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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5-12-12_불설라마가경-K0102-003 본문

근본불교_대승불교_종교적진리와실천

불기2565-12-12_불설라마가경-K0102-003

선현 2021. 12. 12. 23:04



®


『불설라마가경』
K0102
T0294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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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있는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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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불설라마가경』 ♣0102-003♧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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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라마가경』 ♣01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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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답지 않음의 의미 혼동
- 망집을 일으키게 한 재료와 망집현상을 혼동하는 문제
- 실답지 않음과 내용의 있고 없음(존부)의 문제


실재나 실체와 관련된 논의과정에서
언어표현으로 주로 혼동을 일으키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전등에서
'현실에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또는 영희나 철수라는 주체도 얻을수 없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이는 그런 현실내용이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기 위한 취지다.
이들 논의는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함에 취지가 있다.

이는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갖는 다음의 망집을 제거하는데 취지가 있다.

우선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감았다고 뜬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는 일정부분에 대해 일정한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대해 그것이 영희나 철수라고 여긴다고 하자.
또는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즉, 다음과 잘못된 분별을 일으키기 쉽다.

우선, 그는 그런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이 곧 '그런 분별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기 쉽다.
또한 그런 감각현실 일정 부분에 그런 내용이 그처럼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서 그에게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것은 곧 그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런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생사 생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일반적으로 감각현실 영역에서 '무언가 감각현실이 들고 나는 것'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보게 된다.
또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감각현실을 얻고 못 얻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또 눈을 계속 뜨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거리를 바라본다고 하자.
그러면 거리에 사람들이 들고 남을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화단에서 꽃이 피고 짐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을 그가 '생멸함'이라고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생멸함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라고 어떤 이에게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현상을 손으로 가리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감각현실들을 '생멸'이라고 접착시켜 이해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는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은 관념분별내용이 아니다.
그런 감각현실은 단지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한 재료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취해서 그런 내용이 그 부분에 있다고 잘못 여긴다.
즉,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부분을 취해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아닌' 부분을 그런 부분'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따라서 이런 분별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현실에서 영희라고 여기며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그 부분이 곧 영희다. 이렇게 여기면서 평소 임한다고 하자.
그런 자세가 망집상태다.


한편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도 마찬가지다.
실재 영역에서는 자신이 감각하거나, 분별한 그런 현실내용을 얻을 수 없다.
현실 내용은 한 주체의 마음이 관여해 그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삼는 본 바탕은 이런 주체나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런데 한 주체는 오직 그의 마음이 관계해 마음이 얻어내는 내용만 얻게 된다.
그래서 실재는 그런 주체 입장에서는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실재를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앞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분별을 행하기 쉽다.
즉,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도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따라서 이런 분별 역시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처럼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자신이 일으킨 분별 내용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래서 현실 내용은 꿈과 달리 실답다고 여기고 집착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꿈 내용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한다.
그래서 꿈이 실답지 않음은 잘 이해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위와 같은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래서 일정한 분별은 감각현실 영역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현실은 꿈과 달리,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즉 침대에 없는 바다나 황금을 꿈에서 꾼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꿈과는 달리 실다운 것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경우 그는 현실 내용에 집착하게 된다.
그런 경우 그는 이후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면 미리 이런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런 망상분별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다음 내용을 밝히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꿈 밖 현실 영역의 내용을 살펴야 한다.
즉 꿈을 꾼 침대가 놓인 현실 내용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 내용과 꿈을 서로 대조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꿈에서 본 황금은 (다른 영역-침대가 있는 현실)에서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밝힐 때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생생하게 명료하게 얻는다.
현실에서 우선, 일정한 상황에서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즉 '저 부분은 영희다' '이 부분은 자신이다' 등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또 '무언가가 생겨나고 멸한다' 등으로 분별한다.
그런데 이런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감각현실을 얻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우선 그런 관념분별이 실답지 않음을 밝히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현실 상황에서 그런 관념분별은 명료하게 얻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이 경우 이 상황에서 그 관념분별이 1 차적으로 <그 감각현실 부분에>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된다.
한편,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가 문제된다.
더 나아가 이에 해당하는 <참된 진짜 실체>가 있는가 주된 논의 초점이 된다.

그리고 이들 문제가 곧 그 관념분별이 실다운 것인가의 논의와 관련된다.
그래서 이들 논의는 위 부분을 밝히는데 초점이 있다.

또 이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밝히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현실 상황에서 감각현실 내용을 매 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그런 부분이 아니다.
이 경우 그 감각내용이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가 문제된다.
또 앞과 반대로 그 감각내용이 분별 내용 안에 있다고 할 것인가도 문제된다.
더 나아가 이에 해당하는 참된 진짜 실체가 있는가 주된 논의 초점이 된다.
그리고 이들 문제가 곧 그 각 내용이 실다운 것인가를 살피는데 필요한 논의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다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각 내용은 우선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여타 다른 영역에서도 역시 얻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관념은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또 관념은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한편, 감각현실은 실재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한편, 각 감각현실은 또 다른 감각현실 영역에서도 역시 얻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시각 내용은 청각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반대로 청각 내용은 시각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서로간에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또 각 감각현실은 관념영역에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내용들은 모두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각 내용들은 단지 화합을 통해 일정 영역에서 얻게 된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 각 현실 내용은 침대에서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이들 각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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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유, 불가득이란 표현의 의미에 대한 혼동 문제

현실 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들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긴다고 하자.
그러나 이는 잘못된 망상 분별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망상분별은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근본 바탕이 된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의 제거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경전에서 망상분별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처럼 표현하게 된다.

그런 현실 내용은 본래 있는 바가 없다. 그리고 본래 얻을 수 없다. [무소유, 불가득]
이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음을 나타낸다. [무소유, 무아, 무자성]
또한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 그런 내용들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불가득, 공]
그래서 이들은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음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를 들어 생사현실에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제시한다고 하자.
이는 그런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에 대해 집착을 제거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이 표현의 의미 자체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우선 생멸을 다음처럼 이해한다.

어떤 이가 이미 망집을 일으킨 상태라고 하자.
그러면 그는 현실에서 감각현실과 관념을 먼저 접착시켜 이해하는 상태에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가 일정부분을 영희로 여기고 대하고 있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일정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처럼 그는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이 곧 그런 관념내용이라고 여기는 상태다.

또 생멸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감각현실 영역에서 무언가 감각현실이 들고 남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생멸이라는 관념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생멸이라는 표현이 내용도 그런 것으로 접착시켜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그에게 무엇을 생멸이라고 하는지 가리켜 보라고 하자.
그러면 그는 감각현실에 무엇이 들고 나는 것을 생멸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현실에 그런 영희나 그 생멸,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이 표현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즉, 그가 평소 영희나 생멸 생사로 이해한 내용 일체를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가 평소 영희나 생멸 생사로 이해하던 내용이 있다.
즉 앞의 상황에서 그가 영희나 그 생멸 생사가 무엇인가를 가리켜보라고 하자.
그 상황에서 그가 손으로 가리킨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는 위 표현은 그 상황에 그런 부분들 일체가 없다는 의미인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본래 생사현실에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 말이 감각현실 영역에서 각 내용이 들고 나는 일 자체가 없음을 제시하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위 표현을 대하는 가운데 이를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우선 위 표현은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얻을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또는 그런 상황에서 그가 일으켜 얻는 관념내용 자체가 없다고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또는 그 상황에서 그런 관념 자체를 일으켜 얻으면 안 된다고 제시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쉽다.
이런 형태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위와 같은 표현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것은 그가 망상분별 상태에서 이들 내용을 모두 접착시켜 그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접착시켜 대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위와 같은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그는 즉 그런 관념내용이 곧 그 감각현실에 들어 있다라고 이해하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모두 함께 접착시켜 잘못 이해하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위 표현을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즉 이는 현실 내용 자체를 얻지 못한다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이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재료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재료 자체를 얻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이 감각현실은 이후 망집을 일으키게 하는 재료가 된다.
한편, 그 상태에서 관념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리고 이렇게 일으킨 관념도 이후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이렇게 얻은 이들 내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이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을 재료로 이후 일으키는 망상분별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을 꿈과 달리 실답다고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논의의 주된 초점이 된다.
이는 그 각 내용이 실재 등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주된 초점이 된다.



이는 실재에 대한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본 바탕 실재에 관한 망상분별도 사정이 같다.
어떤 이가 본 바탕 실재 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망상분별로 인해 그런 내용이 꿈과 달리 실답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 실재영역는 공함을 제시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게 된다.
즉 생사나 생멸 등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한 주체는 오직 마음과 관계한 내용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한 주체 입장에서는 문제 삼는 실재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다 ~아니다 ~와 같다 ~와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모든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남을 뜻한다.
그리고 언어로 끝내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상태를 본래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엇이 있다거나, 반대로 무엇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 경우 이 표현의 의미를 다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우선, 이 표현이 본 바탕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라고 한 것으로 잘못 오해하기 쉽다.
또는 현실 내용을 전혀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고 잘못 오해하기 쉽다.
즉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을 감각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또 어떤 관념내용을 관념영역에서도 전혀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잘못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자체적으로 옳지도 않다.
또한, 이는 생사고통의 제거와도 큰 관련이 없다.
즉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는데 큰 관련이 없다.
그리고 망집을 제거하는데도 큰 관련이 없다.

이들 감각현실이나 관념내용은 각기 각 영역에서 현실에서 얻는다.
다만 실재를 포함한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할 뿐이다.
또 그래서 비록 그 내용을 얻지만,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 뿐이다.
또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을 것을 제시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지 않아야 함을 제시하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언어표현은 본래 여러 영역의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각 표현이 가리키는 의미를 각 경우에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일정한 논의가 이뤄지는 배경과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각 경우마다 논의의 초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논의내용을 살펴야 혼동을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경전이나 논서 표현을 대할 때마다 혼동을 일으키게 되기 쉽다.

그래서 먼저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과 관련한 혼동을 먼저 잘 정리해야 한다.
이 혼동을 정리하기 위해 각 내용을 기호로 구분해 표시해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고 하자.
그리고 그 때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고 하자.
이를 여기서 감각현실●로 표시해보자.

한편 그 상태에서 그는 일정한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그 일정부분이 영희라고 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또는 이 부분은 자신의 몸이라고 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또는 그런 내용이 생멸한다고 분별할 수도 있다.
이제 이런 내용을 여기서 관념(분별)내용□으로 표시해보자.

현실에서 이런 감각현실 ● 과 관념내용 □ 을 일으켜 얻는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그 주체가 그 마음안에서 얻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들 내용과 달리 본 바탕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게 된다.
즉, 그 주체와 관계없이 본래부터 있다고 할 내용이 무언가를 문제삼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뜨면 일정한 감각현실 ● 을 얻는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가 눈을 감으면 그 감각현실 ● 은 사라진다.
그리고 얻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그가 처음 얻는 감각현실 ● 은 아주 사라져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그와 관계없이 무언가가 그대로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본 바탕 실재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실재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살피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 그런 실재를 실재# 표시로 기호로 표시해보기로 하자.

또 어딘가에 그런 각 내용을 얻게하는 참된 진짜 내용 실체가 뼈대로 있는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처럼 문제삼는 참된 진짜 내용 실체를 $ 라고 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서 내용을 얻게 하는 과정은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자신과 관계없이 있다고 할 본 바탕 실재 #가 있다고 하자.
이제 그런 바탕에서 자신이 눈을 뜨면 일정한 감각현실 ● 을 마음에서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다시 그 일정부분은 영희다. 바위다. 이런 식으로 분별하고 관념내용 □ 을 일으켜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 각 영역에 참된 실체 $ 가 있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 관계를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게 된다.

본 바탕 실재 # ~ 감각현실 ● ~ 관념내용 □

그런데 현실 상황에서 한 주체는 감각현실● 과 관념내용 □ 을 마음에서 동시에 함께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의 관계에 대해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이미 앞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를 살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떠 일정한 감각현실 ● 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일정 부분이 영희 □라고 분별한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그에게 영희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영희가 저기 있다고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가 가리킨 부분은 결국 그가 얻는 감각현실 ●의 일정 부분이다.

그것은 곧 그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 □ '이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런 감각현실 ● 부분에 그런 영희 □ 가 ' 있다'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그런 일정한 감각현실 ● 부분이 곧 '그런 분별 내용□ '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한 그런 감각현실 ● 일정 부분에 그런 내용□이 그처럼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는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을 함께 접착시켜 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즉, 감각현실 ● 에는 그런 관념내용□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고 하자.
이는 감각현실을 얻는 영역에는 그런 관념 □ 을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이 마치 꿈과 성격이 같음을 나타내는 취지다.

즉, 꿈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은 침대에서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그런 꿈은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 ● 이나 관념 □이 모두 이런 꿈과 성격이 같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 망집 상태에서 일으키는 혼동의 문제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위 내용을 다음의 의미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우선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감각현실 ●과 그 관념내용 □ 을 접착시켜 대하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그는 위 표현이 그런 관념내용 □을 관념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또는 위 표현이 곧 그런 감각현실 ● 도 그 감각영역에서 얻지 못한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위 표현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물론 문제 되는 내용을 위처럼 각기 다른 기호 ● □ 등으로 표시하면 혼동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각 영역의 내용을 모두 언어로 표현해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이 혼동이 훨씬 심하게 된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어떤 언어표현이 이들 가운데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이런 사정을 비닐 마술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다시 이 부분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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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마술이란, 다음과 같다.
세모△ 가 그려진 비닐과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비닐을 겹쳐 놓게 되면
처음 세모△ 가 그려진 비닐에 동그라미○가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또 이로 인해 어느 비닐에도 없는 모양이 보이게 된다.

즉, 안이 세모이고 밖이 동그란 도너츠 모양 ㋰이 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세모가 그려진 비닐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 상황에서 그 비닐을 그런 도너츠모양으로 대하게 된다.

즉, 세모 △를 대하면서 그것을 곧 그런 도너츠 ㋰로 잘못 여긴다.
이는 달리말하면, 세모△가 그려진 비닐에 동그라미○가 '있다'고 잘못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그런데 세모△가 그려진 비닐에는 동그라미○가 없다.

한편, 그는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에 세모△가 '있다'고 잘못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에는 세모△는 얻을 수 없다.

세모△ 와 동그라미 ○는 각기 다른 영역에 있는 별개의 것이다.
그리고 세모는 그런 도너츠㋰도 아니다.

이 경우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 상황에서 그가 있다고 여기는 내용은 사실은 어느 비닐에도 얻을 수 없다.
즉, 안이 세모인 도너츠모양㋰은 어느 비닐에도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그는 분명히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분별이 바로 망상분별이다.

---

그런데 위 상황에서 어떤 이가 다음 사실을 지적한다고 하자.
즉, △가 그려진 비닐에 ○를 얻을 수 없음을 지적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가 비닐을 겹쳐 대하는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 그는 우선 각 비닐이 각기 다른 영역 내용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비닐에 안이 세모인 도너츠모양㋰이 있다고 여기는 상태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위 내용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우선 그는 위 표현이 ○ 가 그려진 비닐 영역에서도 ○ 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한편 그는 세모△ 와 동그라미○를 겹쳐 이를 하나의 내용 ㋰ 으로 대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그는 위 표현이 곧 세모△가 그려진 비닐 영역에서 세모△ 역시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물론 비닐 마술에서 ○ 와 △ 를 그림처럼 구분해 표시하면 혼동은 적을 수 있다.
다만 언어를 통한 논의에서는 이 혼동이 훨씬 심하게 된다.

즉, 논의 과정에서는 문제되는 각 영역의 내용을 모두 언어표현으로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혼동이 훨씬 심하게 된다.
따라서 각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각 경우마다 잘 구별해 파악해야 한다.



현실에서 대부분 망집을 일으켜 임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그 망상분별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하자.

우선, 어떤 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은 영희다. 자신이다. 또는 나무다, 바위다.
그리고 이들은 생멸, 생사를 겪는다.
이런 식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감각현실은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또 이를 바탕으로 관념분별도 명료하게 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각 내용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서 얻을 수 없다.
또 다른 영역에서도 역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현실에서 그처럼 얻지만, 모두 꿈처럼 실답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꿈을 놓고 생각해보자.
꿈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통해 그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망상분별의 제거를 위해서 다음이 주된 논의초점이 된다.

즉, 영희나 철수와 같은 주체를 (본 바탕인 실재 영역 및,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또 그 생멸을 (본 바탕인 실재 영역 및,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하고자 이 사정을 밝히게 된다.

즉 여기서 논의의 초점은 다음이다.

어떤 내용을 얻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도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내용을 그만큼 실다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게끔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관념을 일으켜 얻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관념이 감각현실 영역에도 있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또 더 나아가 그 관념은 본 바탕 실재 영역에도 그처럼 있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이를 꿈과 성격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시정시키려는 취지인 것이다.

그리고 경전 등에서 다음처럼 그 사정을 나타내게 된다.

생사현실에 본래 생사,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생사를 겪는 주체가 없다.
또 그런 현실 내용은 본래 있는 바가 없다 [무소유]
한편, 그런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불가득]

이는 현실 내용에 해당하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음을 나타낸다. [무소유, 무아, 무자성]
한편, 이들 내용은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 그런 내용들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불가득, 공]
그래서 이들은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음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결국 이는 망상분별을 시정하기 위한 내용이다.
즉 현실 내용이 실답다고 여기는 망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표현은 다음 내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 그런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관념영역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이 때 그 상황에서 일으킨 그런 '분별'내용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또는 그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꿈은 실답지 않다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다음을 의미한다.
꿈은 생생하게 꾸었다.
그러나 그런 꿈 내용은 침대가 놓여진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꿈을 실답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 실답지 않다는 이 표현은 다음을 의미하는 것은 또 아니다.
즉, 이는 그런 꿈을 전혀 꾸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침대가 놓인 현실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꿈에서 본 내용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현실 내용에 대해 무소유, 불가득을 제시하는 것도 그 취지가 이와 같다.
그래서 이 표현을 다음 내용들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이는 어떤 이가 그런 상황에서 감각현실이 얻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또 그 상황에서 그가 일정한 분별내용을 일으켜 얻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또는 그런 상황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키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얻는 각 내용의 상호관계를 다음처럼 밝히는 것 뿐이다.
우선 그런 내용을 각 영역에서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각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특히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밝히려는 것이 주된 취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곧 그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해주는 핵심이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종전에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지할 수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를 예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생사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우선 그런 상태에 처하게 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그런 업을 행하게 하는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무량겁에 걸쳐 쌓아 놓은 업장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통해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위 내용들의 이해가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논의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각 부분에서 각 표현이 가리키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이들 내용이 논의되는 이런 기본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어떤 논의도 논의 자체는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행한다.
예를 들어 도깨비는 세상에 없음을 논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이는 관념영역에 관념내용 형태로는 있다.
또 그런 주장 안에 그런 글자나 언어 형태로는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런 측면에서 논의하는 것이 아님도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지금까지 살핀 내용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 관계를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다.

실재영역 - 감각현실 영역 - 관념 영역
-----------------------------------------------------
본 바탕 실재 #
X ~ 감각현실 ●
X X ~ 관념내용 □
-----------------------------------------------------


이 상황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킨 경우의 판단

실재영역 - 감각현실 영역 - 관념 영역
-----------------------------------------------------
감각현실 ●=> 감각현실 ● => 감각현실 ●
관념내용 □=> 관념내용 □ => 관념내용 □
-----------------------------------------------------

그리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제시하는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실재영역 - 감각현실 영역 - 관념 영역
-----------------------------------------------------------------
실재 #는 공하다.[불가득 공]
실재에서 감각현실●을 얻지 못한다. -<다만 감각현실 ●을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는다> -- 그러나 관념영역에 감각현실●은 없다.
실재에서 관념□을 얻지 못한다. -- 감각현실 영역에서는 관념□을 얻지 못한다. -- 다만 <관념내용 □>은 관념영역에서 일으켜 얻는다.

+
한편 이 어느 영역에도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 $는 없다. ( 무소유, 무아. 무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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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nb4228

◈Lab value 불기2565/12/12


○ 2020_0906_114250_nik_bw5.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ul-gauguin-the-white-horse-1898



○ 2020_0606_190345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olmin600



♥Jersey (UK) Saint Saviour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Christina Marocco - Marc Lavoine - J'ai Tout Oublié


♥단상♥표현 정리의 어려움

경전이나 논서의 언어표현이 일으키는 혼동 문제가 심하다.
특히 마음 현상을 다루는 부분에서 이 현상이 심화된다.

본래 마음은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한다. 또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언어표현으로 각 내용을 표현해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각 언어표현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전을 살피다 보면 일정한 내용을 자주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반복을 피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기재한 페이지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한 페이지 안에서도 또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함을 살피게 된다.
사정이 있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이미 이런 혼동과 망상분별을 심하게 일으킨 상태다.
그래서 이미 문제되는 각 내용 사이에서 기본적인 혼동을 일으킨 상태에 있다.
그래서 이 사정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한 페이지 안에서 조차
동일한 내용을 수없이 반복해 제시함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글을 보다 보면 약간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정리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결국 3일에 걸쳐 한 부분을 간신히 정리했다.
다만 완전하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요즘은 일일단상 코너를 살피는 가운데 과거글 정리를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과거글의 정리가 좀 더 급하다.
그런데 과거글을 살피고 정리할 때는 처음 글을 쓰는 시간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
다만 이미 써 놓은 글을 읽고 정리하기에 조금 수월한 점은 있다.
그래도 하루에 이 두 작업을 모두 다 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현재 과거글을 살피면, 일일단상 코너 페이지에도 그 내용을 그대로 붙여 올리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렇게 3 일에 걸쳐 살피는 경우는 어떤 페이지에 붙여야 할 것인가 문제된다.
일단 임시로 여러 페이지에 함께 붙여 놓기로 한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들을 다시 재정리해가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12/2565-12-12-k0102-003.html#4228
sfed--불설라마가경_K0102_T0294.txt ☞하권
sfd8--불교단상_2565_12.txt ☞◆vcnb4228
불기2565-12-12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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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용을 심(心)ㆍ의(意)ㆍ식(識)으로 나누어 말하기도 함.
⇒<유사어>심의식<참조어>심의식(心意識)

답 후보
● 식(識)
신력(神力)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
신표업(身表業)

실담오십자문(悉曇五十字門)
실유불성(悉有佛性)
심(心)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6근(根)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法)의 6경(境)을
구역에서는 6입, 신역에서는 6처(處)라 함.
이 6근ㆍ6경을 합하여 12입 또는 12처라 함.

그 중에서 6경을 외육입(外六入),
6근을 내육입(內六入).
12인연 중의 6입은 내육입.
입(入)은 거두어들이는 뜻.
6근ㆍ6경은 서로 거두어들여 6식(識)을 내는 것이므로 6입이라 하고,

처(處)는 소의(所依),
6근ㆍ6경은 6식을 내는 소의가 되므로 6처라 함.
⇒<유사어>육처<참조어>육처(六處)

답 후보
● 육입(六入)
윤생(潤生)
율사(律師)

음계입(陰界入)
응송(應頌)
의(依)
의(義)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19_0405_171607_can_ct33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eyword.html

○ [pt op tr]
● 불설라마가경_K0102_T0294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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