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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ॐ मणि पद्मे हूँ
행복과최상
불기2565-07-14_비니모경-k0939-005 본문
『비니모경』
K0939
T1463
제5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비니모경』 ♣0939-005♧
제5권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2020_1002_122248_can_ct19_s12
❋❋본문 ♥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毘尼母經卷第五
K0939
○ [pt op tr]
『비니모경』 ♣0939-005♧
● 5군비구와 6군비구의 차이
계율을 풍부하게 한 비구로 통상 5 군 비구와 6 군 비구를 들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차이가 있다.
◎◎[개별논의] ♥ ❋본문
★1★
◆vuad1591
◈Lab value 불기2565/07/14 |
○ 2020_0909_144731_can_ct34.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blo-picasso-couple-walking-1901 ○ 2020_0606_134623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ummer_Palace_at_Beijing_15 ♥Nagoya Keizai University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Mylène Farmer - Consentement ♥단상♥무유정법과 인과이론 -7 수행력이 높아지면 무량한 대원을 향하게 된다. 그래서 수준이 높은 십지보살의 경우에는 천체를 관장하고 천체를 만들거나 이동시켜 천체를 작은 공간으로 넣기도 한다. 그리고 해와 달을 손으로 가리고 산과 바다를 이동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이 경전에 나온다. 물론 일반인으로서는 이런 내용들은 잘 믿기지 않는다. 일반인으로서는 모종삽을 가지고 화분의 흙을 조금 퍼 옮기고 화단을 꾸미거나, 비닐봉지에 휴지를 꾸겨 넣는 정도의 능력을 정상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아침에 세면하고 조금 화장하거나 옷을 꾸며 입는 정도를 정상적인 변화능력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능력도 개미나 벌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한 초능력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하튼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위와 같은 신통력을 취득해 중생을 뜻처럼 잘 제도하고 불국토도 서원과 같이 잘 장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행자의 능력을 통상 여환삼매라고 칭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능력도 결국 수행자가 실상을 꿰뚫어 잘 관하고 생사현실 안에서 인과의 본 정체를 잘 파악하기 때문이다. 실상을 바탕으로 생사현실을 관하면 이는 꿈과 같고 환과 같다. 이런 사정을 아는 것이 여환삼매를 취득하는 기본 바탕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생사현실이 꿈과 같고 환과 같다지만, 그 생사현실이 마음대로 나타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은 의타기성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한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지만, 그러나 이는 여러가지 조건에 의존해 나타난다. 그래서 뜻처럼 되지 않는다. 마음안 내용이라고 해서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환삼매를 취득하면 그것이 마음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환삼매의 증득이 높은 수행자들의 요건이 된다. 이는 때로는 현일체색신삼매라고도 표현한다. 삼매로 잘 안되면 현일체색신다라니를 이용해서라도 이런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중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중생을 뜻과 같이 제도해나가려면 필수적이다. 한 때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인과에 대한 법칙을 많이 알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이용하여 뜻을 손쉽게 성취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이 이런 표현을 하게 한다. 물이 끓으면 증기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주전자 뚜겅도 밀어 올린다.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하자. 그래서 이 사실을 응용해 증기기관을 처음 만들었다. 그래서, 힘이 생겼다. 그래서 탄광에서 석탄을 쉽게 캐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차도 만들어서 많은 물건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본래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인과 지식을 알고 이용하니 그렇게 되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반대로 무지하고 모르면 상대적으로 축생 상태처럼 된다. 결국 산업화가 뒤떨어진 나라들은 선진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축생처럼 부림을 당했다. 공부나 연구를 게을리하고 보내던 많은 후진국들이 비슷하게 고통을 당했다. 한국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거의 반세기동안 선진국에 붙잡힌 축생처럼 부림을 당했다. 그래서 오늘날도 그런 과거사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측면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선진국에 비하면 많은 부분이 뒤떨어져 있는 상태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어리석은 이 자신의 책임이 더 크다. 그리고 그 국가나 한 사회의 지도자가 부담할 책임이기도 하다. 지도자가 어리석고 무능해서 다른 선진국의 침입과 약탈 지배를 받았다고 하자. 그것은 그 선진국의 잘못도 있겠지만, 그 뒤떨어진 나라의 국민과 지도자의 책임이 더 크다. 결국 어리석으면 안 된다. 그런데 망집에 붙잡히면 설령 아무리 상대적으로 뛰어나도 결국 낙타나 곰과 같이 욕계에서 번뇌의 사역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편 그 자신이 다른 중생을 붙잡아 사역을 하게 된다. 상대적이지만, 이런 관계가 욕계내 중생들 사이에 있다. 예를 들어 개미조차도 진딧물을 붙잡아 소처럼 사육을 한다. 사람이 소를 붙잡아 사육하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욕계 안에서 세계곳곳에 도로를 닦고 도시를 건설하는 힘든 일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누가 다 했는가 하면 결국 그들이다. 이들이 먼저 번뇌의 사역을 당하고 다시 그보다 어리석은 이들을 붙잡아 또 사역을 시키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종합하여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인과이론을 잘 살피면 이 반대로 생각하게도 된다. 인과론은 인과관계에 없는 내용은 아무리 원해도 실현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우선 의미한다. 또 아무리 인과를 알아도 인과관계로 인해 그것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다. 극단적으로 언제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또 개기일식이 일어나는지 안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이것을 이용하기 힘들다. 즉 내일은 1 시간 늦게 해를 뜨게 하기 힘들다. 인과를 알아도 원인에 해당하는 재료를 마음대로 찾아 넣을 수 없다. 원인을 마련하는 일도 인과에 구속당한다. 원인에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만 인과에 구속당하고 원인의 마련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과는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에 의한 구속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도 된다. 더 나아가 무엇을 이용한다는 뜻, 어떤 희망을 갖는다는 것도 인과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자신의 뜻도 결국 인과의 구속을 받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는 인과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기계적 인과율로 나아가게 된다. 그 경우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안다고 해서 자신 뜻대로 한다는 것은 오히려 짧은 견해인 듯 여겨진다. ○ 망집은 어떤 사정으로 발생하는가. 불교에서 여환삼매는 삼매의 일종이다. 즉 마음을 집중하여 정려 삼매에 드는 활동이다. 마음을 집중해 삼매에 드는데 왜 그것이 산하대지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되는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사용하는 리모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리모콘 버튼만 누르면 TV 가 켜지고 오디오세트가 켜지고 에어콘 등이 켜진다고 하자.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이는 도미노가 쓰러지는 인과관계에서 첫 부분을 리모콘이 해주는 사정 때문이다. 여환삼매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여환삼매는 실상의 정체와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고 그 첫 부분을 여환삼매로 시동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여환삼매에 싣는 그 서원은 또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가 문제된다. 즉 한 주체의 마음안 뜻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또는 어떻게 만들어내게 되는가.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수행자가 취득하는 여환삼매는 중생제도를 위한 것이다. 중생제도는 중생이 갖는 망집을 제거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 그러려면 또 중생이 어떤 과정으로 처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주체는 자신의 뜻을 자신의 자유로 일으키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다시 그 의미가 모호해진다. 예를 들어 어려운 수학문제가 제출되었다. 그 답을 얻어내야 한다. 어떤 이가 답을 얻지 못한다고 하자. 그것이 그의 자유에 의한 것인가. 또 어떤 이가 다가와 무례하게 대해서 화가 났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자신이 화를 내는 것이 자유롭게 되는 것인가. 또는 화가 날 때 자신이 자유롭게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는가. 79 구절이나 되는 다라니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외우려고 한다. 그런데 잘 외어지지 않는다고 하자. 이것도 자신의 자유로 외어지지 않는 것인가. 이런 여러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면 자유라는 말은 단순한 표현에 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라니를 외우고 자유롭게 그것을 떠올릴 수 없다. 화가 솟구쳐 오를 때 자유롭게 그것을 제거하기 힘들다. 어려운 수학문제가 제시될 때 자유롭게 그 답을 제시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마다 자유가 있다면 위 내용을 제외한 범위에서만의 자유일 것이다. 각 경우 이런 내용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경우 자유가 있다면, 그냥 잠을 잔다거나, 엉뚱한 답을 내는 정도의 자유만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 밖을 놓고 고려하면 여전히 그는 일정범위에 묶여 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 상황을 놓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리고 각 경우 어떤 이가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정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이가 꽃을 보았다. 그 상황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 과정에 어떤 부분이 자유로운 부분인가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는 과정이 자유로운가. 눈을 뜨면 나타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부분을 자신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경우 그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저 눈을 뜨고 감는 정도 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눈을 감고 뜨는 것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유롭지 않다. 뜰 상황이 되면 뜨게 되고 감을 상황이 되면 감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표현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여하튼 눈을 뜰 때 보게 되는 모습은 대단히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이 눈을 뜨면 곧바로 그런 모습을 얻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인명론자(인식 논리학자)는 이 과정을 곧바로 내용을 얻는다고 하여 현량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생리과학자의 설명만 참조해도 이 과정은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빛과 눈과 눈안의 시신경, 로돕신의 흥분. 대뇌 피질의 흥분, 이런 식으로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제시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얻는 주체가 그 내용을 얻는 단계만 놓고 보면 그 내용을 바로 얻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이런 배경에서 관념을 일으키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이것도 자세히 보면 복잡하다. 관념을 일으키는 경로는 다양하다. 그런데 여기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는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관념은 감각현실을 대하지 않고 홀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과거 일이 문득 떠오른다는 경우와 같다. 또 관념은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바나나란 생각을 떠올리니 이로 인해 기차가 연상되어 떠오르는 경우와 같다. 또 그외에도 정려 수행시 어떤 영상을 얻는 경우나, 꿈을 꾸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여기에서 감각현실을 대해 관념을 일으키는 경우를 놓고 먼저 생각해보자. 여기에서 이런 작용을 일으킬 때 대상이 되어주는 감각현실은 이미 얻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관념을 일으키는 과정에 눈처럼 기관 역할을 하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의 경우에는 눈이 관계해 대하면 모습을 보고, 관계해 대하지 않으면 모습을 보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념을 얻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즉, 관념을 얻는 과정에서, 자신이 감각현실만 얻으면 늘, 곧바로 관념을 일으키게 되는 것도 아니다. 즉, 감각현실이 있어도 관념을 일으킬 경우도 있고, 때로는 아닐 경우도 있다. 그래서 먼저 이 과정에도 눈처럼 관념을 일으킬 기관 역할을 하는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한편,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관념내용이 일으켜 얻어져 머무르는 정신영역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앞의 기관과 내용이 머누는 영역을 모두 하나의 정신 영역에서 다 함께 담당한다고 보기 힘들다. 하나의 영역에서 이 둘을 다 담당한다고 가정해보자. 처음 기관은 이런 작용을 할 것이다.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에 대해 생각을 일으키려고 한다. 또는 하지 않는다. 이런 기능을 담당한다고 하자. 마치 눈을 떠 모습을 볼 때 눈(기관)이 담당하는 역할과 같다. 그런데 일으켜진 관념이 다시 그 기관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인가. 문제가 없다면 하나의 영역이 이 두 작용을 다 담당한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일단 너무 글이 길어진다. 여기서는 이것을 일단 생략하자. 다만 유식학에서는 눈이 물체를 보듯, 관념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기관 역할을 하는 부분을 따로 독립시켜 시설한다. 그래서 이를 제 7 식 말나식이라고 칭한다. 물론 여기서 제시하는 각 마음은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지지 못한다. 그래도 이것이 있다고 시설하는 사정이 있다. 그것을 있다고 시설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현실 내용을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처음 눈으로 모습을 볼 때 이것을 얻는 마음이 있다고 시설하는 것도 사정이 같다. 그 마음도 역시 직접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시설하는 것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 마음을 없다고 하면 구체적인 현실내용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단순히 생리학자가 제시하듯 이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즉, 외부물질의 작용 반작용의 물리적 운동관계와 육체내 물질의 자극 반응관계로만 이 과정을 설명하기 곤란하게 된다. 그 내용이 결국 『수능엄경』에서 제시되는 내용이다. 처음 여기서 종소리가 나는가. 들리는가를 구분하게 된다. 즉, 종소리가 날 때 단지 소리가 나는 것이 듣는 현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종소리가 난다는 측면은 같더라도 듣거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단순히 물리적 인과과정만 고려하면 이 둘의 차이는 없다. 그래서 종소리가 외부에서 나고 귀가 있다면 그런 주체는 그 상황에서 다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각 차이를 설명하려면 이에 개입하는 마음의 존재를 따로 시설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시설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상황을 달리 설명할 수 있다고 하자. 즉 여전히 물리적인 관계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런 마음의 시설은 필요없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지금 관념분별을 행하는 데 관여하는 제 7 식을 시설하는 문제도 사정이 같다. 이런 제 7 식을 시설하지 않고도 이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제 7 식의 시설은 불필요하다. 그런데 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 망집이 발생하는 과정 눈을 떴다. 꽃모습이 보인다. 그 다음 이 상황에서 어떤 주체가 어떤 생각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처음 생각할 내용이 있다. 눈으로 본 모습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자신이 떠올린 생각은 관념내용이다. 이 둘을 먼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둘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보자. 대단히 서로 엉뚱하고 다르다. 그런데 대부분 이 두 내용을 접착해 이해한다. 그것이 처음 잘못이다. 관념내용은 이 과정에서 눈을 감아도 계속 어느 정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이와 달리 감관이 관계하는 그 순간에만 얻는다. 이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면서 이 두 내용을 서로 먼저 구분해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제 안경이 어디 있는가. 문제삼는 꽃이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이 때 이런 질문내용은 그 성격상 관념내용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 질문을 받고 손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이 때 손으로 가리킨 부분은 그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이 두 내용이 어떻게 서로 다르고 같은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보자. 그래도 일정한 관념은 계속 떠올릴 수 있다. 안경이나 꽃을 문제삼았다면 그런 관념은 계속 떠올릴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런 관념 속에 방금전에 대한 안경이나 꽃 모습이 얻어지는가를 스스로 확인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 둘의 차이를 스스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는 직전에 얻었던 감각현실의 단 한 부분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을 경전에서 다음처럼 표현한다 변계소집상은 상무자성이다. 즉, 관념내용에서는 감각현실을 통해 얻는 자상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뜻이다.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관념내용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관념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둘을 서로 잘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 이 상황에서 그런 관념내용은 그 감각현실을 떠나 얻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기본적인 망집 상황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망집현상이란 다음이다. 안경이 어디 있는가라고 물을 때 손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킨다고 하자. 이 경우 그는 그 일정부분이 바로 그런 안경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부분에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안경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그렇게 묶고 나누어서 상을 취한다. 그런데 정작 그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없다. 또 그 부분은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를 떠올리고 이후 이 생각으로 기차를 연상해 떠올렸다고 하자.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 바나나가 기차는 아니다. 또 그 바나나에 그런 기차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는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감각현실과 관념을 함께 접착시켜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곧 망상분별이다. 그가 현실에서 취해 가리키고 붙잡는 부분은 그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들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붙잡아 취하고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고 임한다. 그래서 이를 망상분별이라고 칭하게 된다. 그런데 욕계내 상황은 대부분 이에 바탕해 이뤄진다. 그리고 욕계에서 겪는 생사고통도 바로 이에 바탕해 겪게 된다. 따라서 이 부분을 잘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여하튼 욕계 상황은 바로 이런 바탕에 있다. 그런데 욕계내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다시 욕계내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고 임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욕계 내 중생이 이렇게 임하게 되는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물론 가장 간단히 이해하면 그 사정은 다음이다. 욕계 내 중생이 감각현실과 관념을 동시에 함께 얻는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그 주체의 마음 영역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겹쳐서 접착시켜 이를 대한다. 이는 마치 비닐마술과 사정이 같다. 또는 수정구슬에 색깔이 있는 빛이 비추이는 상황과 사정이 같다. 예를 들어 비닐 하나에는 세모가 그려져 있고 또 다른 비닐에는 원이 그려져 있다고 하자. 이 둘을 겹쳐 놓고 대한다고 하자. 그려면 그 상황에 가운데는 세모인 도넛츠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 어느 비닐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그래도 이 두 내용을 겹쳐 대하면 그런 내용이 거기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계속 그 비닐을 대하면서 임하게 된다. 이를 좀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가 세모가 그려진 비닐 부분을 대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는 그 부분에 다른 비닐에 있는 원 모양이 거기에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둘을 겹쳐 대한다. 이 상황에서 동그라미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세모가 그려진 니닐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현실에서 안경이나 꽃이 어디 있는가. 또는 영희나 철수또는 자신의 몸이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일정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 이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 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는 그 부분이 그런 내용이라고 여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은 그런 부분을 그 요소로 갖는다고 여긴다. 감각현실을 자상이라고 칭하는 사정이 있다. 한 사람이 영희가 누구인가를 손으로 매 경우 가리킨다고 하자. 이 모습을 죽 나열해 보자. 그 모습을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영희가 100m 앞에서 달려온다고 하자. 이 경우 처음에는 영희는 자신의 손가락보다 작게 보인다. 그리고 달려오는 매 과정마다 그 형체나 그 크기가 다르다. 이를 α,β,γ,δ,ε,ζ,η,ι,κ,λ,μ,ν,ξ 로 표시한다고 하자. 그런데 문제는 그는 이처럼 제각각 다른 내용을 모두 영희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이 모두 영희와 대응된다. 이 경우 영희는 이들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이 공통해 갖는 공상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들 각 경우 개별적으로 다른 모습은 그런 공상에 대응하는 개별상으로서 자상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각기 다른 상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모두 영희라고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그 자상에는 그런 공상이 들어 있지 않다. 또 그 공상에도 그런 자상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두 내용을 놓고 대조하면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다만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앞 비닐 마술의 비유는 수정구슬 비유과도 사정이 같다. 예를 들어 투명한 수정구슬에 노란 빛을 비추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수정구슬이 금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붉은 빛을 비추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수정구슬이 붉은 루비보석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녹색 빛을 비추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수정구슬이 녹색인 에머랄드 보석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푸른 빛을 비추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수정구슬이 파란 사파이어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 상황들에서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 비유를 잘 이해하고, 현실 사정을 이에 준해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 진리판단과정에서는 여기서 이 내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에 대해 무엇이라고 판단한다고 하자. 그것은 그 일체가 모두 관념내용이다. 그래서 그 일체는 일단 그 판단이 문제삼는 감각현실과의 관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엉터리다.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감각현실에 대한 관념판단 일체는 엉터리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망상분별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다만 욕계상황에서는 오히려 이 반대가 일반적이다. 오히려 감각현실을 대해서 일정한 분별을 행하지 못하면 백치로 취급받게 된다. 그래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상태처럼 취급받는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하려는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이런 상태에 일단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그래서 이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그 상태에서도 다시 분별을 잘 할 필요성이 있게 된다. 한편, 수행자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아라한의 상태에 들고자 할 때는 경우가 이와 다르다. 이들 일체는 엉터리 망상분별이며 희론에 해당한다. 이것은 본 바탕 실재에 대한 판단도 아니다. 즉 관념 영역에서 제멋대로 행한 엉터리 판단일 뿐이다. 다만 관념영역에서는 그래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희론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망집과 생사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 일체를 모두 제거하고 떠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취지에서 회신멸지가 강조되는 것이다. 한편, 인명론 인식론 등에서 감각현실을 대해 곧바로 일으키는 관념판단이 옳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도 그 관념은 곧바로 일으켜 얻는다는 사정에서 현량에 넣기도 한다. 그리고 이처럼 곧바로 얻는 관념적 판단(의식-mano-vijñāna)은 그런 사정으로 옳다고 여긴다. 그래서 감각내용 및 정려시 얻는 관념적 내용 및 자증지와 함께 현량에 함께 넣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정이 그렇지 못함을 먼저 위 내용을 통해 잘 이해해야 한다. 즉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그것을 얻게 한 대상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내용들이다. 단지 그런 내용을 그처럼 한 주체가 얻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후 현실에서는 계속 이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고 결과를 대하게 된다. 그래서 마치 이들 내용이 현실적으로 유효한 작용을 갖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즉 물을 대해 물이라고 이해하고 마시면 시원함을 느낀다. 그런데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물이라고 이해하고 마시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두 경우는 차이가 있다고 여긴다. 또 그런 의미로 처음 판단은 옳은 지식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처음 물을 물이라고 여겨 마신후 느낀 시원함도 역시 같은 문제다. 처음 망상분별을 일으켰다면 그 바탕에서 다음 내용도 대하는 것이다. 처음이 꿈이었다면 그 뒷 내용도 꿈 안의 내용이다. 그리고 같은 성격의 내용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 하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각 내용은 그것을 얻게 한 대상과 대조하면 모두 엉뚱하다. 특히 감각현실을 대상으로 일으킨 관념판단의 경우는 이 두 내용의 차이를 쉽게 현실에서 파악할 수 있다. , 한편 감각현실은 그것을 얻게 한 외부 대상 자체를 끝내 얻지 못한다. 그래서 대상과의 일치 불일치 여부를 판단할 길이 없다. 단지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얻고 현실에 임하게 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생사현실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은 그렇게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일 뿐이다. 이런 형태로 얻는다고 그것이 옳다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망상분별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이 사정을 다음처럼 제시한다. '상은 실로 상이 아니다. 고로 상이라고 칭한다.' ... 만일 상이 상이 아님을 관하면 곧 여래를 보게 된다. ... 이런 내용이 바로 이 부분과 관련된다. 그리고 욕계 생사현실에서 갖는 신견 등은 모두 이런 망집에 바탕한다. 그래서 욕계 생사현실의 생사고통을 제거하려면 일단 이런 정신증상을 벗어나야 한다. ○ 망상분별의 발생과정의 이해 본인이 오래전에 sns 활동을 하다가 모두 제거하고 나왔다. 거기에는 사정이 있다. 대부분 동문 sns 는 상조회처럼 운영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고나, 결혼식 소식 외에 어떤 내용을 올리면 싫어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글이나 노래나 사진을 올리면 자신 입장에서 엉뚱하게 이것을 대하고 제각각 달리 대하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현실에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킴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연구활동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여겨서 대부분 sns 에서 활동을 중지하고 나오게 되었다. 한편, 연구하는 과정에서는 외국노래를 랜덤으로 들으며 연구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이나 영어 노래는 노래를 들으면 바로 가사를 알아듣기 쉽다. 그래서 글 작성시 방해가 되어서 이들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본인이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 노래를 듣고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노래를 반복해 듣다보면 이상하게 외국노래에서 과거 sns 활동에서 알게된 동문친구들의 이름이 자주 반복해서 들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이 이어지면서 노래가 들린다. 그리고 심지어 또 앞 노래와 뒷노래들이 서로 계속 내용이 이어지면서 노래가 들린다. 처음 노래 내용들이 연구에 방해가 되어서 의미를 모르는 외국노래를 들었었다. 그것이 대부분 요즘 올리는 불어 노래들이다. 그런데 이들 불어 노래들이 거꾸로 또 엉뚱한 가사를 전하는 상황이다. 다만 크게 연구에 방해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 현상을 놓고 잘 생각해보자. 프랑스와 한국은 거리상 대단히 멀다. 그런데 불어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한국어를 가사로 불렀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엉뚱하게 불어가사를 놓고 한국어로 듣게 되는가. 이 현상이 망상분별을 이해하는 과정과 관련된다. 장미 꽃에는 누님이 없다. 그런데 어떤 시인이 장미꽃을 대하면서 누님을 떠올렸다고 하자.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하자. 철지난 장미꽃은 시집간 누님이다. 누님은 늘 잔소리만 한다. 그래서 가시가 아프다. ... 별로 좋은 시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왜 어떤 시인은 꽃을 대해 누님을 떠올리게 되었는가. 이 부분이다. 심리학 실험에 '흘뿌린 잉크 그림 실험'이 있다. 종이에 잉크를 마구 흩뿌려 놓는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그것이 무엇처럼 보이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실험이 갖는 의미는 다음이다. 본래 그것은 잉크를 그냥 뿌려 놓은 것 뿐이다. 그런데 위 실험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그것에서 일정한 형체가 보인다고 답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것은 거미처럼 보인다고 답할 수도 있다. 또는 여인처럼 보인다고 답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물론 답은 아니다. 그런데 이 실험이 갖는 의미는 다음이다. 이런 실험을 행하면 그 가운데 80 % 정도는 대부분 엇비슷한 답을 한다고 하자.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이는 다른 답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는 그 나름 독특한 배경 사정이 있다고 추리하게끔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그 잉크 그림을 대하면서 어떤 괴한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같다고 답했다고 하자. 그런데 다른 이들은 거의 이런 답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처럼 답하게 되는 데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배경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추리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심리 연구과정에서 이용되기도 한다. 이제 처음 불어 노래 문제로 들어가 보자. 만일 어떤 이가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불어 노래를 듣고 한국 단어를 떠올릴 리는 없다. 그래서 불어 노래를 듣고 한국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다. 그리고 다시 같은 불어 노래를 듣고 일정한 친구 이름이 들린다고 여긴다고 하자. 여기에도 사정이 있다. 그가 그런 친구를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또 그런 이름이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데에는 일정한 배경사정이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 배경들이 없으면 그렇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노래나 그림에 그런 내용은 본래 없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답해도 그것은 답은 아니다. 그리고 일종의 망상분별에 해당한다. 그런데 각 경우 그렇게 엉뚱하게 대하게 되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망상분별이 일어나는 배경 사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생사현실에는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한 반응이 있다. 그런데 처음의 기초 수행은 이런 반응을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매 상황마다 각 주체가 생사고통을 일으키는 반응[업]을 중단하게 하는데 기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매 상황마다 그와 반대로 쌓여진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반대방향의 수행을 행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수행은 계를 닦아서 계체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훈련하면 매 경우, 일반 망상환자와는 달리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가까이 있다고 하자. 대부분 남성은 여기에서 리비도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미 황진이와 지족선사의 사건을 놓고 이를 살핀 바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결과가 좋지 않다. 그래서 리비도 수행론이 요구된다. 리비도적인 본능적 충동 에너지가 강하다. 그런데 그 리비도 충동을 그대로 실행하면 거의 대부분 3 악도 행이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교도소 아니면 중환자실 행이 된다. 이것은 3 악도라는 열매를 맺기전 먼저 보게 되는 꽃과 같다. 그래서 화과라고 칭한다. 생사과정에서 사후 맞이하는 3 악도의 과보 이전에 현생에서 받는 중간과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경우 그렇게 촉발된 에너지의 방향을 수행방향으로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리비도 수행방안이다. 그래서 이 경우 넓고 길고 깊게 좋은 반응이 무언가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래서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려면 수행자는 그런 경우 다른 경우와 달리 반응하게 된다. 무엇이 이것을 다르게 만들었는가. 그 주체에게 무언가 다른 내용이 들어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계를 닦아서 달리 반응하게 된 상태를 무표색이라고 칭한다. 이는 다음 의미다. 계를 열심히 닦았다. 그래서 어떤 수행자가 매 경우 다른 범부와 다른 반응을 하게끔 그 체계가 바뀌었다. 그래서 계를 성취한 수행자에게는 그렇게 매 경우 달리 반응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 안에 들어 있다. 다만, 그 내용이 겉으로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표-색이라고 칭하게 된다. 이런 뜻이다. 여하튼 리비도 수행방안도 현실에 중요하다. 리비도적인 본능적 감성적 충동=> 그 에너지를 그대로 싣고 다만 그 방향을 수행방안으로 돌린다. => '열정적인' 자세로 일반적인 계를 실천함 예를 들어 앞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이가 노출이 심한 아름다운 여성을 대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반대로 극단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무시나 냉대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극단을 다 상대가 싫어한다. 그런 가운데 비교적 무난한 내용을 찾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상대에 대한 공양, 공경, 존중, 찬탄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보게 된다. 이것이 매 경우 잘 안된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그 상태로 계속 임하면 결국 3 악도에 들어가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일단, 수행을 방해받지 않을 조용한 수행처에 들어가 닦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산 속이거나, 숲 무덤가등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디를 늘 생각하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 보리심을 잘 일으켜 중생을 대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정이 노래에서도 들리는 듯하다. 여하튼 이런 여러 사례를 놓고 망상분별이 나타나는 과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이가 자신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추구하고 실천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실질은 대부분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것이 된다. 그 사정은 그가 매 상황을 대해 일으키는 매 분별이 망상분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가 자유롭게 뜻을 성취하는 과정은 실질적으로는 욕계에서 그 자신이 3 악도에 끌려가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욕계내 파순을 만족시키는 결과가 된다. 그런 사정으로 계에 어긋나는 행위는 타승이라고 표현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 실질 의미는 낙타나 곰 벌의 행위라고 보게 된다. 다만 그 주체는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과정을 자신이 자유롭게 행해 뜻을 성취한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 주체의 마음 안을 차지한 내용 자체가 망집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욕계내 마 파순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주체안에 불어 넣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일반 광고에서도 이용한다. 어떤 유명 아이돌 가수나 배우가 이 음료수가 시원하다고 선전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것을 대한 이 가운데 몇몇은 그 음료수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잘 이해해보면 욕계에서 묶이는 현상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욕계 내 중생이 자유롭게 행한다고 여기면서 열심히 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 3 악도라는 수용소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그 배경이 있다.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에 들어가 있는 망집의 정체다. 그것은 본래 그 주체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주체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들어온 손님과 티끌[객진]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처음 누가 그 주체에게 심어 놓았는가 그 배경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의 핵심은 이런 망집에 바탕해 일으킨 일체의 소원을 다 제거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이 무상, 무원무작 삼매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상삼매를 바탕으로 안인을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서원을 대체해 넣고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실상이 공한 법자리에 앉아 이를 실천해 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중생제도를 행하는 수행자의 기본 자세가 된다. 오늘은 글이 조금 길어졌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키는 배경문제는 좀 더 자세히 살필 부분이 많다. 망집을 일으키는 데에는 과거에 행한 의업,구업, 행업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았다. 이외의 사정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살피기로 한다. 여하튼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그러나 욕계현실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현실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당장 거리에 나서기도 힘들다. 그런데 망집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3 악도에 처하지 않는 방안을 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일단 평소 망집상태에서 행하는 방식으로 업을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 방향인 수행방안으로 매 경우 임해야 한다. 그것이 보시, 정계, 안인, 정진의 수행덕목이다. 일반적으로 좋음(+)에 집착하고 아끼는 경향이 있다. => 이를 아낌이 없이 베푸는 수행을 해야 한다. 자신이 좋음(+)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 생명,신체,재산,가족 등등)을 침해하고 나쁨(-)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 => 이것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생명이 자신의 좋음(+)을 침해하고 나쁨(-)을 가할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불같이 분노를 일으키고 미움 원망을 갖고 상응해 보복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 이런 경우 생사현실이 꿈과 같은 것임을 관하고 상을 취하고 임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일체에 분노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좁고 짧고 얕게 관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당장 이익을 가져다 주는 방향에 집착한다. 그래서 그 결과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 이런 경우 평소 없는 선을 새로 만들고 있는 선은 키우고 반대로 없는 악은 만들지 않고 있는 악은 키우지 않는 수행 노력을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복덕자량이 쌓인다. 그리고 이렇게 복덕자량이 쌓이게 되면 이후 정려나 반야 바라밀도 닦아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혜자량까지 구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려면 우선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방향과 반대로 꾸준히 수행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사현실에서 가장 쉬운 일은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보면 이 마음을 바꾸는 것이 또 대단히 힘들다. 우선 자신이 되고자 하는 서원부터 잘 그려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세상을 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보리심을 일으켜 임하는 자세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바뀌어야 이후 모든 생사현실 내용이 바뀌게 된다. 쉬다가 노래를 듣다보니 심지어, 묻지 않는다는 외국 노래까지 듣게 된다. 그러고보면 외국 노래는 다루는 분야가 넓다. 묻지 않는 일까지 노래를 부르는 주제로 삼는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그런데 이것이 망상분별이 생기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처니의 설법은 부처님이 스스로 밝히듯 일체가 희론이다. 그런데 그 희론이 갖는 가치가 크다. 그 희론은 다른 희론과 달리 중생이 망집을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뗏목 기능을 하는 희론이다. 색상문자나 노래나 향이나 음식 그런 것 일체가 그런 기능을 하면 그것이 불사라고 할 수 있다. 즉 부처님이 중생제도를 하는 사업이 된다. 반대로 수행자가 일체를 그런 시각에서 대하면 또 그것도 마찬가지가 된다. 이는 예술품과 같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재료로 예술을 만들 수도 있다. 반대로 관객은 또 모든 것을 예술품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반대가 되면 또 곤란하다. 예를 들어 반대로 임해서 모든 것을 망집으로 대하면 생사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대하는 입장에서도 모든 것을 잘못 대하면 부처님 가르침마처도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원인으로 된다. ♥ 잡담 ♥지구의 이상적 기후문제 현재 긴급소식이 인터넷에 올려져 있다. 지구가 현재 23.5 도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큰 일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것도 보살이 이렇게 일부로 기울게 했다고 하는 듯하다. 그 영향으로 현재 날씨가 덥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날씨가 추워진다. 이렇게 한반도의 날씨를 매년 춘하추동 번갈아 맛보게 하기 위해서 23.5 도를 기울였다고 한다. 조금 더 기울어졌다거나, 조금 덜 기울어졌으면 또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여하튼 그 영향으로 66,6 도 이상의 위치에서 가운데 극단적인 곳에서는 1년 동안 단 한번만 해가 뜨고 진다는 기이한 소식도 듣게 된다. 즉, 해가 뜨면 반년동안 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사실일지 궁금하다. 그런데 여하튼 23,5 라는 숫자에서 이상상태가 무엇인가를 먼저 깨닫자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노래를 듣다보니, 모 연구원이 앞으로 숙왕화님보다 더 뛰어나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 1 m 도 제자리에서 뛰어 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 모 연구원이 변신해서 또 다른 연구원이 된다는 소식도 듣는다. 노래가 망상을 일으키는 정도가 점입가경이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7/2565-07-14-k0939-005.html#1591 sfed--비니모경_K0939_T1463.txt ☞제5권 sfd8--불교단상_2565_07.txt ☞◆vuad1591 불기2565-07-14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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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군비구(群比丘)라고도 함. 석존이 출가하던 때 부왕의 명으로 태자를 모시고 함께 고행하던 이를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녹야원에서 처음 교화하여 비구가 된 다섯 사람. 아야교진여ㆍ아습비ㆍ마하마남ㆍ바제ㆍ바부. 혹은 아야교진여ㆍ알비ㆍ마하남ㆍ발제ㆍ바파. 또는 교진여ㆍ아사바사ㆍ마하나마ㆍ발제리가ㆍ바사파. 또는 요본제(了本際)ㆍ정원(正願)ㆍ대호(大號)ㆍ인현(仁賢)ㆍ정어(正語). 혹은 구린ㆍ알폐ㆍ마남구리ㆍ발제ㆍ십력가섭.
답 후보
● 오비구(五比丘)
오십팔계(五十八戒)
오연(五緣)
오위(五位)
오자진언(五字眞言)
오조(五祖)
오지(五智)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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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니모경_K0939_T1463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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