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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최상
불기2561-09-22_회쟁론-K0630-005 본문
『회쟁론』
K0630
T1631
회쟁론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회쟁론』 ♣0630-005♧
회쟁론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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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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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쟁론』 ♣0630-005♧
◎◎[개별논의] ♥ ❋본문
참고 =>
■■■
●회쟁론 판본에서 논자별구분 내용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630t1631001.html#010
sfed--회쟁론_K0630_T1631.txt ☞회쟁론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5.txt ☞ ☞●회쟁론 판본에서 논자별구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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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회쟁론을 살피기 전의 기본적인 내용
[p]불기2561-09-22_회쟁론_001 [ 현재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1-09-22001.html
[p]불기2561-12-24_회쟁론_001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1-12-24-001_27.html
○ [pt op tr]
▼
● 언어표현과 의미확정문제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다음처럼 추론식을 사용해 결론을 주장한다고 하자.
장미꽃은 꽃이다.
꽃은 한글이고 글자 하나다.
※ 따라서 장미꽃은 한글이고 글자 하나다.
누가 이렇게 추론식을 사용해
'(세 글자로 된) 장미꽃을 글자 하나다'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론 추론은 엉터리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글자는 다 같다.
그러나 정작 첫부분과 두번째 '꽃'이란 글자는 서로 다른 측면의 내용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각 부분의 '꽃'[글자]이 다 같은 내용을 가리킨다고 혼동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이상한 결론을 제시하게 된다.
가정적 논의를 제대로 전개하려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각 단어(언어)가 가리키는 내용부터 정확히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부터 안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논의할수록 계속 혼동이 일어나 뒤엉키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 위 기본 문제부터 잘 정리하고 내용을 다시 살펴야 한다.
○ 언어표현에 의존한 의미확정 곤란성
'만일 ~라면 --이다' 이런 방식으로 추론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가장 기본적으로 일으키기 쉬운 혼동을 위에서 사례로 살폈다.
형식은
S 는 M 이다.
M 은 P 이다.
※ 따라서 S 는 P 이다.
의 형식인 듯 하다.
그러나 위 사례와 같은 추론이 이상함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논의 중에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각 판본을 대조하며 언어 표현만으로 의미 확정문제를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자.
비슷한 사례를 또 살펴보자.
장미꽃은 flower[꽃]이다.
이 flower는 영어다.
※ 따라서 장미꽃은 영어다.
이번에는 flower 란 단어가 각기 가리키는 내용에서 혼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위 문장을 영어나 범어 티벳어 이런 식으로 옮겨 놓고 살핀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런 문제는 역시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어학적 역사학적 문헌학적으로 문제를 다 해결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여전히 본 실질 내용을 살피기 힘들게 된다.
어떤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언어표현만 붙들고는 본래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역계약시 금액 숫자에 컴마가 하나 있고 없고에 따라
10 억원이 없어지고 생기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 논서 표현을 놓고 각 경우마다 예민하게 표현에 집착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사정이 그렇지는 않다.
언어표현은 본래 다양한 측면의 다양한 의미를 가리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의미 가운데 어떤 것을 가리킨다고 정확히 결정해주는 힘은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경전에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아(我)와
무아(無我)의 아가 서로 같은 의미인지 아닌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글자를 아무리 현미경으로 살펴도 그 글자만으로는 알 도리가 없다.
따라서 각 표현의 구체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먼저 논의의 본 취지가 무언가부퍼 파악해야 한다.
○ 논의 취지와 배경 맥락에 따른 의미 파악
어떤 논의에서 살피는 주제의 초점과 그 논의의 전후 배경이나 맥락을 잘 파악한다고 하자.
그러면 구체적 표현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도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어떤 아저씨가 아라고 하는 소리를 지른다고 하자.
또 어떤 가게에서 어떤 아저씨가 아라고 하는 소리를 지른다고 하자.
이 경우 그 각각의 아 소리가 얼마나 같고 다르고를 문제삼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런 입장에서 임하면 모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찰떡같이 말해도 쑥떡처럼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세간의 말이 있다.
이는 전체 맥락을 통해 그 의미를 적절하게 잘 찾아 이해해야 함을 나타낸다.
비록 구체적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논의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다음 문제를 보자.
『회쟁론』에서는 일단 계속해서
만약 일체에 체[體]가 없다면 ~
만약 일체가 체가 있다면 ~
이런 형태로 내용이 제시된다.
그리고 각기 그런 가정에서는 어떤 문제가 나타난다고 계속 제시해간다.
그리고 결국 if~ 라면 구문을 사용하는 가정적 방식의 추론은 이와 같다.
그래서 잘 음미하며 읽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그 내용이나 그 상호 관계가 이해된다.
그러나 논의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각 부분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제시되는지를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if~라면 - 구문 표현의 글자 뜻을 알더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논의를 살필 때 그런 내용이 왜 문제되는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체가 체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떤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의미를 알려면 그 내용이 문제되는 배경사정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논의의 배경과 취지를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큰 어려움없이 각 부분의 의미를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된다.
○ 배경사정 이해 없이 논의를 살피는 문제점
논의 배경 사정을 살피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처음 『회쟁론』에서
'체'가 있다면 또는 없다면 하는 논의가 진행된다고 하자.
그런데 논의 배경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여기서 '체'란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우선 이 '체'라는 글자는 언어상 다양한 의미를 본래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다음처럼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다.
우선 그 '체'라는 표현이 한글로 된 하나의 글자인가를 문제삼는부터 살펴보자.
상식적으로 여기서는 그런 논의를 하려는 취지가 아님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언어 자체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체는 한글이다. 體는 한자다라는 식으로 내용을 살피면 곤란하다.
그러나 다시 그 단어가 가리키는 내용을 다시 파악해보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하나의 표현이 나타내는 의미가 상당히 다양함을 볼 수 있다.
『대승기신론소』를 살필 때도 체, 상, 용 이런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회쟁론』에서도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논서에서도 사용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각 경우 표현은 같다.
그렇다고 각 경우마다 가리키는 내용이 같은가는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체가 '있다'거나 '없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이 경우 '있다'와 '없다'가 무엇을 말하는가 문제도 사정이 같다.
그런데 이는 그 글자만 의존해서 확정할 도리가 없다.
즉 글자 자체가 어떤 의미인가를 결정해주는 힘을 갖지 못한다.
그런 사정으로 이제 각 경우 각 표현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후 논의를 살피기 곤란해진다.
논의를 이해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앞에 살핀 것처럼 논의 배경과 논의취지 그리고 논의초점부터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문제삼는 체는 어떤 상항에서
어떤 사정으로 그 유무를 따지는가하는 배경사정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체가 있거나 없으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때문에 그것을 문제삼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잘 해결한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는 위와 같은 if-라면 논의는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또 살펴도 된다.
그리고 살피는 김에 잘 살피면 더 낫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편하게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이런 논의를 하게되는 배경사정부터 살펴야 한다.
『회쟁론』이 불교 전체에서 어떤 배경사정을 바탕으로 어떤 논의를 진행하려 하는가
그 배경사정을 이해해보기로 하자.
그래서 비바시 여래님이 남긴 게송을 먼저 살펴보자.
이는 조금은 엉뚱하게 생각될 수 있다.
● 실체없음과 공함을 제시하는 배경사정
● 실체없음과 공함을 제시하는 배경사정
- 생사고통 해결의 전제로서 무아무자성 공의 이해
현실 일체에 진짜라고 할 참된 실체가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공한가 아닌가.
이런 논의와 관련해 과거 부처님 가운데 비바시여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고 한다.
죄복개공무소주...
죄나 복이나 다 공하고 머무는 바가 없다는 뜻이다.
불교 전반에서 실체가 없고 바탕인 실재는 공하여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즉, 무아, 무자성, 무소유 불가득 공 이런 내용을 반복해 제시한다.
그래서 앞 게송 내용을 놓고 먼저 살펴보자.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죄와 복은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위 게송에서는 그와 정반대 내용을 제시한다.
즉, 그 일체가 모두 공하다. 그리고 머무는 바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이 내용을 잘 음미해야 한다.
일단 이렇게 의문을 제기해보자.
죄와 복이 다 공하고 차별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은 현실이 어떻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그런 바탕에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보자.
일체가 체가 없고 공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기에 무엇을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내용의 취지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논의를 살핀 의미도 없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일체가 공함을 바탕으로 다음처럼 주장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따라서 현실 일체가 선하던 악하던 다 근본 바탕은 차별없이 공하다.
따라서 현실에서 선이던 악이던 다 무방하므로 방치해도 된다.
또한 현실에서 자신 마음대로 아무렇게 해도 된다.
따라서 수행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처음부터 복잡하게 이런 내용을 살필 의미도 없다.
원래 그런 내용이 없어도
현실에서 제각각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한다.
그런 가운데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며 생사고통을 받아간다.
그런 상태에서 다음을 주장하는 경우라고 하자.
즉, 이 일체가 공하기에 그런 상태로 방치해도 무방하다.
또 아무렇게 해도 무방함을 주장하는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런 내용을 따로 살필 의미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입장과 다른 입장은 현실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어느 경우나 현실에서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체가 있거나 없는 문제를 살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런 경우는 지적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논의하는 것 뿐이라고 해야 한다.
이는 단지 세상에 체가 있는지 여부가 너무 궁금해 살피는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는 견디기 힘든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해결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이런 생사고통을 해결하여 벗어날 방안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정에서 앞과 같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생사고통을 받는 현실의 본 바탕을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본 바탕인 실재는 공하다.
그리고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받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본 바탕에서는 이들 경우가 다 차별없이 공함을 뜻한다.
따라서 공한 바탕의 측면에서는 생사고통이나 차별을 얻을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 적도 없다.
본 바탕이 그렇게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왜 하필이면 극심한 고통을 받는가가 문제된다.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망집을 일으켜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기 때문이다.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생사현실에서 하필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생사고통을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먼저 이런 본바탕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게송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할 경우 이를 잘 극복해 벗어나야 한다.
또 미리 그런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을 예방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각 경우마다 행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를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도 위와 같은 내용을 잘 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잘 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바탕이 되어야 위와 같은 수행도 힘들지 않게 여기며 원만히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바탕에서는 어느 경우나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선 이런 본 사정을 잘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생사고통에 묶이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게 된다.
따라서 그런 사정때문에 이런 내용을 살피는 의미가 있다.
◧◧◧ para-end-return ◧◧◧
● 생사고통의 해결 원칙과 공의 이해
● 생사고통의 해결 원칙과 공의 이해
- 계의 수행덕목을 기본으로 제시하는 사정
생사고통이 문제된다고 하자.
이를 해결하는 방안만 결론적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고통을 당장 직면해 겪는 상황에서는
그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관한다.
그리고 평안히 잘 참고 임해야 한다.
2 한편, 생사현실안에서 그런 고통은 아무 원인없이 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방차원에서 그 원인을 잘 제거해야 한다.
○ 원칙적인 1의 방안의 어려움
각 경우마다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두 방안을 행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두 방안 가운데에서도 처음의 원칙적 방안을 행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우선 이론적으로 처음의 원칙적 방안만으로 생사고통 일체를 바로 벗어난다고 하자.
그렇다면 수행은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즉, 단지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만 관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만일 그렇다면, 장차 고통을 겪게 된다해도 역시 무방할 것이다.
매번 실답지 않음만 관하면 그런 고통을 바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정작 꿈은 아니다.
꿈은 대부분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쉽게 이해한다.
한편, 꿈에서 설령 고통을 받아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따라서 꿈에서 겪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그다지 필요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상황과 조건에서 유사한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대단히 장구하게 반복해 받는다.
따라서 이런 점이 꿈과는 다르다.
이처럼 현실이 꿈과 달리 갖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각 주체는 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긴다.
또한 현실이 실답지 않음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단순히 그것만으로 곧바로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고통이 지속되고 반복된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고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 정도에 비례해서 꿈과는 달리 수행을 통해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경전에서 제시하는 방안은 결국 다음이다.
억울한 고통을 당장 직접적으로 겪게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론적으로 그런 고통이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고통이 꿈과 마찬가지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
평소 일반적으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각 부분에 대해 분별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자신이나 영희나 철수 꽃 바위 라는 등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 각 부분은 그런 내용'이다'라고 망집을 일으킨다.
또는 그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여기며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나 본 바탕이되는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또한 그 감각 현실에서도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일체의 상을 취하여 머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한편 현실에서 가장 집착을 일으키는 내용이 있다.
그것이 곧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 등이다.
모든 집착이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는 자기자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대하며 이런 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각 부분을 잘못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에 머물러 잘못 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평소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참된 실상이 아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
굳이 생사를 이어가는 자신의 본 정체를 찾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자신의 근본 마음(아뢰야식)을 차라리 그런 부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무너지고 사라진다고 하자.
그렇다고 자신이 아예 없어진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따라서 그 상태를 평안히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안인 수행 덕목을 실천해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우선 현실에서 그런 이론적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설령 그 내용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 내용을 현실에서 적용해 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위와 같은 방안으로 고통을 극복해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은 매 순간 현실 내용이 대단히 생생하게 얻어지고 명료하게 분별되기 때문이다.
이 사정은 스스로 실험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금강경』에서 이런 사례가 나온다.
가리왕에게 사지를 절단당하는 수행자의 사례가 나온다.
그래서 다음처럼 가정해보자.
자신이 이런 사례처럼 억울하게 왕에게 체포되어 묶인다.
그리고 눈과 귀를 잘리운다.
또 사지를 톱으로 잘리운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단순히 망치로 손발을 내리쳐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그외 현실에서 겪는 극히 억울하고 심한 고통이 많다.
이런 다양한 사례가 다 그런 생사현실 문제다.
예를 들어 뺑소니 음주 운전으로 억울하게 부상을 당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부상으로 장애상태로 평생을 지내야 한다.
그런데 사고를 낸 이가 도망가 병원비를 자신이 내야 한다.
그리고 병원비로 진 빚을 남은 생 동안 갚아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나머지 가족이 모두 자신을 버리고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외 역사상 비극적인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전쟁 포로가 되어 극심한 모욕과 차별과 고통을 당한 사례가 많다.
또는 민족이나 인종이 달라 심한 박해를 당한 사례도 많다.
이런 상황을 하나하나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에서 각 주체가 생노병사 전반에 걸쳐 이처럼 고통을 모두 겪어나간다.
그래서 고통은 수용소에만 있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또는 축생을 도살하는 장소에만 있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또는 응급 수술실에서만 특별히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일체가 모두 차별없이 공하다고 제시한다.
따라서 현실은 본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환과 같다.
그리고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생사고통은 이론과 별개로 당장 생생하게 겪는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관하는 것만으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이 쉽다고 하자.
그렇다면 심한 고문을 받는 현장에 처해서도 이를 평안하게 참고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런데 여하튼 경전에서는 생사고통을 해결할 원칙적인 방안을 앞처럼 제시한다.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극복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국 우선 이론적으로 현실의 본 정체나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원칙적인 1의 방안을 직접 현실에 적용해 고통을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행을 통해 무생법인을 증득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인가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고통도 평안히 참고 견디는 안인수행을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대단히 장구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생각처럼 쉽지 않다.
● 계의 수행덕목을 기본으로 제시하는 사정
일반적 입장에서는 원칙적인 1의 방안만으로 생사고통을 바로 벗어나기는 곤란하다.
일체가 공하여 실답지 않다.
그런데 이런 사정만을 잘 관하여 생사고통을 극복해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원칙적인 1의 방안과 함께
다시 생사고통을 예방할 수 있는 2의 수행방안을 함께 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생사현실에서 고통은 일정한 인과관계로 받게 된다.
이런 경우 그런 결과를 받는 상태에서 고통을 극복하는 것도 방안이다.
그렇지만, 미리 그런 고통을 받는 원인을 제거하는 예방방안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벼랑에서 굴러 고통을 받는 것이 문제라고 하자.
그런데 벼랑에서 굴러 고통을 받는 것은 아무 원인없이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벼랑에서 굴러 고통받는 상태에서 고통을 극복하는 것도 방안이다.
그러나 그보다 미리 벼랑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 그런 결과를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원인을 미리 제거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생사고통은 생사고통을 받는 업을 행해서 받게 된다.
처음 망집을 일으키면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려면 망집을 제거하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생사의 묶임에서 바로 벗어나기는 곤란하다.
그간 행한 업의 장애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업의 장애를 해소할 수행을 또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곧 '계율'에 해당하는 수행덕목들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좋음을 아끼지 말고 다른 생명에게 좋음을 베풀어야 한다. [보시]
한편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생명, 신체, 재산, 가족,...]을 함부로 침해하며 나쁨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 [정계]
그리고 자신이 억울한 고통을 받는 경우에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다른 상대를 보복해 해치지 않아야 한다. [ 안인]
그리고 이런 수행을 꾸준히 행하는 것이 계에 해당하는 기본 수행 덕목들이다. [정진]
그리고 이런 수행덕목 역시 그 일체가 본 바탕이 공함을 관하는 가운데 행해야 한다.
즉, 이들 수행덕목 역시 얻을 수 없음을 방편으로 집착없이 행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이론상 1의 방안이 원칙적 방안이다.
그런데 이 외에 이런 2 의 방안이 제시된다.
이는 1의 원칙적인 방안만으로는 생사고통을 곧바로 극복해 벗어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칙적인 1의 방안과 함께
생사고통을 예방하기 위한 수행을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사고통을 이들 방안으로 해결하고 예방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사정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한편 이 두 방안을 각 경우마다 모두 실천하기 어려워하고 힘들게 여긴다.
그러나 결국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이 두 방안을 취해 실천해야 한다.
한편 이 두 방안은 제각각 모두 행하기 힘들다.
그래도 미리 예방하는 수행방안이 좀 더 쉽고 낫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2의 수행을 원칙적으로 먼저 강조하게 된다.
한편 수행자 자신이 생사묶임에서 벗어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다시 다른 생명들의 생사고통을 제거해주기를 원하게 된다.
그런 경우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과 눈높이를 맞춘 가운데 임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수행자 자신이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따라서 역시 2의 수행방안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 요구된다.
2 의 방안은 처음 생사에 묶이게 하는 업장을 해소시켜준다.
그리고 업의 장애가 다 해소되면 이후에는 복덕자량을 쌓게 해준다.
꾸준히 저금을 하면 처음에는 있던 빚이 줄어든다.
그리고 빚이 다 없어진 후에는 자산이 증가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결국 2 의 방안은 원칙적인 1의 방안과 함께
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 방안이 된다.
○ 생사고통 해결에서 무아 무자성 공의 이해의 가치
생사현실이 본래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는 것은 생사고통을 직면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는 데에도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또 그런 생사고통을 예방하는 수행을 원만히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
그런 기본 사정을 이해해야 수행을 힘들게 여기지 않고 원만히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체가 없어 진짜가 아니다.
그리고 무아 무자성이다. 그리고 공하다.
이런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국 생사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
현실의 삶에는 각 주체가 극심한 생사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생사고통의 해결에 체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사실이 서로 관계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를 크게 문제삼을 바는 아니다.
생사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그 정체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본래 그런 생사고통은 참된 체가 없다.
그래서 진짜라고 할 내용이 아님을 파악하게 된다.
본 바탕은 체가 없고 공하다. [무아, 무자성, 공]
그래서 현실은 본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꿈처럼 얻는 것이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다만 각 주체가 망집을 일으켜 그것을 실답게 여긴다.
그리고 이에 집착한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본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과 업을 끊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과정에서 현실의 본 정체가 무아 무자성 공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행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도 이들 내용이 무아 무자성 공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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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4/01/12/일/23:04 재보충
● 무아 공 제시배경과 『회쟁론』의 논의 초점
● 무아 공 제시배경과 『회쟁론』의 논의 초점
현실 내용이 참된 진짜인 실체가 없다.
그래서 무아 무자성이다.
그리고 그 본바탕이 되는 실재가 공하다.
따라서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이런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즉,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고통을 잘 극복할 수 있다.
또 이를 예방하는 수행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수행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서 이에 관한 내용들이 경전에서 반복해 제시된다.
그리고 이런 배경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회쟁론』논의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이 논의의 초점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사고통을 실답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처럼 고통을 직면해 받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것을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받는다.
그리고 잘 벗어나오지 못한다.
또 한편, 생사고통을 예방하려면 일정한 수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현실을 실답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수행을 힘들게 여긴다.
그리고 대부분 행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현실 상황에서 『회쟁론』은 다음 내용을 이해시키는 데 취지가 있다.
현실에 진짜라고 할 내용인 실체가 없다.
그리고 실재가 공하다.
그래서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이런 사실을 이해시키는데취지가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밝히는데 초점을 둔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현실내용이 실답게 '있다'고 여기고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매 순간 업을 행하여 생사고통을 받는다.
=> 그러나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 따라서 현실 내용은 마치 침대에서 바다나 황금의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런 바다나 황금은 침대에선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리고 현실에서 죄와 복의 차별이 극심하다.
그러나 본 바탕에서는 이런 차별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
=> 따라서 현실의 본 정체를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당장 고통을 겪는 상황이라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현실이 실답게 있다는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를 벗어나와야 한다.
즉, 그런 내용은 참된 진짜 내용이 아니다. [=무아, 무자성으로서 체가 없다. ]
또 그 본 바탕의 실상은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따라서 그런 내용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것은 망상분별이다.
따라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수명 등에 집착하기 쉽다.
그래서 그런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평안히 참아 안인을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벗어나와야 한다.
그리고 아직 생사고통을 당장 겪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런데 장차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원인[업의장애]이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미리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즉,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업을 새로 만들어내지 않아야 한다.
또 이미 쌓여진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행 역시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수행 자체에 대해서도 역시 망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행함을 어렵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무소득[얻을바 없음]을 방편으로 이들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이로써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는 3 악도에 묶이지 않고 벗어나야 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데 핵심이 있다.
따라서 이 논의의 핵심은 다음이다.
일반적으로 생사현실을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집착한다.
그러나 이들은 체가 있는 참된 진짜가 아니다.
그리고 본 바탕에서는 이들은 얻을 수 없고 공하다.
=> 현실에서 현실 내용을 생생하고 얻는다.
그리고 이를 실답게 여긴다.
그러나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런 현실 내용은 침대에서 꾼 바다나 황금 꿈과 같다.
=> 실답지 않다.
=> 그런 내용을 실답게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따라서 이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 어떤 내용이 체가 있는가 아닌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들 논의는 이런 사정때문에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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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시점 2564_0112_143447
● [p]불기2561-09-22_회쟁론_001 과 [p]불기2561-09-22_회쟁론_001 [ 현재 페이지] 내용
을 전체적으로 중복서술을 피하는 한편 체계적으로 내용을 재배열 하는 작업중임
○ 악취공견과 무아 공 제시취지의 오해문제
'현실에는 참된 진짜의 내용[체]가 없다.
그리고 공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러면 이 내용의 취지를 다음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사정이 그렇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다 무방하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는 아무렇게 해도 된다.
자신이나 어떤 생명이 생사현실을 겪어도 그냥 방치해도 된다.'
이처럼 오해하는 입장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이런 내용을 제시하려는 경우라고 하자.
그런데 생사현실이 처음부터 그런 상태였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따로 이런 내용을 추가로 제시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 취지를 잘못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또 그런 경우에는 실재가 공함을 이해해도 이득이 될 내용은 얻어낼 수 없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 바탕에서 하필이면 생사고통을 받게끔 되는 업을 행한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하필이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를 그런 내용만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는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분적으로만 잘못 취한 것이다.
그리고 악취공견을 일으키고 임하는 상태다.
이런 악취공견도 부처님의 입장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일체가 체가 없다. 무아무자성이다. 실재가 공하다.
그런데 이런 악취공견은 공하다는 내용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취한 입장이다.
즉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또는 사정이 이렇기에 생사현실 일체가 없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현실 일체는 무시해도 된다.
그리고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경우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또 다른 극단이다.
이 경우는 현실내용이 본 바탕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잘못 분별한다.
그리고 집착을 갖고 임한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본 바탕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함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전혀 없음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생사현실안의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재료로 망집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런 현실 내용을 다 무시할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이 마치 전혀 없는 것처럼 간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처럼 지나치게 나아가는 입장이다.
생사현실에서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이 망집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그 자체는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또한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어떤 주체가 직접 얻지 못한다.
그렇기에 2 분법상의 분별이나 언설을 떠난다.
그런 사정으로 공하다고 표현해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전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생사현실 자체를 모두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세를 취한다.
또는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생사현실에서 아무렇게 임해도 된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경우는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얻을 무량한 선법을 모두 다 상실하게 된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이처럼 악취공견의 입장을 취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그 스스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그런 생사고통을 이런 내용만 의존하여 벗어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론적인 이해만으로 그 생사고통을 극복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 자세는 자신의 생사고통의 해결에도 무익하다.
더 나아가 중생제도에도 무익하다.
○ 차별없이 공함과 수행 필요성
이론상 일체가 공함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론상으로는 원칙적으로 그 내용만으로 모든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런 내용을 이미 앞에서 살폈다.
그처럼 일체가 공함을 이론상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나 기본적 수행덕목을 행하며 현실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조차
그 이론을 통해 잘 극복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 3 악도의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3 악도에서는 극심한 생사고통을 직접 당장 겪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그 이론만으로 그 상태를 극복해 내기 힘들다.
이는 이론이 생사현실에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수행자는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여 수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를 잘 실천해 행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문제상황에 처하게 되기 쉽다.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생사현실에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받아나간다.
일반 중생의 상황이 이와 같다.
그리고 이런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행자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한다.
그런 경우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려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에 필요한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 악취공견과 수행의 필요성
일체가 공하다.
그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에서 아무렇게 임해도 된다.
그런 사정으로 수행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또 반대로 아무렇게 행해도 된다.
심지어 악행을 극단적으로 행해도 다 무방하다.
이런 식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이는 일체가 공하다는 내용을 잘못 취한 자세가 된다.
그리고 악취공견의 입장이 된다.
이는 생사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잘못 취해 현실에 임하는 입장이 된다.
생사고통을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먼저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을 중지해야 한다.
또 그런 업을 행하게 하는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체가 공하다는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망집을 제거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 내용을 잘 이해한다.
그런 사정으로 이들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본 취지를 전체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본래 일체가 차별없이 무아 무자성이고 공하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는 어차피 차별이 없다.
그리고 생사고통이란 굳이 받지 않아도 될 내용이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다.
또 어차피 차별이 없다.
그런 가운데 업은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끔 한다.
따라서 그런 업을 굳이 행할 필요도 없다.
또 반대로
어차피 차별없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낫다.
또 그런 가운데 다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는 것이 낫다.
따라서 그렇게 될 수 있는 수행을 어렵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원만히 잘 성취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그처럼 수행에 정진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과 모든 중생에게 좋고 좋은 상태를 잘 성취할 수 있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이런 상태를 성취해야 한다.
따라서 부처님은 다음을 제시하는데 본 취지가 있는 것이다.
중생들이 이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생사고통은 본래 받지 않아도 될 내용이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아나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방향으로 수행을 행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그처럼 제시하는 것이다.
일체가 체가 없다. 무아 무자성이다. 공하다.
악취공견과 부처님의 입장은 이런 내용을 인정한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게 된다.
- 일반적 입장과 수행의 필요성
그런데 이런 차이는 일반적 입장과는 더 극심하게 나타난다.
일반적 입장은 무아 무자성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일반적인 입장은
처음부터 현실 내용을 실체가 있는 참된 진짜라고 여긴다.
또 한편, 본 바탕인 실재도 그와 일치한다고 여긴다.
또는 실재는 그와 상응한 내용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꿈에서 황금이나 바다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은 그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답지 않고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 내용은 이런 꿈과 사정이 다르다고 잘못 여긴다.
=> 그래서 현실 내용은 대단히 실답고 참되다고 여긴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렇게 현실을 실답게 여긴다.
그런 가운데 매순간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업]를 행한다.
그리고 각 상황에서 달리 이렇게 하는 것외 어쩔 도리가 없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따라서 일체가 무아 무자성이고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그런 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와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취지가 이와 같다.
그런데 이런 취지를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잘못된 내용으로 여기는 것이다.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런 사정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실 내용은 생생하고 실답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체가 없어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그 본 바탕은 공하다. =>
그래서 현실내용은 마치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그래서 이런 배경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참된 체가 없음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실상이 공함을 살피게 된다.
>>>
● 논의 배경사정과 혼동문제
- 생사고통과 관련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하는 경우
『회쟁론』이 어떤 배경에서 논의된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체가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이 삶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논의의 초점을 찾게 된다.
- 지나치게 논의나 희론에 집착하며 임하는 경우
논의의 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언어 표현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시시비비에 임하게 되기도 쉽다.
원래 무아 무자성 공하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고 달리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 악취공견의 입장에서 대하는 경우
이 논의가 처음 논의된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논의 내용을 엉뚱하게 잘못 이해하고 악취공견을 취해 나아가기 쉽다.
일체가 체가 없고 무아 무자성이다.
그리고 그 본 바탕은 공하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통해
현실에서 자신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 행해도 된다고 제시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런 경우는 처음부터 엉뚱하게 논의를 살피는 것이 된다.
일체가 무아 무자성이고 공하다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 다시 악취공견과 같은 엉뚱한 결론을 붙잡고 임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부터 이 논의를 살필 필요성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과거 비바시부처님이 죄와 복이 모두 다 함께 차별없이 공하다고 설한다.
그래서 머무는 바가 없음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대하여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아무렇게 마음내키는 대로 행해도 된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와 같다.
이는 물론 부처님의 게송을 일 부분만 잘못 취한 것이다.
그래서 그 기본 취지에 대해 오해와 혼동을 일으켜서 발생한다.
모든 악을 행하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고
그 뜻을 스스로 청정케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는
모든 부처님이 공통으로 남기셨다는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까지 함께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내용의 종합적인 취지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부분의 내용만 취하면서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이들 논의나 경전 구절의 표현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의 취지를 종합적으로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각 내용도 그런 바탕에서 잘 살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일체가 체가 없다. 무아 무자성이다.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그 본 바탕인 실재가 공하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고통을 겪게 되는 상황에 처해도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평안하게 안인을 성취하여 극복하게 된다.
한편 현실은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할 필요는 없다.
또 그런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상태를 미연에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해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수행을 힘들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이런 수행도 아주 원만히 잘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경전에서 어차피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고 제시한다.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생사현실은 현실에서 매 순간 차별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이런 행위는 하면 안 된다고 제시한다.
또 이런 수행은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수행을 해야 할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그렇게 되는 배경사정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이들 논의를 살피는 의미가 있다.
○ 언어표현이 지시가능한 의미들
논의의 초점을 논의 배경이나 취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하나의 표현은 다양한 의미나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그 가운데 어떤 내용이 이 논의와 관련되는가를 엉뚱하게 대하고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하나의 주장은 무량한 문제로 나아가게 되기 쉽다.
그런 경우에는 그 논의가 정리되기 힘들게 된다.
이 사정을 처음에 제시하였다.
즉, 처음 위 문장에서 제시된 표현이 많다.
'만약'이란 표현도 있다.
'언어'란 표현도 있다.
'자체[體]'란 표현도 있다.
'없다'란 표현도 있다.
그런데 이 각 표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 각 경우마다 무량한 내용이 나열된다.
이것이 이 논의 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전을 하나 놓고 찾으면 이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삼으면 다 문제가 된다.
이는 공연히 복잡하게 따지며 시비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전도몽상을 일으켜서 엉뚱한 분별을 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를 집착하고 임하는 입장이 있다.
그런데 현재 이런 논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진행된 것이다.
이를 단순하게 접근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은 논리문제에 빠지게 된다.
이를 처음에 지적하였다.
장미꽃은 꽃이다.
꽃은 한글이고 글자 하나다.
그래서 장미꽃은 한글이고 글자 하나다.
이런 식으로 추론을 해간다고 하자.
이는 처음 꽃이란 단어를 언어차원을 가리키는 의미로 파악하고 잘못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엉뚱한 내용을 붙잡고 엉뚱한 논의를 진행한 경우다.
그 결론으로 다시 엉뚱한 내용을 도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어)rose 는 한국말이고 글자 하나다' .
이런 형태의 엉뚱한 결론을 내세우게 된다.
그것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집현상의 문제다.
또 이를 놓고 논의자들이 대부분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물론 그런 내용이 이 논의 주제라고 여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밤은 저녁을 의미하는 밤, 먹는 밤이 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이 저녁 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신만 그 밤이 먹는 밤으로 안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만 엉뚱한 내용을 논의하는 이상한 상태가 되기 쉽다.
각 부분의 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면 서로간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논의 상황에서 각 부분이 가리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논의 전체가 이런 성격으로 대단히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경우 정작 어떤 밤을 논의하는 것인가를 처음 잘 살펴야 한다.
아래 그림에 어떤 a와 관련해
그 정체나 그 유무가 논의될 수 있는 다양한 존재의 측면이 시루떡 얹혀진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img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무엇인가가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그 각 경우마다 이런 경우는 이렇고 저런 경우는 저렇다고 논의한다.
그리고 관련 내용을 IF- 라면 구조로 문제를 살피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문제는 위 다양한 측면 가운데 어느 측면의 어떤 내용을 논의하는가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
논의가 진행되는 각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마다, 다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단어가 가리키는 내용이 어떤 종류의 감각현실인가, 관념내용인가. 언어차원의 내용인가.
아니면 실재영역의 무엇을 가리킨 것인가. 실체의 유무를 따지는 내용인가.
이런 식으로 하나같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체'를 놓고 그 체란 표현이
도대체 이런 다양한 영역의 내용 가운데
어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가가 문제된다고 해보자.
그리고 갑이 이해하는 '체'의 의미와 을이 의해하는 '체'의 의미가 다르다고 하자.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용수 보살이나 그 상대방이 이해하는 '체'의 의미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예를 들어 갑이 이해하는 '체'의 의미가 이들 내용과 같다고 볼 근거는 무엇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한편, 어떤 이가 이 표현은 위 여러 내용 가운데 어떤 의미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런데 글자 모양이나 형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볼 근거는 무엇인가.
사전에 그렇게 적혀 있는 것을 그 근거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그 근거를 세울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예를 들어 '체'란 단어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 논의는 그런 '체'란 글자가 한국어이다 또는 아니다를 논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정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가 그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그것을 어떻게 배척할 것인가.
글자 '체'만 놓고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글자는 그런 내용은 제외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여기서 당장 일체를 문제삼는다.
또 처음 언어를 문제삼고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은 공연히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현실 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들 문제를 잘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논의에 대해 살펴나가는 것이 대단히 곤란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여기서 해결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또 다른 부분으로 넘어간다고 하자.
또는 그와 관련된 또 다른 보조 자료로 넘어간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또 같은 문제가 계속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용수보살님을 논의 현장에 대동해 나타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다시 그가 용수보살임을 확인할 근거는 또 무엇인가가 다시 문제된다.
그런 입장에서 각 단어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들 문제가 모두 관련된다.
'만약' '언어'에 '자체'가 '없다' '있다' 이런 단어도 다 사정이 그와 같다.
그래서 이 각 단어마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매 경우 5 개 정도의 경우수를 나열해간다고 하자.
그러면 벌써 이론상 5*5*5*5 의 각기 다른 if- 라면 구조로 된 내용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if-라면의 구조로 된 내용을 제시한 추상적 주체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여러 주장 하나하나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놓고 문제를 살펴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논의의 초점을 찾기도 힘들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 과연 원래 문제된 내용인가를 살피는 것조차 힘들어 진다.
어떤 이가 이 가운데 자신이 이해하는 의미를 정하고
논의 초점을 추상적으로 잡아 살펴간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논의가 진행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런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오래된 외국 서적과 관련된 논의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와 관련된 다양한 판본을 대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논의 주제와 관련해 많은 단어 구절 문장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각 단어나 구절 문장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의미 해석이나 표현 하나하나에 위 경우처럼 새로운 주장과 해석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각기 수십의 새로운 주장자가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논의로 시시비비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마치 다음 상황과 같다.
어떤 가게에서 주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주체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소송이 진행된다.
또 그 물건값은 또 얼마인가에 대해 소송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 대금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지불해야 적절한가에 소송이 진행된다.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제각각 문제되는 쟁점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운다.
그런 가운데 시시비비와 논의를 진행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구체적 논의상황에서는 이런 각 입장을 일일히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해 가야 한다.
그런데 정작 어떤 한 문제에서 물건의 주인이라고 나서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하자.
또 매 구절 매 문장마다 서로 다른 주장이 복잡하게 제시되어 얽힌다고 하자.
그러면 예를 들어 법관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 판단을 진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또 소송의 한 당사자는 어떻게 이 판단을 진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논의에서 제시되는 각 표현이 가리키는 의미를 잘 파악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먼저 전체 배경 사정과 취지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논의가 제시된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논의 초점이나 취지를 처음부터 잘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미리 어느 정도 제한을 두고 살펴나가야 한다.
그리고 논의과정에서 사용된 구체적 표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다.
또 한편, 이렇게 배경사정과 맥락을 통해 의미를 찾는다고 하자.
그렇다고 이 혼동 문제가 모두 말끔하게 진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배경사정과 관련된 내용이 또 다른 시시비비의 문제를 일으키게도 된다.
그래서 IF-라면 구조로 제시되는 논의는 그 자체로도 상당히 복잡하다.
또 각 단어가 가리키는 다양한 내용으로 인해서도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나 또 이와 같은 배경 사정까지 함께 이해해야 하기에 복잡하다.
사정이 위와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다양한 내용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여기서 『회쟁론』을 살핀다.
그런데 이 배경사정을 놓고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논의 초점에 대해 심정적으로 막연하게 파악할 수는 있다.
즉, 다양한 측면 가운데 어느 부분을 문제삼는가를 대강 살필 수 있다.
우선 『회쟁론』에 대한 불교사전의 설명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회쟁론[廻諍論] 【범】Vigrahavyāvartanī. 1권. K-630, T-1631.
동위(東魏)시대에 비목지선(毘目智仙, Vimokṣaprajñāṛṣi)과
구담 반야유지(瞿曇般若流支, Gautama Prajñāruci)가
541년에 금화사(金華寺)에서 번역하였다.
공설(空說)에 대한 외도의 비판에 대해
일체법이 공이고 무체(無體), 즉 무자성임을 논한 용수의 저술이다. [운허_동국역경원사전]
다음 논의는 다음을 논의한다.
실체가 없다. 실재가 공하다.
이는 다음 취지에서 내용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현실내용을 실답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에 집착하고 임한다.
이런 망집현상을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취지에서 이들 내용을 제시하고 살핀다.
그것이 이들 논의가 행해지는 배경사정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정리가 잘 안되고 혼동이 심하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혼자 곰곰히 생각하는 연구방법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원효대사님이 해골에 담긴 물을 한잔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골물의 정체가 무언가를 놓고 살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들 논의를 구체적으로 살펴가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여기서 살피는 각 표현이 어떤 영역의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놓고 잘 판단해야 한다.
○ 입장 조화를 위한 방안 [취사장단, 사단장]
현실의 시시비비 논의가 진행된다고 하자.
그래서 각기 다른 입장의 주장이 제시된다고 하자.
이 경우 처음 각 입장마다 갖는다고 보는 장단점의 측면을 살필 수 있다.
그래서 장점만 뽑아 선택하며 살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이로 인해 시시비비문제가 또 다시 일어나게 된다.
왜 그것이 장점인가. 왜 이것은 단점인가.
왜 이것은 선택하고 왜 이것을 버리는가.
이런 식으로 시시비비가 증폭된다.
한편, 그런 사정으로 이제 그런 내용 역시 다 버린다고 하자.
그리고 망집분별을 완전히 제거해 임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입장은 조금 차이가 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해 따지려는 입장이 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시시비비 문제가 더 시끄럽게 증폭되게 되는 사정이 있다.
황희정승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처음 여인 둘이 다툼을 벌였다.
그래서 황희정승이 각 입장마다 다 그 입장이 옳다고 긍정했다.
그래서 그 문제가 진정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황희정승 부인이 다시 제 2 차 시시비비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다시 그런 주장도 옳다고 했다는 사례가 있다.
그런 방식으로 그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한편, 황희정승과 소 이야기도 있다.
논에서 누런 소와 검은 소가 일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누가 더 일을 잘하는가가 궁금하다.
그래서 농부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때 농부는 답을 바로 안하고 황희정승에게 다가와 귀속말로 답을 했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라고 궁금해 물었다.
그러자 농부가 소들이 들으면 기분나빠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부작용이 더 증폭되고 커진다.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시비비를 살피는 상황에서는 이런 문제가 늘 나타난다.
각기 입장이 달라서 시시비비가 일어난다.
이 경우 각 입장마다 이런 저런 사유로 문제가 있고 잘못이라고 문제삼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각 입장이 다 이런 저런 사유로 옳다고 볼 수 있다고 자세를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앞보다는 조금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만으로 현실의 다툼 문제가 잘 해결되겠는가.
그렇게만 단순히 보기 힘들다.
각기 입장이 달라 주장을 달리 내세운다.
그리고 잘못된 견해를 고집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증폭시켜 자신도 받는다.
그리고 다른 중생도 받게 한다.
그런 사례가 현실에 대단히 많다.
그리고 이것이
용수보살님이 논의를 통해 해결하려는 취지이기도 하다.
이런 시시비비의 현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가정적 항변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엉터리 망집을 붙들고 고집하는 입장을 논파시킨다. [파사]
그리고 이를 통해 그런 망집이 제거된 상태를 얻어내게 한다. [현정]
그런데 매 논의 주제마다 각기 다른 어려움이 상당히 있다.
그런 경우 무슨 좋은 해결 방안이 있는가.
이것이 또 이런 논의의 문제점이다.
>>>
○ 망상분별에 대한 해결방안 3가지
망상분별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
크게 다음 방안들을 생각할 수 있다.
1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내용을 직접 놓고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직접 이해한다.
2 망상분별 내용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전제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살핀다.
이처럼 가정적[if] 비판 논의를 행한다.
그래서 망상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한다.
3 이들 노력이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래서 다시 망상분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도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한다.
그리고 수행에 임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난다.
이를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 망상분별을 받아들인 바탕에서 결론만 같게 취하는 방안
우선 망집을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첫번째 방안이 가장 원칙적이다.
원칙적인 입장에서는 다음을 제시한다.
전도망상분별이 잘못임을 올바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의 자세로 전환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온다.
그러나 그런 방안으로 망상분별을 제거하기 어려운 현실 사정이 있다.
그래서 수행으로 전환해나오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2나 3 방안에 다시 의존하게 된다.
2 번째 가정적 항변 방식은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망집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망집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망집을 받아들이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살핀다.
이를 통해 그런 망집이 잘못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망집을 제거해내려는 방안이다.
3 번째 방안은 다음이다.
망집이 엉터리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받게 될 생사고통이 문제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수행방안을 택한다.
이는 일단 망집 내용을 전제로 받아들인다.
그렇더라도 그런 상태에서 일반적으로 취하게끔 되는 반응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대신 수행방안을 그 예방방안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이는 일종의 가정적 비판방식의 응용이다.
3처럼 전도망상분별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도 수행 방안을 제시하는 사정은 다음이다.
현실에서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받는 고통은 대단히 다양하다.
매일 보고되는 사건 사고 하나하나를 놓고 살펴보자.
그리고 그런 상황에 직접 처했다고 가정해보자.
현실에서 살아가는 이상 누구나 그런 생사고통을 피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이런 사정이 곧 역설적으로 다음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우선 현실에 대해 갖는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에 임해 생사고통을 예방하고 벗어나야 한다.
현실 내용이 실답다고 하자.
현실에서 겪는 고통도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으로 전환해 현실에 임해야 한다.
환자가 수술시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차라리 의식을 잃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또는 마취제로 고통을 받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겪는 고통이 대단히 실답게 여겨진다.
그렇다해도 결국 무상하고 고통스런 것임을 이해한다.
그리고 현실은 실답지 않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집착을 제거하려 노력한다.
이런 방안이 낫다.
한편 수행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고통을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받게 된다.
이를 피하고 예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과상 수행이 필요하다.
이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각 상황마다 망집에 바탕해 반응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인과상 그 결과로 받는 고통이 있다.
이런 내용을 미리 관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미리 끊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수행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는 결과로 받을 고통에 비해 훨씬 적다.
이런 사정을 살펴야 한다.
원칙적인 입장을 놓고 살핀다고 하자.
그런 현실을 실답게 여기는 망상분별 자체가 잘못이다.
다만 이런 원칙만으로 현실에서 겪는 고통을 곧바로 극복해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예방방안으로 수행을 취하는 경우다.
그리고 일단 생사고통을 벗어난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망상분별 자체가 잘못임을 깨닫고 이해해간다.
이를 이처럼 단계적으로 꾀하게 된다.
참고 : https://buddhism007.tistory.com/3821#8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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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집과 궤변의 사례
용수보살의 『중론송』과 같은 논서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대부분
그 말이 무슨 내용인가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오히려 용수보살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기 쉽다.
억지주장을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 들어 맞지 않는 궤변처럼 여겨진다.
이는 경전 내용도 사정이 비슷하다.
기본 경전이나 대승 경전이나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많이 제시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 전반이
현실에 없는 엉터리내용을 지어내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반응 자체가
현실에서 전도망상을 일으킨 상태다.
그래서 이들 양 입장에 이런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 만큼 이 논의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영희가 저 거리에서 있다가
자신을 보고 반갑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런데 이 상황에 그런 영희나 자신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오고감도 얻을 수 없다.
이런 내용이 그런 예의 하나다.
또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과학자가 한 때는 과거에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여겼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 같다고 발표를 했다.
그런데 또 잘 살펴보니 태양도 지구와 함께 열심히 돈다.
그리고 우주 공간안에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라고 최근에는 보고한다.
그런데 이는 모두 사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보는 주체가 전도된 망상을 일으켜서 그렇게 여기며 대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경전에도 실려있다.
바람이 불어서 깃발이 흔들린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이해한다.
그런데 어떤 한 분이 이것은 바람이 부는 것인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내용을 덧붙여 답했다고 한다.
마음은 본래 그런 흔들림이 있거나 또는 정지해 머묾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망상분별이 마음에 들어와 그렇게 헤아리게 된다고 제시한다.
이런 내용들이 일반입장과 경전 입장의 극단적인 차이의 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갖는 견해 거의 대부분이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한것이다.
그래서 전도몽상과 관련된 사례는 무량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왼손을 가만히 두고 오른 손을 세게 움직혀 부딪혀보자.
그러자 손뼉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손뼉 소리는 없다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소리의 생멸이 있다고 대부분 여긴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던 왼손은 책임이 없다.
그 상황에서 세게 부딪힌 오른손이 책임이 있다.
그런데 오른손이 왼손을 부딪힐 때 소리가 났다.
따라서 원래 오른 손에 그 소리가 들어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는 다음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여하튼 그 상황에 왼손이나 오른 손이 없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런 소리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여하튼 이 두 손이 소리를 만들어낸 원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런 현실을 놓고
거기에는 그런 소리 자체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그 소리의 생멸[나타나고 사라짐] 자체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불생불멸]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입장이 옳은가에 대해 논의가 된다고 하자.
그런데 현실에서 거의 대부분은 앞 주장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뒤의 입장은 말이 되지 않는 엉터리 주장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와 반대다.
그리고 그런 상식적인 견해가 망집 상태임을 이해시키려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가정적비판방식을 통해 상대의 견해의 문제점을 살피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망집을 일으켜 임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런 상식적 입장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하나하나 이해시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일반적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래서 더 답답하게 여길 수 있다.
원래 수행자는 이들 내용 전체에 대해서 분별과 집착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망집을 일으킨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용수보살님과 같은 논사들이 『회쟁론』이나 『중론송』등에서
상대의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는가를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가정적 비판 방식을 사용해 논의에 임하는 사정이 있다.
먼저 이런 가정적 항변 방식의 논의는
어떤 배경사정과 어떤 취지에서 제시되는가.
또 어떤 성격을 갖고 제시되는가.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일으키기 쉬운 오해도 함께 살피기로 한다.
이런 내용을 기본적으로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경전이나 논서를 대할 때도 어려움이 없이 내용을 잘 이해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이해를 통해 망집을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상태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 있고 없음의 논의 성격
==> 참고
[ 기존 유무 논의와 중복을 피해 상당부분 링크로 처리할 필요성 ]
○ 다양한 유무 판단과 회쟁론에서의 유무판단
현실 상황이란, 눈을 떠서 1 과 같은 모습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자신이라고 여기거나 영희나 철수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 상황을 대하고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논의에서
그런 영희나 자신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그 생멸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오고감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앞 내용들 가운데에서 무엇이 어떻다라고 제시하는 것인가를 찾아보자.
일단 위 부분에서 어떤 부분에 대해 제시한 것인가를 숫자로 찾아보자.
○ 언어영역의 존부문제 -언어영역의 언어표현 존부 논의
현실에 영희를 얻을 수 없고 실체가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 문제는 우선 사전에서 영희를 찾으면 단어가 나오는가의 문제인가.
이 경우 '영희'란 단어는 사람 이름이기에 국어사전에 안 나올 수도 있다.
경전에서 자주 문제삼는 주제로 현실에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이런 이런 단어를 사전에서 볼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 관념의 존부 문제
자신이 방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건망증 환자다.
그래서 어느 순간 누구를 찾는지 자체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분명 누군가를 찾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그 생각은 과연 지금 어딘가에 있는가 없는가.
이런 문제인가도 생각해보자.
무언가 생각하다가 생각이 안날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도 문제될 수 있다.
이 경우 그 생각이 안 떠오르던 시점이 있다.
이 경우 그 생각은 어디에 숨어 있었다가 나타나는가도 의미있는 주제는 된다.
그런데 지금 생멸이 있고 없음의 논의는 이런 의미로 논의한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또 참된 나나 어떤 것의 실체가 있고 없음의 논의도 사정이 같다.
만일 그런 셩격의 논의라고 하자.
현실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을 생각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런 관념 측면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은 그렇게 있다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황금독수리'가 세상에 있을까를 문제삼아 논의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논의가 위와 같은 성격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세상 이곳 저곳을 살필 필요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문제삼을 때 그런 관념 내용자체는 이미 그렇게 관념 영역에 있다고 해야 한다.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몽타쥬 형태로 어떤 내용에 대한 특징과 성품을 나열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몽타쥬만은 그 영역에 그렇게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런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이는 심심해서 장난삼아 하는 희론이라고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논의는 논의할 의미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논의가 행해질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는 의외로 이런 성격의 논의로 혼동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이런 성격의 논의도 기본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진짜 참된 어떤 실체(본체)가 있는가.
참된 나나 그런 나 자체의 본성이 있는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바로 이런 성격의 논의를 하는 것이다.
또는 그런 것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삼는 내용과 관련된 관념속 몽타쥬가 있다.
이런 내용이 관념영역에 잘 그려져 일으켜지는가 없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그런 성격의 논의인가부터 잘 구분해야 한다.
현실에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이는 경전에서 자주 문제삼는 주제다.
그런데 이 경우 생멸이란 관념 자체를 어떤 이가 일으킨다 못 일으킨다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념이 관념영역에서 얻어지는가 여부도 중요하다.
논의과정에서 이런 성격의 논의와 혼동을 대단히 많이 일으킨다.
이는 수학문제와 같다.
수학문제에서 제곱해서 -4 가 되는 수가 무엇인가라고 문제가 제출된다고 하자.
이 경우 허수 개념을 동원하게 된다. 그러면 답이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제곱해서 2 가 되는 정수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출된다고 하자.
그런 정수는 '없다'고 답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도 분명 있고 없음의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격의 논의를 하다가
불교논서를 대한다고 하자.
불교 논서에서 제시하는 논의도 이런 성격의 논의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하나같이 희론의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수행에서는 현실의 한 주체가 생사현실에 묶여 고통을 받을 것인가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주제는 주된 초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단히 많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런 차원에서 추론체계도 같이 문제된다.
○ 일반적인 유무판단- 관념에 대응하는 감각현실 유무문제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이 경우 평소 일정부분을 영희라고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영희와 같이 건물안에 걸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영희가 안 보인다.
그래서 영희가 어디에 이 건물 안에 있는가없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유무를 살피는 문제는 성격이 앞과 달라진다.
이 경우는 영희를 방금전까지 보았다.
또 자신이 찾는 영희에 대한 몽타쥬도 관념형태로 떠오른다.
예를 들어 안경을 쓰고 있고 옷은 노란 옷을 입고 있다.
이런 형태로 영희에 대한 몽타주에 해당하는 관념내용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다음을 문제삼는다.
그런 몽타쥬는 관념영역에 있다.
그런데 그 몽타쥬에 가리킬만한 부분을 감각현실 영역에서 못 얻고 있다.
그래서 영희가 지금 어디있는가를 모르기에 찾고 있다.
그래서 과연 건물 안에서 영희가 있는가를 놓고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것이다.
일반 현실에서 전도몽상 상태에서 무엇이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대부분 이런 측면에서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것이다.
이 경우 관념내용은 찾는 것에 대한 몽타쥬에 해당한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안에 이미 있다.
다만 그에 일치하거나 상응한 감각현실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문제삼는 것이다.
현실에서 문제될 수 있는 논의를 이처럼 우선 3 개 정도만 나열했다.
현실에 '영희가 있다'거나 '없다'라는 문장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는 문장만으로 확정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 논의가 과연 이런 측면의 논의인가부터 확인해보기로 하자.
이처럼 앞에 나열한 내용도 현실에서 다 문제된다.
그리고 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현실에서 생멸이나 오고감을 얻을 수 없음에 대해 논의한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이런 성격의 논의인가부터 살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다음을 검토해보자.
감각하는 가운데 무언가 감각현실을 얻지 못하다가 얻게 된다.
그런데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현실에서 얻지 못함을 문제삼는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났다.
그런데 어제까지 없던 꽃이 화분에 피어 있다.
그리고 그가 이를 놓고 꽃이 없다가 생겨났다고 여기게 된다.
이 경우 어떤 이는 감각기관이 망가져서 그런 내용을 노력해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생멸함이 없음은 이런 경우를 제시하는 것인가.
이는 이미 살폈다.
그런데 가정적 항변을 살피는 과정에서 다시 기본적으로 살피는 것이 좋다.
물론 이들 앞에 제시한 내용들은 본 논의의 초점은 아니다.
이는 대부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논의가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문제삼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
다음 주제는 불교 논서에서는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상식적이고, 현실에서 자주 문제삼는 내용이다.
이를 기본적으로 살피기로 한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같이 들어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렇게 임하는 상황 자체가 전도몽상현상과 대단히 관계가 깊다.
그리고 논서 내용을 이해할 때 이와 관련해 많이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현실에서 무엇이 있고 없음을 따진다고 하자.
그런데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어낼 내용은 대부분 앞에 나열한 내용에 불과하다.
그런데 논서 등에서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들이 또 아니다.
따라서 이들 내용을 잘 살펴야 한다.
○ 관념에 대응하는 감각현실 유무 판단과 망집현상
일반적인 유무 판단시 논의를 잘 살펴야 한다.
어떤 이가 '영희'를 찾는다.
건물에서 영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건물에는 영희가 없다고 선언한다고 하자.
이는 어떤 성격의 주장인가.
상황을 분석하면 이는 다음 의미다.
어떤 이가 그 상황에 영희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영희를 볼 수 있는 상태다.
즉 건물에 불도 환히 비추고 있다.
자신의 눈도 다른 사물들은 잘 볼 수 있는 상태다.
그리고 지금 눈을 뜨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정작 영희는 감각현실로 얻어지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다. )
이 내용을 가지고 '지금 영희는 여기에 없다'고 선언하게 된다.
이 말은 다음 의미는 아니다.
눈을 감아서 영희가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는 불이 없고 깜깜해서 영희가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의미가 아니다.
더 나아가 세계 어디에도 영희는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또는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순간에도 영희는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반대로 영희가 이 방에 있다고 선언한다고 하자.
이는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영희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있고 없음을 따진다고 하자.
이 경우 대부분 이런 차원에서 이런 측면의 내용을 문제삼는다.
현실에서 각 중생이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 근본 원인으로 전도망상증상이 지적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그런 내용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본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손이나 발로 여겨지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을 놓고 평소 '자신' 또는 '나'라고 생각한다.
이 방에 지금 내가 존재한다
이런 내용은 단순히 앞 내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내용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나라고 보고 현실 매 순간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가장 기본적인 전도망상 증상이다.
물론 전도망상 증상이 이 내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전도망상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이런 부분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전도망상 내용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는 별도로 살필 문제다.
다만 간단히 그 사정을 제시하기로 한다.
자신의 관념영역에서 그러그러한 사정으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나'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관념 몽타쥬로서 '나'라는 관념이 있다.
그런데 앞에서 눈을 뜨고 보는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부분은 많은 측면에서 그 관념에 적절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경전에서 나의 있고 없음을 따지는 경우라고 하자.
이 경우 위와 같은 내용은 주된 초점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전도몽상 분별이 이 논의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따라서 이 내용도 함께 잘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의 정체를 확인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것이 무엇인가 아닌가.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 등등을 따질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도 앞에서 살핀 세번째 성격의 논의는 대단히 혼동을 많이 일으키게 한다.
생멸을 얻을 수 없고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이 경우 현실에서 대부분 이 논의가 궤변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외면한다.
그리고 그대로 생사현실에 묶인다.
그 사정은 바로 위 사정 때문이다.
즉, 한 주체가 감각현실도 얻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생멸한다거나 오고간다고 여기게 된다.
즉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생멸한다 오고간다라고 생각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왜 이에 대해 생멸과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라고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엉터리 궤변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 빠진다.
그래서 이 판단에는 대단히 중요한 2 가지 망상이 다 관계된다.
전도망상 증상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일반적인 입장에서 관념과 대응한 감각현실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
이 경우 기본적으로 망상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그런 판단이나 내용이 실다운가를 문제삼는다.
이런 경우에도 이 판단을 바탕으로 망상현상을 증폭해 일으키게 된다.
이 역시 문제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판단을 행한다.
그리고 이 판단이 망상임을 이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
예를 들어 눈으로 물체가 잘 보임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여기 영희가 보인다. 그래서 영희가 있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왜 이것이 망상인가.
그리고 평소 자신이 어느 곳에 있다.
그런데 저쪽으로 가서 과일을 하나 먹고 오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자.
이 때 평소 자신의 손과 발로 보던 부분이 그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이처럼 이동해 과일을 집어 잘 먹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이 집어들은 과일을 과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왜 망상인가.
그리고 또 한편
그 과일은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외부에 있는 세계의 한 부분으로 잘못 여긴다.
한편, 이에 손을 댄다고 하자. 그러면 촉감을 얻는다.
또 눈으로 과일을 대한다고 하자. 시각을 얻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게 된다.
자신의 손이나 눈이 대하는 자신 외부에 있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한편. 이는 자신의 정신이나, 주관과는 구분되는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기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대부분 위와 같이 판단한다.
그런데 이들 판단을 모두 전도몽상 분별이라고 하게 되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논서에서 다루는 가정적 비판 논의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논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도리가 없게 된다.
물론 앞에 나열한 기본적 논의도 현실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 논의부터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하자.
그래서 여기서 문제되는 각 내용을 놓고 서로 혼동을 일으키고 대한다고 하자.
그리고 전도망상의 바탕에서 앞 판단과 내용이 뒤섞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실재와 실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이들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무엇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또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본체[실체]는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그러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들 주제에 대해 가정적 비판 방식으로 논의한다고 하자.
이 경우 논의과정에서 그 논의의 근거나 판단 재료로 삼아 제시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문제삼는 그런 성격 내용이 된다.
이 논의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본 주제는 그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입증하고자 하려고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결국 현실에서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을 재료로 삼아 제출할 수 밖에 없다.
각 주체가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이는 모두 그런 성격의 내용뿐이다.
따라서 이 부분이 이 두 논의에서 다루는 각 측면과 서로 섞인다.
그리고 뒤범벅이 된다.
그런 가운데 온갖 혼동을 다 일으키게 된다.
『금강경』에는 자주 제시되는 문장 형태에 즉비고명 이란 형식이 있다.
이는 A 는 곧 실로 A 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A 라고 부처님은 칭한다.
이런 형태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문장을 대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 문장의 의미가 무언가를 찾는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역시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그 사정은 결국 앞에서 본 사정과 같다.
위 문장구조에서 우선 A 에 다양한 단어를 넣을 수 있다.
아라한이나 상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리고 이 A 에 현실에서 문제삼은 영희를 넣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에서 영희를 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방에는 영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영희가 바로 자신 뒤에 서 있음을 보게 된다. => 영희가 방에 있다.
이렇게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이는 경전이나 논서에서 다루는 내용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이는 기초적으로 정리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야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일으키는 전도몽상 증상을 잘 정리해야 한다.
이것이 정리되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실재나 실체의 존부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정적 비판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처음 부분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논의가 무엇을 살피는 논의인가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
>>>
앞에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논의들을 살폈다.
『회쟁론』이나 기타 다른 논서 경전에서 여러 주제를 살핀다.
예를 들어 자신이나 생멸 현상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이런 논의는 우선 다음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가 감각현실을 일체 얻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나서 그런 생각을 전혀 일으키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내용을 문제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거나, 아님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상태에서 어떤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내용과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무엇을 문제로 삼는가를 앞에서 기본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다양한 논의 차원을 살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경전과 논서에서 살피는 논의가 어떤 성격을 문제삼는가를 잘 파익해야 한다.
언어표현만 놓고 살피면 이 가운데 어떤 내용을 논의하는가를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 경우 이들 주제가 논의되는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논의의 초점을 잘 맟추고 펴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 꿈의 비유를 들기로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꿈이 실답지 않다거나 실답다거나 논의를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어떤 이가 자면서 어떤 꿈을 꾸지 않았다거나 꾸었다는 것등을 놓고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꿈이 실답지 않다고 논의한다고 하자.
이 경우 꿈을 놓고 무엇을 문제삼는가부터 파악해야 한다.
경전이나 논서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가정적 비판 방식의 논의를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 비유를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즉, 꿈은 그 상태에서 그처럼 생생하게 꾸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이 문제라고 제시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태에서 그렇게 눈을 떠 그런 감각현실을 얻었다는 사실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상태에서 어떤 부분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아니라고 하자.
이 경우 무엇이 문제인가를 앞의 꿈의 비유를 통해서 잘 파악해야 한다. .
그리고 그런 내용이 한 주체의 생사고통 현상과 밀접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이 논의의 시작점이 된다.
>>>>
○ 실재영역과 각 영역에 대한 기호
자신이 눈을 뜨면 무언가를 보게 된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사라지고 보지 못하게 된다.
이 때 자신이 눈을 감아서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하자.
이 경우 방금 직전에 본 내용들은 아주 없어지고 사라지게 되는가.
아니면 자신이 눈을 뜨거나 감거나 관계없이
그런 모습을 보게 한 무언가는 이와 관계없이 그대로 실재한다고 할 것인가.
이것이 처음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실재라고 표현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림에서처럼 일단 #실재로 기호를 달리 붙여 표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살피고 논의하게 된다.
언어표현에서 각 차원의 내용을 혼동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실재라는 표현에 #기호를 붙인다.
이는 혼동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컴퓨터 자판상의 !@#$% 과 같은 기호를 덧붙여서 서로 구분하기로 한다.
여기서 #실재는 %실재처럼 한글 단어로서 '실재'라는 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언가의 정체를 논의할 때 그런 실재의 측면에서의 무언가를 가리킴을 나타낸다.
눈을 떠 얻은 감각현실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가를 판단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감각현실이 이런 #실재영역에서도 그대로 얻어지는가를 문제삼는다.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내용이 침대에서도 얻어지는가를 문제삼는다.
이런 경우와 성격이 같다.
그리고 이것이 가정적 비판을 진행할 때 중요한 부분이 된다.
○ 참된 실체의 존부 문제
그런데 문제는 또 그것만 아니다.
처음 꿈이 아무리 생생해도
그 꿈은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것이 아님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리고 꿈을 실답지 않다고 보게 하는 특성을 여러가지 나열했다.
그래서 결국 그런 요소때문에 꿈을 실답지 않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무언가가 꿈처럼 실답지 않게 볼 성품은 갖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로 실답게 볼 성품을 갖추고 있다고 하자.
이는 꿈과 다른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과연 어디인가에 있는가가 다시 문제된다.
○ 집착과 업을 통한 실답지 않은 고통을 받는 과정
현실에서 한 주체가 100 년간 눈을 갖고 무언가를 생생하게 대한다고 하자.
이런 현실 사정을 놓고 문제되는 사정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떤 것이 그런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고 하자.
이 경우 그것은 진짜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그런 조건 그런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에 집착을 갖고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는 그럴듯 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자세로 인해 나머지 상태에서는 엉망이 된다.
그리고 엉망이 된다.
이런 부분이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의 상황이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다.
이는 현실에서 바로 그런 자세로 업을 행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
또 한편 자신의 눈이 다른 생명과 달라서 그 내용을 직접 보지 못한다.
또 의존하는 감관도 역시 그처럼 달라서 그 내용을 직접 지금 당장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갖춰진 3 악도의 각 세계에 침한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극심한 고통을 그런 사정을 바탕으로 겪는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문제가 된다.
현실의 일반 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직접 당장 보거나 얻지 못한다.
그렇기에 과연 그럴까 의문을 갖는다.
여하튼 가정적 비판 논의는 이 내용까지 포함한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또 욕계내 3 악도에서 겪는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본 논의주제와 깊게 관련된다.
그래서 이를 살피게 된다.
그래서 논서나 경전에서는
그 #실재가 무언가를 주로 문제삼는다.
그리고 '참된 $진짜'(실체, 본체)가 있는가를 주로 문제삼는다.
즉 문제삼는 어느 영역에서든지 그런 내용을 얻게 하는 실체가 있는가를 문제삼는다.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행하는 @관념분별이 있다.
이들 정체를 놓고 이를 생사고통과 관련시켜 살핀다.
이런 경우 %언어표현을 통해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그 언어표현이 가리킬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이 현실에서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 이들 내용을 초점으로 앞과 같은 관점에서 주로 살피게 된다.
>>>
○ 실재의 의미
실재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주관과 관계없이 그대로 실재하는 내용을 문제삼는다.
즉 자신이 눈을 뜨거나 감거나 관계없이 실재하는 내용이 무언가를 문제삼는다.
이 경우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과연 실다운 것인가를 살피는 취지다.
그런데 한 주체는 눈을 떠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관념내용을 일으킨다.
이 경우 앞과 같은 내용을 실재라고 언어로 표현해 가리킨다.
그러나 그 내용을 직접 얻어낼 도리는 없다.
그렇다고 그런 #실재영역은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단정할 도리도 없다.
사정이 그렇기에 2분법상의 분별을 행하며 단정할 도리도 없다.
즉, 그 #실재는 현실내용과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이다. 아니다. 깨끗하다 더럽다. 좋다 나쁘다 등등의 등으로 분별을 행하기 곤란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논의과정에서는 그런 #실재를 문제삼게 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 '공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내게 된다.
결국 #실재는 현실에서 파악하는 어떤 a 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공하다는 표현은 어떤 것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전혀 '없음'을 나타내는 것도 아닌 것이다.
직접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런 #실재를 자꾸 논의한다.
이는 처음 꿈을 실답지 않음을 살피기 위해 침대가 있는 현실을 살피는 사정과 같다.
즉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이 실다운가를 살핀다고 하자.
이를 위해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문제삼고 살피는 것이다.
○ 실재의 공과 실체의 없음의 관계
#실재가 무엇인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 경우 어디에서인가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실재를 공하다고 표현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내용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공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정이 그렇지 않음도 함께 나타낸다.
예를 들어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러나 꿈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이다.
그리고 또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꿈과는 달리, 참된 진짜의 실체가 있는가를 찾게 된다.
즉,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도 늘 영원불변한 내용을 을 몽타쥬로 그려 놓게 된다.
그래서 그런 실체가 정말 있다고 하자.
그러면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을 때는 이를 제시해야 한다.
만일 #실재가 무언가라고 물을 때 제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앞에서 몽타쥬로 찾는 그런 진짜의 실체도 역시 아니라고 해야 한다.
즉, #실재가 공하다는 것은
그렇게 찾는 진짜 실체$는 #실재영역에 없음도 함께 포함해 나타낸다.
물론 이 두 문제는 서로 다른 측면이다.
즉 먼저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는 측면이 있다.
한편, 현실에서 각 내용을 얻게 하는 뼈대로서 참된 진짜의 $본체(실체)가 있는가를 문제삼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실재가 공함을 제시한다고 하자.
이는 우선 그런 #실재는 그런 본체(실체)가 그 영역에 없음도 나타낸다. [ 무아 , 무자성, 승의무자성, 인무아, 법무아 ]
그런데 이는 실재#에 전혀 아무 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얻을 수 없다.
그래서 2분법상의 분별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도 함께 나타낸다.
이는 꿈이 실답지 않고 실체가 아니라고 하는 경우와 사정이 같다.
꿈이 그런 실다운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고 생생하게 꾼 꿈 내용을 전혀 그 영역에서 얻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은 또 아니다.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이 내용은 실체가 없고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논서나 경전등에서 어떤 내용이 실다운 내용인가를 살핀다.
예를 들어 『회쟁론』이나 『중론송』과 같은 경우다.
이 경우 가정적 비판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이 경우 이런 입장에서 #실재나 실체의 유무를 주로 살피게 된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논의를 살펴야 한다.
>>>
○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구별
자신이 어떤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 경우 그것이 실다운가 아닌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 처음에 제시한 그 방안을 사용하면 된다.
자신이 감각현실로 여기는 그것을 일단 붙잡아 두기로 하자.
현실적으로 붙잡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노력을 해보자.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이 문제된다고 하자.
그 경우 눈을 계속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눈을 감으면 사라졌다가 눈을 뜨면 그 순간 얻게되는 내용들이 있다.
그것이 무언가를 스스로 잘 포착해서 붙잡아 보려고 노력해본다.
그런데 관념분별 내용은 이와는 다르다.
즉 눈을 감거나 뜨거나 관계없이 계속 자신의 마음에서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무언가를 스스로 잘 파악해 본다.
문제는 이 내용을 직접 어떤 책이나 글로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논의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각 내용을 직접 제시하며 논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위처럼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언어로 표현하면 그 순간부터 곧바로 앞처럼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들은 현실에서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이다.
그래서 큰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 논의과정에서는 그 혼동이 대단히 극심하다.
즉, 논의과정에서 각 언어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가리키는가와 관련해
대단히 혼동을 많이 일으키게 된다.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 어떤 부분을 손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사실 이 부분에도 이런 혼동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경전에서 전도몽상 증상이라고 제시하는 내용도 바로 이 부분이다.
따라서 이 혼동을 잘 정리해야 한다.
>>>
Lab value 불기2561/09/22/금/16:54
◆vbtw6786
◈Lab value 불기256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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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잡담 ♥
오늘도 또 논서가 뽑혔다.
오늘은 회쟁론을 살핀다.
그런 가운데 논의에서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살폈다.
이를 위해 글이 길어졌다.
다만, 너무 많이 살피면 복잡하다.
이후 관련되는 부분을 살펴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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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알라스카를 구글관광사를 통해 방문했다.
그 지역 명칭이 '알았을까'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시감상하게 된다.
알라스카를 좀 더 살펴야 한다.
그런데 회쟁론을 살펴보느라 시간을 많이 내지 못했다.
위치상 지도상의 중심 부분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그곳을 지나가는 여인에게 '알았을까' 이런 곳은 본래 얻을 수 없음을 말한다고 하자.
그리고 아무리 걸어다녀도 여기에 오고 감은 얻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 여인이 과연 그 의미를 '알아 들었을까.'
그런데 그 여인이 본인이 제시한 내용을 못 알아듣는다고 하자.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또 있다.
먼저 상대가 한국어를 잘 모르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그래서 언어소통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논서를 이해하는데에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 잡담 ♥
mus0fl--Marc Lavoine - Paris.lrc
쉬는 가운데 위 노래를 들었다.
각 부분이 어떤 이의 어떤 주장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그래서 각 문단에 표시를 많이 하며 읽게 된다.
읽으면서 대강 표시한 것들이라
사실 정확히 잘 구분한 것인지 본인도 잘 알 수 없다.
읽어나가다가 앞뒤가 잘 연결이 안 된다.
그래서 맥락상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점차 수정해가야 한다.
그러나 여하튼 노래에서 지나치게 많이 동그라미를 표시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빨리 논점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고 시감상을 하게 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1-09-22001.html#2063
sfed--회쟁론_K0630_T1631.txt ☞회쟁론
sfd8--불교단상_2561_09.txt ☞◆vbtw6786
불기2561-09-22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pt op tr]Paul_Cézanne,_Pyramid_of_Skulls,_c._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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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별의 하나. 끝없는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분별함. 제6식의 작용.
답 후보
● 수념분별(隨念分別)
수륙재의(水陸齋儀)
수면개(睡眠盖)
수범수참(隨犯隨懺)
수수(授手)
수연(隨緣)
수유(須臾)
약사 여래의 정토. 유리와 같이 청정한 국토라는 뜻.
답 후보
●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
정학(定學)
제두뢰타(提頭賴吒)
제삼결집(第三結集)
제석망(帝釋網)
제일능변(第一能變)
제팔식(第八識)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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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 회쟁론_K0630_T1631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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