으로 사찰탐방을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요즘 몸이 안 좋아 오랜만에 병원에 들렀다.
요즘 만성 피로가 심하다.

그런데 공교롭게 지금까지 다니던 병원들이 하나같이 폐업했다.
그래서 새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으려니 곤란을 겪게 된다.
그래서 헛걸음만 하고 되돌아왔다.

심신을 일신해서 새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 방향을 어떻게 새로 잡을 것인가를 두고 일단 고민해본다.
앞으로 조금 수준을 높여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도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가 좀 더 어려워진다.
인터넷 페이지는 지금도 조금 힘들다.


그런데 이번에 투자종목으로 겪은 경험을 되살려
좀 더 쉬운 주제를 살피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도 궁금하다.
어떤 종목이 2 주만에 이전 시세의 10 배가 되었다.
그런데 떨어지지도 않는다.
과거 시세보다 10 배가 올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면 갑자기 이전 시세의 10 배를 주고 종목을 매입한 이는 손해를 볼 것인가.
그렇게 생각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자신의 물건을 자신이 갑자기 10 배를 주고 자신이
혼자 매매를 진행하여 매입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경우와 사정이 비슷하다.
그렇게 매입한 이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 형태로 계속 매매를 반복해도 마찬가지다.
거래시 지불하는 약간의 수수료만 비용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렇게 행하는 사정이 있다.

투자 시장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뉴톤이 올라탈 때까지 시세가 오른다.
뉴톤이 올라타자 바로 내린다.


뉴톤은 운동의 3 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의 천재다.
수학의 미적분식도 뉴톤의 연구결과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평소 뉴톤이 현재의 각 물질의 위치를 파악하면
운동의 3 법칙을 통해 장래의 상태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주식시장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는 일화다.
실질이 없는데 어떤 종목이 계속 상승한다.
실질이 없기에 떨어질 것 같은데 관찰하면 꾸준히 상승해간다.
그래도 떨어질 것 같은데 또 상승하는 모습만 보게 된다.
그러다가 뉴톤이 이제 그 종목을 매입한 것이다.
그러자 끝없는 추락을 해서 손실을 보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뉴톤이 올라탈 때까지는 계속 그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시세를 유지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 시세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뉴톤이 올라타면 사정이 반대로 된다.
그렇게 계속 유지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시장 상황을 계속 바라보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계속 If 구문을 반복하거나 Should have + p.p 구문만 혼자 반복하면서 후회하는 심정만 생기게 된다.


그래서 한번 떠난 배는 바라보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뉴톤이 미리 타고 있어도 배는 출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총량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뉴톤이 타고 있는 것, 내린 것, 또 다시 올라 타는 것이 파악된다.
그래서 뜻과 같지 않다.


주사위 게임에서 주사위를 원하는대로 나오게 할 능력이 없는 경우,
그리고 주사위 숫자를 매번 맞출 신통력도 없는 경우
계속 시장을 바라보면 정신건강만 해롭다.


그래도 여유자금을 어떤 형태로든 보관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그런 취지에서만 잠깐 관찰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보통 TV 를 함께 같이 보는 경우가 있다.
이 때 리모컨을 자신이 갖고 보는 경우와
다른 이가 리모컨을 갖고 보는 경우
입장이 다르다.


리모컨을 갖고 있는 이가 자꾸 채널을 돌린다고 하자.
조금 더 보고 싶은 광고나 프로가 나왔다.
그래도 마구 돌린다.
어떤 광고나 프로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상대는 계속 머무르면서 관심있게 본다.
이런 경험을 몇번 하면 자신이 리모컨을 쥐고 방송을 보고 싶어한다.


현실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주사위를 나오게 할 능력도 없고 예측할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어떤 종목을 바라보게 되면 결국 위와 같은 상태가 된다.
자신의 뜻과 하나도 같지 않기에 짜증이 밀려올 수 있다.


이런 상태를 바꿔야 한다.


정말 시장에 머물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하려면
자신이 리모콘을 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 종목의 90% 이상을 보유한 소수 주주 형태가 되거나,
아니면 따로 미래 시세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갖거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관심을 적당히 끊어야 한다.


그리고 대신 자신이 그런 시장의 출구에서 나와
이후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그런 상태가 되도록 노력을 기울야 한다.




현재 doctr 님의 원고를 본인이 인수한 상태다.
40 년전 과거에 처음 doctr 님이
원고 작성에 들어간 비용을 1 년당 5 조원 정도로 잡았다.
그런데 이 원고를 인수한 본인이 이제 500 조원 정도로 올렸다.
물론 투자종목 시장상황에 영향을 받아서다.


과거 행복론을 인수한 이후 논의 성격상 두 부분이 흠결이 있어서
중간에 편집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래서 이제 그 흠결을 메우고 새로 편집을 해갈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조금 현실에 밀착된 논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doctr 님의 선현지복 연구소의 본 취지와도 부합한다.
일단 그런 구상을 해보게 된다.


doctr 님의 행복론, 이상사회론, 현상의 진리론은
수행 분야의 니르바나 해탈, 불국토, 실상에 대한 깨달음과 상응한다.

그런데 이 분야의 흠결은
이 논의가 생사현실안에 닫혀 있다는 점이다.

물론 doctr 님은 생사문제와 관련해 완전히 논의를 닫지는 않았었다.
다만 어떤 이가 행복론과 고려할 범위를 현생에만 국한하였다.
이 경우 한 주체가 사후 그와 관련된 것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만일 있다면 현생만 고려한 논의는 잘못된 논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없다면 사후까지 고려한 논의는 공연한 논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학이 끝나면 졸업시험과 진학시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방학기간만 고려해 최상을 추구하면, 잘못된 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방학기간 후에 어떤 학생이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졸업이나 진학까지 고려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의가 된다.
그래서 이 각 경우 논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행복론에서 사후 문제까지 고려에 넣으면 범위가 너무 확장된다.
또 이 문제는 사실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논의 자체가 종교적 성격의 논의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doctr 님은 처음에 어느 경우에던지 적절한 논의가 되도록 할 방안을 찾았다.


즉 사후 연속된 삶이 있다고 해도 문제되지 않는 현생의 행복론
없다고 하면 이것만으로 충분한 행복론이 되도록 논의 방향을 잡았다.


그렇지만 이 부분을 논의 법위에서 제외하였기에 역시 불완전한 논의가 된다.




그래서 행복론 편집을 하는 가운데 먼저 단멸관을 부정해야 하는 사정을
먼저 확립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런 가운데 현재 행복론은 니르바나 행복론으로 명칭을 바꾸어 편집을 행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무량겁에 걸쳐 생사가 이어진다는 전제에서 행복을 살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왜 이렇게 살펴야 하는지가 행복론안에 들어가게 된다.


무량한 겁에 걸쳐 한 주체의 생사가 이어진다는 사정을 현재 현실 안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는 무량겁을 이어가는 한 주체의 근본정신의 존재를 현실에서 설명하는 문제가 된다.


한편, doctr 님의 행복론에서 구체적 실현방법론이 다시 문제된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각 주체가 소원하는 바가 많다.
이것이 또 각 주체의 행복문제와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건강, 시간, 지혜, 지식, 미, 인격, 인간관계, 부, 명예, 지위, 권력, 자유...
등등이 나열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각 경우마다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이 운전하는 이가 사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와 같다.


어떤 내용은 그냥 바라보고 지나쳐야 한다. pass
어떤 내용은 끊고 제거해야 한다. stop
어떤 경우는 그 방향을 돌려서 나아가야 한다. turn
또 어떤 경우는 그 내용을 아주 잘 성취해야 한다. go


이렇게 각 경우마다 다르다.


그런데 행복론에서는 이는 생사현실안의 문제다.
그래서 행복론에서는 선한 행복을 잘 성취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를 살피게 된다.


그래서 수행과 관련해서는 입장이 다르게 된다.
그것은 결국 수행목표의 성취를 위해서 이들 각 내용을 선택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니르바나 행복론은 기존의 행복론과는 그 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초기 행복론의 문제점은 물론 doctr 님에 의해 대부분 수정되었다.
그런데 이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편집을 달리해야 한다.
그래서 니르바나 행복론이 새로 편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면 원하는 부를 잘 성취할 수 있는가가
행복론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니르바나 행복론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는 처음 행복론이 가졌던 다음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행복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자.
그런데 어떤 경우는 대단히 부유하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단순히 생계만 해결되고 있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각 상태에서 그가 행복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자.
이 때 이 두 경우 가운데 어떤 상태가 더 낫다고 할 것인가.


이것이 처음 문제된다.


언뜻 생각하면 어차피 행복하다면 차라리 돈이 더 많은 상태가 행복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외관이나 수단을 중요시하기 쉽다.
그래서 먼저 외관상 풍요로운 상태가 더 낫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무엇이 수단이고 목표인가에 대해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돈을 벌어서 무엇하려고 하는가.
무엇때문에 돈을 벌려고 했는가.
이 문제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리고 행복과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만일 행복 때문에 돈이 필요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행복은 돈보다 상위가치에 있는 목표가 된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야 한다.


이 경우는 돈을 버는 것은 행복을 얻기 위해 들이는 비용과 같다.
그래서 같은 행복을 얻는데 들이는 비용을 많이 들였다고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반대로 생각하면 그 반대가 된다.


무엇이 수단이고 목표인가는 다음처럼 생각해야 한다.


사과 나무가 있다고 하자.
사과 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사과나무의 뿌리가 있고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긴다.
가지가 뻗고 잎이 열리고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가 생긴다.


그래서 발생과정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을 사과열매로 본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가치의 발생은 거꾸로 보게 된다.


사과 열매가 가치가 있다.
그래서 사과나무의 꽃이 가치가 있다.
그리고 또 잎과 가지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또 싹과 줄기, 뿌리의 가치가 있다.
이렇게 보게 된다.


그래서 이 판단이 중요하다.







행복과 행복을 얻는 수단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만일 어차피 행복한 가운데 이왕이면 돈이나 지위가 높으면 더 좋다고 본다고 하자.
그렇다면 돈이나 지위를 행복보다 더 상위의 가치로 보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돈이나 지위는 행복을 얻는 수단이라고 본다고 하자.
그렇다면 어차피 행복한 가운데 이왕이면 이런 수단을 적게 들여 같은 행복을 얻는 것이 더 현명하다.
반대로 말하면 같은 수단이나 비용을 들인 상태에서는 더 많은 행복을 얻는 것이 낫다.


그래서 행복론의 방향도 이 판단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는 행복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볼 때이다.


그래서 어차피 행복하다면 다시 이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우열을 살핀 것인가가
추가로 문제된다.


doctr 님은 이 문제에서 행복이나 좋음이 누적된 상태로서 선한 행복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행복하거나 좋음을 말하지 않는다.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모두 차별없고 제한없이 좋다.
그리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무궁하게 좋다.
그리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다 좋다.


이런 상태는 단순히 자신만 지금 당장 한 측면만 좋은 상태와 다르다.
그리고 이 가운데 어느 부분이 결여되면 그 만큼 문제다.
물론 이는 이상적이다.
그러나 여하튼 이념적으로 위에 가까운 상태를 선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차피 행복한 여러 경우가운데 이런 상태에 가까운 상태가 더 낫다.
그래서 선한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함을 제시한 것이다.




니르바나 행복론은 결국 이와 다시 관련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가이다.


그리고 다시 생사현실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 목표점의 관계를 놓고 이 문제를 살펴야 한다.


최근에 탐욕수행론 분노 수행론 맹목적 어리석음 수행론을 살핀바 있다.
탐욕 수행론은 조금 표현을 고쳐 리비도 수행론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강한 본능적 충동에 이끌려 나아가는 방향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아가면 결과적으로 고통에 처하게 된다.
물론 각 주체는 각 상황에서 이런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 방향이 당장 자신에게 많은 좋음을 준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는 인과의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 각각을 살피면 그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정을 살피고 이것을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본능적 충동에 이끌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런 에너지를 단지 방향만 돌려서 수행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향을 살폈다.


그리고 각 주체가 현실에서 희망하는 각 소원의 내용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수행에서는 어떻게 보게 되는가가 니르바나 행복론과 관련된다.


간단히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실은 이들 일체가 망집에 바탕한 내용이다.
그래서 이들 일체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
대신 올바른 깨달음에 바탕해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보리심에 바탕한 서원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


그래서 이 내용이 니르바나 행복론의 주된 내용이 된다.


그것은 각 주체가 희망하는 다양한 소원과 관련해서는 다음 내용이 된다.


그것을 끊고 버려야 할 사정을 먼저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 stop
이것이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가 갖는 소원에 대한 주된 내용이 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방향을 돌려서 서원의 형태로 바꾸어 성취할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니르바나 행복론은 기존 행복론과 방향이 달라진다.


다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소원을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 경전에서도 취급된다.
결국 그 내용이 중생제도의 방편과 관련된다.
그래서 간단하지 않다.


이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생사고통에서 벗어남 그리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남(해탈)
그리고 다시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함
불국토의 장엄
성불 등의 목표를 성취하는 수단과 방편으로 이들이 취급된다.
그래서 이런 상위가치와의 관계에 따라 그 평가를 달리하게 된다.


그런데 또 이 경우 방편이 갖는 선악무기성 때문에
그런 방편의 구체적 성취방안은 직접 제공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다라니 삼매의 내용이 된다.


그래서 경전을 아무리 살펴도 다라니 삼매의 구체적 내용은 제시되지 않는다.


오늘 살피는 『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에서도 사정이 같다.
수행자가 지옥에 처해서도 천상의 쾌략을 누리는 방안이 있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축생에 처해서도 그런 방안이 있다고 제시된다.


물론 수행자가 지옥이나 축생에 처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그 중생과 눈높이를 같이 하여
중생이 처하는 상황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생의 상태가 되면 안 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중생을 구출해 내야 한다.


문제는 그 방안으로서 마하발두마 삼매나 변적정삼매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것 뿐이다.
삼매에 대해서는 삼매의 일반적 방안뿐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정작 삼매의 명칭만 제시받는 상태가 된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마하발두마 삼매가 되고 변적정 삼매가 되는가는 모호하다.


다라니도 사정이 같다.
구체적 소원을 성취하는 방안들은 모두 다라니 형태로만 제시된다.
그런데 아무리 다라니 구문을 살펴도 그 구체적 방안은 모호하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각 방편이 갖는 성격은 선악무기성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방향에 따라 선하게도 사용되고 악하게도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내용도 된다. [무기]


예를 들어 전기나, 폭약을 만드는 방안, 원자력 에너지를 얻는 방안이 갖는 사정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직접 제공할 수 없다.
물론 중생들이나 하급 수행자에게 그 내용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은 그 제공자가 개입해
구체적 경우에 오직 선한 방향으로만 사용될 수 있도록 통제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결국 삼매나 다라니 형태로만 제시된다.


경전을 아무리 살펴도 삼매나 다라니의 구체적 내용이 제시되지 않는 사정이다.
그러나 삼매의 명칭이나 다라니 구절은 제시된다.


그리고 어떤 방편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어떤 방편이나 소원의 성취가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는
위와 같은 상위가치의 성취에 얼마나 어떤 형태로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니르바나 행복론도 결국 이런 방향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에는 노벨이 폭약을 개발해 수익을 얻은 다음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상태가 된다.
폭약은 탄광에서 광석을 캐낼 때는 수고를 대단히 덜어준다.
그런데 전쟁에서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이를 반성하고 노벨상을 제정했다.


그런데 오늘날 노벨상을 수상하는 과학자가 발표하는 연구결과는 또 다시 이런 양면성을 갖는다.
그래서 아윈쉬타인의 원자력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


물론 과학자는 가치 중립성에 숨어들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발표한 연구결과가 악한 목적에 사용될 때는 무력하다.
그래서 과학자가 표방하는 가치 중립성이란, 알고보면 무책임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건강만 회복하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자세와 같다.
그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지 않았다면 대량 학살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의사는 가치 중립성에 숨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책무를 다한 것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불완전하고 무책임하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이 문제를 그렇게 취급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니르바나 행복론에서 이렇게 임하면 결국 실질이 공허한 상태가 되기 쉽다.
정작 각 개인이 소원하는 각 수단의 성취방법은 내용이 빈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사실 투자 문제가 제기되면
각 경우에 어떻게 임해야 수익을 많이 거두는가를 살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구체적 경우에 그후 어떤 상태로 나아가는가가 더 큰 문제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는 역시 위와 같은 문제점을 갖게 된다.
맹목적으로 많은 수익만이 최고다. 이런 입장이 아니라면 이런 내용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또 생사현실 안에서 이에 초점을 대부분 맞춘다.
그런 사정 때문에 이 내용을 위 상위가치에 연결시켜 살피는 것이 니르바나 행복론에서 중요하다.


투자는 망쳐도 생사고통은 벗어나야 한다.
투자가 성공해도 이를 통해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1차적 목표점이다.
그리고 니르바나 행복론도 여기에 초점을 두게 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8/2565-08-17-k0989-001.html#6404
sfed--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_K0989_T0847.txt ☞상권
sfd8--불교단상_2565_08.txt ☞◆vcqu6404
불기2565-08-17
θθ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선악의 업에 의하여 고락의 과보를 받는 것.

답 후보
● 업감(業感)
여(如)
여래선(如來禪)
여법수행(如法修行)

여시아문(如是我聞)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역바라밀(力波羅蜜)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20_0905_135208_can_ct18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eyword.html

○ [pt op tr]
● 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_K0989_T0847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