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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최상
불기2565-12-21_증일아함경-K0649-022 본문
『증일아함경』
K0649
T0125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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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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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증일아함경』 ♣0649-022♧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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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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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0106_154857_nik_Ab31 의정부 도봉산 망월사
❋❋본문 ♥ ◎[개별논의]
『증일아함경』 ♣0649-022♧
◎◎[개별논의] ♥ ❋본문
From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1-12-24-001_27.html
임시 =>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12/2565-12-02-k0952-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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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2 =>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12/2565-12-21-k0649-022.html
● 실답지 않은 꿈과 현실
- 꿈의 실답지 않음과 현실의 실답지 않음
'꿈'을 실답지 않다.
그리고 '현실'을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꿈을 무엇때문에 실답지 않다고 하는가.
이를 먼저 살펴보자.
철수가 침대에서 누어 잔다.
그리고 바다에서 황금을 얻는 꿈을 생생하게 꾼다고 하자.
그런데 꿈에서 영희가 그것을 다 가져갔다.
철수가 꿈을 깨었다.
이후 그 꿈을 실답게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영희에게 황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요구는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
이를 일반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철수가 그런 꿈을 꾼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런 요구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철수는 침대에 누어 자면서 그런 꿈을 꾸었다.
그런 일이 없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또 꿈에서 바다나 황금을 보았다.
그런 일이 없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침대에 누어 그런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사정이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고 영희에게 가져간 황금을 돌려달라면 이치에 맞지 않다.
꿈은 꿈 안의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꿈은 침대가 있는 현실에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철수가 꾼 꿈은 실답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을 파악해야 한다.
철수는 생생하게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처럼 생생하게 꾸었음에도
그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꿈은 꿈을 꾸게 된 그런 상황과 조건에서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상황과 조건을 떠나면 그런 내용은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 내용은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참된 진짜내용이 아니다. [ => 무상, 무아, 무자성, ]
2 침대가 놓여진 현실은 그가 그런 꿈을 꾼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꿈에 해당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즉 꿈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 불가득 공 ]
그런 내용을 꾼 것이다.
3 꿈에서 본 황금은 현실의 황금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꿈에서 본 황금은 단단하거나 무겁지도 않다.
또 다른 장식을 만들거나 다른 물건과 바꿀 수도 없다. [ => 무자성, ]
즉 꿈에서 본 황금은 현실의 황금에서 기대하는 여러 성품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꿈은 참된 내용이 아닌 가짜다.
그렇기에 아무리 생생하게 꾸었다해도 꿈은 실답지 않다.
○ 실재와 현실의 실답지 않음
[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보는 사정과 실재 ]
대부분 꿈이 실답지 않음을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이 실답지 않음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대단히 실답다고 여긴다.
그런데 왜 현실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가.
현실에서 한 주체는 감관을 통해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정한 관념분별을 행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앞을 본다.
그런 가운데 앞에 영희가 있다고 여긴다.
이런 경우다.
그런 가운데 이들 현실 내용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좋고 나쁨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래서 망집을 일으킨 이들 사이에서 가해와 피해 관계가 중첩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런 상태에서 생생하고 실답게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 경우를 가정해보자.
현실에서 앞에 영희가 서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영희에게 다가가 꽃을 건네려다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다.
그래서 평생 마비 상태로 지내며 고통을 받는다고 하자.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과정은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
생사고통에 처하는 것은 그 전에 행한 업이 있기 때문이다.
절벽에 굴러 떨어진 것은 그 이전에 절벽을 향해 걸어간 업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걸어간 것은 또 그렇게 걸어야 한다고 여기게 된 일정한 판단 분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상분별 번뇌 - 업 - 고의 관계가 생사현실에서 문제된다.
이 경우 되도록 원인단계에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업을 행하게 되는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강조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런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은 무엇인가.
이를 현실에서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을 놓고 살펴보자.
먼저 꿈이 실답지 않다고 본 사정이 있다.
그런데 현실도 그와 사정이 같다.
즉 생사현실이 꿈이 갖는 특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은 꿈과 같다고 말하게 된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이외 나머지 감각현실[소리,냄새,맛,촉감]이나 관념분별도 이와 같다.
따라서 이에 준해 살피면 된다.
1 우선 감각현실을 놓고 생각해보자.
눈을 떠서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런 감각현실은 우선 그렇게 눈을 뜰 때만 그런 조건 상황에서 얻는다.
즉, 한 주체가 감관을 대하는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다.
그것은 또 상황따라 조건따라 매번 달라진다.
즉, 그런 조건을 떠나면 얻지 못하고 사라진다.
따라서 그처럼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내용이다.
따라서 영구불변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고정되 유지되는 진짜 실체가 아니다.
바위 하나를 놓고 살펴보자.
바위는 상당히 오래 그 상태로 유지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눈으로 볼 때와 손으로 만질 때가 다르다.
그리고 눈으로 보더라도 아침에 대할 때와 밤에 대할 때가 다르다.
또 색안경을 끼고 대할 때와 벗고 대할 때가 다르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얻지 못하게 된다.
매 순간 감각현실을 생생하게 얻는다.
그렇지만, 그 각 내용 하나하나는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 무상, 무아, 무자성]
=> 따라서 집착을 갖고 대할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2.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데 이는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영역에서도 얻게 된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를 간단히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우선 눈으로 보는 내용은 눈으로 보는 영역에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소리를 듣는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또 손으로 만져 촉감을 얻는 촉감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즉 이처럼 다른 감각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관념 분별 영역에서도 역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은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도 아니다.
본 바탕인 실재에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주체는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한 주체는 마음안에 얻어지는 내용만 얻는다.
즉, 단지 마음은 마음에 화합해 얻어지는 내용만 얻는다.
그러나 실재는 그런 마음과 관계맺지 않은 내용이다.
한편, 마음은 그래서 마음 밖 내용 그 자체는 끝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를 공하다고 표현한다. [실재의 불가득, 공]
꿈은 침대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을 꿈으로 꾸게 된다.
그런데 현실이 이와 성격이 마찬가지다.
즉,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얻는 것뿐이다.
본 바탕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실재를 바탕으로, 단지 화합을 통해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
따라서 감각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 실재의 공함 =>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 [ 공해탈삼매 ]
3.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생각하기 쉽다.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감각현실 일정 부분을 대해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경우 그 상태에서 일정한 모습이나 성품을 분별해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 감각현실에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 감각현실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는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을 자신이나 영희 철수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런 부분[상]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영희나 철수의 그런 모습과 성품을 갖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 부분을 대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그렇지 않다.
우선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또 감각현실도 역시 관념분별이 아니다.
각 영역 내용에 일정하게 기대하는 성품이 있다.
그러나 각 영역 내용은 그런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주체와 관계하지도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을 본 바탕 실재라고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실재는 표현상 현실을 얻는 본 바탕이 된다는 의미에서 진여(眞如, tathatā)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재가 곧 꿈과는 성격이 다른 참된 진짜 실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표현으로 '실재'와 '실체'의 의미를 혼동을 일으키면 안된다.
실재가 무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데 본 바탕에 그런 참된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을 찾아 제시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 원성실상의 승의무자성 ]
그리고 한 주체는 본 바탕 실재를 끝내 직접 얻지 못한다.
한 주체는 마음이 관계하여 얻어낸 내용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실재는 의미를 갖지 않는 표현인 공을 빌려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불가득, 공]
그래서 실재는 실체를 갖지 못해 무아 무자성인 한편,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해 공함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결국 실재는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실답지 않은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실체가 어느 영역 어느 내용엔가는 있는가가 문제된다.
즉, 꿈과 달리,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것이 어딘가에는 있는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국, 실재 영역과 감각현실, 관념분별 어느 영역에서나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 승의무자성 ]
한편, 감각현실 내용은 다시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갖는다.
감각현실은 한 주체가 관여해 얻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시각내용은 눈이 관계해서 마음에서 얻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 아니다. [ 의타기상의 생무자성]
또한, 감각현실 영역에서 관념분별은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에도 역시 그런 관념분별내용은 얻을 수 없다.
한편, 관념분별은 다시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갖는다.
관념 영역에는 감각현실과 같은 내용은 없다.
또한 관념내용에도 그런 감각현실 내용은 없다. [변계소집상의 상무자성]
그런데 이런 각각의 내용에 대하여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하자.
즉 이 각 내용이 꿈과 성격이 달리 참된 성품이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또는 다른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는 실다운 내용으로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집착을 일으키고 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소원을 갖고 이를 추구하는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런 바탕에서 무궁하게 반복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면 이런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우선 망집에 바탕해 일으키는 소원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무원무작해탈삼매]
또 그러려면 그런 업을 행하게 하는 망집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처럼 생사고통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이 각 부분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망집을 현실에서 일으키는 과정을 다시 잘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감각현실을 대하면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은 그런 분별을 일으키는 소재가 된다.
그래서 그 일정 부분을 대하면 그로부터 영희나 바위라는 등의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그 일정부분은 그런 일정한 모습과 성품을 갖는다고 잘못 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는 어떤 내용을 '일으키게' 하는 것과,
어떤 부분을 '가리키게' 하는 내용 사이에서 서로간의 성격과 지위를 혼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수에게 영희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또는 영희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가 찾다가 영희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는 일정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러면서 저기에 영희가 '있다'고 답하게 된다.
이는 바로 '그 부분이 영희이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이 과정들을 먼저 생각해보자.
어떤 이가 잠을 자다가 눈을 떴다고 하자.
그래서 주변을 살펴본다고 하자.
이 때 초점을 맞추어서 일정 부분을 본다.
이 경우 그렇게 일정 부분을 바라보면 그 부분이 영희나 안경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 때 그가 바라본 내용은 감각현실의 일부분이다.
그런 경우 그런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은 그처럼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이 경우는 다음 두 내용의 관계를 혼동하는 것이다.
'관념을 일으키게 하는 감각현실 부분' => 그로 인해 일으켜진 관념 내용
한편, 이제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현실에서 영희나 안경을 찾는 상황이 있다.
이 때 그 상황에서 설령 영희나 안경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 상황에서 관념영역 안에 그가 찾고자 하는 영희나 안경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런 가운데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제 영희나 안경을 찾아서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이 경우 관념영역에 있는 내용은 그처럼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을 가리키게끔 하는 내용이 된다.
이 경우는 다음 두 내용의 관계를 혼동하는 것이다.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가리키게 하는 관념내용' => 그로 인해 가리켜진 감각현실 부분
결국 현실에서 감각현실 부분과 관념영역은 서로 다음의 관계를 갖는다.
'관념을 일으키게 하는 감각현실 부분' => 그로 인해 일으켜진 관념 내용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가리키게 하는 관념내용' => 그로 인해 가리켜진 감각현실 부분
그런데 이들 두 내용은 한 주체의 마음안에서 동시에 병행해 얻어진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게 하는 감각현실 부분'과 '그로 인해 일으켜진 관념내용'을 두고 서로 그 지위를 혼동하게 된다.
그것이 현실에서 일으키는 1차적 망상분별이 된다.
이제 이런 망집현상을 비유로 이해해보자.
어떤 이가 '라이터를' 생각하면 '담배'를 반복해 떠올리게 된다고 하자.
사정이 그렇다고 '라이터는 곧 담배이다'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이런 판단은 잘못임을 쉽게 이해한다.
라이터가 담배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터가 곧 담배는 아니다.
한편, 그 상황에서 담배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 상황에서 라이터를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도 잘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소 라이터가 매번 담배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터 부분에 담배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얻게 되는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가 이와 마찬가지다.
한편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손을 부딪힐 때마다 손뼉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는 손모습에는 소리가 들어 있지 않다.
또 눈으로 보는 손모습이 손뼉소리인 것도 아니다.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일정한 관념분별을 반복해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그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분별내용은 얻을 수 없다.
또 그 감각현실 부분이 그런 분별내용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각 주체별로 하나의 부분을 대하면서 제각각 다른 생각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그 때마다 그런 각 분별내용이 그 부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생명체들은 감관이나 인식기관이 각기 다르다.
이런 여러 다른 생명체들을 함께 놓고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앞의 문제는 더 상황이 심하다.
즉 각 생명체가 제각각 일으켜 얻는 내용은 수 없이 다르다.
그렇다고 매 경우마다 그런 내용이 그 부분에 그처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각 주체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우선 매번 일정부분을 대할 때마다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즉, 자신이 그런 부분을 대해 일으키고, 분별하는 모습과 성품이 그 부분에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더 나아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곧 그러그러한 것[분별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어떤 것이 A 가 아니다.
그런데 그처럼 A 가 아닌 것을 대하면서 그것이 A 라고 여긴다고 하자.
또 어떤 부분에 A 가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대해서 그 부분에 A 가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이들은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한 주체가 현실내용을 얻고 분별하는 경우가 이와 마찬가지다.
일정한 감각현실을 눈,귀,코,입,몸을 통해 얻게 된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엉뚱하게 서로 대단히 다른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을 얻는 가운데 한 주체는 일정한 분별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각 경우 일정한 관계에서 반복해 일정한 관념 내용을 일으켜 얻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일으킨 관념내용은 그 감각현실 부분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정부분을 대하면 특정한 관념을 일으키는 그런 경험을 매번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잘못된 망상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어떤 부분을 대해 안경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는 다른 부분에서는 그런 분별을 보통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일정부분을 대하게 되면 보통 안경이라는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사정으로 그는 그 부분이 곧 안경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그가 안경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에는 그런 관념내용이 본래 있지 않다.
현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먼저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
그 상황에서 그는 다시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분별영역에서 일으켜 얻는 분별내용일 뿐이다.
감각현실 자체에서 그런 분별 내용은 얻지 못한다.
이는 그가 그런 감각현실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분별 내용은 그 감각현실 부분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 그 감각현실 부분은 곧 그런 분별 내용인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감각현실 영역에서는 모습[相]과 성품[성]을 얻을 수 없음=> 무상해탈]
그런데 예를 들어 현실에서 영희나 안경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 때 그가 손으로 일정 부분을 영희나 안경이라고 가리킨다고 하자.
이 때 그는 그 부분이 그가 생각하는 영희나 안경'이다'라고 잘못 여기는 것이다.
또 그가 손으로 가리킨 부분에 그런 영희나 안경이 '있다'라고 잘못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처럼 행하는 것은 망집에 바탕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놓고 이들은 서로 비슷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내용이다.
눈을 감고 영희나 안경을 생각해 떠올려 보자.
그 때 떠올려지는 내용은 관념내용이다.
이것을 잘 붙잡아 보자.
그리고 그 안에서 그 직전에 눈으로 본 영희나 안경 모습이 찾아지는가를 스스로 살펴보자.
찾아지지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는 눈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을 놓고 검토해본 것이다.
그러나 소리, 냄새, 맛, 촉감과 같은 감각현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감각내용과 관념분별의 관계는 다 이와 마찬가지다.
한편, 감각들[시각, 청각,후각, 미각, 촉각] 서로간에서도 이들 관계는 마찬가지다.
시각의 내용은 청각영역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또 청각 내용은 시각영역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한편 본 바탕인 실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실재와 감각현실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에 준해서 판단하게 된다.
본 바탕 실재에서는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한편, 감각현실은 마음이 관계해 얻는 내용이다.
그러나 실재는 마음과의 관계를 떠나서도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따라서 감각현실은 본 바탕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실재와 관념분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실 내용 일체는 하나같이 꿈처럼 결국 실답지 않다.
꿈은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꿈을 꾸는 상황에서 화합해 얻는 것 뿐이다.
현실도 본 바탕인 실재와의 관계가 이와 같다.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본 바탕 실재를 바탕으로 얻는다.
그래서 그 발생관계를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다.
본 바탕 실재 => 감각현실 => 관념분별
이 과정에서 본 바탕이 본래 얻을 수 없고 공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들 상호간의 관계는 결국 침대에서 꾸는 꿈과 같은 관계에 있다.
이 사정을 각 내용을 놓고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들 각 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또 이해해야 한다.
이는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는 과정과 같다.
꿈을 꾸는 가운데 꿈만 대해서는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꿈을 깨서, 침대가 놓인 현실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침대가 놓인 현실과 꿈 내용을 서로 함께 대조해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생사현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생사현실에서 생사현실 안의 내용만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이 관계하지 않는 본 바탕 내용은 무언가를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생멸이나 생사고통을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이는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이해는 생사현실 안에서 그 효능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꿈을 꿀 때마다 악몽에 시달린다고 하자.
그런데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지를 모른다.
그리고 꿈을 깨고 침대가 놓인 현실을 대하고서야 꿈이었음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꿈을 꾸면 또 다시 악몽에 시달린다고 하자.
그리고 꿈을 꾸는 동안은 그것이 꿈인지를 다시 모른다고 하자.
그러면 별 효용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다음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아예 꿈을 꾸지 않고 늘 깨어 있으면 될 것이다.
한편 꿈을 꾸더라도 그 꿈안에서 그것이 꿈임을 알고서 꾼다고 하자.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면 훨씬 낫다.
생사현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본래 본 바탕에서는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이 문제가 되지도 않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그런 사정을 이해하는 일 조차 불필요하다.
또 그런 이해를 얻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실재가 실재를 아는 일도 없다.
한편,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공하지 않는 실재가 비로소 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가 그 사정을 이해하던 않던 본 바탕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다.
본 바탕은 본래 그렇다.
그런데 사정이 그러함에도 어떤 이가 망집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안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즉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생사고통을 실답게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매 순간 생생하고 명료하게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무궁하게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공한 바탕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생사현실을 대할 때만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함에 중요하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에 임해야만 생사현실 안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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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6_160404_can_BW21_s12.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Henry-Twachtman-hayrick-1900 ○ 2018_0419_132550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llora_Cave_12_si0253 ♡운학사_고성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Gerard Lenorman - Si J'Etait Président ♥단상♥거부가 되는 방안 doctr 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오는 사이다. 그런데 doctr 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부자로 지내옴을 볼 수 있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거부는 아주 오래전 부터 거부로 지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자신의 상태는 오래 전부터 그리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본인도 현금은 별로 없지만, doctr 님 이상으로 부자로 여기면서 지내고 있다. 그것은 오래전에 본인이 개발해낸 무한카드와 무한화폐 덕이다. 이것을 연구원들에게 오래전부터 무상지급해서 함께 사용해오고 있다. 다만, 이 무한카드와 무한화폐가 생계비 부분에서는 지급이 되지 않는 점이 약점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본인이 가끔씩 부족함을 느낄 때가 1년에 1번 정도씩 있다. 이번에 doctr 님이 여러가지 세금 및 비용을 정산하는 과정을 보았다. 비용을 부담하는 이는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런데 그런 비용을 부담하는 이를 바라보는 입장은 오히려 약간 부러움을 느끼게도 된다. doctr 님이 최근 다양한 종목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특히 토큰 분야가 급등락이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있다가 차트를 보면 여러가지 사유로 놀라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점을 토로한다. 하루만에 단순히 50% 상승을 넘어 5 배 10 배 까지 상승하는 기이한 종목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종목에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오르기 전까지 자신이 전혀 그렇게 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본인도 부자가 되는 방안에 대해 함께 연구해보게 된다. 그래서 일단 이론적으로 부자되는 방안에 대해 검토를 하게 된다. 우리는 다함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보다 부자인 이들이 많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다른 이를 자신상태로 다 끌어 내린다고 하자. 그렇다고 자신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다른 이들처럼 함께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부자가 되려면 자신이 일정한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함에 있어 이익=수익(수입)-비용 식에서 수입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은 언뜻보면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에 비밀이 있다. 우선 자신이 어떤 활동을 할 때는 늘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잘 계산해야 한다. 특히 생명과 신체의 감가상각비(=> 현금추산 최소 1일당 137 억원 )을 잘 계산해야 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기에 이 비용을 지나치는 경우가 현실에 대단히 많다. 그런 경우는 외관만 보면 마치 대단한 수익을 거두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 항목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 최소한 이런 비용을 넘는 수입을 얻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항목은 대부분 베풀고 봉사하는 활동에서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렇지 못한 분야는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어떤 직업은 특성상 어떤 생명 어떤 누군가에는 반드시 피해를 주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미리 알아서 피하는 것이 낫다. 또 불가피하게 들어간 경우에도 최소한 그 활동 성격을 바꾸어 임해야 한다. 년말이 가까울수록 보이지 않는 수입액과 비용액을 잘 정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익을 극대화해햐 한다. 이것이 하루하루 그리고 년년으로 누적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대로 다음생의 출발 상태를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도 이 분야를 특히 유념해야 한다. 한편 비용 부분은 최소화해서 0 이 되는 것을 넘어서 마이너스 형태의 무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어떤 활동을 늘 즐겁게 잘 하는 자세로 쉽게 실현이 가능하다. 이것이 경전 상에서는 유희 신통 자재,,이렇게 표현된다. 즉, 유희 신통 자재로,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얻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 된다. 덤으로 생활상 팁이 있다. =>기본적으로 생계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자. 참고로 이 부분은 무한카드로도 해결되지 않는 분야다. 그러나 이 분야는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이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숲속의 새나 들판의 소똥구리나 개미도 이 분야는 해결한다. 이런 말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그 상태부터는 생활상 팁을 잘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머지 부분은 아무리 많아도 그것만으로 수명이 2 배가 되지는 않는다. 옷이 많아도 하루에 100 벌을 입고 다닐 수 없다. 집이 넓어도 잘 때 1 헥타르 넓이에서 뒹굴며 잘 수 없다. 수입이 많아도 하루에 짜장면 울면이나 볶음밥 등을 100 그릇씩 먹으며 지낼 도리가 없다. 그래도 생계비를 초과하는 나머지 부분이 갖는 일정한 기능이 있다. 이로 인해 편리함도 늘어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외관상 다른 이에게 존중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경로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맛을 얻는데 이바지 하게 된다. 그런데 종국적으로 즐거운 맛을 얻는데는 이런 방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방안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비용을 적게 들이는 방안을 사용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생활의 팁을 잘 적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자신이 정당한 지분을 갖는 국립공원과 도서관 구립체육관 도로나 보도 이런 것을 확보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것을 향유한다. 자신의 지분이 있어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리고 매 순간 향유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리석을 뿐 아니라 안타까운 상태가 된다. 옷에 지갑이 있었다. 그런데 몰랐다. 그래서 돈을 꺼내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로 인해 결국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옷 안에 지갑이 들어 있었다.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 또는 다음 같은 경우와 비슷하다. 손과 발과 눈과 심장 들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잘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씩 떨어지고 나서 그 소중함을 느낀다. 그리고 슬프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 있을 때 그 가치를 평소 잘 평가하고 잘 향유하고 지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계비를 넘는 수입은 앞에 말한 부분에 잘 투자한다. 그러면 삶의 형태가 좋아진다. 이런 회계 원리를 모르고 활동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외관상 수익이 발생한 듯 보여도, 전체 이익은 마이너스 형태가 되기 쉽다. 죽을 생명을 하나 살려주어 방생하면, 그 소득이 대단하다. 그래서 취미활동으로 낚시나 사냥을 즐겨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반대 방향으로 해서 잡힌 축생을 방생하는 형태로 바꾸어 보는 것이 좋다. 한편 구기 운동에 공을 주고 받는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도 이웃간에 서로 좋은 품목을 골라 서로 주고 받는 활동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 낫다. 한편 공연히 산을 올라가서 풍경 구경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는 경우도 있다. 이보다는 쓰레기 줍는 스틱과 비닐을 준비해 동네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취미가 더 낫다. 또 골대나 구멍에 공을 집어 넣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구기 운동종목도 많다. 그런데 이보다는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굶주린 이웃의 목에 영양 식품을 골인시키는 활동이 더 낫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알고보면 막대한 수익을 발생시키게 된다. 그래서 평소 이런 취미 종목만 알아두고 시간날 때 조금씩만 활용해도 수익이 엄청나게 된다. 한마디로 그 사정이 다음과 같다. 배부른 이에게 10 억원을 주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하루 한 끼를 못 먹으면 굶어 죽을 이가 있다고 하자. 이런 이에게 밥 한끼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높다. 요즘은 주변에 그런 이가 별로 안 보인다. 그런데 찾아보면 대단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또 축생의 경우도 이 가치 회계원리가 적용되는 사정은 이 경우와 마찬가지다. 년말이 가까오면 회계 장부를 맞추어 정산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생의 종점이 가까워질때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가치 회계 항목을 잘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이익 수익 이런 항목을 모두 플러스 형태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doctr 님의 경험에서 바탕한 금언을 여기에서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격이 급상승하는 종목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 거의 예외없이 그 이전에는 그럴 줄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이런 점이 공통하다. 그래서 삶이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 느끼게 된다. 한편, 삶이 처음부터 불공평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렇게 불공평하게 삶을 맞이할 줄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내생의 삶도 사실은 알고 보면 이와 사정이 같다. 그러나 그런 것을 미리 잘 예측하고 임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야 부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늘 종목 가격이 오르고 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때마다 그 종목을 미리 사둬야 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후회한다고 하자. 그리고 매 경우마다 그런 후회만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부자가 될 도리가 없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Gerard Lenorman - Si J'Etait Président.lrc 글을 적으며 뽑혀 올려진 노래를 듣다보니 미리 무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복하는 듯하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함에도 평소에 전혀 잘 모르고 지내는 것도 현실이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12/2565-12-21-k0649-022.html#7438 sfed--증일아함경_K0649_T0125.txt ☞제22권 sfd8--불교단상_2565_12.txt ☞◆vdlv7438 불기2565-12-21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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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반야의 하나. 문자반야. 문자는 반야를 나타내는 방편일지언정 직접 반야는 아니나, 문자로 말미암아 반야가 생기므로 이 같이 말함.
답 후보
● 방편반야(方便般若)
백골관(白骨觀)
백이십팔사(百二十八使)
번개(幡蓋)
번뇌애(煩惱礙)
범려(凡廬)
범천(梵天)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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